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85화 (285/430)

# 285화

여기가 대표 집이었다고?

예상 못 한 정보에 내가 눈만 끔뻑거리자 대표는 또 황당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내 옷을 입어놓고 그것도 눈치 못 챘어?”

“…….”

이 세계에 들어온 첫날의 강렬한 기억이 지금 다시 떠올랐다.

그때, 이곳이 꿈인 줄 알고 속 편하게 집을 둘러보면서 감탄했었지. 이상적인 자취방이 구현된 것 같다면서.

특히 옷. 드레스룸에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에 내 사이즈의 옷이 구비되어 있었다.

도어락 비밀번호도 나라면 알 수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고.

‘플레이어에 맞춰서 준비된 집이었던 거야……?’

게임 속 대표도 살 집은 있어야 하니까?

이곳에서 생활하는 게 익숙해져 있던 탓에 대표의 정체를 추측해내고도 이곳이 대표가 지내던 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대표가 자아를 가진 후에 직접 발품 팔아서 구한 집은 아닐 거 아냐?’

최 비서가 ‘대표가 집에 틀어박힌 적이 있었다’라고 말했었으니 대표가 자아를 가지기 전부터 집은 있었을 터.

집 자체는 게임 설정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옷이야…… 샀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신주인이 입을 옷이었던 거잖아?”

왜 내가 옷을 뺏어 입은 것처럼 말하는 거야.

어쨌든 내가 여기서 눈을 뜬 이상 여긴 내 집인걸.

난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왜 나타난 거야? 아니, 핸드폰은 왜 부순 거야?”

마이 엔터도 알아서 돌아왔고, 대표가 등장한 이후로 알게 된 것은 많았지만 엄마와의 대화창은 여전히 되찾지 못했다.

어디에도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 마음 한구석에 담아뒀던 원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너도 봤을지 모르겠지만 그 핸드폰으로 엄마랑 연락할 수 있었는데…….”

내 말에 대표는 눈만 끔뻑거렸다.

당황이라고는 한 톨만큼도 섞이지 않은 얼굴이었다.

“보고도, 부순 거야?”

“네가 그걸 이용해서 날 방해했잖아.”

그저 내가 대표를 방해했기에.

다른 상황은 전혀 고려치 않은 단순한 이유였다.

대표의 담담한 반응에 오히려 내가 혼란스러워질 지경이었다.

‘진짜 얘는 현실에는 아무 미련이 없나?’

나와 같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이 세계에 조금 더 일찍 들어온 것만으로도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다니.

대표는 예상대로 엄마가 있는 현실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무슨 마음으로 가족까지 포기했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기에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은 동정심으로 약해질 때가 아니다.

“내가 방해한 게 아니고 네가 이상한 짓을 하니까 바로잡으려고 한 거잖아.”

“바로잡아? 왜?”

대표는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마치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것처럼 대화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고 허공에서 빙빙 돌기만 했다.

“너 지금 대표로서 회사를 키우고 있는 거 아니야? 근데 계속 안 좋은 수만 두고 있잖아.”

입맛에 맞는 연습생을 뽑아서 데뷔조를 만들려고 했던 것까지는 무슨 생각인지 알겠어.

그런데 멀쩡히 잘나가던 아이리스를 방치하는 것은 확실한 악수였다.

대비가 안 되어 있었으리라고 추측은 했지만, 지금 태도를 보니 별로 심각하게 생각한 적도 없는 듯해서 더 의문이 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거야?”

“너야말로 왜 그래? 여긴 게임이잖아.”

마이 엔터의 존재 외에는 다른 모든 게 현실적이어서 다른 차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대표는 어째서인지 이곳을 정확히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회사를 위해 돈 벌고, 방치하고, 이런 것들도 다 전부 네가 그런 거였잖아, 신주인. 왜 모르는 척을 해?”

“스마트폰으로 플레이할 때랑은 상황이 다르잖아. 처음에 게임으로 접했다고 해도 여기 사는 사람들도 자기 인생이 있고 목표가 있는데…….”

“다 게임 캐릭터일 뿐이잖아. 게임에 과몰입하지 마.”

대표는 별로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내 이야기를 원천차단했다.

게임 세계관 속이라고 생각하더라도 화면 너머의 캐릭터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건 차원이 다를 텐데.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건가?’

자기 목표를 위해서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소속 아티스트가 게임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게 대표 입장에선 편하니까.

대표는 이 세계의 사람으로 살기보다는 철저하게 플레이어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건, 지금의 대표 신분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너 지금 퀘스트 중인 거지? 퀘스트 보상이 지금 네 행동을 다 커버해줄 수 있는 거고. 보상을 받으면, 대표로서 네가 한 행동들을 네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 이러는 거야?”

“생각보다 머리를 많이 굴렸나 보네.”

내 말이 맞는다는 듯 반응하는 것을 보니, 역시 대표의 퀘스트 보상은 대표의 신분을 벗어나는 것인 듯했다.

‘……나까지 게임 캐릭터라고 생각해서 해치려는 건 아니겠지?’

만나면 한 명이 죽는다는 도플갱어 이야기처럼.

일단 마주친다고 한 명의 심장이 멈춘다거나 하는 일은 없는 게 확실하다. 지금 우리는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혹여나 물리적인 공격을 가할까 봐 슬쩍 눈으로 살폈으나 다행히 대표 주변에 흉기로 사용될 만한 물건은 없었다.

혼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려다 마는데, 대표가 식겁할 만한 소리를 했다.

“너 혹시 죽었니?”

“뭐?”

방금까지 ‘죽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미 죽었니?’라는 질문이라니.

설마 지금 난 영혼 상태로 대표와 대화 중인 건가?

아닌데. 난 방금 집에 들어오면서도 문을 통과해 들어온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깜짝 놀라 내 몸을 내려다봤는데 손발도 멀쩡했다.

“내가 왜 죽어?”

“나는 내가 바라서 여기 온 건데, 그 세계에 남아 있던 네가 왜 굳이 여기로 왔는지 이해가 안 되잖아. 죽은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갈 곳을 잃었다가 이 세계의 신주인의 몸에 들어왔나 했지.”

우리 둘 다 서로를 간접적으로만 파악해서인지 서로에 관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았다.

내가 대표의 정체를 깨달았던 것처럼, 대표도 내 존재를 알고 혼자 생각을 많이 해 본 모양이었다.

‘나 은근히 상상력이 풍부했구나.’

설마 내가 죽어서 영혼이 차원을 넘어왔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을 줄은.

난 멀쩡히 살아 있으니 문제없고, 지금 대화에서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었다.

“이 세계에 신주인이 이미 있었다는 소리야?”

“해외에 있다고 되어 있어서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그게 아니었으면 내가 왜 널 가만히 뒀겠어. 갑자기 움직이는 건 게임의 자동 플레이 같은 건가 했지. 그런데 알고 보니 네가 직접 이곳에 와서 움직이고 있었던 거야.”

대표는 날 더미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게 맞았나 보다. 왜냐하면 정말로 더미 상태의 신주인이 존재했었기에.

대표가 해외로 나간 것에는 내가 해외에 있었다는 설정 또한 영향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순순히 꺼내는 것을 보니 대표는 생각보다 정보를 감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과거 이야기를 알아봤자 미래에 별로 영향을 주지는 못하니까 숨길 필요까지야 없긴 하지…….’

알수록 이 세계에 대한 이해도만 높아질 뿐이지.

“그래서 넌 왜 여기 왔는데? 또 비슷한 소원을 빌었나 보지?”

“그건…….”

내가 이 세계로 들어온 것이 퀘스트의 영향인지 내 소원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대답을 못 하고 있자 대표는 별로 궁금하진 않았는지 자신의 할 말을 이어나갔다.

“뭐, 어쨌든 조금은 안심했어. 거기 있어 봤자 여전히 현실에 뒤처진, 실패한 신주인으로 남아 있었을 거라니.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단 거잖아.”

생일 소원을 빌 때만큼 비참하진 않았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내 인생이 한심하다고 생각하긴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대표는 나를 비난하듯이 말했지만 어쩐지 화보다는 안쓰러움이 먼저 들었다.

이곳에서 새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네가 여전히 저쪽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면, 네가 돌아간다고 해서 이곳의 신주인이 사라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겠네.”

대표는 머릿속을 정리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내가 퀘스트 보상을 받아 원래 세계로 복귀하면 원래 이곳에 있던 ‘신주인’이라는 신분까지 같이 없어질까 봐 걱정했던 모양이다.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해서 뭐라 말은 못 하겠지만.

“그럼 그 사실을 알았으니까 이제 내가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게?”

“흐음. 그래. 네가 계속 뉴마에서 직접 일해왔다면 좀 쉬워질 수도 있겠네. 너한테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이 하나 있어.”

신분 하나를 두고 싸우지 않아도 된다면 은근히 협조적인 걸까.

아직 경계심은 남아 있었지만 그 방법이란 것이 궁금해서 나는 귀를 기울였다.

“네 퀘스트 기간이 2년이었잖아? 그건 아마 모노크롬의 재계약 기간 같거든.”

이번에 내가 받은 아이리스 퀘스트처럼 기한이 표시되지 않는 퀘스트도 있지만, 모노크롬의 퀘스트는 처음부터 2년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아마도 모노크롬이 이번 재계약 기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소원을 빌었기 때문에.

대표도 내 마이 엔터 화면을 확인하고 계약 기간이라고 예측한 모양이었다.

“계약 기간을 늘려. 그러면 퀘스트 기간도 같이 늘어날지도 모르잖아.”

“그게 마음대로 늘리고 줄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이 엔터에 뉴마와 뉴레인이 둘 다 등록되어 있잖아. 뉴마 계약을 중단하고 뉴레인에 새로 계약시켜. 이미 선례가 있으니까 어렵진 않을걸?”

……뉴마에서 멤버 한 명만 뉴레인으로 빼간 게 이렇게 가볍게 말할 일이야?

내가 무어라 대꾸를 못 하고 있자 대표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걸 테고. 그럼 어차피 여기 버리고 갈 애들인데 뭐 어때.”

“버리다니…….”

난 모노크롬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서 탈뉴마를 목표로 삼았는데, 뉴레인에 계약시킨다면 반대 행보가 된다.

난 멤버들의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할 테고, 모노크롬도 성격상 분명 회사의 눈치를 보느라 기를 못 펴게 되겠지.

“뭘 망설여? 어차피 너도 모노크롬은 안중에도 없었잖아.”

“그건 게임일 때 얘기고.”

“설마 정이라도 든 거야? 돌아갈 생각을 하면서? 웃기지도 않아.”

대표는 마치 내가 지금껏 쓸모없는 일에 힘을 써왔다는 듯이 비웃었다.

“그래, 아이리스. 너 아이리스 좋아했잖아. 모노크롬을 넘기면 아이리스는 원하는 대로 편하게 활동할 수 있어.”

“내가 모노크롬을 뉴레인에 보내든 안 보내든, 어차피 뉴레인은 아이리스랑 의견을 맞춰서 활동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 넌 회사를 키우는 게 목적일 거 아냐.”

모노크롬을 영입하려는 건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일 터.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이리스도 활동시키는 게 맞다.

그런데 그 아이리스의 활동을 인질로 삼는다?

내가 의아하다는 눈으로 묻자 대표는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건 말해줄게. 네 예상대로 퀘스트가 있어. 뉴레인을 운영해서 기업 등급을 올리거나 돈을 모으는 거.”

기업 등급은 마이 엔터 내에 표시되는 회사 자체의 레벨이었다.

규모나 자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돈이 많고 잘 버는 회사가 등급이 높다고 보면 된다.

내가 마이 엔터로 아티스트의 상태를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대표는 회사와 관련된 기능을 확인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뉴레인이 분리되어서 대표가 뉴레인 퀘스트를 받은 게 다행인가.’

뉴마를 키우는 퀘스트였으면 내가 회삿돈을 탕진하는 것을 보고 대표가 당장 내 머리채를 잡으러 왔을지도 모르겠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퀘스트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대표의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계약 만료 전에 아이리스 일곱 명이 계약 파기를 원하면…… 그 위약금으로 아슬아슬하게 채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돌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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