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82화 (282/430)

# 282화

자신의 미래를 예상하지 못한 우형은 오묘해진 표정으로 내가 든 파일들을 바라봤다.

언젠가 본 것 같은 표정이다 싶어서 떠올려 보니, 이전에 온갖 공포 체험을 하고 온 신셋 멤버들을 바라보던 표정과 똑 닮아 있었다.

“신셋 때처럼 극한의 공포 상황에 몰아넣고 굴릴 건 아니니까 걱정 마.”

“네…….”

우형은 여전히 묘한 표정으로 다시 곡 작업을 하러 작업실로 돌아갔다.

공포 체험을 자기가 하는 것도 싫지만 남이 하는 것도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뉴마에 나타났다는 귀신이 사실은 귀신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려줘야 하나?

지금도 종종 밤늦게 작업이 끝나면 무서워하는 것 같던데.

‘아니지. 내가 그 귀신의 정체를 설명하지 못하면 새로운 괴담이 되겠지…….’

귀신의 정체를 알아봤지만 저주받을까 봐 발설하지 못하는 것 같잖아.

한이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믿을 수 있는 지금이 더 마음이 편할 것이다.

추상적인 공포가 상상력을 자극해서 더 무서울 때도 있지만, 굳이 구체적인 공포를 선사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다시 파일을 정리하며 귀신의 정체는 조용히 내 마음속에 묻어두기로 마음먹었다.

***

내가 공포와 관련된 레퍼런스를 모아둔 이유는, 바로 아이리스의 뮤직비디오를 위해서였다.

이번 싱글의 컨셉은 그룹명 그대로 ‘아이리스’. 비를 거쳐 무지개를 맞이하는 소녀들.

이렇게 말하면 청춘, 청량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그냥 ‘무지개’만 내세우면 왠지 뻔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음반을 대성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게임에서 처음 대성공을 달성했던 아이리스의 <레인보우> 앨범을 분석했다.

<레인보우>의 가장 특이한 점은, 멤버들의 예명대로 빨주노초파남보로 헤어를 맞췄다는 것이다.

‘민형 씨가 그랬었지. 처음엔 사람들이 전대물 찍냐고 말이 많았었다고.’

처음엔 그런 호불호 갈리는 반응이 많이 나왔다던가.

반대로 생각해 보면, 호불호 갈리는 컨셉이어도 성공도가 낮게 측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특이하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먼저 사로잡은 후에 ‘생각보다 더 좋네?’라는 반응이 나오게 만드는 것이 관건인 듯했다.

그래서 이번엔 뭘 해야 사람들의 시선을 더 사로잡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떠올린 것이 바로, 컨셉에 약간의 공포를 곁들이는 방법이었다.

‘마침 계절도 초여름이고.’

여기에 또 다른 메인 키워드인 ‘비’를 결합하면 청량한 느낌도 낼 수 있지만 한없이 축축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가능했다.

곡까지 음산하게 만들 것은 아니고, 뮤직비디오에만 스토리를 가미할 예정이었다.

다행히 직원들의 반응도 괜찮았고 성운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중인 노래도 분위기가 잘 맞을 듯했다.

이렇게 아이리스가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와중, 멤버들을 위한 시간도 마련해뒀다.

‘매일 트레이닝만 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발동했지. 잠시 묻혀 있던 나의 비하인드 중독 특성이.

모노크롬은 자체 컨텐츠의 양이 많아져서 이제는 예전만큼 비하인드에 목을 매달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상황이 달랐다. 무대나 퍼포먼스 영상에 비해 컨텐츠의 양이 적은 편이었다.

팬덤 성향이 강한 보이그룹이 예능 컨텐츠 제작에 더 힘을 쓰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걸그룹 팬들이라고 멤버들이 놀고 즐기는 영상을 보고 싶지 않을 리는 없단 말이지.

거기에 해외 활동을 하다 보면 시차나 네트워크 상황 때문에 뷰이라이브를 하기도 힘들고, 계속 이동해야 하니 비하인드를 챙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목마른 팬들에게는 일단 떡밥 양으로 승부한다.

지금의 뉴레인은 이런 걸 전혀 챙길 것 같지가 않으니 내가 챙겨야만 했다.

“다들 준비 다 됐어?”

오늘 아이리스 멤버들은 트레이닝용 연습복이 아니라 편안한 사복 차림이었다.

어두운 곳에 있을 예정이라 메이크업 샵에 들르는 등 거창한 준비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질문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럼 놀러 가자!”

아이리스 멤버들은 아직 그룹 존속의 위기 탓에 불안한 상태.

그러나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쫓기듯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좀 더 즐거운 기분으로 활동을 맞이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싱글 프로젝트 속 혼자만의 서브 프로젝트, ‘멤버들의 긴장 풀어주기 기획’을 개시했다.

***

“저희 진짜 영화 보러 가요?”

“응. 인풋을 해야 아웃풋이 잘 나온다고 하잖아?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받는 거지.”

“우와아.”

인상만큼이나 말투도 동글동글한 네이비가 상체를 쭉 빼며 질문하고는 설레는 표정으로 다시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오늘은 아이리스 멤버들을 위해 좌석 수가 적은 상영관을 하나 대관했다.

영화관으로 이동하며 멤버들은 저들끼리 단란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 단체로 놀러 가는 거 진짜 오랜만이다. 그치?”

“응. 영화관도 오래간만에 가는 것 같아.”

두셋씩 돌아다니면 몰라도, 얼굴 작고 비율 좋은 일곱 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면 멀리서 봐도 아이돌 그룹 같겠지.

다인원 그룹은 스케줄이 아니라면 단체로 움직이기가 어렵다.

아이리스 멤버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모노크롬에 익숙해져 있던 귀가 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한창 조잘조잘하던 네이비는 궁금한 게 생겼는지 또 내게 질문했다.

“그런데 저희 오늘 무슨 영화 봐요?”

“그건…… 영화 시작할 때 확인해 봐.”

“최근에 나온 영화예요?”

“요즘 상영하는 영화는 아니고 조금 옛날 영화야.”

옛날 영화로 범위가 넓어지자 네이비는 추측을 포기했는지 다시 자세를 뒤로했다.

‘인풋 겸 휴식 시간이라고만 설명해놨으니 멤버들은 아직 상상도 못 했겠지.’

지금 우리가 보러 가는 게 그냥 영화가 아니라…… 공포 영화라는 것을.

아이리스 멤버들은 곡 컨셉에 대해서만 들었지, 뮤직비디오 컨셉은 아직 듣지 못했다.

원래부터 밝은 청량보다는 서늘한 분위기로 연출할 예정이었는데, 거기에 공포 요소를 가미하기로 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 영화를 보고 나서 알려줄 생각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하게 될 컨셉과 유사한 시각 자료를 먼저 보면 확실히 이해하기 쉬울 테니까.

‘그리고…… 공포 영화 볼 때의 반응이 가장 크고 재밌으니까!’

공포 게임은 못 하는데 공포 게임을 하는 사람의 리액션은 즐겨 보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혹시나 무서운 것을 병적으로 꺼리는 멤버가 있을까 봐 미리 알아보기도 했다.

멤버들과 오래 일한 매니저도 있었고, 아이리스 한정 인공지능 비서처럼 작동하는 민형도 있기에 사소한 정보를 얻기가 쉬웠다.

미리 알아본 결과 다행히 무서운 것을 심하게 못 견디는 멤버는 없었기에 이 컨텐츠 기획도 마음 편히 짤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우리의 희생양, 아니, 멤버들은 최근에 본 영화, 좋아하는 영화 등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물론 멤버들의 입에서 나오는 영화들은 공포 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조금은 힌트를 줘 볼까……?’

한창 영화에 관해 얘기 중일 때 내가 끼어들면 바로 눈치챌 수도 있으니, 나는 영화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쯤 은근슬쩍 운을 뗐다.

“그런데 너희 그 얘기 들어본 적 있어? 뉴마 녹음실 있는 데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

나는 그냥 플레이어 시절의 나를 괴담 소재로 삼기로 했다.

아이리스 멤버들은 다들 내 이야기가 신경 쓰였는지 귀를 쫑긋 세웠다.

아이리스도 재작년까지는 몇 년이나 뉴마 건물에서 지내왔으니 귀신 출현 장소가 어딘지 바로 알 것이다.

“한 명만 본 게 아니라 직원 중에서도 본 사람이 있다더라고. 혹시 너희도 봤는지 궁금해서.”

“어, 나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직원분한테 비슷한 얘기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

퍼플이 소름이 돋는 것처럼 자신의 팔을 감싸며 말하자 멤버 전원이 이 화제에 몰입했다.

올해 연영과에 입학했다더니, 사소한 표정과 행동으로도 주변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는 힘이 있었다.

‘퍼플이 연기 레벨이 꽤 높았던 것 같은데……. 마침 뮤직비디오에 스토리 파트를 넣을 예정이니까 최대한 활용해야지.’

연기 실력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건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그 이야기 맞아요? 머리 긴 여자분인데 아무도 얼굴 기억 못 한다던.”

“응. 맞아.”

나는 퍼플의 질문에 남 일 말하듯이 대답했다.

한이의 묘사와 일치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인싸 한이가 회사 내에서 직원들과 했던 얘기가 퍼플의 귀에도 흘러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와 퍼플의 정보가 일치하자 즉석에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안 멤버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리고 레드도 뭔가 떠올랐는지 뉴마에 있을 적 경험했던 괴이한 현상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나 지금 생각났는데, 깍! 하는 까마귀 소리 들어본 적 있어. 회사 안에서 나는 것처럼 선명하게. 난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그때 나랑 같이 있던 매니저님도 들었다는 거야!”

“회사 주변에 까치는 있어도 까마귀는 없지 않아?”

“뭐야…… 무섭다.”

정체불명의 여자 말고 의문의 소리 괴담은 나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나는 까마귀 소리로 들었는데 매니저님은 사람 목소리 같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막 소름이 끼치는데…….”

“으으. 어느 쪽이든 무서워…….”

블루는 이런 얘기에 약한 편인지 귀를 반쯤 막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레드가 말하는 소리의 정체를 왠지 알 것 같았다.

‘그거…… 한이인 것 같은데.’

나도 비슷한 소리를 몇 번 들어본 기억이 있다.

처음엔 어디서 괴성이 들리나 했더니, 연습실의 방음을 뚫는 한이의 목청이 원인이었다.

마치 고슴도치가 몸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세우고 몸을 둥글리듯이, 한이는 멤버들과 투닥거리다 자신이 불리해질 때면 소리를 꽥 질러서 고막 공격을 시전하고는 했다.

나야 멤버들을 자주 보니까 지금은 한이가 큰 소리를 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레드는 무서운 소리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간 모양이었다.

자상해 보이던 선배가 설마 그런 이상한 소리를 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한이는 모르겠지. 후배들 사이에서 자신도 괴담으로 남아있다는 걸.’

의도치 않게 괴담의 주인공이 된 사람이 나 말고도 있었다니.

무서워하는 아이리스 멤버들을 보며 나는 혼자 한이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

영화관에 도착하여 신나게 팝콘과 음료까지 사 온 아이리스 멤버들은 상영관에 들어와 쪼르르 앉았다.

크지 않은 상영관이었기에 맨 뒷좌석에 나란히 앉히고 앞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어? 나 이 영화 어디서 본 것 같아.”

“뭔데? 로맨스야?”

상영이 시작되고, 옐로가 팝콘을 입에 넣으며 기억을 되짚었다.

영화의 시작은 교실에 혼자 남은 여학생이 공부를 하다가 문득 창밖을 보는 장면.

로맨스라기에는 스산한 BGM에 멤버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팝콘을 집어 먹는 손을 멈췄다.

“이거 귀신 나오는 거잖아!”

영화의 정체를 이제야 안 멤버들은 배신당한 표정으로 직원들을 바라봤다.

거기에 나는 이곳으로 오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먼저 꺼냈었지.

내가 이 기획의 원흉이라는 것을 알아챘는지 내게도 시선이 모여들었다.

‘너희는 나를 너무 믿었어.’

연약한 병아리 대하듯 아껴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거리감을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내 스타일대로 나가기로 했다.

이런 반응까지도 내가 의도한 바였기에 나는 미소로 화답한 후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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