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3화
‘대체 이런 소문은 어디서 흘러나가는 거야.’
뉴마와 뉴레인을 합치면 직원이야 많다. 내가 아이리스의 싱글 프로젝트를 맡은 것은 딱히 기밀 사항도 아니었으니 직원들은 다 알고 있을 터. 어쩌다가 내 이야기가 회사 밖으로 나간 모양이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관한 일이면 언제나 귀가 열려 있는 팬들이니까, 무지개들이 알게 된 건 이해하겠는데…… 이 ‘주인님’이란 호칭은 어디서 듣고 온 거야?
‘컬러즈는 내 이름을 처음 듣고 대표 혈연이냐고, 가족 회사냐는 소리부터 했었는데.’
무지개들도 대표와 관련된 사람이냐며 의심부터 할 줄 알았는데 그 단계를 건너뛰고 ‘주인님’ 단계부터 시작하다니.
게다가 ‘주인님’이 커뮤니티 전반에 퍼진 호칭인 것도 아니고, 컬러즈들만 사용하던 호칭이라 더 의외였다.
‘무지개가 요즘 뉴마 얘기를 하는 것 같더니…….’
뉴마에 남은 모노크롬, 그리고 그들의 팬인 컬러즈의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해서 관심을 가진 모양이었다.
어쨌든 무지개들은 ‘주인님’이라는 의문의 인물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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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이 누군데? 유명한 사람임?
└요즘 뉴마에서 나온 앨범은 총괄프로듀서가 대표가 아니라 주인님이라 함(이름이 주인임)
└근데 그 사람 얘기는 왜 나오고 있는거?
└이번에 싱글 그 사람이 맡는다는 소문이 있어서
└헐 대표 손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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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다들 대표가 퇴임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나 봐.
대표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대체한다면 그게 누구든 그냥 반가운 듯했다.
대표가 게임 공략대로 돈을 벌겠다고 아이리스에게 해외 활동 뺑뺑이를 시켜놓은 탓에 무지개들 사이에서 대표의 이미지는 바닥을 친 상태였다.
덕분에 무지개에게도 대표 실드가 유효하게 작용하여 나 개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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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총괄프듀 바뀌는 게 글케 크게 상관있나?
원래 그냥 제일 높은 사람 이름 넣는 거 아냐?;;
└이건 타그룹 얘긴데.. 내 친구가 그 ㅁㄴㅋㄹ분들 팬인데 뒤에 놈이 아니라 님이 붙는 이유가 있다고 함
└윗선 갈아치우니까 회사가 좀 나아졌다고ㅇㅇ
└하ㅋㅋ 그럼 뉴레인엔 업무능력 안 보고 대표라인만 데려간거 맞았나보네
└주인님이 선배분들한테 집사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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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집을 사준 게 아니고.’
누가 봐도 컨텐츠용 집이잖아.
종종 커뮤니티에는 몬클하우스가 정말 평상시에 거주하는 숙소냐고 묻는 글이 올라오는 듯했다.
‘모노크롬이 너무 자주 몬클하우스에 가 있어서 진짜 집이라고 생각했나?’
아무튼…… 나는 집을 사 준 사람이 아니다. 컨텐츠 중독자일 뿐이지.
그리고 윤희에게 이미 들었지만, 무지개의 머릿속에서 뉴마가 미화되고 있긴 한 모양이었다.
무지개는 이후로도 ‘뒤늦게 수습하려고 주인님이라는 사람을 뉴레인으로 스카우트해온 거냐’라면서 대화를 나눴지만, 뉴레인 직원이 아닌 이상 그런 상세한 내용은 알 리 없으니 ‘우리야 모르지…….’로 끝나버렸다.
그래도 [잘 맡아주셨으면ㅜㅜ..]이라는 간절한 바람만큼은 커뮤 중독 토템에게 확실히 와닿았다.
나도 결과를 기다리는 입장이라 그 바람을 들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어느 날, 윤희가 내게 이야깃거리를 가져왔다.
“요즘 팬들이 주인님 찾는 거 보셨어요?”
“네……. 무지개들이 누구냐고 하더라고요.”
“아뇨. 저는 컬러즈 말씀드린 건데.”
“소원 빌고 있어요?”
컬러즈는 요즘 다음 앨범을 기다리며 가상의 주인님에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한창 소원을 비는 중이었다.
평소와 같은 반응을 예상했으나 윤희가 내게 태블릿으로 보여준 것은 SNS 화면이었다.
보통 좋은 반응은 커뮤니티와 SNS에 올라오는 글 사이에 큰 차이가 없지만, 나쁜 반응일 경우엔 SNS에서만 소소하게 플로우를 타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SNS 중독이 아니라 커뮤 중독이었기 때문에 SNS 쪽은 윤희가 훨씬 잘 꿰고 있었다.
그녀가 SNS 반응을 보여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으로 화면을 보니, 일부 팬들의 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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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ㅋㅋ new마 좀 잘 돌아가나 했더니 사람 빼가나 우리 좀 가만 놔두라고
@뭔일있음?
@(계정 소유자가 대화를 볼 수 있는 사용자를 제한하고 있어 이 대화를 볼 수 없습니다.)
@아 안돼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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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엔 비공개 계정으로 답변을 했는지 가려져 있어서 나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생략된 글이 무슨 내용일지는 예상이 갔다.
“……사람 빼간다는 게 제 얘기인가요?”
“네.”
화면 속의 컬러즈들은 답답함에 가슴을 쳤지만, 윤희는 가볍게 대답했다.
컬러즈도 무지개와 같은 소문을 듣고는 내가 뉴마를 떠나 뉴레인으로 옮긴다고 생각했나 보다.
물론 소문이기에 완전히 믿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왜냐하면, 뉴마는 뉴마니까.
하지만 소문도 소문일 뿐. 내가 아이리스 싱글 제작을 맡은 것은 맞으나 뉴레인으로 적을 옮긴 건 아니니 심각하게 받아들일 얘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당황하지는 않았는데, 이 기분은 뭐라고 해야 하나…….
“어으음……. 왠지 감개무량하네요.”
“왠지 그러실 것 같아서 보여드린 거예요.”
“그러게요. 처음에 컬러즈가 제 이름 알았을 때 진짜 깜짝 놀랐는데.”
시작은 [변태ㅅㄲ들]이었지. 그 다음은 대표와 혈연관계냐고 의심하는 글이었고.
지금도 그냥 나를 토템으로 여기는 줄 알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을 상상하고 화내 주다니.
물론 팬들이 기획사 직원을 그리 좋아할 리가 없다.
직원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멤버들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이라 덩달아 호감을 품었을 뿐이지, 그 사람 자체에게 애정이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내가 대표의 가족으로 추정되기에 아직도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컬러즈는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본 컬러즈들의 반응은, 마치 한이의 러브라인 연기를 마주한 반응과 비슷했다.
‘호불호는 갈리지만, 빼앗기는 건 못 참아! 같은 거지.’
그 사실이 어쩐지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대화 아래에는 [데려갈 거면 주인님 둘로 나눠서 한쪽은 두고 한쪽만..]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솔로몬 컬러즈도 있었다.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는 발상이었으나…….
‘내가 둘로 나뉜 건 사실이잖아……?’
한 명은 뉴마, 한 명은 뉴레인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
컬러즈는 가끔 소름 돋게 날카로울 때가 있다니까. 물론 그냥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겠지만.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팬들의 모든 불안을 잠재울 수는 없다.
모노크롬의 다음 앨범이 나오면 약관처럼 적힌 내 이름을 보고 내가 뉴레인으로 옮긴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
윤희가 보여준 다른 글에는 [다음 앨범 총괄프로듀서에 대표 이름 있으면 각오해라]라는 선전포고가 있었다.
뉴마와 뉴레인이 바로 옆에 붙어있기 때문에 두 회사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계획과 함께.
‘……무지개들은 곧 겪게 될 일일 텐데 어쩌지.’
퀘스트 발생처럼 특별한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내가 아이리스의 다음 앨범에도 끼어들 명분이 없다.
무지개는 빠르게 초반 컬러즈의 분위기를 따라가던데 곧 이 폭력성도 닮아버리는 게 아닐까.
이들의 폭력성을 제어하려면 애사심도 뭣도 없는 내가 두 회사를 위해 두 발로 직접 뛰어야 한다는 게 웃기면서도 웃기지 않은 현실이었다.
이 상황을 타파하려면 대표가 알아서 정신을 차리는 게 베스트고, 강제로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게 그다음이다.
‘적어도 대표한테 플레이어 시절의 기억이라도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머리에 세게 충격을 가하면 기억이 일부 날아가지 않을까?
……라는 위험한 생각을 했다가 바로 머리에서 털어냈다. 대표가 회사 밖에선 크게 위험한 짓을 벌이지 않는 것처럼 나도 소시민일 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도 앞으로 호신용품을 챙겨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출퇴근 동선에 치안이 불안한 곳은 없는지 기억을 되짚었다.
***
아이리스의 이번 싱글 의 첫 티저는 약 30초 길이의 영상이었다.
반주에 들어가는 오르골 소리를 배경으로, 노을빛이 들어오는 학교에서 멤버들이 교실과 복도에 모여 즐겁게 노는 장면.
실제 뮤직비디오에는 어두운 장면이 많지만 일부러 밝은 장면만 가져다 썼다.
‘이게 바로 티저 사기란 거지.’
원래 첫 티저는 그렇다.
곡 멜로디가 거의 안 나와도 되고 실제 뮤직비디오에 들어가지 않는 장면을 넣기도 한다. 그냥 비주얼 공개 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보이그룹은 보통 컴백을 앞두고 떡밥이 나오면 팬덤 위주로 불타오른다.
그런데 아이리스는 걸그룹이어서인지 무지개의 반응이 단연 많긴 해도 걸그룹 전반을 좋아하거나 아이돌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도 꽤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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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발랄 컨셉 할 줄 알았는데 이번 티저 보니까 생각보다 차분한듯?
└티저는 필터 씌워서 그렇지 실제론 엄청 밝게 나올것같아ㅋㅋ
└난 사실 밝고 귀여운 것보다 조금 다른 거 보고 싶긴 했는데 여름=청량이라 어쩔 수 없지 ^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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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레인은 ‘무지개의 요정’에 꽂혔는지 알록달록하고 발랄한 컨셉의 앨범을 많이 냈다.
특히 일본 앨범 활동에는 교복 스타일의 의상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번에도 또 교복 의상이라 비슷한 컨셉이 예상된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무지개의 반응도 보였다.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아이리스 멤버들도 그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멤버들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저 뮤직비디오 빨리 보고 싶어요!”
자칭은 아니고 타칭 아이리스 덕후인 그린은 뮤직비디오 최종본이 언제 나오냐며 나를 볼 때마다 물어봤다.
“그런데 너희한테는 바로 안 보여줄 거야.”
“왜, 왜요?”
“뮤비 리액션 영상 찍어야 하거든.”
“아…….”
내가 뉴레인 직원들에게 ‘비하인드가 중요하다, 컨텐츠가 중요하다,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한다’를 거듭 강조하자, 멤버들도 내가 ‘컨텐츠’라는 말을 꺼내면 뭐든지 바로 납득하고 수긍했다.
유잼 컨텐츠가 많은 게 제일 좋지만 노잼이어도 괜찮다. 얼굴이라도 남으니까. 그 노잼 컨텐츠마저 없는 게 가장 문제였다.
그래도 이건 내 방식이고 뉴레인 직원들은 따르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점점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직원들이 많아지는 듯했다.
‘보이그룹을 성장시킨 경력이 크게 작용했나?’
뉴레인도 이제 신인 보이그룹을 키워야 해서 나를 고문 직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닐까.
이유가 어떠하든 이건 희망적인 변화였다.
뉴마 프로듀스팀도 그랬지. 처음엔 의욕이 없어 보였는데 점점 적극적으로 바뀌어갔다.
인원이 많지 않아 남들에게 묻혀가기 어려운 업무 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참여할 때의 성취도가 높은 환경이기도 했다.
같은 뉴마에서 일했던 직원들의 변화를 목도한 적 있으니, 뉴레인의 직원들도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가장 바뀌어야 할 건 대표지만 정 뭐하면 머리에 세게 충격을……. 아니, 어떻게든 해 봐야지.’
대표를 만났을 때를 대비하여 가방에 챙겨 다닐 소지품 목록을 점점 늘려나가던 어느 날, 레드가 내게 그 대표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저…… 대표님 개인 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응? 대표 번호, 아니, 대표님 번호를?”
“저희가 기획실에 건의하는 것들이 대표님께 제대로 전달되는지 알 방법이 없어서…….”
내가 ‘직원들을 믿지 말라’고 멤버들에게 조언했던 장본인이니 이런 우려를 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리스에게 위약금을 뜯어먹을 생각에 가득차 있던 대표와 아이리스 멤버가 직접 대화하게 만들어도 괜찮을까?
“적어도 한 번은, 대표님과 대화할 자리가 생겼으면 좋겠거든요.”
회의적인 생각부터 들어서 대답을 못 하고 있는데 레드가 거듭 부탁했다.
대표는 아이리스를 ‘게임 캐릭터’라고 믿고 싶어 하는데, 아이리스를 직접 만나려고 할까?
‘아니지, 어쩌면…….’
문득, 이게 대표를 가장 확실하게 자극할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