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화
재민의 입에서 나온 두 번째 ‘주인 님’이란 소리에 대표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신주인, 회사에서 뭐 하고 지내는 거야?’
학생 때 친구들이나 부르던 별명인데.
왜 나이도 어린 소속 아티스트의 입에서 그 별명이 나온단 말인가.
신주인은 이사라는 직위를 받았는데도 임원답게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무에게나 별명을 막 불릴 만큼 위엄도 없고, 남들에게 얕보이고.
그녀가 어떻게 지내든 상관할 바 아니었지만,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는 것엔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기에 대표는 인상을 찌푸렸다.
재민은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 얼굴을 계속 쳐다봤다.
“쌍둥이……?”
자신을 보자마자 쌍둥이라는 가능성부터 떠올리는 재민을 보고 대표는 주인이 남에게 자기 얘기를 잘 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주인은 가족 얘기가 나오면 왠지 슬퍼 보이기만 할 뿐, 본인의 가족 얘기는 잘 하지 않았기에 멤버들은 그녀의 가족 관계를 모르고 있었다.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없어. 아무튼 신주인을 잘 아는 사람인 건 확실하지.”
“누구신데요?”
“그건 자세히 말해줄 수 없고.”
재민은 호기심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으나 대표는 대답을 거부했다.
게임 캐릭터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힐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자신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얘기가 빨랐다.
대표가 모노크롬 멤버 중에서도, 명재민을 찾아온 이유가 있었다.
‘신주인이 데려온 애.’
가장 신주인을 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멤버였다.
잘은 몰라도, 신주인에게 호의적이니까 회사로 돌아와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을 터였다.
작년 초, 대표도 마이 엔터로 영입을 확인하고 나서야 재민이란 멤버가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곧바로 이어서 든 의문은 이것이었다.
‘명재민을 다시 데려올 이유가 뭐였을까.’
대표가 이 세계에 들어와 회사를 키워야 한다는 목표를 인식하자마자 생각한 것은 ‘업보를 지워야겠다’.
마이 엔터 공식 유저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었다. 회사나 소속 아티스트에게 안 좋은 여론이 생겨 회사 등급까지 떨어졌다는 글을.
대표는 원활한 퀘스트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플레이로 인해 생겨난 뉴마의 안 좋은 부분을 깔끔하게 도려내려 했다.
뉴마는 뉴레인으로 사명을 바꿔 새 출발을 하려 했고, 모노크롬은 인기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으니 미련 없이 해체시킬 생각이었다.
계속 방치되었던 모노크롬은 회사에 불만이 있을 가능성이 컸고, 악질 플레이의 산증인인 그들이 남아 있으면 회사에 부정적인 여론이 계속 끌어올려질 터였으니까.
‘그런데 새해가 되니까 뭔가가 개입한 것처럼, 뉴마를 제어하기 어렵게 바뀌어 버렸지.’
뉴마는 배우 매니지먼트를 겸하는 회사가 되면서 뉴레인과 따로 존재하게 되었고, 모노크롬은 그 뉴마에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대표는 이를 시스템이 부여한 페널티라고 생각했다. 혹은 보상을 얻으려면 과거의 업보를 잊지 말라는 시스템의 경고거나.
새해가 되어서 나타난 또 다른 신주인도 모노크롬의 스케줄을 직접 지켜보거나 스타일링을 맡는 등 임원치고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에 의아했으나, 생각해 보니 그녀가 하는 일들은 전부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하던 것들이었다.
‘현실에 신주인이 남아 있었다.’라는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대표는 당연히 그녀가 시스템대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마이 엔터에는 플레이어가 접속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스케줄을 이어나가는 기능이 있었으니까.
명재민도, 대표가 모노크롬의 멤버 구성을 바꿔버리자 시스템이 이전 플레이 기억을 되살려 가장 적절한 인물로 빈자리를 채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퀘스트를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시스템이 이 세계의 신주인을 움직인 게 아니라, 신주인이 이 세계에 들어오는 바람에 환경이 전부 바뀌어 버린 거였어.’
대표가 이 세계에 오면서 게임상으로만 존재했던 많은 것들이 현실화하였듯이.
그리고 그 신주인은 자신을 방해하려 한다.
퀘스트 달성 이후를 생각하기 전에, 퀘스트 달성부터 이뤄야 했다.
신주인에게 말이 안 통한다면 모노크롬을 직접 흔들면 된다.
“신주인이 잘해주니?”
“네? 네.”
여전히 경계심 없는 얼굴인 재민은 대표가 무슨 의도로 그런 것을 묻는지 모르면서도 착실히 대답했다.
“그런데 왜 너희한테 잘해줄까. 그건 생각해 본 적 있어?”
모노크롬도 지금은 이런 관계에 익숙하지만, 초반에는 주인이 조건 없이 잘해주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기도 했다.
업무를 넘어서서 인간적으로 잘해주는 게 마치 알 수 없는 빚을 갚는 행동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주인은 1년 넘게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왔다.
모노크롬 멤버들은 이제 그런 주인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냥, 이사님은 그런 분이신데요.”
“뭐? 넌 신주인을 정말 모르네.”
신주인 본인이었던 대표가 이런 말을 하면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재민은 그 말이 비난처럼 들렸는지 입을 삐죽였다.
“나름대로 대화도 많이 하고 좀 알아요.”
“네가 신주인에 대해 뭘 아는데?”
“우주에서 오셨고 우주로 돌아간다고요.”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뜬금없는 우주 이야기에 대표가 미간을 좁혔다.
대표는 이런 장난 같은 이야기를 이어나갈 생각이 없었기에 재민의 말을 무시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널 그룹에서 내보낸 거. 신주인이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 안 해 봤어?”
“네?”
“갑자기 이사로 부임할 정도라면 전부터 이 회사랑 소속 그룹에 관심이 있었을 텐데, 대표 딸이 과연 아무 결정권도 없었을까?”
본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장난칠 생각은 사라졌는지, 재민은 입을 다물었다.
대표는 그런 재민의 표정을 보고 여유를 되찾았다.
“그런데 뻔뻔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착한 척하고 있는 거라면? 그래도 네가 신주인을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아?”
재민은 대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몇 번 깜빡거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으에?”
마치 고장이라도 난 것 같은 알 수 없는 소리에 당황한 것은 대표 쪽이었다.
뭐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아니, 후우……. 신주인이 부임 전에 회사에 아무 영향도 안 미쳤겠냐는…….”
“에?”
“그러니까, 처음부터 대표 딸이었는데-.”
“떨이요?”
다시 천천히 설명해 주려는데 재민은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는 몰라도 계속 고장 난 상태로 있었다.
대표는 ‘얘 뭐지?’ 하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다.
“신주인은 뭐 이런 바보 같은 애를 데려왔어?”
“저 바보 아닌데요.”
이제야 말뜻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재민이 또박또박 대답했다.
하지만 자신이 바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상황 자체가 더 바보처럼 느껴졌다.
“바보가 아니면 제대로 들어. 신주인을 의심해 본 적 없냐는 얘기야.”
“의심?”
“그래. 의심. 널 내보내는 데에 신주인의 의사가 없었겠냐고.”
“이사?”
이제는 문장 하나에 단어 하나만 듣는 작전으로 바꾼 건가.
대표는 대화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자 속이 부글거리는 것을 느꼈다.
“너 신주인한테도 이렇게 대하니?”
“당연히 아는 사람이랑 모르는 사람은 다르게 대하죠. 그러니까 누구신데요.”
이런 질문에만 또박또박 대답하는 것이 답답함을 더 심화시켰다.
폭탄 같은 발언을 던져서 멤버들의 심리를 흔들 생각이었는데 전부 불발탄으로 끝나 버리고, 결국 재민은 대표의 정체를 묻는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 됐다.”
대화할 의지를 급속히 잃고 만 대표는 이만 가보라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나 재민의 호기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진짜 누구신데요?”
“너는 몰라도 돼.”
“왜요?”
대답할 기분이 아니어서 무시하자 재민은 “왜요? 왜요? 왜 전 몰라도 돼요?”라고 세 번이나 더 물었다.
물음표 살인마가 따로 없었다.
“신주인한테 가서 물어.”
적어도 자신이 멤버와 직접 접촉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기감은 느끼겠지.
대표는 다른 멤버라면 몰라도 명재민과는 다시는 대화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별 수확 없이 자리를 떴다.
***
여름에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살린 많은 이벤트가 있다.
그리고 아이돌인 모노크롬에게도 여름 기념 특별 스케줄이 있었다.
‘벌써 1년이 지났다니.’
정확히 따지자면 작년보다는 촬영 시기가 조금 빨라진 탓에 아직 1년은 안 지났지만.
바로 <아이돌부 방학캠프> 여름방학 편. 작년에 이은 보이그룹 특집 2번째 촬영.
그 촬영에 작년 1등 반으로 뽑혔던 모노크롬이 특별 출연하게 되었다.
‘당시에 시청자들이 ‘모노크롬은 음악방송 1위도 못 하고 예능에서 먼저 1위 한다’라고 해서 속이 쓰렸는데…….’
모노크롬은 뭔데 나오냐는 소리도 듣고 말이야.
그 뒤로 모노크롬은 수상 경력도 쌓았고 <쉰셋돌> 이후에는 ‘방송에 잘 나오는 선배 아이돌’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났다.
그러니 이번엔 ‘모노크롬은 뭔데 또 나오냐’ 하는 소리는 안 나오겠지.
게다가 <쉰셋돌>이 같은 QBC 프로그램이었던 영향인지, 이번 편에는 류현이 있는 러너스하이와 이담이 있는 더클랜이 출연한다고 한다.
우리는 잠깐 다녀오기만 할 거지만 아는 얼굴들이 있으면 반갑고 좋은 법.
작년엔 비장한 마음으로 임했는데 올해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촬영할 수 있을 듯했다.
제작진이 정해준 컨셉이 있어서 설명해 주려고 멤버들을 회의실로 모았는데, 광합성을 하러 나갔다던 재민이 앞뒤 없이 뜬금없는 질문을 하며 나타났다.
“주인 님! 쌍둥이 있어요?!”
“쌍둥이?”
이 회사에 쌍둥이 직원이 있던가? 쌍둥이를 왜 찾지.
무슨 소리냐고 되물으려다가, 굳이 나를 보고 물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바로 그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나한테 쌍둥이라고 할 사람이라면…….’
한 명밖에 없지. 쌍둥이는 아니지만 일란성 쌍둥이보다 더 나와 닮은 존재.
재민이 대표를 목격한 모양이었다.
‘내가 메시지를 계속 씹으니까 직접 움직이기로 한 건가.’
지금껏 계속 해외에 나가 살더니, 국내로 들어온 후엔 계속 여기에 잘 붙어있잖아.
그만큼 내 행동에 위기를 느낀 모양이었다.
“누가 나랑 쌍둥이라면서 너한테 말 걸어?”
“아뇨. 누구냐고 물었는데 아무 대답도 안 해줬어요. 그런데 주인 님이랑 얼굴이 똑같잖아요.”
그러면서 손을 휘저으며 뭔가를 표현하는데, 아마 머리가 길었다는 뜻인 것 같았다.
옆에 있는 멤버들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사님 쌍둥이셨어요……?”
“아니, 쌍둥이는 아닌데…….”
우형이 처음 아는 사실이라는 것처럼 생경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당연히 처음 듣겠지. 대표에게 딸이 있다는 것도 내가 오고 나서야 알았을 텐데. 아니, 애초에 대표는 쌍둥이 자매가 아니다.
내 가족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대표가 재민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가 더 중요했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짚으며 재민에게 더 상세한 상황을 물었다.
“걔가 혹시 무슨 이상한 소리라도 했어?”
“무슨 얘기 하는지는 제대로 못 알아들었어요.”
“알아듣지 못할 얘기를 해?”
대체 무슨 얘기를 꺼낸 거지?
모노크롬 멤버에게 직접 찾아와서 할 말이 뭐가 있을까…….
“아! 저한테 바보라고 그랬어요.”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