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05화 (305/430)

# 305화

해랑은 언제나처럼 작업물을 쌓아두는 스타일이었고, 이 <달의 뒷면>은 그 작업물 중 하나를 우형이 함께 완성된 형태로 발전시킨 곡이었다.

‘해랑이 특유의 어두운 감성을 살리면서 아이돌 노래를 만들면 이런 게 탄생하는구나.’

우형이 참여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해랑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만한 노래를 만들고자 계속해서 노력해 왔다.

쇼케이스 팬미팅에서 공개한 해랑의 첫 자작곡을 떠올려 보면 그의 발전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때의 자작곡은 우형이 편곡으로 열심히 중화했는데도 어둡고 슬픈 이미지가 남아서 이별한 듯한 절절한 느낌이 강했는데, 이 <달의 뒷면>은 어둡긴 하지만 슬픈 곡은 아니었다.

해랑의 스타일에 섹시 컨셉을 가미한다는 선택은…… 매우 옳았다.

‘어두운 스타일을 중화하는 게 아니라 살리는, 아니, 팬들이 좋아할 만한 방향으로 극대화하는 방법이야.’

섹시 컨셉도 얼마든지 대중적으로 만들 수는 있다. 멜로디로는 대중성을 잡고 가사나 무대로 섹시를 표현하면 되니까.

그러나 이 곡은 우형이 작곡에 같이 참여했어도 해랑의 기존 스타일이 강하다 보니 대중적이기보다는 마이너한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타이틀곡이 아닌데 뭐 어때.’

대중 취향이란 것이 있는 한편 덕후 취향이라는 게 있다. 이 곡은 바로 그 덕후 취향을 공략할 만한 곡이었다.

그러면 서브곡으로는 아주 훌륭하지.

사실 이 곡은 원래 해랑의 솔로곡 후보 중 하나였다.

그러나 솔로곡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해랑은 고민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곡이 단순하다 보니 반대로 퍼포먼스가 임팩트 있었으면 좋겠는데, 솔로 무대로 만들면 좀 비어 보일 것 같아서요.”

해랑이 섹시 컨셉 곡을 들고 무대 위에 서는데 비어 보인다고……?

그런 의문이 들어서 고민이 잘 와닿지는 않았으나, 작곡가이자 메인 댄서이기도 했던 그가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이 곡은 화려한 사운드 없이 절제된 멜로디가 심플하게 반복되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감각적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그야말로 목소리가 하드캐리하는 곡이었다.

‘해랑이 음역이 그리 넓은 게 아니어서 본인은 단순하다고 느낀 건가?’

그 점을 목소리의 매력으로 커버하는 게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해랑은 뭔가를 더 채워 넣고 싶은 듯했다.

솔로 무대라고 무대 위에 혼자 서는 건 아니고 댄서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펼치게 되겠지만 어쨌든 메인은 해랑 한 명이어야 한다.

‘그게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메인을 해랑 한 명이 아니라 모노크롬 단체로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달의 뒷면>은 결국 모노크롬의 단체 곡이 되었다.

솔로곡 후보가 이 곡 하나였으면 고려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해랑이 작업물을 쌓아두는 스타일이기에 다른 솔로곡 후보가 있었다.

원래는 을 서브곡으로 삼을 생각이었는데 <달의 뒷면>이 서브곡으로 격상했다.

해랑의 솔로곡 후보로 나온 두 곡을 전부 살리면서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방법이었기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티저 공개 단계에서 컬러즈는 해랑이 작곡에 참여했다는 점 다음으로 제목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 곡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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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감 왔어

달의뒷면 무대 섹시임ㅇㅇ

└야 나도 보자마자 그 생각함

└달의 앞면도 아니고 뒷면? 제목부터 은밀한 뭔가가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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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본격적인 섹시 컨셉을 기다리고 있었나 봐.’

하긴 가상의 주인님 토템에게 섹시 컨셉이 보고 싶다며 소원을 빌곤 했었지.

다른 무대 위에서의 모습을 보고도 귀엽다, 멋있다, 섹시하다 하면서 나노 단위로 다양한 감상을 하는 그들이지만, ‘무대에서 보여주는 섹시한 모습’과 ‘대놓고 하는 섹시 컨셉’은 많이 다르게 와닿는 모양이었다.

그 증거가 바로 이 데시벨.

주변을 둘러보면 입을 틀어막고 있는 컬러즈가 많은데 그와 반대로 함성이 대단히 우렁차서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이곳은 달의 뒷면. 아무도 우리를 보지 않아, Slow down.)

<달의 뒷면>은 남들에게 들키지 않겠다는 듯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잘 어우러지는 곡이었다.

한이도 이 곡에선 <송투유>에서 선보였던 것처럼 평소보다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르는 파트가 많았다.

지구에선 관측되지 않는다는 달의 뒷면, 단둘만이 있는 공간.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이곳에서 두 사람은 여유로운 듯, 조급한 듯 오묘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서로를 바라본다.

보통 모노크롬의 안무는 재민과 팀 미로의 합작이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해랑도 안무 제작에 참여했다.

가사의 흐름처럼 안무 또한 강약 변화가 센 편이라 노래의 텐션과 잘 어울렸다.

‘멤버들이 해랑이의 스타일에 맞추면 이런 느낌이구나.’

방금까지만 해도 웃으며 토크를 나누던 멤버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평소에도 온오프의 갭은 있었지만 이번엔 작정한 섹시 컨셉에 컬러즈의 현장 반응이 더해지니 더욱 색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뷰이라이브 중계 채팅창에 있는 컬러즈들도 입을 틀어막고 있는지 조합되지 못한 문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채팅의 반절은 [미쳤다]와 그 활용형이었다. 컬러즈의 ‘미쳤다’는 대개 자신의 상상을 초월한 것을 목도했을 때 내뱉는 감탄사였다.

‘섹시 컨셉에 의상은 생각보다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알겠어.’

시원한 의상으로 준비했으나 분위기는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환호성을 지르는 컬러즈의 성대가 걱정되기 시작할 때쯤, <달의 뒷면> 무대가 끝나고 조명이 어두워졌다.

***

무대가 끝난 후 멤버들이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컬러즈도 진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알차게 준비한 토크 코너, 그 두 번째 시간은 <궤도> 뮤직비디오를 함께 보며 해설하는 시간이었다.

<궤도>의 뮤직비디오 안에 이번 의 전체적인 구성에 관한 요소들이 녹아 있기 때문에 함께 포인트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건 뮤비 리액션 영상이 아니라 리액션 라이브라고 해야 하나?’

물론 팬들에게 뮤직비디오를 해석하는 재미를 빼앗을 수는 없으니까 모든 걸 짚고 넘어가지는 않는다.

이스터에그처럼 보일 듯 말 듯 사소하게 들어간 요소들이나 놓치면 섭섭할 만한 포인트를 설명할 예정이었다.

뮤직비디오의 시작은 모노크롬이 탄 우주 열차가 지금 지나가는 지점을 표시하는 레이더 화면.

그 위에 타이틀곡 제목 ‘궤도, Starline’이 적혀 있다.

이 또한 뮤직비디오 전체에 사용된 것처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파트였다.

“여기 레이더 화면을 보시면 모노크롬호가 지금 달의 뒷면을 지나고 있죠?”

“오오.”

준해가 시작 화면의 포인트를 집어내자 컬러즈들은 마치 강의를 듣는 학생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뮤직비디오가 나오자마자 분석에 들어가는 컬러즈도 있겠지만, 아직 공개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세세한 부분까지는 찾지 못한 컬러즈가 더 많을 것이다.

기차가 터널을 지나듯이, 모노크롬호는 빛이 닿지 않는 달의 뒷면을 지난다.

모노크롬호가 달의 그림자를 빠져나오자 망원경을 들고 서 있던 화면 속 우형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바뀐다.

“오오-, 옆선.”

“아니, 이렇게 다 같이 보니까 조금 부끄럽다.”

한이가 우형의 옆선을 언급하자 컬러즈는 마치 이 장면을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환호했다.

우형은 콧대가 날렵한 편이고 옆얼굴에선 그게 더 잘 드러났다.

‘그래서 첫 장면은 앞모습이 아니고 옆모습으로 하자고 의견이 모였지.’

우형은 자신이 직접 시선을 받는 것보다 전광판에 크게 나온 본인의 얼굴에 시선이 모이는 게 더 부끄러운지 어색해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모습에 컬러즈는 또 크게 반응했다.

뷰이라이브 중계 채팅이 현장 컬러즈의 반응에 자막을 달아주고 있었다. 이번 환호성은 ‘귀엽다’라는 뜻인 듯했다.

“그래서 여우 형은 뭘 하고 있던 건가요?”

“달의 뒷면을 보고 있었나?”

“그러면 <달의 뒷면> 가사가 ‘아무도 보지 않는 달의 뒷면’이 아니라 ‘여우형이 보고 있는 달의 뒷면’이 되어야 해요.”

준해가 논리적으로 대답하자 의문을 제기했던 한이와 재민은 바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바로 아까 미뤄뒀던 솔로곡 트랙에 관한 설명이 들어간다.

“트랙 리스트를 보면 솔로곡은 트랙이 아니라 Room 1~5라고 적혀 있는데, 뮤직비디오를 보시면 멤버별로 자기만의 객실이 하나씩 있어요.”

우형이 말하자 전광판 화면은 우형이 있는 공간을 더 넓게 비추는 장면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뮤직비디오에 나온 이 객실들이 각자의 솔로곡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준비 기간을 오래 둔 이유에는 이런 점도 있었다. 모든 트랙이 복합적으로 이어진 앨범이라 모든 수록곡의 얼개가 나온 후에야 뮤비를 찍을 수 있었거든.

이 뮤직비디오에서 미지의 신호를 잡아내는 것은 바로 우형의 역할이었다.

그의 객실에는 통신 기기들, 안테나 등이 쌓여 있다.

<궤도> 속의 우형은 항상 외부와 통신을 하고 싶어 하며 우주를 떠도는 신호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아! 우형이 솔로곡이!”

“아아-, 그래서 전화……!”

모범생 컬러즈들은 설명을 듣자마자 이 요소들과 우형의 솔로곡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알아챘다.

우형의 솔로곡은 연인의 전화를 기다리며 자신이 먼저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내용의 귀여운 사랑 노래였다.

다음은 한이의 객실. 뮤직비디오 속 한이는 전축 옆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메인 보컬답게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죠?”

“이 고상한 취미에 할 말이 좀 있는데요.”

음악에 빠진 화면 속 자신을 보며 뿌듯해하는 한이의 옆에서 준해가 손을 들고 발언권을 가져갔다.

“우주에는 소리를 전달하는 공기가 없어서 소리가 안 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우주 한복판에서 음악을 즐긴다는 건 사실 굉장히 사치스러운 취미거든요?”

“사치 부리는 유한이.”

똑똑이 준해가 과학적 사실을 들며 의견을 펼치자 해랑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옆에서 우형이 “그래, 너 씀씀이를 좀 줄여야 해.” 하면서 한이 몰이를 부추겼다. 재민도 빠지지 않고 이 분위기에 동참했다.

“형 얼마 전에 카페 가서 있는 토핑 다 달라고 해서 이만한 음료 받아온 적 있었잖아. 다 먹지도 못하면서 나한테 먹이려고 그러고.”

“뮤직비디오에서 음악 좀 들었다고 내 소비 생활을 지적받을 일이야?”

사치라고 하기에는 귀여운 에피소드였기에 컬러즈는 멤버들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내가 멤버들을 구경하며 힐링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전광판 화면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멈췄다.

“이건…… 무슨 장면이죠?”

“그냥 지나가는 장면 아니야?”

멤버들은 고개를 갸웃하고, 이 장면에 무슨 포인트가 숨어 있는지 알고 있는 컬러즈들은 열심히 정답을 알려주려 했다.

그러나 여러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 탓에 멤버들에겐 잘 전해지지 않았다.

무대 앞 모니터로 채팅창을 확인하던 재민은 전광판을 다시 보고는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면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여기 승객 명단을 보면요. 모노크롬호에 세 사람이 더 있었대요.”

“열차에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어?”

뷰이라이브를 보고 있던 온라인의 컬러즈들은 채팅으로 [그거 나다]라면서 열심히 자신을 어필하고 나섰다.

화면은 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다섯 명이 모여 있는데 뒤에 알 수 없는 인영이 그림자처럼 나온 장면이었다.

“뭐야, 무서워!”

“우리도 모르고 찍었단 말이에요.”

“이거 뭐예요, 진짜?”

겁쟁이 삼인방은 화들짝 놀라고, 해랑은 그림자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건지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한이는 컬러즈의 반응을 살폈다.

이게 뭐냐면…… 그냥 재미있으라고 넣었다.

컬러즈는 뮤직비디오 공개부터 쇼케이스가 시작하기 전의 그 짧은 시간 동안 우주 망령이라거나 환각이라는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지만 사실 정해진 건 없다.

굳이 따지자면 컬러즈를 표현하는 시안, 마젠타, 옐로를 생각해서 세 사람이라고 표현하긴 했다.

[그거 나다]라는 컬러즈의 주장은 일부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정답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거지. 동화 속의 파랑새처럼.’

청량이나 납량이나 비슷하니까 두 가지를 세트로 선사해 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준비한 이 이스터에그들은 성공적인 여름 선물이 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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