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화
싱글 제작이 끝나서 아이리스와 만날 일은 줄어들었지만, 레드는 바쁜 와중에도 종종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특히 레드는 최근 들어 불안한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내 덕이 큰 것 같다며 감사하다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조금 다른 쪽으로 해석했다.
‘퀘스트를 달성한 건 멤버들에게도 느껴지나?’
모노크롬 멤버들을 보면 능력치 레벨이 올랐다고 갑자기 깨달음을 얻거나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일은 별로 없는 듯하던데.
우형은 작곡 레벨이 오른 후에 자신감이 같이 오르긴 했지만, 그것은 레벨이 올라서 생긴 효과라기보다는 작곡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오른 것 같았다.
기존에 워낙 자신감이 낮았던 데다가, 계속 작곡의 결과물을 생산하고 평가받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할 기회가 많아졌으니까.
그런데 레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리스 퀘스트가 대성공으로 완료된 이후로 아이리스 멤버들이 모두 안정된 기분을 느끼는 듯했다.
‘그게 대성공 때문인지 퀘스트 보상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퀘스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것들이 퀘스트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고.
‘대성공을 이뤘으니까 보상으로 그룹을 유지하게 해줄게!’가 아니라, 대성공을 이루는 과정에서 발생한 멤버들의 노력, 단합, 성취감 등이 결국은 그룹의 유지로 이어진 거지.
그러면 모노크롬이 음악대상을 수상할 때 준다던 보상도 이 2년 동안 천천히 이뤄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인지도랑 팬 지수 수치를 무슨 만씩이나 주나 했는데…… 당시 모노크롬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
대뜸 만이나 준다길래 ‘그만큼 어려운 퀘스트라 보상도 많이 주는 건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퀘스트를 시작할 당시 모노크롬의 수치를 생각해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시작점이 낮다는 건 그만큼 위로 올라갈 여지도 크다는 거니까.
그에 비해 다른 보상이었던 나의 복귀는 이뤄가고 있는 기분이 전혀 안 드는데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무튼, 마이 엔터의 시스템을 실제 상황과 함께 겪으면서 플레이어였을 때와 달리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았는데, 이 성공도 시스템도 그러했다.
‘아이리스는 <레인보우> 앨범 발매 때도 지금이랑 상황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레인보우>는 내가 마이 엔터를 플레이하며 처음 대성공을 달성했던 앨범이었다.
갓 데뷔한 아이리스 멤버들이 ‘과연 아이돌로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하면서 불안해하던 시기에 만족스러운 앨범이 나왔고, 그래서 활동할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거지.
이번 의 성공도는 퀘스트 완료 메시지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뿐이고, 성공도 시스템은 계속 비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확인은 못 했지만…… 모노크롬의 경우는 첫 1위를 달성했던 에서 대성공을 이룬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형이가 그때 길을 잃은 인공위성이 궤도에 올라탄 것 같다는 비유를 했었는데, 지금의 아이리스와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 같아.’
6년 차가 되어서야 처음 대성공급의 만족도와 안정감을 겪게 해 준 것이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런 성취를 이룰 때까지 멤버들이 포기만큼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아이리스의 는 급하게 준비한 데다가 디지털 싱글이어서 활동 기간이 짧았지만, 역시 대성공을 달성한 음반다웠다.
특이한 형식의 뮤직비디오는 공개되자마자 온갖 커뮤니티의 인기글 자리에 한 번씩은 올랐다.
궁금해서 뮤직비디오를 보러 들어온 사람들은 다음엔 노래를 감상하기 위해 다시 뮤직비디오를 재생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오는 평은 ‘독특한데 아이리스에게 잘 어울린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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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이런 노래 계속 내줬으면 좋겠다
걸그룹에 컨셉 센 그룹 얼마 없어서 마이너한 쪽으로 나가도 괜찮은듯
└아이리스 원래 데뷔부터 컨셉에 진심이었음
└예명부터가 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ㅋ 예명 하나로 납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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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고 ‘예명을 너무 막 지은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은 많이 덜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재밌어하는구나.’
재미도 나쁜 쪽의 관심은 아니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은 거겠지?
그리고 아이리스의 활동 2주 차.
[아이리스, 축하드립니다!]
퇴근 후, 아이리스의 무대를 보기 위해 켠 TV 화면 속.
케이블 채널 음악 방송의 MC가 이번 주의 1위 가수로 아이리스를 호명했다.
무지개들은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아이리스의 점수 캡처 이미지를 들고 다니며 떵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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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누가 아이리스 하락세라 그럼?
디싱이라 음반점수 0점인데 음원점수로 커버한거 보임?ㅎ
└음반점수 없어서 공중파 1위는 어려울 것 같긴 한데 이 정도 화력에 하락세라는건 ㄹㅇ로 억까지ㅋㅋㅋㅋ
└음원점수 말고도 뮤비조회수가 좀 크지 않았나
└진짜 하락세면 뮤비로 아무리 어그로 끌어도 그정도 조회수 안나옴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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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곳에선 아이리스가 해외 진출에 실패해서 다시 국내 활동을 준비한다면서 회의적으로 보는 반응이 나왔던 모양이다.
‘여러모로 상황이 안 좋아서 국내로 돌아오긴 했지만 진출이 실패해서는 아니지…….’
오히려 빡빡한 해외 스케줄 때문에 번아웃이 찾아온 게 문제였지.
어쨌거나 아이리스가 그랬듯이 무지개들도 이번 활동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듯했다.
반응을 확인하며 다시 TV 화면으로 고개를 돌리자 1위 소감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던 레드가 마이크를 오렌지에게 넘겼다.
두 사람은 팀의 연장자로서 리더 역할을 이렇게 일부 분업하는 듯했다.
오렌지가 실질적 리더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 이유이기도 했다.
‘민후 씨와 로아 씨 같은 느낌……?’
팀 미로도 공식적인 단장은 민후 한 명이지만 로아도 자연스럽게 단장으로 소개되지 않는가.
그쪽은 부부 사이라 이런 비유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레드가 감사한 마음을 진심을 담아 전한다면, 오렌지는 감사한 대상을 챙기는 느낌이었다.
무지개에 이어서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을 들으며 ‘오. 나도 아는 사람.’, ‘그때 봤던 그 사람인가?’ 하면서 이름과 기억 속의 얼굴을 매치하고 있는데.
[이번에 제작 총괄 맡아 주신 신주인 이사님께도 감사하단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신주인. 귀에 익은 이름……이 아니라 내 이름이지.
그러니까 지금 오렌지가 1위 소감에서 내 이름을…….
후반부에 나온 이름에 잠시 버퍼링이 걸린 나는 1위 앵콜이 시작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오렌지가 복도에서 나와 마주쳐 싸늘한 얼굴을 짓던 게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레드라면 몰라도 오렌지가 내 이름을 말할 줄은 몰랐어.’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이 소감 한마디로도 아이리스의 긍정적인 변화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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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이가 말한 ㅅㅈㅇ이사님이 그 주인님이란 사람인가?
└ㅇㅇ
└이번에 맡았다는 건 다음은 아니라는건가? 난 이렇게만 나와주면 너무 좋은데..
└몰겠지만 나도 이대로 쭉 갔으면22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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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날 더 인식하게 되었다는 부수적인 효과가 생겼지만.
‘아, 아냐. 날 그냥 기억에서 잊어 줘…….’
모르고 내 이름을 들었으면 무지개도 그냥 그런 사람이 있나 보다 하고 지나갔을 텐데 하필이면 내 이름을 안 상태로 다들 들어버렸다.
애초에 임시로 맡은 총괄 프로듀서 자리였지만 이런 무지개를 두고 다시 떠나려니 마치 어린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떠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집이 내 집이 아니었던 거지.’
우리 집에도 제대로 떡밥을 못 먹고 자라서 내가 챙겨줘야 하는 컬러즈가 있고…….
나는 내가 지금 실시간으로 업보를 쌓고 있는 건 아니길 바라며 보고 있던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
아이리스와 교대하듯이 모노크롬의 스페셜 앨범 티저 공개가 시작되었다.
이번 스페셜 앨범의 이름은 . 그리고 활동 이후에 진행할 콘서트의 제목도 이와 같다.
‘전체적인 컨셉이 우주니까.’
인류가 우주에 발을 들인 지도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일반인들에게 우주란 아직 공상 과학의 범위이지 않은가.
그래서 모노크롬의 시그니처인 ‘mono’에 픽션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공상 영화들을 SF, 즉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하는 데서 착안한 명칭이었다.
첫 팬미팅이 이었으니 그와 연관도 있고.
이렇게 앨범명은 정해졌지만, 타이틀곡 제목 선정 과정에선 멤버들의 고민이 많았다.
“타이틀곡 제목은 <궤도>로 하려는데요.”
마침 얼마 전에 우형의 ‘궤도에 오른 것 같다’라는 말을 떠올렸는데, 우형이 다시 그 단어를 곡 제목으로 꺼냈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고민이 많았던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한글 제목은 ‘궤도’라고 하면 되는데, 영문 제목이 걸려요.”
준해가 영문 제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손가락으로 입술을 꾹꾹 눌렀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의 노래는 국내에선 한글 제목으로만 소개되더라도 해외 청자들을 위해 전부 영문 제목이 붙어 있다.
“다른 뜻을 담고 싶은 게 아니라면 궤도를 그대로 영어단어로 쓰면 되지 않아?”
“‘궤도’에 뜻이 여러 개가 있어요. 별이 지나다니는 경로인 orbit일 수도 있고 열차의 선로인 railway일 수도 있거든요.”
“아. 그래서 제목이 궤도.”
이번 타이틀곡에서 ‘궤도’에 올라타는 것은 우형이 했던 말처럼 인공위성은 아니었다.
은하도, 별도, 우주선도 아닌 ‘우주 열차’. 그게 이번 <궤도>의 정확한 컨셉이었다.
그러면 준해가 말한 것처럼 별이 지나는 궤도와 열차가 지나는 궤도, 두 가지 뜻이 전부 필요하다.
한국어로는 한 단어로 두 의미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데 영어로 하려니 하나의 뜻만 골라야 해서 고민에 빠졌던 것이다.
똑똑이 준해가 답이 없는 문제를 앞에 두고 막혀버리자 멤버들도 같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평균 IQ가 약 100이라던데. 다섯 명이 합치면 IQ 500의 지능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발음 그대로 궤도라고 쓰면 어때. g-w-e-d-o라고.”
“역시 명재민!”
한이가 재민의 의견을 ‘재민이 재민했다.’라는 말로 넘겨 버렸다.
나쁘다거나 불가능한 방법은 아니지만…… 해외 청자들도 단번에 이해할 영문 제목을 찾으려고 고민 중이었는데 이건 오히려 꼬아버리는 방법이었다.
‘역시 머리를 맞댄다고 IQ가 총합이 되어서 발휘되는 일은 없나 봐.’
재민의 탈락으로 모노크롬의 IQ가 400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재민의 다음으로는 해랑이 꽤나 진지하고 현실성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두 가지를 같이 적는 건? 중간에 and나 기호를 넣어서.”
“역시 그게 제일 무난하려나? 아쉽다. 한글 제목처럼 짧게 전달하고 싶었는데…….”
준해는 적당히 타협해야 하는 게 아쉬운 듯 말꼬리를 늘였다.
제목이면 곡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데 고민스러울 만도 하지.
나도 적당한 방법이 없을지 생각하다가 아이디어를 하나 꺼냈다.
“그러면 아예 새 단어를 만들어버리면 어때?”
“아예 새로요?”
“응. 정확한 뜻을 몰라도 뉘앙스로 유추 가능할 정도로 추상적이게? 이게 더 어려우려나.”
내 제안에 준해도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뭔가 감이 잡히는 게 있는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있는 단어 중에서 찾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방향이 쉬울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쳐 결정된 영문 제목은 ‘Starline’.
별이 움직이는 선. 그리고 별과 별 사이를 연결하는 선로.
그런데 이 타이틀곡 제목이 공개되자 커뮤니티 한구석에서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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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 신곡 제목이 괴도 스탈린이라고?
케팝 대체 어디까지 가는거냐..
└말세네 말세야ㅉㅉ하면서 알아보니까 괴도도 스탈린도 아니잖아 미친앜ㅋㅋㅋㅋㅋㅋ
└ㅅXㅋㅋㅋㅋ 하나씩 삐끗한게 치명적으로 삐끗했네
└설명:모노크롬 신곡 제목은 궤도(스타라인)이다.
└글쓴이 베이스라인도 바셀린이라고 읽을듯
└제목 어그로 오지네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안돼 이제 이 글을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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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아무 소리다.’
댓글이 많이 달려서 ‘싸움 났나?’하고 글을 클릭한 사람들은 모노크롬의 신곡 제목이 괴도 스탈린으로 읽힌다는 정보를 얻고 나갔다.
너무 있을 수 없는 제목이라 놀라서 검색하고 왔다는 반응도 있는 걸 보면…… 홍보에 도움이 되고 있는 건가?
아무튼 모노크롬의 <궤도(Starline)>은 이상한 관심을 받으며 컴백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