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4화
우형과 성운이 작곡팀을 결성한 후, 자작곡을 공개한 적 있는 해랑도 기회가 되면 객원 멤버로 참여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우형이 함께 있다고 해도 이는 모노크롬으로서의 활동이 아니라 외부 활동이었다.
만일 해랑이 작곡한 곡을 다른 사람이 부르게 된다면, 모노크롬 멤버가 가장 먼저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번 앨범에 그가 작곡으로 참여한 곡을 넣게 되었다.
꼭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가 작곡 활동을 계속한다면 언젠가 모노크롬의 곡을 쓰게 되는 건 필연적이기도 했고.
‘그리고 이번 스페셜 앨범이 마침 좋은 기회였던 거지.’
이번 앨범에 들어가는 각 멤버의 솔로곡도 비슷했다.
해랑은 믹스테이프로 먼저 자작곡을 냈지만 모노크롬의 해랑으로서 낸 거니까 문제없고.
한이도 이미 OST로 솔로 음원을 낸 적이 있으나 그건 드라마 홍보와 연계된 활동이니 예외로 치고.
사업적으로 엮이지 않고 순수하게 멤버에 맞춰서 만든 솔로 음원은 모노크롬의 앨범으로 먼저 공개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꾹꾹 담아 완성한 것이 의 8개 트랙.
그리고 곡 정보 다음으로 컬러즈의 반응이 폭발한 것은, 컨셉 포토를 공개했을 때였다.
━━━━━━━━━━━━
애들 머리색 조명 받은 게 아니라 염색한거지??
└ㅇㅇㅇㅇㅇㅇ
└우형이 쨍한색 잘어울릴 것 같았는데 완전히 여우왕자님됐네ㅠㅠㅠㅠㅠㅠ흡족
└스페셜 앨범이라길래 뭐가 스페셜인가 했는데 이게 바로 스페셜이구나
└아니 저번에 한이가 빨강했을 때도 그렇고 이런 빨간머리 할 줄 알면서 뉴마 왜 옛날엔..
└준해는 애쉬 계열 진짜 잘받앜ㅋㅋㅋㅋㅋㅋ
└청해랑 존버단 이제 해산이다 수고했다 얘들아
━━━━━━━━━━━━
우주 컨셉이면 신비로운 느낌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이번 앨범에선 전원이 염색한 티가 나는 머리카락 색이 되었다.
그래도 다섯 명 전원이 튀면 오히려 다 같이 묻혀버릴 위험이 있어서, 단체로 있을 때 밸런스가 잘 맞을 만한 적당한 톤을 찾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썼다.
재민의 체리레드와 해랑의 어두운 블루로 무게를 잡아주고. 준해는 많이 밝지 않은 애쉬퍼플이었다.
그리고 남은 두 명은 이 셋보다는 밝다고 느낄 만한 머리 색이었다.
‘우형이는 눈동자 색에 맞추려 한 건데.’
햇빛을 받으면 주황빛으로 보이는 눈동자 색이 인상적이어서 이번에 머리카락 색을 그에 맞췄더니, 컬러즈는 드디어 우형이 진짜 여우인 게 밝혀졌다며 후련해했다.
그리고 한이의 머리 색은, 컬러즈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
한이 머리는 조명 받은 거 맞나?
아니 내가 내 눈으로 보는데도 무슨 색인지 모르겠엌ㅋㅋㅋㅋ
└청회색 아녀?
└근데 그런 것치고는 약간 붉은기? 보라색도 섞여잇고..
└내 눈엔 윗머리가 너무나 청록색인데ㅇ.ㅇ
└머리에 닿은 조명이 좀 초록색 계열인듯?
━━━━━━━━━━━━
그래서 한이의 머리 색이 이 중에 무슨 색이냐면…… 전부다.
저번에 컬러즈에게 금발을 보여줬으니, 앨범에선 좀 더 특이한 색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많은 고민을 거쳤다.
멀리서 보면 청회색으로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청록색과 남보라색이 구역을 뚜렷이 나누지 않고 그라데이션을 이뤘다.
전체적으로 애쉬 컬러를 만든 후에 색을 덮은 것이라, 햇빛을 받으면 은색으로 오묘하게 빛나서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뭐라고 하더라. 판타지 느낌 나는 염색 이름이 있었는데.’
오로라, 유니콘, 홀로그램……. 다양하게 불리는 그 염색 기법은 이름부터가 우주 컨셉에 맞게 미래지향적이고 신비로웠다.
다만 그 머리를 관리해야 하는 당사자는 여러모로 성가신 점이 있는 듯했다.
“와. 이거 매일매일 색깔이 달라져요. 활동 기간엔 어떻게 관리하지?”
이전에 금발로 탈색을 한 적도 있었지만 인생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이런 고난도 염색모는 감당이 안 되는지 한이는 스마트폰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말했다.
특히 색이 잘 빠지는 푸른색 계열만 섞여 있어서 더욱 걱정되는 듯했다.
재킷 사진이나 뮤직비디오를 찍을 땐 그때만 유지하면 되는데, 활동 기간엔 아마 중간에 색이 빠져서 같은 머리 색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매일 색깔이 달라지는 것도 컨셉의 일부라고 하자.”
“그럼 이제 활동 사진을 보면 제 머리카락 색만 보고 몇 월 며칠인지 알 수 있겠네요.”
한이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발목만 보고 멤버를 알아맞히는 컬러즈에겐 그게 가능할 수도 있어.
그렇게 빨강과 파랑 사이의 보라, 여우 리더, 우주 머리의 메인 보컬은 바쁘게 컴백 준비를 했고, 드디어 앨범 발매일이 찾아왔다.
***
은 멤버들의 참여도가 높았고 앨범 구성이 특이했기에 멤버들이 해설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 쇼케이스는 토크 시간이 알차게 준비되었다.
깔끔한 셔츠 유니폼 차림의 멤버들은 선명한 색의 타이나 서스펜더 등으로 각자 의상에 차이를 줬다.
<궤도>가 우주를 달리는 열차 컨셉이기에 의상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했다.
기관사 느낌의 깔끔한 유니폼 의상도 좋고. 정비사 느낌의 점프슈트도 좋고. 운송수단이 좀 다르긴 하지만 선원복 느낌을 가미하는 것도 괜찮았다.
컨셉을 유지하면서 여름 기온에 맞춰 반소매로 만들어도 자연스러운 의상들이라 다행이었다.
‘의상이 재킷 필수인 수트였어 봐.’
소매가 짧은 재킷은 보통 여성복에나 있지, 남성복에는 없었다.
굳이 재킷을 입고 시원한 느낌을 내야 한다면 안에 셔츠를 안 입는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건 시원하기보다는 뜨거운 느낌이잖아?
아무튼 이번 모노크롬의 타이틀곡 무대 의상은 시원한 느낌이다.
나는 팬 쇼케이스의 시작을 앞두고 오늘도 지정석인 콘솔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왜냐하면 컬러즈 반응을 보는 게 제일 재밌거든.’
안에 있으면 이런 생생한 모습을 볼 수가 없단 말이야.
앞에는 실물 컬러즈가 있고, 화면 속에는 뷰이라이브 중계를 시청 중인 온라인 컬러즈가 있고.
쇼케이스는 팬들의 반응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동시에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팬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역시 많은 컬러즈가 멤버들의 염색 머리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 사실 저번에 한이가 금발 한 게 스포라고 생각했는데 까고 보니까 세상에.”
“뮤비 색감이 선명해서 더 예쁘지 않아요? 장면마다 캡처해서 지금 갤러리 완전 알록달록해졌어요.”
옆 사람과 열띤 대화를 나누던 컬러즈들은 정각이 되고 조명이 어두워지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체크메이트>의 구두 소리에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졌다.
***
<체크메이트>로 막을 연 멤버들은 “저희가 이번 앨범에 관해서 할 말이 좀 많아요.”라면서 빠르게 각 트랙 소개 시간을 시작했다.
오프닝 무대 후, 인사를 마친 멤버들에게는 의자와 함께, 기관사 모자가 전달되었다.
“이 모자는…… 어디서 나타난 거지?”
우형은 모자를 받아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모자는 쓰라고 있는 것. 멤버들은 영문도 모르고 헤어스타일이 망가지지 않게 조심히 머리 위에 모자를 얹었다.
“이거 프레스 쇼케이스에선 없었거든요.”
준해의 말대로, 기사 사진은 좀 더 차분한 느낌인 게 좋아서 프레스 쇼케이스에서는 쓰지 않았던 모자였다.
컬러즈는 ‘컬러즈에게만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해석했는지 환호성을 보냈다.
그리고 그 해석은 정확했다. 팬 쇼케이스만을 위해 준비한 팬서비스용 모자였다.
‘열차를 안내하는 느낌이니까 좀 더 기관사 느낌을 내고 싶었어.’
모자를 쓰고 확실히 ‘우주 열차 모노크롬호’의 기관사 차림을 갖춘 멤버들은 본격적인 앨범 소개에 들어갔다.
“1번 트랙 <궤도>. 이건 다양한 뜻이 있는데요. 아시는 분?”
공연장에서 관객에게 정답이 여럿인 질문을 건네면 돌아오는 것은 큰 웅성거림뿐이다.
컬러즈는 열심히 대답했고, 멤버들은 마음속으로 알아들은 듯 선생님처럼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크 시간에는 멤버들이 채팅을 확인할 수 있도록 채팅용 모니터가 하나 설치되었기에 뷰이라이브를 시청 중인 컬러즈도 열심히 정답을 올려 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 채팅 사이에서 [괴도는 도둑이란 뜻 아닌가요]라는 채팅을 발견했다.
‘궤도에 도둑이란 뜻은 없어!’
컬러즈까지 괴도 스탈린 밈에 빠져 있었다니. 침투력이 너무 강하잖아.
멤버들은 그 채팅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실 이건 제가 정한 제목이었는데, 우리 막내 준해 씨가 더 멋있는 해석을 붙여 주셨어요.”
우형이 그렇게 말하며 준해를 바라보자 배턴 터치하듯이 준해가 마이크를 들었다.
“별똥별이 밤하늘에 일직선으로 떨어지잖아요? 그러니까, 만일 우주에 열차가 지나간다면 별똥별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거기서부터 우주를 지나는 열차라는 컨셉이 시작됐어요.”
“그럼 모노크롬호를 보면 소원이 이뤄지는 건가요?”
“그렇다기보다는, 모노크롬호는 지금 소원을 이루러 가고 있는 거죠.”
시적인 표현에 컬러즈에게서 은은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가사에도 ‘너의 중력을 찾아가는 Shooting star’라는 부분이 있었다. 이건 곡의 스토리를 비유하는 가사이기도 했다.
특별한 행선지도, 목적도 없이 넓디넓은 우주를 유영하던 열차는 어느 날 미지의 신호를 감지한다.
우주는 너무나도 넓고, 그래서 짧은 신호가 오가는 데도 몇 날 며칠이 걸리지만 모노크롬은 그 신호의 주인과 계속해서 소통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열차는 그 신호의 발신지를 찾아가기 위해 새로운 궤도에 올라탄다. 떠돌기만 하던 열차가 드디어 목적지를 찾은 것이다.
‘이걸 소원을 이루러 간다고 표현해내다니.’
이 정도면 멤버들에게 많은 부분을 맡긴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2번 트랙인 <달의 뒷면>…….”
한이가 곡 제목을 읽자마자 관객석이 뜨거워졌다. 뷰이라이브 채팅창에서도 열기가 느껴졌다.
모든 트랙이 그렇지만 이 곡은 정말 많은 컬러즈의 호기심을 유발했다.
“<달의 뒷면>. 어떤 곡이죠, 해랑 씨?”
“말 그대로 달의 뒷면입니다.”
심플한 설명. 그러나 대충 대답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는 맞는 설명이었다.
<달의 뒷면>은 제목 그대로 달의 뒷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관한 곡이었다.
이미 곡은 발매되었고 컬러즈도 들었을 테지만 멤버들은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자세한 설명을 하기보다는 주저하면서 멘트를 이었다.
“아, 이거 무대가 오늘…….”
“와아아아아!”
한이가 말을 끝맺지 않고 일부러 얼버무리자, 컬러즈는 숨겨진 속뜻을 알아듣고 함성을 보냈다.
기억력이 좋은 재민은 “모두 채널 고정!”이라며, 작년의 첫 쇼케이스에서 했던 멘트를 잊지 않고 또 했다.
“그리고 3번 트랙부터 7번 트랙까지는 멤버들의 솔로곡인데요.”
“아-, 이건 또 자료 화면을 보면서 설명해야 해서 다음 코너로 넘기죠!”
다섯 트랙의 설명이 갑자기 숭덩 잘려나가자 컬러즈는 당황했다.
그러나 안 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따가 설명해주겠다 하니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8번 트랙 . 이건 앨범을 닫는 곡입니다.”
우형이 설명하자 쇼케이스를 닫겠다는 것도 아닌데 컬러즈는 “어어어-.” 하며 아쉬워하는 소리를 냈다.
“닫는 곡이라고 표현하긴 했는데, 말하자면 ‘다음 화에 계속’ 같은 곡이에요.”
“다음 정차역에서 계속, 이네요?”
“네. <궤도>에서 출발한 열차가 목적지를 앞둔 얘기인 거죠.”
그리고 이 은 팬송으로 준비된 곡이었다.
‘결국 모노크롬호가 신호를 주고받던 상대는 컬러즈였다고 해석할 수 있지.’
컬러즈도 이미 가사를 보고 팬송이라는 것을 추측하고 있었다.
멤버의 입으로 설명을 직접 전해 듣자 관객석과 채팅창에는 감동의 물결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여기서, 분위기를 확 반전시킬 다음 무대가 준비되었다.
트랙 소개 코너가 마무리되고 어두워진 무대.
스피커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중앙에만 하얀 조명이 켜졌다.
조명 아래에 있는 인영을 확인한 한 컬러즈가 자기도 모르게 진심이 우러나온 듯 이렇게 말했다.
“돌았다.”
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해랑이 숙였던 고개를 들자 공연장은 뒤집히다 못해 360도 공중회전을 펼쳤다.
뷰이라이브로 지켜보던 한 컬러즈의 채팅이 이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해냈다. [다 크 섹 시].
해랑의 딥다크함이 아이돌의 재능으로 변모한, <달의 뒷면>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