# 314화
멤버들의 솔로 무대는 각각 1부와 2부에 나눠 배치되었다.
앞뒤 무대와 분위기도 맞춰야 하고 멤버들의 체력 안배도 해야 하니까.
그리고 1부의 마지막 무대가 재민의 솔로 무대였다.
‘재민이 무대는…… 솔로 무대라고 해야 하나?’
재민의 솔로곡 제목은 반전, 전환이라는 의미의 .
<궤도> 뮤직비디오에 나온 재민의 객실은 위아래의 구분이 없는 공간이었다.
우주에선 무중력을 빼놓을 수 없지. 무중력이란 요소는 퍼포먼스로 살리기 굉장히 좋고.
특히 몸놀림이 가벼운 재민에게 딱 맞는 컨셉이었다.
재민의 솔로 무대는 모노크롬의 재민이자, 팀 미로의 JEM으로서 준비한 무대였다.
모노크롬이 친형제라면, 현재 모노크롬과 팀 미로 단원들은 사촌 형제와 같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진짜 고마운 사람들이지.’
갈 곳 없어진 재민에게 춤을 계속 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고, 뉴마가 좋은 회사인지 의심하면서도 재민의 의사를 따라 모노크롬 복귀도 응원해줬고.
그 많은 시간을 거쳐, 이번엔 단원들이 재민의 솔로 무대를 함께 만들게 되었다.
모노크롬 무대에 팀 미로의 단원들이 백업을 설 때도 있지만, 팀 미로 단원인 재민의 무대에 다른 단원들이 백업을 선다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재민은 함께 무대를 준비하며 단원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형도 나중에 필요하면 내가 뒤에서 백업해줄게.]
[됐어, 인마.]
[야. 됐다고 하지 말고 알겠다고 한 다음에 나중에 부려먹어야지.]
그렇게 팀 미로 단원들은 사용처를 알 수 없는 ‘재민 사용권’을 가지게 되었다.
팀 미로는 뉴마가 보수를 지급하는 것으로 계약이 되어 있어서 재민이 개인적으로 사례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게 마음이 편한 듯했다.
‘나도 재민 사용권이 어떻게 활용될지 궁금하기도 했고…….’
올해 안에 사용되지 않고 내년으로 넘어간다면 어디에 쓰이는지 못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완성된 무대는 재민의 솔로 무대라기보다는, 재민을 센터에 세운 팀 미로의 무대라는 느낌이 강했다.
재민은 컬러즈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고, 혼자보다는 여럿이어야 할 수 있는 퍼포먼스의 범위가 넓었다.
그리고 실제로 완성된 무대를 보니, 콘서트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무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헙. 대박.”
“와. 나 지금 화면 보고 있는 거 아니지?”
현재 공연장의 분위기는 콘서트보다는 이전에 LA에서 봤던 댄스 대회를 방불케 했다.
관객석에서는 아이돌 콘서트에서 들릴 법한 환호성이 아니라 신기함에서 우러나온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재민은 지금껏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신기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바로 역재생 스킬.’
재민은 ‘위아래가 반전되는 무중력 공간’이란 컨셉을 ‘앞뒤가 반전된 시간선’으로 새롭게 해석해냈다.
도약과 착지, 전진과 후진은 몸의 움직임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재민은 이런 반대되는 동작들을 비슷하게 보이도록 했다.
미리 촬영한 영상을 역재생하는 듯한 비현실적인 퍼포먼스에 컬러즈는 지금 보고 있는 게 실제 라이브 무대가 맞는지를 의심하며 눈을 비볐다.
‘무수한 연습과 근력으로 일궈낸 결과물이지.’
재민의 솔로곡은 반복되는 파트가 많은 힙합 스타일의 곡이었다.
가끔 해랑의 래퍼 포지션을 노리던 재민은 본인의 솔로곡에서 간단한 랩까지 소화해냈다.
재민은 춤만 추는 게 아니라 이 노래의 가창자였기 때문에 노래가 이어지는 파트에서는 퍼포먼스 강도를 조절하며 3분 남짓한 무대를 이끌어나갔다.
재민의 무대가 끝나자 컬러즈는 멋진 공연을 본 것처럼 자연스레 박수를 쳤다.
커다란 박수 소리에서 그 감동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
‘아니, 잠깐.’
나는 위화감을 느끼고 멈칫했다. 지금 본 무대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감동이 전해져오는 게 아니라 진동이 전해져왔다.
나는 위화감의 근원을 찾아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정확히는 내 손목에 스트랩으로 걸어둔 파우치를.
스피커를 통해 큰 소리가 계속 울리는 탓에 느끼지 못 할 뻔했는데, 파우치 안에서 방금 진동이 울렸다.
‘전화가 온 건 아니야.’
전화 수신 알림이었다면 계속 울릴 텐데, 방금 진동은 길게 한 번 울리고 멈췄다.
공연장에서 무대에 집중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행동이지만 이 진동은 무시할 수 없었다.
콘솔 옆 사각지대에 있던 나는 혹시 몰라 더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파우치에 넣어놨던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런 상황에 알림이 울린다는 건…….’
나는 앵콜 곡인 이 시작하기도 전에, 마이 엔터의 멤버 관리 창에서 [UP!]이란 글씨를 먼저 마주했다.
***
1부와 2부를 가르는 기준점이 되는 VCR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콘서트 제작기였다.
[지금 제가 뭐 하고 있냐고요? 제 솔로 무대를 연습 중인데요.]
그렇게 말한 한이가 열중해서 치는 것은…… 피아노 건반이 아니라 멜로디언이었다.
그것도 초등학교에서 쓸 것 같은, 음계마다 색색 스티커를 붙인 하늘색 멜로디언.
진지한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자 앵글 밖에서 재민의 전자 악기 소리가 들려와 합주가 펼쳐졌다.
VCR은 이런 식으로 실제 멤버들이 콘서트를 준비한 과정을 각색하여 만든 영상이었다.
제이제이의 연습 장면은 율동 연습 장면으로 바뀌었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총깡총-.]
거울을 보며 동요에 맞춰 율동을 추는 막내 라인 두 사람의 모습에 컬러즈가 귀엽다며 앓는 소리를 내는데, 화면 속 재민이 “잠깐, 잠깐.” 하면서 음악을 정지시켰다.
[이 느낌이 아니야. 토끼가 이런 식이면 당근을 먹을 수 없어!]
[죄송합니다…….]
재민이 성을 내면서 목에 걸었던 수건을 바닥으로 집어 던지자 준해가 혼나는 학생처럼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재민은 투덜거리거나 짜증을 내면 냈지, 남에게 화를 잘 내지는 않았다.
VCR에서만 볼 수 있는 신선한 모습에 컬러즈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더욱 영상에 몰입했다.
[하……. 5분만 쉬었다 하자.]
재민은 그렇게 말하며 깡총깡총 뛰어서 연습실을 나갔고, 화면은 준해의 인터뷰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그 형 장단에 맞춰주기 힘들죠. 자기가 토끼인 줄 알아요.]
준해는 한쪽 팔을 의자 등받이에 올리고 한껏 거들먹거리는 포즈를 취했다.
건방진 준해 또한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어서 컬러즈의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VCR 속 우형과 해랑 콤비도 상황은 비슷했다.
[너 지금 이걸 무대에 올리겠다고 만든 거야?]
우형이 작업실 컴퓨터 앞에 앉은 해랑을 싸늘하게 쳐다봤다.
장난으로라도 좀처럼 버럭거리지 않는 우형과 재민이 까칠한 캐릭터가 되자 콩트 느낌이 더욱 짙어졌다.
반대로 해랑은 마음 약한 캐릭터였다.
[네가 작업한 거 다시 한번 재생해 봐.]
그 말에 해랑이 키보드를 조작해 작업 파일을 재생시켰다.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분명 <달의 뒷면>. 그러나 곡이 조금 전개되자 갑자기 노래방 리모컨의 디스코 버튼을 누른 것처럼 쿵짝거리기 시작했다.
음악을 정지시킨 우형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장난해, 지금? 너는 섹시 컨셉이 장난으로 보여?]
[흑흑.]
우형의 발언에 컬러즈는 크게 환호하고, 해랑은 정말 ‘흑흑’을 그대로 발음하며 우는 척을 했다.
아니, 대본상으로는 우는 척을 해야 했지만 연기 레벨 3인 해랑은 이 상황극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냥 고개를 숙이는 쪽을 택했다.
시트콤처럼 이어나가던 VCR의 뒷부분은 상황극이 아니라 멤버들이 진심으로 진행한 진짜 인터뷰였다.
첫 콘서트를 앞둔 포부,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방금까지 폭소하고 환호하던 컬러즈는 순식간에 차분해져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멤버들이나 컬러즈나 감회가 남다르겠지.’
멤버들이 어떤 마음으로 콘서트를 준비했는지 알게 된 컬러즈들은 그 마음에 보답하듯이 남은 공연 시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응원을 보냈다.
***
멤버들은 항상 컬러즈에게 할 말이 많았고, VCR로도 진심을 전했지만 오늘 느낀 점을 그대로 말해주고 싶었는지 엔딩 멘트 시간에도 마이크를 오래 잡았다.
“첫 콘서트의 첫날, 모노크롬과 여러분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싶어요.”
우형이 관객 한 명 한 명을 눈에 담듯이 관객석을 쭉 훑어보며 말했다.
이번 콘서트가 우주 컨셉이기에 더 와닿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이 넓은 우주에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날 기적 같은 확률을 말하곤 하는데, 모노크롬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왔다.
평행 세계에 있던 내가 그룹을 결성한 것부터 생각한다면 우주 전체를 따져봐도 이보다 더 기적 같은 확률은 찾기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멤버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건 특히 더 험난한 길을 걸어온 재민이었다.
“저는 이번에 <궤도>로 활동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요.”
처음 꺼내는 이야기인지 재민은 처음엔 조금 말을 고르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나 한번 입을 연 그는 주저함이 없었다.
“궤도를 잠시 벗어나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게, 저한테는 엄청나게 의미 있는 일이었어요.”
궤도를 잠시 벗어났다.
비유적인 표현이었지만 이곳에 모인 모두가 그 속뜻을 바로 알아챘다.
마냥 숨길 이유는 없지만 공식적으로 꺼내기에는 어려운 그때의 일을 재민은 지금 이 자리에서 언급했다.
“모노크롬이 달릴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민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웃는 표정으로 멘트를 마무리했다.
재민을 바라보고 있던 멤버들도 그와 같은 표정이 되었다.
이어서 멤버들도 상상만 했던 이곳에 상상 그대로의 모습으로 설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을 멤버들과 팬들에게 전했다.
눈물바다가 되어가던 분위기를 전환한 것은 이런 쪽으로도 머리가 비상한 준해였다.
“저 원래 우냐고 하면 아니라고 하는데, 이건 좋아서 우는 거라 별개거든요?”
입술을 물고 눈물을 참으려던 우형은 그 말에 웃음이 터진 건지, 울음이 터진 건지 모를 소리를 내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엔딩 멘트를 듣던 멤버들은 이제 눈물을 참지 않기로 했는지 웃으면서 울었다.
“근데 해랑이는 왜 안 울어?”
“형 안구건조증이 심한 거 아니야?”
울면서도 장난은 포기하지 않는 멤버들이었다.
그러나 해랑은 눈물이 없는 게 아니었다. 눈물이 차올라도 속눈썹이 길어서 눈물이 아래로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전에 팬 사인회에서 눈물 내기 시합을 하다가 해랑의 속눈썹에 맺힌 눈물을 보고 ‘이 정도면 운 거다, 아니다’로 토론하다가 밝혀진 사실이었다.
멤버들은 해랑에게 달라붙어 눈물을 내라고 종용하며 기어이 그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그럼 오늘 저희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고, 오늘 공연의 종착지. 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해랑의 마무리 멘트를 끝으로 콘서트 첫날의 본 공연은 세트 리스트의 마지막에 도달했다.
***
“아, 나 큰일 났다.”
우형은 마지막 곡을 부르면서도 또 감정이 벅차올랐는지 무대에서 내려오자 다시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앵콜 무대로 올라가려면 메이크업을 수정해야 하는데 계속 눈물이 나니 곤란해하는 그를 위해 해랑이 나섰다.
“끄흑. 어으, 이거 효과는 있는데 진짜 너무 아파.”
누님이 아니라 해랑에게 등짝을 먼저 맞게 될 줄은.
고통으로 눈물이 쏙 들어가게 만드는 전법은 아직도 유효했다.
“첫날부터 이렇게 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내일 눈 부으면 어떡하죠?”
“그럴까 봐 내가 아까 메이크업 선생님한테 눈 쿨링하는 팩 좀 챙겨달라고 했어. 난 우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기뻐서 나오는 눈물은 얼마든지 흘려도 괜찮지 않을까.
같이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이 서로에게 전해졌다.
내가 우형에게 대답하며 짐을 뒤지고 있으니 한이가 옆으로 다가와 호기심을 보였다.
“뭐 찾으세요?”
내가 뒤적거리던 것은 몇몇 소품들이 들어 있는 회사 가방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원하던 것을 찾아 꺼내 들었다.
“챙겨 오길 잘했다.”
“이건 언제 챙기신…….”
우는 건 괜찮지만 늑대 귀 벌칙은 별개지.
<이리>로 첫 곡을 시작해서 늑대로 끝나는 거, 괜찮은 수미상관 구성이 아닐까?
늑대의 시선을 따라 우주로 떠난 모노크롬호는 멤버들이 늑대 귀를 착용하고 나타남으로써 다시 지상으로 착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