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91화 (291/430)

# 291화

이번 리더전의 메뉴는 김치볶음밥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들었다.

확신이 없는 것은 김치볶음밥의 차원을 뛰어넘은 요리가 몇 개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 요리가 끝나지 않아서 더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무서운 점이었다.

한이가 시식을 거부하듯이 우형을 자신의 앞으로 밀었다.

“형처럼 예능 생각해서 이상한 걸 만드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니까.”

“나는 그때 진심으로 만들었는데?”

“그렇다면 형은 마음이 비뚤어진 거야.”

그 착한 우형도 모노크롬 안에선 악마의 마음을 지녔다느니 마음이 비뚤어졌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게 참 재밌는 일이었다.

“너 벌점 3점이야.”

“벌점이 뭐야?”

내가 뉴레인을 오가며 바쁘게 일하던 사이에 모노크롬 내에 새로운 시스템이 생겨났나.

내가 다가가면서 묻자 투닥이던 멤버들의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이 형이 혼자 벌점제를 도입했어요!”

준해가 우형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게 이르듯이 말했다.

내가 뉴레인 일로 바쁜 사이에 멤버들 기강을 잡아 놓겠다더니, ‘우형식 기강 잡기’를 하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벌점 모아서 뭐 하는데?”

“벌점 100점 받은 사람 하루 동안 노예 만들기…….”

나름대로 벌칙이 있었는지, 벌점제 창시자 우형 대신 재민이 대답했다.

우형이 머쓱한 얼굴로 정보를 정정했다.

“그냥 하루 동안 심부름시키는 거예요. 애들 말 좀 잘 들으라고…….”

“현 매니저처럼?”

“네. 그런 거죠.”

“저 노예였어요……?”

“아, 아니. 네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들은 준해가 물어보기에 서둘러 부정했다.

직장인이 현대판 노예라고 불리긴 해도 현 매니저는 근로 시간을 준수했으니까. 멤버들도 같이 준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10점도 아니고 100점 기준이면 의외로 느슨하네.”

“한이 형은 지금 벌점 5830점이에요.”

느슨한 게 아니었네…….

준해가 현재 멤버들의 벌점 현황을 알려줬다. 이 속도면 모노크롬 종신 계약도 머지않을 듯했다.

“그럼 한이 형 방금 3점 더하면 몇 점이야?”

“대충 반올림해서 6천 점이라고 하자.”

이거 의미가 있는 건가.

한이는 ‘반올림한 만큼 지금 말썽을 부리겠다’라며 우형을 붙잡고 짤짤 흔들며 깐죽거렸다.

벌점이 만회하지 못할 단위로 올라가니까 더 반항적으로 나와서 오히려 역효과인 것 같은데.

우형은 예상과 다른 상황에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즐거워 보이니까 그냥 두기로 했다.

한이의 벌점이 500점이 더 오르는 동안, 각 팀 리더의 요리가 끝났는지 심사 테이블 위에 접시들이 올라왔다.

“이사님도 심사하실래요?”

심사하는 데에 모노크롬 대표가 한 명일 필요는 없었지만 멤버 대표로 뽑힌 우형이 내게도 앞접시를 하나 내밀었다.

“음……. 아니. 나도 작년에 네가 만든 떡볶이 먹어봐서.”

“아…….”

완곡하게 거절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직설적으로 와닿았는지 우형은 말을 흐리며 앞접시를 다시 내려놓았다.

그도 그럴 게 심사를 하려면 한 입씩 다 먹어봐야 하는데, 별로 손을 대고 싶지 않은 볶음밥이 몇 개 섞여 있는걸.

다들 작년 방송을 참고했는지 요리가 안 되면 아예 포기하고 재미 요소나 스토리텔링으로 승부하려는 모양이었다.

우형이 시식을 시작하자 메인 작가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우형 씨, 시식해 보니까 어떠세요?”

“어, 으음. 어떻게 이런 맛이…….”

“작년에 우형 씨 떡볶이 먹고 카메라 감독님들이 딱 그 얘기를 하셨는데!”

“아, 아하하…….”

농담이었는지 작가가 그의 옆에서 같이 하하하 웃었다.

그리고 작가가 “이건 꼭 마지막에 먹어 보세요!”라고 했던 볶음밥을 입에 넣고 음미하던 우형은 눈을 반짝 떴다.

“와. 이거 진짜 요리 잘하는 사람이 만든 거다.”

“그렇죠? 앞에 특이한 볶음밥을 먹고 나서 먹으니까 더 맛있죠?”

“이거 너무 밀어주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걸 가장 먼저 드셨으면 다른 볶음밥이 더 특이하게 느껴지셨을걸요.”

“아하.”

상대적으로 더 맛있게 느껴지라고 순서를 조정한 게 아니라, 다른 후보 보호 차원이었던 모양이다.

우형이 작년에 ‘마음을 담았다’라며 요리에 감동적인 멘트를 붙였던 것처럼, 다른 볶음밥의 요리사들도 온갖 참신한 이유를 붙이며 어필했지만 결국 맛있는 요리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압도적 1위를 받은 요리의 주인공은 이담이 속한 더클랜의 리더였다.

‘얘네는 알면 알수록 온, 오프의 갭이 엄청나.’

사나운 인상의 힙합 메인 그룹 리더가 실은 김치볶음밥을 맛있고 예쁘게 만드는 가정적인 남자라니.

그릇 한구석에 데코레이션된 작은 당근꽃이 그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리더전이 끝난 후 다음 코너를 준비하며 잠시 촬영이 멈춘 동안, 이담이 나를 발견했는지 달려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언제 또 만나나 했는데 이렇게 보네.”

그의 인상을 사납게 만들었던 메이크업은 <쉰셋돌> 이후로 중화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짧았던 앞머리도 길어져서 눈썹 스크래치의 존재감도 옅어졌고.

나는 잘 성장한 옆집 아이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그의 스타일을 쓱 훑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침부터 계속 돌아다니느라 힘들지? 중간중간 쉬어도 체력이 엄청 필요하더라고.”

“괜찮습니다! 저희 다음 날에 앓아눕는 한이 있어도 카메라 앞에서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고 와서…….”

이담이 작게 주먹을 쥐며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더클랜을 보면 가끔 모노크롬의 지나온 과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런 모습마저 작년 모노크롬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도 딱 이런 마음으로 사전 미팅을 하고 촬영에 나섰지.

나는 그런 그를 위해 작년 기억을 되살려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건넸다.

“작년 촬영할 때 보니까, 밤에 숙소에서도 스태프들 따로 없이 분량을 꽤 많이 뽑더라고. 적당히 체력 안배하면서 해. 아, 이제 저녁이라 이런 소리 하기에는 좀 늦었나…….”

“아, 아뇨. 참고할게요. 감사합니다.”

“응. 그러니까 지금 쉴 수 있을 때 쉬어 둬.”

나와 대화하느라 소중한 휴식 시간을 소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작가에게 다음 코너에 관한 설명을 전달받고 온 멤버들이 그를 잡았다.

“오. 이담이담.”

“너희 리더 요리 진짜 잘하더라.”

우형은 1등 김치볶음밥이 감명 깊었는지 요리 칭찬부터 했다.

그러면서 숙소에서 밥을 종종 해 주냐, 부럽다 등의 이야기를 하다가 한이가 이담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너희 몬클하우스에 놀러 올래?”

요리 실력 얘기를 하다가 놀러 오라고 하는 건, ‘와서 밥 좀 해주겠니?’라는 뜻 아니야?

평소에 멤버들에게 밥도 잘 챙겨 먹이는 중이고 숙소에서도 알아서 잘 해 먹는 듯한데, 몬클하우스에만 가면 남이 만들어주는 밥이 그렇게 먹고 싶나 보다.

그런데 이담은 좋다, 싫다와 같은 대답이 아니라 다른 소리를 꺼냈다.

“거기 성공한 사람만 갈 수 있다고…….”

생각지도 못한 내용에 나와 멤버들은 잠시 버퍼링이 걸려 버리고, 이담이 그 사이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봤다.

다행히도 먼저 정신을 차린 듯한 해랑이 더 자세한 내용을 물었다.

“누가 그래?”

“그냥 들려오는 소문이 그러던데요……?”

“대체 어디서 그런 소문이…….”

“어……. 그게, 놀러 갔던 그룹들이 다들 1위를 해본 그룹들이라…….”

“……그랬나?”

그런 점은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다. 몬클하우스에 방문했던 그룹들은 그냥 모노크롬의 지인이라 집들이 겸 놀러 왔을 뿐이다.

게다가 1위 가수만 놀러 온 것도 아니었다.

이코드는 몬클하우스에 놀러 왔을 때만 해도 1위 달성 전이었으니까. 다녀간 후에 케이블 음악 방송에서 1위를 달성했다던 것 같지만.

‘뉴레인 데뷔조 애들이 들었으면 ‘몬클하우스에서 기운을 받아 1위를 달성했다’라고 했겠는걸.’

이런 상황들이 자꾸 토템설 같은 걸 발생시키는 게 아닐까.

준해도 그런 소문을 부정하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밥 해 줄 사람만 있으면……. 아니, 그냥 시골 친척 집 들르듯이 가볍게 놀러 오면 돼.”

중간에 진심이 대놓고 섞여 들어갔잖아.

이담도 1위 가수 타이틀이 없어도 되는 점에 안심했는지 “그럼 회사에 물어보고 연락드릴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멤버들에게 돌아갔다.

***

이번 <아이돌부 방학캠프> 여름방학 2편 출연진 중에는 신셋 출신이 두 명 있었다.

더클랜의 이담, 그리고 러너스하이의 류현.

그리고 러너스하이는 신인 중에서도 특히 바쁜 신인.

방송 등으로 마주치지 않으면 만날 시간이 없어서 두 사람은 메시지만 몇 번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묘한 거리감이 있는 사이로 돌아가 버렸다.

이른 아침, 촬영장에 도착한 류현은 잠깐 인사라도 하려고 어물어물하며 더클랜이 있는 곳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룹으로 모여 있으니까 무섭잖아…….’

류현은 더클랜 완전체를 보고 이담을 처음 봤을 때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몸을 사렸던 기억이 뒤늦게 떠올랐다.

아직 청소년 티가 많이 나고 발랄한 러너스하이 멤버들만 종일 보고 살다가 다른 분위기의 그룹을 봐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더 무섭게 느껴졌다.

‘인사는…… 나중에 해야지.’

더클랜은 소속사 직원과 대화 중이었는데 각 잡힌 분위기라 자신이 끼어들면 안 될 것 같았다.

류현은 다시 멤버들에게로 돌아가다가 오늘 자신들과 함께 온 매니지먼트 팀장이 손영식 PD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러너스하이의 소속사인 베터 엔터테인먼트는 규모가 큰 회사였고, 스케줄에 자주 동행하는 직원은 방송 제작진들과 이미 면식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혹은 새로 친분을 쌓으며 회사의 인맥을 넓혀가고는 했다.

매니지먼트 팀장이 손 PD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다 보니, 이전에 회사에서 언뜻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매니지먼트 팀장과, 러너스하이를 담당하는 박형주 프로듀서가 나누던 대화였다.

[모노크롬이 손 PD와 친하던가?]

모노크롬이 이번 <아이돌부 방학캠프>에 특별 출연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직후였다.

[작년에 손 PD님이 맡은 <최고의 팀메이트>에 나간 적이 있었죠. 그 왜, 탈퇴한 멤버와 교체 멤버를 같이 출연시켰다는…….]

[아. 그런 일이 있었지. 그게 모노크롬이었나.]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재민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서 류현은 자기도 모르게 발소리를 죽이고 멈춰서고 말았다.

[그 회사도 참 징해. 아이돌 그룹 화제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

[섭외는 전적으로 PD님에게 권한이 있다는 것 같은데, 전부터 친분이 있었다면 또 모르는 일이죠. 실제로 방송 편집도 좋은 쪽으로 됐다더라고요.]

이들은 뉴마가 의도적으로 손 PD와 결탁했다고 생각했다.

류현은 이전에도 박형주가 <쉰셋돌> 출연진들에 관해 많이 묻던 것을 기억해냈다.

특히 라솔을 견제하듯 그녀가 PD와 친하지는 않은지 묻다가, 나중에는 뉴마와 모노크롬에 관해 궁금해하기도 했다.

베터 엔터테인먼트는 방송국의 이목을 끄는 데에 상당한 공을 들였고, 박형주는 특히나 더 방송계를 신경 쓰고는 했다.

모노크롬이 회사의 견제 대상이 된 것 같아서 묘한 기분을 느끼며 발걸음을 돌린 류현은 이내 또 멈춰 섰다.

“스태프분이 그러는데 작년에 우리 불렀을 수도 있었대.”

“작년 시청률 되게 잘 나왔던데 그때 나왔으면 좋았을걸.”

“그때 멤버 인원수 맞춰서 섭외했다잖아. 다른 5인조가 먼저 섭외됐었나 봐.”

“작년에 나온 5인조 누구였지?”

“아! 모노크롬 선배님들.”

이번 출연 그룹 중 하나인 타임즈원 멤버들이었다.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귀에 들어오는 얘기가 류현의 발목을 붙잡았다.

“오. 선배님들 작년이면…… 지금이랑은 좀 다르지 않았나?”

“우리도 여기서 1위 하면 떡상하는 거 아니야?”

딱히 친분이 없는 이들에게 모노크롬은 ‘묻혀 있다가 급성장한 그룹’이라는 이미지가 강렬했다.

타임즈원 멤버들끼리 별생각 없이 편하게 나눈 대화였으나, 류현의 귀에는 마치 ‘작년엔 인기가 없었는데 자신들을 제치고 섭외되었다’라는 불만을 담은 말로 왜곡되어 들렸다.

‘방송 때문에 떡상한 거 아닌데!’

그리고 류현은 곧바로 발을 쿵쿵대며 자리를 뜬 탓에, “적어도 한 10년은 그런 그룹은 안 나올 것 같아.”라며 이어서 감탄하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러너스하이의 멤버는 잠시 사라졌다 돌아온 류현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너 누구랑 싸우고 왔냐?”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씩씩대면서 와.”

류현이 모노크롬 극성팬 같은 행동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로 이번 촬영의 목표를 ‘타도 타임즈원’으로 삼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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