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09화 (309/430)

# 309화

재민의 생일 다음 날, 며칠 만에 하늘이 맑게 개었다.

콘서트를 앞둔 멤버들은 오늘도 회사였고, 재민은 또 복도 끝 창문 앞에 서서 광합성 중이었다.

나는 그 옆으로 다가가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비가 조금만 더 빨리 그쳤으면 좋았을걸. 하필 오늘 날이 갰네.”

어제 생일을 맞은 재민은 모노크롬 대표로 MC에게 1위 트로피도 직접 받았고, 앵콜 무대에서 전자악기 연주도 해내며 신나게 생일 축하를 받았다.

그래도 기왕 갤 거 조금만 빨리 개 줬으면 더 완벽했을 텐데 말이야.

“아니에요. 어제 숙소로 돌아갈 때가 밤 12시 전이었는데 그때 그쳤어요.”

“그래?”

“네. 비도 그쳤고, 운동화도 받았고, 1위 트로피도 받았으니까 제 생일 소원은 다 이뤄진 거죠.”

고개를 돌려보니 재민은 정말 마음에 걸릴 것 하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한두 시간 비가 그친 것으로 만족하다니. 이렇게 욕심이 없으면 삶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어쨌건 그가 좋다면야 다행이었다.

“주인 님은 생일에 이루고 싶은 소원 있어요?”

“글쎄…….”

생일이라……. 소원 때문에 인생이 바뀌어버리는 경험을 한 번, 아니, 대표까지 포함해서 두 번 겪었더니 소원을 섣불리 빌기가 무서워졌다.

‘또 다른 세계로 가 버리거나 이상한 퀘스트가 생기는 것만 아니면 좋겠는데.’

토템 취급받으면서 소원이 무섭다니 모순적이지.

토템 자격이 없다기보다는 토템의 능력이 너무 강력해서 내 힘이 두렵다고 하는 편이 정확했다.

“저희 이번 곡이 별똥별처럼 소원을 이루러 가는 열차 컨셉이잖아요.”

“그럼 생일 소원은 내가 들어줬다기보다는 컨셉 따라서 이뤄진 거 아닐까?”

“네. 그러니까 저희도 주인 님 소원을 이뤄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퀘스트의 정체도 얼추 알았고 내가 멤버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내 소원을 이뤄주겠다니.

“내 소원까지?”

“컬러즈도 주인 님 덕분에 소원이 많이 이뤄졌대요. 그러니까 주고받으면 좋잖아요.”

컬러즈가 가상의 주인님에게 소원을 빈 것이 멤버들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따지자면 컬러즈의 소원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랑 겹치다 보니 자연스레 이뤄진 거지만…….

어쨌거나 컬러즈의 보답까지 해주겠다니 기특한 생각을 하네.

“저번에 음악대상도 말씀하셨지만 상 받는 건 저희한테 좋은 거잖아요. 주인 님한테 좋은 거로요.”

“으음…….”

생각해 보니 최근엔 게임과 관련된 것 말고, 나를 위한 소원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굳이 떠올려보자면 ‘아프지 말고 행복해지자’ 정도인데…….

이건 그냥 평생의 목표이지, 누군가한테 부탁할 소원이라고 하기엔 이상하잖아?

“소원은 잘 모르겠고 그냥 너희가 잘됐으면 좋겠어.”

“안 돼요. 그런 거 말고.”

“꼭 나 혼자만 좋은 거여야 해? 사실 나는 굳이 신경 써 줄 필요 없는데.”

“여우 형이 효도하자고 했어요.”

“…….”

우형이 이전에 나와 대화하다가 효도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날 정말 부모님처럼 보고 있는 거야?’

내가 부모님을 잘 챙기라고 해서 그 말을 잘 듣겠다는 의미로 얘기한 줄 알았더니.

멤버 개개인의 부모님 같은 존재는 당연히 될 수 없고, 모노크롬이란 팀의 부모님 같은 걸까.

‘내 손으로 만들어내고 이름을 붙였다는 의미에서는 부모님과 비슷하긴 하네.’

그러고 보니 ‘너희가 잘 먹고 잘살면 바랄 게 없다.’라고 생각하는 거, 장성해서 손을 떠난 자식을 보는 부모님의 심정 아니야?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넷째 아들이 되어 버린 재민이 내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생각해 보고 떠오르면 말해줄게.”

“네.”

갑자기 숙제가 생겼다.

재민의 말을 듣고 나에 관해서는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단 것을 깨닫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내 업보에 고통받거나 대표를 보면서 뜻하지 않은 자아 성찰만 해 왔지.

‘한번 제대로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평소에 생각해 둬야 나중에 갈림길에 섰을 때 좀 더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모노크롬이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말은 내 마음에 집중해 볼 좋은 계기가 되었다.

***

은 스페셜 앨범이기에 음악 방송 활동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음악 방송 활동을 진행했고, 덕분에 활동 종료를 맞이해도 컬러즈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물론 아쉬워하는 팬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만. 평균적으로 다른 앨범 활동을 종료할 때만큼 ‘크게’ 아쉬워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콘서트가 기다리고 있는데 활동 종료로 슬퍼할 틈이 어디 있겠어.’

컬러즈가 정말 오래 기다렸던 첫 단독 콘서트.

첫 단독 공연, 첫 정규 앨범, 첫 1위를 이루고도 아직도 처음 하는 것이 남아 있다는 게 놀랍고도 슬픈 일이지만…….

컬러즈는 멤버들과 여러 종류의 ‘처음’을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을 감사해했다.

컬러즈가 첫 단독 콘서트라며 들떠 있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커뮤니티에는 이런 질문이 올라오기도 했다.

━━━━━━━━━━━━

모노크롬 단콘이 처음임? 연차 꽤 되지 않았나

└ㅇㅇ 올해로 7년차

└지금까지 콘서트를 한번도 안함? 이유가 있음?

└많은 일이 잇엇다 진짜

━━━━━━━━━━━━

종종 질문을 넘어서서 ‘왜 지금까지 콘서트도 못 했냐’는 식으로 비꼬는 반응도 있었으나. 지금 컬러즈는 매우 너그러운 상태였다.

첫 콘서트 외의 다른 것에 에너지를 소모할 생각도, 관심도 전혀 없어 보였다.

‘건강하면 면역이 좋아지는 것처럼, 멘탈이 건강하면 방어력이 오르나 봐.’

때려도 대미지를 가할 수 없는 푹신한 털뭉치처럼 모든 공격을 튕겨내는 경지에 이른 것을 보면 말이야.

컬러즈는 콘서트를 기다리는 이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을 생각인지 평소보다 더욱 모노크롬 영업에 열을 올렸다.

━━━━━━━━━━━━

데뷔팬이면 기분 어떨지 궁금함

성장한 모습 보면 진짜 뿌듯할듯ㅋㅋㅋ

└나 아는 언니가 인기돌 데뷔팬인데 말하는거 들어보면 거의 신생아때부터 키웠음ㅋㅋ

└가벼운 마음으로 산 주식이 우량주 된 기분?

└신인이나 라이징 데뷔팬이면 뜨기 시작할 때 선발대부심이 좀 있지ㅋㅋ 연차 좀 차면 그냥 거의 인생의 동반자

└데뷔팬 타이틀 있으면 기분이 좋음 but 꼰대가 되지 않게 조심해야함

└7년차 입덕에도 데뷔팬이 될 수 있다? 모노크롬 첫 단콘 이전에 입덕하면 당신도 공식 데뷔팬! 데뷔팬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아 기출변형 또 당했네

━━━━━━━━━━━━

컬러즈는 첫 단독 콘서트 전에 입덕해도 데뷔팬으로 쳐주겠다며 에누리까지 했다.

이는 뷰이라이브를 하던 멤버들이 ‘6년 차 입덕 팬까지 데뷔팬’이라는 컬러즈의 기적의 계산법을 보고 “6년 차에서 반년밖에 안 지났는데 데뷔팬 놓치면 아쉬우니까…….”라며 기준을 새로 정한 것이 원인이었다.

첫 콘서트를 하게 되면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 테니까 그때까진 신인 시절로 치겠다나.

‘벌점을 마구 퍼줄 때도 느꼈는데 인심 참 후해.’

그래도 이런 영업이 효과가 있었는지 모노크롬에게 관심을 가지던 사람들은 곧 데뷔팬 마감이란 소리에 입덕의 문을 넘어서고는 했다.

역시 ‘품절 임박’이 가장 효과적으로 구매를 유도하는 법이지.

컬러즈는 콘서트를 앞두고 열심히 온라인 공간을 뛰어다니며 영업을 펼쳤고, 멤버들도 공연을 위해 한창 안무 연습 중이다.

활동을 마친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혹여나 팀 미로 스타일대로 연습하느라 무리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어서 나는 연습실의 동태를 살펴보러 갔다.

단체 안무 연습은 끝났는지 팀 미로 단원들과 우리 스태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거울 앞에선 재민과 준해, 팀 미로 단장인 민후가 뭔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역시 열심…….’

방해가 될까 봐 다시 문을 닫으려는데, 연습실 내 소파에 누워 있던 우형과 눈이 마주쳤다.

“앗. 저 농땡이 치는 게 아니라…….”

우형은 멍하니 누워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민망한 얼굴로 일어나 손으로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했다.

“제 솔로 무대 연습 끝나고 준해가 다음 순서라 잠깐 보고 있었어요.”

“아니, 뭐. 쉴 수도 있지.”

거울 너머로 내가 우형과 대화하는 것을 봤는지 준해가 이쪽으로 홱 돌아서 이르듯이 말했다.

“저 형 방금까지 누워 있는 게 안무 연습이라고 계속 저러고 있었는데요.”

그런 뻔뻔한 소리를 했단 말이야?

다시 우형을 바라보니 그는 어깨를 긁적거리며 변명했다.

“제 무대가 소파를 쓰는 안무라 어떻게 눕고 앉아야 잘 보일지 각도 연구를 좀…….”

“난 힘든데 옆에서 보라는 듯이 웃으면서 구경했잖아!”

“아냐. 시야를 90도 돌려서 보니까 더 멋있어서, 흐뭇해서 웃은 거였어.”

우형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아무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다른 조용한 데서 쉬어도 되는데 굳이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건 준해 말대로 놀릴 목적이었던 듯하다.

오늘도 평화로운 모노크롬이었다.

내가 들어와서 우형이 똑바로 앉자 준해는 그에게 눈을 흘기며 연습을 재개했다.

“제이제이는 퍼포먼스 그룹이었나 봐.”

이번 준해의 솔로 무대 안무는 재민이 진두지휘에 나섰다.

<체크메이트> 활동 전에 준해가 재민의 파트를 맡게 되어서 속성 집중 교육을 받던 모습이 딱 저랬는데.

내가 두 사람을 ‘제이제이’라고 칭하자 우형은 방송 촬영 당시가 떠올랐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시연 선생님도 온대요? 저번에 초대권 말씀하셨잖아요.”

“응. 시연이 어머님이 아마 1부만 볼 수 있을 것 같다고는 하셨는데…….”

초대석으로 입장한 연예인들은 중간에 먼저 퇴장하는 경우도 제법 많았다.

멤버의 가족들도 팬들보다 먼저 나와 대기실로 오기도 하고.

그런데 시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어린이한테…… 섹시 컨셉 무대를 보여줘도 되나?”

공연이 8세 이상 관람가라지만, 8세 어린이에게 보여줘도 괜찮은 걸까?

공중파 음악 방송에도 나온 무대지만 음악 방송은 대개 15세 이상 시청가였다.

가사가 이상한 것도 아니고 문제가 될 구석은 없지만 최근에 어둠의 컬러즈를 많이 봤더니 갑자기 걱정되었다.

우형도 내 말을 듣고 잠시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빠져 있더니 손뼉을 짝 쳤다.

“아! 세트 리스트에서 <달의 뒷면>은 2부였어요.”

“그랬나? 그럼 걱정할 필요 없겠다.”

사실 섹시 컨셉도 식견이 있어야 섹시로 받아들이지, 어린이들은 눈앞에서 아이돌이 웨이브를 해도 꿀렁거린다거나 재밌다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컸다.

‘해랑이의 매력 레벨 같은 거지…….’

시연의 동심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해칠 생각도 없었지만.

“그러고 보니 해랑이랑 한이는 다른 작업 중이야?”

“네. 해랑이는 프로듀스팀에 가 있고 한이는 저희 작업실에요.”

“요즘 한이는 안무 연습 시간 빼고는 계속 거기 있나 보네.”

“걔가 자기가 만족할 때까지 끝까지 붙잡는 성격이라.”

틀어박히는 건 해랑의 습성이었는데, 최근엔 해랑 대신 한이가 작업실에 계속 틀어박혀 있었다.

원래 우형이 주로 상주하던 공간이었으나 당장 곡 작업 할 것은 없었기에 한이에게 자리를 양보한 듯했다.

‘그래서 평소 있던 작업실이 아니라 연습실에 누워 노숙하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제이제이를 구경하는 우형의 옆모습이 갑자기 처량해 보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