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92화 (292/430)

# 292화

모노크롬이 특별 출연하는 것은 바로 장기자랑 코너.

작년의 재롱잔치……가 아니라, 장기자랑을 이번에는 면접 형식으로 변형시켰다고 한다.

1기 졸업생들이 회사를 창업하여 후배 중에 괜찮은 인재를 찾기 위해 면접을 본다는 설정이었다.

작년에 모노크롬을 담당하여 계속 붙어 다녔던 작가는 올해도 촬영장에 있었다.

그녀는 이 코너가 생기게 된 경위를 내게 설명해줬다.

“작년에는 모노크롬이 포인트를 가장 잘 벌어서, 장기자랑으로 포인트를 나눠줬었잖아요?”

당시엔 출연진들이 포인트가 무엇에 필요한지 알지 못한 채로 모았기 때문에 포인트 빈부격차가 매우 심했다.

모노크롬에게 포인트를 빌려달라며 접근하는 출연자들도 있어서, 대신 장기자랑을 열어 등수대로 포인트를 나눠줬었지.

“그런데 이번 출연진들은 포인트가 무슨 용도인지 미리 알고 모았을 거란 말이죠.”

“그러게요. 작년 방송을 보고 예습해 왔을 가능성이 있네요.”

“네. 실제로도 작년처럼 격차가 심하진 않았어요.”

작년에야 포인트가 남아도는 모노크롬이 있었기에 포인트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즉석에서 열 수 있었는데, 올해도 그런 그룹이 생길 거라는 확신이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작년엔 모노크롬이 심사위원을 맡았던지라 다른 네 팀만 장기자랑에 참여했다.

그래서 아예 심사위원을 따로 모셔서 전체 그룹이 참여할 수 있는 장기자랑을 기획했다는 모양이다.

“심사위원이야 제작진이 대신할 수도 있지만…… 명색이 아이돌 예능인데 아이돌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더라고요!”

오늘 모노크롬이 출연하게 된 데에는 작년 1등 팀이란 이유뿐만 아니라 장기자랑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도 영향을 준 듯했다.

마침 우리도 컴백 홍보차 여기저기 얼굴을 많이 비치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잘 맞았지.

“그나저나 멤버분들은 왠지 상황극이 익숙해 보이시네요.”

“저희가 회사 컨셉을 할 때마다 하던 역할들이 있어서요.”

모노크롬이 아니라 다른 컨셉이라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해랑에게는 안경을 씌웠다.

나중에 컬러즈가 방송을 본다면 팬미팅에서 했던 회사 설정의 연장선이라는 걸 알아차리겠지.

한이도 안경을 쓴 해랑을 보고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오, 백 팀장.” 하며 반가워했다.

“팀장이 아니라 팀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여기서 같은 학년에 같은 반 학생이란 설정이었잖아.”

느닷없이 시작된 야자타임에 멤버들은 ‘사회에선 직급이 우선이다.’, ‘친구 사이인데 뭐가 문제냐.’라며 토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런 화제에 신나는 건 역시 동생들이었다.

준해는 열심히 한이의 편을 들다가, 이내 우형을 보며 질문했다.

“여우형은 어떻게 생각해?”

“현준해 벌점 200점이야.”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는데 여긴 말 한마디로 노예 2일 추가라니.

결국 우형은 벌점을 살포하며 강제로 이 논쟁을 끝내 버렸다.

***

이번 장기자랑이 작년과 다른 점은, 아이돌의 덕목인 노래, 랩, 춤……을 제외한 다른 장기를 선보여야 한다는 것.

면접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굳이 회사에 필요한 능력은 아니어도 된다. 이유만 잘 갖다 붙인다면.

“단소 연주로 이 회사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죠?”

“단소는 우리의 고유 악기니까 애국심을 키울 수 있고 그 힘으로 열심히 일해서 나라 경제를 살릴 수 있습니다.”

면접관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모노크롬이 이런 이유를 듣고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웃긴 포인트였다.

재민은 진지하게 임할 생각은 진작 버렸는지 대놓고 웃고 있었지만.

주변에 앉아 면접을 관람하는 다른 팀은 면접자를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역할이었다.

다른 팀보다 자신의 팀이 높은 점수를 받아야 더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으니까.

“밤에 피리 불면 뱀 나오는데요?”

“아, 도시에 뱀이 어딨어요.”

“면접관님. 이 면접자는 안전불감증입니다!”

한 출연자가 마치 판사님을 찾는 변호사처럼 모노크롬을 보며 호소했다.

그러면 같은 팀이 나서서 ‘뱀은 잘 보면 귀엽다’라며 반박하고, 다른 팀에서는 ‘단소는 중임무황태가 기본이라 최신 가요를 연주하기 어렵다’라며 또 방해하고.

알아서 드립 전쟁을 펼치는 이들을 보며 손 PD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토론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면접관들의 평가.

“일단 심금을 울리는 단소 연주가 감명 깊었고요. 단소를 전파하면 전 국민의 폐활량이 늘어나서 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1번 면접자에게는 제작진들의 평가 점수를 합쳐서…… 92.5점 드리겠습니다.”

“오! 높다.”

작년 장기자랑에서는 모노크롬은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기만 하고 실제 심사는 제작진이 했다.

그런데 이번엔 ‘실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노크롬도 마음 편히 심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점수에 박한 것보다는 후한 게 좋다고 생각했는지 온갖 좋은 이유를 덧붙여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듯했다.

‘세상에 이런 면접만 있으면 취준생들의 자존감이 올라갈 것 같아…….’

면접자들에게 상냥할수록 당장 일할 사람이 없는 위험한 회사일 가능성이 크다는 딜레마가 있긴 하지만.

단소 연주자가 높은 점수를 받아 만족하며 자리로 돌아가고, 그다음 2번 면접자로 나온 것은 타임즈원이란 그룹의 한 멤버였다.

“제가 우리 회사 팔씨름 1등인데, 그 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어? 지금 면접 자린데 ‘우리 회사’라고 했어요.”

“뭐, 저흰 경력자도 좋아요. 환승 이직 할 수도 있지.”

타 그룹의 지적에 한이가 ‘꼭 신인만 뽑는 건 아니다’라면서 민심을 진정시키고 본격 면접에 들어갔다.

“팔씨름을 잘하는 게 회사 일에 도움이 될까요?”

“머리로 안 되는 일도 힘으로는 해결할 수 있거든요.”

“허헉.”

보통 반대로 말하지 않나……?

대담한 발언에 모두가 입을 틀어막는 사이, 같은 타임즈원 멤버까지도 “야!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마!”라며 그를 말렸다.

“아니, 힘이 세서 나쁠 건 없으니까.”

“맞아요. A4용지가 은근히 무겁거든요.”

모노크롬은 ‘사람을 힘으로 제압해서 모든 일을 해결하겠다’라고 들릴 수도 있는 이 발언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넘겼다.

“그럼 팔씨름 상대로 우리 중에 한 명이 나서야겠는데…….”

우형은 본인이 나설 생각은 없는지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모노크롬 멤버들이 팔씨름하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네. 예능에선 꽤 자주 하는 게임인데.

‘가장 체격 좋은 해랑이가 팔씨름도 가장 잘하려나?’

멤버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해랑으로 의견이 좁혀지는 것 같았는데, 우형이 갑자기 반대표를 날렸다.

“아냐. 해랑이 패션 근육이잖아.”

그게 패션이라도…… 보기 좋다는 점에서 나름 역할을 다한 게 아닐까?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멤버들도 ‘해랑 근육 패션설’에 동조했고, 결국 모노크롬 대표로는 은근히 힘이 세다는 재민이 나서게 되었다.

재민은 겉으로 보기에는 말랐지만 근력이 있어서 좋은 승부가 될 듯한 예감이 들었다.

“자, 팔꿈치 책상에 붙이시고요. 시작!”

“어으어억.”

예감은 예감일 뿐이었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는 몰라도 시작하자마자 광탈한 재민이 옆으로 엎어졌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우형이 해랑을 앞으로 밀면서 나타났다.

“그럼 여기서 저희 모노크롬은 비장의 무기 백해랑을 내보내겠습니다.”

“아깐 패션 근육이라며?”

“힘 빼려는 작전이었지.”

우형의 손바닥을 뒤집는 듯한 태세 전환에 해랑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재민이 시작하자마자 엎어진 탓에 상대의 힘을 뺄 시간도 없었던 것 같지만…… 그렇게 시작된 팔씨름 2차전.

“아니, 저기, 그렇게 그윽하게 아이컨택 하지 말아 주세요…….”

2번 면접자는 해랑과 눈이 마주치고 팔에 힘이 풀렸는지 결국 패배를 맛보고 말았다.

머리로 안 되는 일은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그였지만, 그 힘도 매력 레벨 앞에선 무력화되는 모양이었다.

“또, ‘나도 팔씨름 자신 있다!’ 하는 사람?”

한이가 손을 들고 출연진들을 쭉 둘러보며 말하자 그 사이에 있던 류현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저요! 저 도전하겠습니다.”

“너 오늘 왜 이렇게 파이팅이 넘쳐?”

류현의 옆에 앉아 있던 러너스하이 멤버가 입을 떡 벌리고 그를 쳐다봤다.

류현이 평소와 다르게 의욕이 넘치는 모양이었다.

“작년에는 모노크롬 동맹이랑 유니온맥스 동맹이 경쟁했잖아요? 올해는 타임즈원이랑 러너스하이가 비슷하게 경쟁을 하더라고요.”

옆에서 지켜보던 작가가 이게 바로 원하던 그림이었다는 듯이 흐뭇한 얼굴로 설명을 덧붙였다.

<쉰셋돌>을 촬영할 때만 해도 류현이 저렇게 공격적으로 나서는 애는 아니었는데. 못 보던 사이에 예능 레벨이라도 올랐나?

심판으로 나선 재민은 류현이 소매를 걷어 올리는 것을 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오. 최근에 운동 열심히 했나 본데?”

“크, 크흠. 좀…… 했어요.”

류현은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학생처럼 뿌듯한 표정이 되었다.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해랑의 매력 레벨 탓에 제대로 힘자랑은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면접 컨셉의 장기자랑 코너가 끝나고도 모노크롬은 카메라 앞에 남았다.

“축구공! 축구공은 한 팀만 사도 되는데, 아무튼 꼭 사야 해요.”

작년처럼 포인트로는 숙소에서 사용할 물품들을 살 수 있었는데, 모노크롬은 물품 목록 옆에서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각 아이템이 지닌 장점을 브리핑했다.

작년에 아이돌 축구를 즐긴 재민은 누가 축구공 좀 꼭 사라며 열심히 권유했다.

“아, 이거 미러볼도 참 좋았지.”

“미러볼은 뭐에 써요?”

“이것만 있으면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시간 문제! 화려한 조명에 기분까지 좋아집니다.”

“우리 너무 옥장판 팔러 온 사람 같지 않아?”

재민과 함께 크게 유용하지 않은 물품들만 추천하는 한이를 보며 준해가 사기꾼을 보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참고로 작년에 이코드가 사 갔던 미러볼은 현재 몬클하우스에 있다.

해랑은 자면서 반짝거리기 싫다고 했지만 재민은 매우 만족한 듯 보였다.

각 팀이 포인트 쇼핑을 마치고, 모노크롬은 임무를 다 마치고 카메라 뒤로 돌아왔다.

“다들 포인트는 남김없이 잘 쓰셨나요?”

“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2일 차에도 포인트가 필요하답니다.”

“네……?”

작가의 설명에, 작년 방송을 보고 예습해 온 출연진들은 항의도 하지 못하고 얼빠진 표정이 되어 버렸다.

‘맞아. QBC는 뒤통수 전개가 특기였지.’

마음 놓고 있다간 언제 어디서 기습 공격이 들어올지 모른다.

“진짜 옥장판에 정수기 팔고 가는 기분이야.”

준해가 그런 출연진들의 얼굴을 보고는 머쓱하게 웃었다.

쇼호스트처럼 열심히 출연진들의 포인트를 탕진시킨 모노크롬은 재빠르게 도망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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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아이리스 컨셉 뭐임?

└몰라 아직 안뜸

└학교 관련된 거인듯? 교복 입은 사진 뜸

└교복이면 일단 청량이겠네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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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음반 준비 시기에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소식이 뜸해지기 마련이지만, 이번 아이리스 컴백은 팬들이 너무 오래 기다렸기에 중간중간 사진을 많이 올렸다.

그리고 멤버들이 교복을 입은 사진을 올린 덕분에, 사람들은 다들 이번 컨셉이 밝은 청량일 것이라 예상했다.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이나, 교복 의상은 청량 컨셉이라는 게 일반적으로 통하는 정론이었다.

‘청량이나 납량이나 시원한 건 마찬가지니까 비슷하지 않을까?’

시원하나 서늘하나 그게 그거지.

뉴레인에도 팬들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는 직원이 있고 윤희도 가끔 아이리스 팬덤의 반응을 전해주곤 했는데, 가장 현실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이는 따로 있었다.

“이번 아이리스 싱글에 2번 트랙도 중요한데…….”

“아! 스포 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운을 떼자 민형이 귀를 막으며 도망쳤다.

이것이야말로 생생한 팬의 반응. 그의 반응이 왠지 웃겨서 자꾸 이런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빨리 민형 씨도, 무지개들도 이 뮤직비디오를 봐야 할 텐데.’

싱글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을 때의 반응이 궁금해서 자꾸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준비가 착착 되어가는 와중, 커뮤니티 한구석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인님이 누군데?]

이는 컬러즈가 아니라, 아이리스의 팬덤인 무지개에게서 나온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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