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5화
뮤직비디오 마지막에 나오는 멜로디는 바로, 2번 트랙으로 수록된 의 도입부.
‘2번 트랙까지가 이번 싱글의 완성이지.’
약 5초 정도만 흘러나오고 바로 뮤직비디오는 끝났지만 팬들은 바로 알아보겠지.
1번 트랙 는 결국 2번 트랙 로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란 것을.
내 예상대로, 무지개는 감동 영화 한 편을 감상한 것처럼 텍스트 눈물을 흘렸다.
━━━━━━━━━━━━
뭐뭐냐 이거..? 왜 눈물나냐?ㅠㅠㅠㅠㅠㅠ
└뮤비에 내리는 게 비가 아니라 내 눈물이잖아요
└우리애들 자작곡 들어간대서 기대했는데 이게 이렇게 이어지다니 반칙이다
└너희가 내 무지개다ㅜㅜㅜㅜ
━━━━━━━━━━━━
아이리스의 인사법이 바로 ‘Your rainbow!’였다. 아이리스가 당신, 팬들의 무지개가 되어 주겠다는 의미.
그리고 2번 트랙의 제목은 .
당신을 위한 무지개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한 무지개이기도 하다는 의미를 담은 제목이었다.
이번 싱글에 ‘아이리스’라는 그룹명의 의미를 담고 싶었는데, 타이틀곡이 너무 컨셉추얼하고 어두워서 고민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레드랑 블루가 참여한 이 2번 트랙 덕분에 타이틀곡을 마음껏 컨셉추얼하게 만들 수 있었지.’
가 밝은 곡이라 밸런스가 잘 맞았다.
그리고 두 곡의 의미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뮤직비디오 마지막에 의 도입부 멜로디를 넣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결국 ‘아이리스’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덕분에 티저를 보고 그저 여름이란 계절에만 맞춘 특별 싱글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아이리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음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아이리스 이번 싱글 꽉꽉 담아서 엄청 잘 뽑았네
팬들 좋아할듯ㅋㅋ
└이건 진짜 2번 트랙까지 들어야 완성임 총 7분짜리 곡이라고 보면 됨
└무지개들 눈물 줄줄 흘려서 제목이 레이니데이라는 게 정설
└장마 예보 뜨던거 설마 이거 노래 나와서 그런 거냐?
└요즘 가요계에서 살아남으려면 특수능력 필수임?ㅋㅋㅋㅋㅋㅋ
━━━━━━━━━━━━
‘……그러고 보니 마침 시기가 장마 시기랑 겹쳤네.’
최근 기상 예보에 계속 우산 표시가 뜨던 것도 아이리스 컨셉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날씨가 도와준다면야 우리야 좋지. 그래도 기상 상황에 따라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생길 수 있으니 마케팅에 써먹지는 말자.
나는 음악 방송 MC가 ‘장마와 함께 돌아온~.’이라며 아이리스를 소개하는 상상을 하며, 뉴레인 직원들에게 음악 방송 활동 준비도 확실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
“이사님도 이 새벽에 나오신 거예요?”
“응. 내가 원래 뭐든 내 눈으로 직접 봐야 하는 스타일이라.”
사전 녹화를 준비하는 이른 새벽, 메이크업을 받던 아이리스 멤버들이 내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모노크롬 멤버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아이리스 멤버들에게는 처음 있는 상황.
당연하지. 난 애초에 뉴레인 임원이 아닌데.
내가 사전 녹화 현장을 지켜보겠다는 소리는 했는데, 이렇게 준비하는 시간부터 나와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은 확실히 내가 지켜봐야 할 이유가 있어.’
뉴레인에는 대표의 사주를 받아 움직이는 직원이 분명 있다.
혹시라도 대기실 분위기를 망치거나 일부러 실수를 연발하며 방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불안해서 옆에서 감시할 생각이었다.
이번 싱글 프로젝트에서 내 일은 기획 단계에 치중되어 있었고, 나도 뉴마에서 할 일이 따로 있으니 활동 기간 동안 계속 이렇게 나와 있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직원들에게 ‘내가 불시에 출몰할지도 모른다.’라는 사실만 알려주면 되었다. 그렇게 하면 나쁜 마음을 먹은 직원이 있더라도 알아서 눈치를 볼 테니까.
‘안 그런 직원들도 눈치를 본다는 게 문제지만.’
모노크롬을 처음 맡았을 땐 아티스트 담당 직원들이 뉴레인으로 옮겨간 탓에 인원이 부족하여 배우팀의 인력을 지원받기도 했던지라 ‘안정된 팀’이란 느낌은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고등학교에 막 입학한 1학년 학급의 모습과 같았다.
같은 중학교 출신의 아는 얼굴들도 있지만 잘 모르는 사람도 섞여 있고. 그러다 서로 얼굴을 맞대면서 익숙해지고.
그런데 지금은 이미 구성되어 있던 아이리스 팀에 나 혼자만 전학생으로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는 워낙 많은 사람이 오가니까 뉴마 임원인 내가 있어도 직원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것 같은데, 외부 스케줄에도 내가 동행하니 어색해했다.
‘별일 없으면 계속 나와 있지는 말아야겠어.’
직원들이 내 눈치를 보니 나도 눈치를 보게 되잖아.
그나마 날 편하게 대하는 건 아이리스 멤버들이었다.
이번 활동을 준비하는 것은 계속 지켜봐 왔는데, 멤버들은 발매일이 다가올수록 점점 반짝반짝해졌다.
원래 컴백 전에 관리를 가장 철저하게 하는 법이지만, 그 때문이라기보다는…… 눈이 반짝거렸다. 마치 탁했던 기운이 맑아진 느낌이었다.
‘이거야말로 아이돌이네…….’
모노크롬을 처음 아이돌의 모습으로 만들 때도 ‘와. 아이돌이다.’ 하는 기분이었는데, 1년이 지나 그 기분이 다시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게 바로 아이리스. 내가 이 세계에 오기 직전까지 화면 너머의 일러스트로 봐왔던 아이리스의 아이돌 모습이었다.
오늘 첫 음악 방송 의상은 역시나 교복 스타일이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멤버 모두가 같은 교복을 입었지만 무대 의상은 원피스와 투피스가 섞여 있기도 했고 각 디테일이 달랐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색상을 통일했지만, 타이나 리본, 헤어밴드 등 멤버별로 예명과 같은 색의 포인트가 하나씩 들어갔다.
‘예명 때문에 액세서리 헷갈릴 일은 없겠다.’
빨간색은 레드한테 주면 되고, 파란색은 블루한테 주면 되니까.
그 무지개색의 액세서리를 보다가 문득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하나 떠올랐다.
“너희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입을 열자 의상을 체크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움직이던 멤버들이 시선을 내게로 모았다.
“너희 예명이 빨주노초파남보잖아. 혹시 예명이 싫었다거나…… 한 적은 없었어?”
내가 큰 고민도 않고 예명을 설정한 탓에 몇 년 동안 빨주노초파남보로 살았을 텐데.
회사에서 정해주는 대로 반대도 못 하고 그 이름으로 살아가느라 불편하거나 싫은 점이 있지는 않았을까.
내 질문에 멤버들은 오래전, 데뷔 초의 기억을 떠올리는지 잠시 시선을 허공으로 보냈다.
가장 먼저 대답을 꺼낸 것은 레드였다.
“초반에는 전대물 찍냐는 말도 많았고, 가끔 히어로처럼 멤버를 소개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는 작가님들도 계셔서 조금 부끄러운 적은 있었는데…….”
그래. 그 전대물이 문제다.
그냥 색상 이름일 뿐인데 전대물의 히어로들이 색색 의상을 입고 색상 이름으로 활동하는 탓에 아이리스에게도 그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말았다.
특히 레드. 전대물의 대장이 대부분 레드였기에 유독 전대물 이미지가 강했다.
‘지금이었다면 레드가 아니라 스칼렛이나 로즈 같은 이름으로 지어줬을 텐데.’
색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꼭 영어를 고집할 필요도 없었고 해당 색상을 연상시키는 예쁜 단어를 찾는 방법도 있었다.
플레이어였던 나는 무지개 하나에만 꽂혀서 너무 직설적으로 지었단 말이지.
역시 불편한 점이 많았구나. 그런 생각에 미안해지려는데, 레드는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저는 좋았어요. 신인 땐 어떻게든 이름을 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누구나 아는 단어니까 한 명 이름만 듣고도 저희 일곱 명 예명을 바로 외워주시더라고요. ‘네가 레드면 옆에 있는 애는 오렌지겠네?’ 하고.”
“……그래?”
너무 널리, 자주 쓰이는 단어라 서치하기 힘들겠단 생각만 했는데, 반대로 그런 장점이 있었다니.
그리고 오렌지가 조용히 레드의 말에 덧붙였다.
“그리고…… 저희 팬분들이 저희한테 계속 사진을 보내주세요.”
“사진?”
옐로도 “아! 맞아!” 하면서 손뼉을 짝 치고는 대신 설명에 나섰다.
“길 가다가 노란 꽃이 피어있으면 찍어서 저를 태그해서 올려주고요. 간판이나 컵, 조명…… 예쁜 게 있으면 일단 찍어서 보여줘요.”
“반대로 저희도 각자 색깔에 맞춰서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요.”
듣고 보니, 멤버들의 핸드폰 케이스에도 각자 예명에 맞춘 색이 들어가 있었다.
“무지개가 뜬 날은 거의 축제지.”
“세계 각지 어디에서 무지개가 뜨는지 저희가 가장 잘 알걸요?”
국내 팬뿐만 아니라 해외 팬들도 무지개를 보면 꼭 아이리스를 태그해 올린다고 한다. 분무기나 물뿌리개에 나타난 무지개까지도.
“저희가 누구보다 무지개 컨셉에 진심이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팬들의 마음도, 아이리스의 마음도 잘 아는 그린이 자부심이 담긴 웃음을 지었다.
‘내 생각보다…… 멤버들한테 ‘아이리스’라는 게 더 소중했구나.’
아이리스의 유지를 위한 퀘스트였기 때문에, 준비 기간에 멤버들의 표정이 밝아져 가는 것을 보면서 ‘퀘스트가 실패하더라도 그룹 유지는 가능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를테면 ‘아이리스’란 이름이 아니라 다른 그룹명으로라도.
아이리스란 그룹은 유지하지 못하고 해체하더라도 다른 형태로 다시 뭉칠 수도 있다고.
그래서 점점 ‘대성공’을 신경 쓰기보다는 멤버들의 만족도를 더 중시했다.
‘그런데, 아이리스는 아이리스로 있을 때가 가장 빛나는 거였어.’
오랜만에 음악 방송 무대에 오른 멤버들은 그 생각을 증명하듯이 반짝였다.
몽환 컨셉의 곡이라 활짝 웃으며 춤을 추는 것은 아니었지만 표정마다 생기가 넘치는 듯했다.
그리고, 내 스마트폰이 울린 것은 뜬금없이도 사전 녹화를 마쳤을 때였다.
[음반 제작을 [대성공]으로 마쳤습니다!]
‘뭐?’
혹시라도 오류거나 알림창이 사라질까 봐 나는 서둘러 보상 수락을 눌렀다.
아이리스의 유지. 멤버들은 보상의 존재도 모른 채로 무대 위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중이었다.
“이른 시간에 와줘서 고맙고,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이제 자주 봐요!”
나는 이번 싱글 활동이 끝나면 나타날 줄 알았던 퀘스트 완료 알림이 너무 빨리 나타나 당황했다.
‘대성공이라는 게, 순위나 판매량은 관계없는 거였어……?’
게임에서는 음반 제작부터 성적이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이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앨범 활동을 종료할 때 최종 결산처럼 성공도가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첫방이 끝난 것도 아니고 첫방을 위한 사전 녹화를 마쳤을 뿐.
음원 순위도 계속 왔다 갔다 하는 중이라 지금이 피크는 아니었다.
지금 뭔가 특별한 점을 꼽자면, 무대 위의 멤버들이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혹시 성공도는 대중이 아니라 아이돌 기준으로 판정되는 거야?’
아이돌의 만족도가 기준이라거나.
퀘스트의 정체가 아이돌의 소원이었으니, 성공도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했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퀘스트 완료의 순간이 다가와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시스템이 생각보다 아이돌 친화적이잖아…….’
원래 마이 엔터는 그런 게임이었던 걸까. 단지 유저들이 다른 무엇보다 효율을 중시하는 K-유저인 게 문제였던 거지.
……어쩌면 마이 엔터의 진정한 공략법은 아이돌과 최대한 공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트레이닝을 40년 동안 시킨다거나, 해외 스케줄 뺑뺑이를 돌린다거나, 멤버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팬들 마음에 비수를 꽂고 수익을 쥐어짜는 게 아니라.
‘만일 그렇다면 난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가?’
근본적인 의문을 떠올리며 긴장이 풀려 벽에 등을 맡기고 있던 나는, 또다시 울리는 진동에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고 주르륵 아래로 미끄러져 버렸다.
[(알 수 없음): 아직도 연락 안 되는 곳에 있니?]
연락이 되지 않던 나를 찾는 엄마의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