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12화 (312/430)

# 312화

의상 선정은 전적으로 우리와 계약한 스타일리스트 팀과 나를 비롯한 몇몇 직원이 담당했다.

앨범이나 공연에 멤버들의 참여도가 높다고 해도 의상은 예외였다.

멤버들은 준비된 의상을 입어보고 움직일 때 불편한 점이 있는지 정도만 확인할 뿐, 다른 부분은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출근길 의상 같은 사복 스타일이 아니라면 관여하기 어렵긴 하지.’

무대 의상은 다섯 명 전원의 의상을 세트로 제작하니까 개인의 옷 취향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의상을 꺼내놓으면 싫은 내색을 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과한 스타일을 시도하는 타입은 아니라 그런 적은 없었다.

그리고 멤버들은 리허설을 하며 이번 콘서트 의상을 전부 입어봤다. 공연할 때 문제가 없을지 미리 확인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자신의 의상이 어떤 것인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형은 처음 보는 옷을 마주한 표정이었다.

우형이 들고 있는 것은 그의 <달의 뒷면> 의상이었다.

“분명 리허설 땐 이렇게 뚫려 있지 않았는데…….”

“……그러게.”

고개를 갸웃하는 우형의 옆에서 나는 남 일이라도 보는 것처럼 반응했다.

길이를 조금 줄여야겠다며 수선실로 돌아간 우형의 셔츠는 공연 당일인 오늘, 길이 수선과 함께 업그레이드가 되어서 도착했다.

등이 뚫려 있다고 해서 등판이 없어져 버린 건 아니고, 등허리 부분만 반쯤 뚫려 있는 형태였다.

스타일리스트가 마음대로 의상을 바꿔버린 것은 아니다. 내게 확인을 받긴 했다.

‘난…… 그냥 오케이 했을 뿐이라 자세한 건 잘 모르겠다.’

음악 방송에서 입은 의상이 전부 심플한 스타일이었으니 공연에서는 특별히 포인트를 주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에 동의했을 뿐이고.

디자인을 보니 어둠의 컬러즈…… 아니, 대부분의 컬러즈가 좋아할 것 같았고.

게다가 <달의 뒷면>이라는 제목이랑 잘 어울리잖아? 의상의 뒷면에 포인트가 들어간다는 게.

내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시치미를 떼자 우형은 다시 옷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이상해서 여쭤본 건 아니에요. 그냥 어떤 연유로 이렇게 됐나 궁금해져서.”

“그래도 재킷이 있어서 훤히 보이진 않을 것 같은데.”

갑작스럽게 노출이 생기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침 우형의 <달의 뒷면> 의상은 셔츠와 재킷이 한 세트였다. 그래서 마음 편히 오케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재킷 등판도 시스루라는 점이 조금 특이할 뿐이지.’

투명한 것도 불투명한 것도 아닌 반투명 노출.

유교 사상이 반 정도만 적용된 오묘한 의상에 우형도 알쏭달쏭한 표정이 되었다.

우형이 의상을 다시 고이 옷걸이에 걸려는데 옆에서 흥미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시원하겠다.”

음료수를 마시며 다가온 재민이 우형의 손에 들린 의상에 시선을 보냈다.

우형은 옷을 옷걸이에 걸다 말고 재민에게 내밀었다.

“너 입을래?”

“아니. 나 추위를 많이 타서.”

재민의 손에는 얼음이 든 컵이 들려 있었지만 재민은 뻔뻔하게 대답했다.

게다가 무대 위는 아무리 에어컨을 세게 틀어도 더우면 더웠지, 추울 일은 없었다.

“네 의상도 확인해 봐. 어디 한 군데 뚫려 있는 거 아니야?”

“구멍 났으면 꿰매 달라고 해야지.”

옷에 구멍이 나면 꿰매는 게 당연하긴 한데…… 우리가 콘서트 의상을 기워 입을 정도로 빈곤하진 않아.

당연하지만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던 재민은 이번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 의상도 구멍 난 거 있어요?”

“아니. 너는 리허설 의상이랑 달라진 거 없어.”

“그럼 형은 그거네. 특별 대우네. 부럽다.”

저건 칭찬이야, 놀림이야?

‘부럽다’라고 말하는 표정에서 전혀 영혼이 느껴지지 않았다.

“부러우면 재민이 네 의상도 내일 수선해달라고 할게.”

“아뇨. 저 추위를 많이 타서.”

재민은 그렇게 대답하며 얼음 컵에 꽂힌 빨대를 쪽 빨았다.

몰랐는데 재민에게는 뻔한 소리도 모순되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놀림이라는 것을 확인한 우형도 그에게 눈을 흘기고는 다시 의상을 옷걸이에 걸려 했다.

“오. 시원하겠는데.”

재민과 같은 소리를 하며 나타난 한이 덕분에 같은 대화를 반복해야 했지만.

***

작년 팬미팅 이 회사원 컨셉이었던 것처럼, 오늘 콘서트 도 컨셉이 있었다.

앨범과 마찬가지로 우주 컨셉.

공연장은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모노크롬호’의 내부라는 설정이었다.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이 같이 우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것처럼, 콘서트에선 컬러즈가 같이 여행을 하는 거지.’

그 설정을 지키기 위해 콘서트 티켓도 마치 열차 티켓처럼 디자인했다.

콘서트 티켓이나 열차 티켓이나 일시와 좌석 번호가 적힌 것은 마찬가지라 크게 차이점은 없었지만, 미래 느낌이 나는 배경을 깔고 다음 행선지를 적어 넣었다.

공연이 다가오고, 티켓을 배송받은 컬러즈는 바로 티켓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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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 티켓 왔당

열어보고 나도 모르게 무슨 기차표 예매한 줄 알았어ㅋㅋㅋㅋㅋ

└우리 몬클이랑 같이 next station으로 가는구나.. 먼가 감동이야

└코팅해서 여행 다녀온 것처럼 앨범이나 액자에 넣어두면 이쁠 듯

└우리 지역은 왜 티켓 배달 아직이야ㅠㅠㅠ

└그런데 행선지가 넥스트스테이션인거 생각해보니 웃기다 그래서 다음역이 어디죠? 다음역이요

└원래 다음 역은 어딘지 모르다가 역 도착해서야 창문 밖으로 기웃대면서 확인하는 게 국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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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에 적힌 행선지는 .

이번 앨범의 마지막 곡이자 세트 리스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이었다.

팬송이어서 클로징 멘트의 직전, 공연을 마무리하는 파트에 더욱 잘 어울리는 곡이기도 했다.

행선지로 곡 이름을 적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정확히 따지자면 진짜 마지막 곡은 앵콜 무대로 준비된 이긴 하지만.’

원래 클로징 때는 아쉬움과 여운을 즐기고, 앵콜에서 신나는 곡으로 남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게 기본이니까.

아무튼, 티켓을 받은 컬러즈는 받은 모양 그대로 앨범에 넣어 장식해두고 싶어 했지만 콘서트장에 입장해야 하므로 참았다.

그리고 콘서트 티켓이 모노크롬호의 티켓이란 것을 알게 되자 곧바로 이런 글도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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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뮤비에 나온 정체불명 3인조가 유령이 아니라 우리였네

우리도 모노크롬호에 같이 탑승하는 거면ㅇㅇ

└어? 애들 무섭게 하지 말고 당장 내리라고 했는데 그게 나였다니

└뭐야 나 뮤비 출연한거야? 엄마 나 티비 나왓어

└이제 정체불명 21795317867인조 아니냐고 ㅜㅜ

└근데 3명인 건 선착순으로 3명만 태워준다는 거임? 일단 나 자리 찜

└아니 이제 콘서트에서 세 명만 남을 때까지 배틀로얄을 펼치는 거지

└아하! 콘서트 티켓은 천하제일무도대회 참가증이었구나

└세 자리밖에 없다니 경쟁률 좀 빡세네.. 그래서 더 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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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궤도> 뮤직비디오에 나온 의문의 승객 세 명의 정체를 추리하다가 내 처음 의도에 가까워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컬러즈의 추측은 갑자기 급발진을 하더니 배틀로얄을 대비해야 한다며 무기를 고르기 시작했다. 공식 응원봉이 기본 무기라는 듯하다.

티켓팅에 용병을 고용해서 참전하는 것을 보고 ‘티켓팅은 전장이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컬러즈는 콘서트 또한 전투적인 자세로 참여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들의 기개는 콘서트장 내를 가득 메우는 함성의 크기로 확인할 수 있었다.

“블랙 앤 화이트! 모노크롬입니다!”

오프닝 무대를 마친 멤버들이 컬러즈에게 인사했다.

콘서트를 여는 첫 무대는 <이리>였다.

늑대가 뜨지 않는 달을 찾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그 하늘 위에는 모노크롬호가 달리고 있는 거지.

콘서트의 배경을 지상에서 우주로 전환하는 데에 딱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해서 <이리>가 세트 리스트의 첫 곡이 되었다.

나란히 선 멤버들이 각자 소개와 인사를 마치고, 우형이 오프닝 멘트를 이어나갔다.

“이렇게 많은 분이 모노크롬호를 찾아와 주시다니…….”

“형이 모노크롬호 차장님이에요?”

우형이 설정에 맞춘 인사말을 내뱉자 옆에서 준해가 질문했다.

막내여서 그런지 항상 팀장이나 반장 같은 ‘장’ 자리에 관심이 많은 그였다.

우형은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제가 차장입니다. 멤버들은 제 쫄병이고요.”

“언제부터……?”

느닷없이 쫄병이 되어버린 해랑이 황당한 목소리로 물었으나 우형은 당연히 그렇다는 듯이 대답이 없었다.

“그러면 여기, 모노크롬호에 같이 탄 컬러즈도 쫄병이에요?”

이어서 재민이 질문하고, 어째서인지 컬러즈는 환호했다.

‘쫄병이라서 오히려 좋은 거야……?’

하긴 몬클하우스의 개집에도 돈 주고 입주하겠다던 컬러즈들인데, 쫄병이면 아주 좋은 신분이지.

그러나 오늘 콘서트 설정에서 컬러즈는 쫄병 역할이 아니었다.

“아뇨. 컬러즈는 소중한 승객분들이죠.”

우형이 ‘소중한’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였으나 쫄병이 더 좋은지 관객석에선 중간중간 아쉬워하는 소리도 미약하게 흘러나왔다.

“그럼 저희 뮤비에 나온 그 승객 세 명이 컬러즈?”

한이가 눈을 크게 뜨며 관객석을 바라보자 컬러즈는 그렇다고 열심히 대답했다.

이미 커뮤니티와 SNS 등지에서 그에 관한 대화를 마친 컬러즈였다. 이들은 이제 그 인영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컬러즈의 SNS 프로필 사진은 모노크롬의 활동에 따라 유행이 재깍재깍 바뀌는 편인데, 최근 프로필 사진 유행은 뮤직비디오에 나온 그 의문의 그림자였다.

흐릿한 저화질의 그림자 위에 귀엽게 홍조나 고양이 귀 등을 그려 넣어 꾸미는 컬러즈도 있었다.

아이돌 팬 계정 같지 않은 수상한 프로필 사진 무리를 보고 사람들은 ‘추리 만화 범인 같다.’라는 감상을 남겼다.

“그게 컬러즈였으면 지금 물어보면 되겠다. 왜 뒤에 숨어 있었던 거예요?”

준해가 관객석에 더 가까이 다가가서 묻자 다른 멤버들도 같이 귀를 기울였다.

하지도 않았던 일을 ‘왜 했냐’라고 묻는데도 컬러즈는 성실히 대답했다.

여전히 큰 웅성거림이었지만 멤버들은 어떻게 잘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촬영에 방해될까 봐 숨어 있었다고요?”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무서워했잖아.”

미지의 공포 요소로 넣은 건데 배려심이 넘치는 훈훈한 비하인드가 되었잖아.

쇼케이스 때 의문의 인영을 보고 특히 무서워했던 멤버 삼인방은 이제 안심할 수 있겠다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이런 해결로 괜찮은 건가…….’

원래 정해둔 정답은 없었으니까 틀린 건 아니지만. 멤버들과 컬러즈의 마음속 파랑새라고 하자.

모노크롬의 첫 콘서트는 뮤직비디오 괴담을 해결하며 제대로 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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