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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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에 아이리스 단체사진이냐ㅜㅜㅜㅜㅜ
설마 또 해외 활동은 아니겠지?ㅜㅜㅜㅜ젭라
└후.. 난 또 뉴레인이 아이리스 계정 비번 까먹은 줄 알았자너^^..
└영어 번역 없는 거 보니까 이번엔 국내 활동 아닐까?
└아 그러게 영어가 없네
└조만간 뭐 더 뜬다는 소리겠지? 나 기대한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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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뭔가를 준비 중이라고 공개해 놓으면 뉴레인도 눈치가 보여서라도 더는 무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아이리스 싱글 프로젝트를 시작하자마자 완전체 사진부터 업로드했다.
그런데 무지개들은 지금껏 당한 게 많았는지 암호를 풀듯이 뉴레인의 의도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떡밥도 다 의심이 가기 마련이지.’
컬러즈를 봐오면서 그 사실은 뼈저리게 깨달았다.
분명 작년 초까지는 무지개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을 텐데.
회사가 이렇게 단기간에 불신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재능이었다.
어쩌면 무지개도 모노크롬이라는 선례를 알고 있어서 더 빠르게 불안에 잠식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회사가 아티스트를 한없이 방치하기도 하는 회사라는 걸 알고 있어서.
나는 컬러즈를 계속 봐왔기에 이런 불신은 시간이 지나야 얼음 녹듯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물론 회사가 정신을 차리는 게 먼저지만!’
그래도 아이리스 멤버들이 게임처럼 그저 순응하는 게 아니라 회사를 상대로 버티고 선 덕분에 대표와 좀 더 가까워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아이리스 멤버들에게 좋은 기회로 보답해 주고 싶었는데. 분명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과 반대로, 멤버들을 또 다른 지옥으로 밀어 넣은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자, 10분 휴식!”
“아아, 5분만 더 주시면 안 돼요?”
“지금도 10분은 줄어들고 있어.”
네이비가 어리광부리는 목소리로 졸랐으나 로아는 바로 일축해 버렸다.
일단 뭐가 나와야 안무 연습을 하고, 녹음을 하고, 촬영을 하지.
타이틀곡은 내가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것이 확정되고 나서야 성운에게 정식으로 의뢰했고, 안무는 곡이 나와야 짤 수 있다.
뮤직비디오도 곡이 나오면 빠르게 콘티를 완성하기 위해 이미지를 잡아두는 중이지만 이건 직원들과 제작사가 할 일이지, 아이리스 멤버들이 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아이리스 멤버들은 할 일이 생길 때까지, 팀 미로식 트레이닝을 받는 중이었다.
‘역시 재민에게 ‘몸이 힘들면 잡생각이 안 난다.’라는 사상을 심어준 장본인.’
원류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모노크롬의 트레이닝을 주도하는 민후도 가차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로아는 힘들어하는 수련생들을 앞에 두고도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나야 옆에서 구경하고 있지만 트레이닝을 받는 멤버들 눈에는 섬뜩해 보이지 않을까.
팀 미로의 단원들이 왜 민후보다 로아를 더 두려워하는지 단번에 이해가 가는 장면이었다.
“나 팔에 힘이 없어~.”
휴식 5분을 더 요구하다가 거부당한 네이비는 슬픈 얼굴로 퍼플에게 다가가 기대 누웠다.
모노크롬의 연습실에서도 멤버가 다른 멤버를 베개처럼 베고 쉬는 모습은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멤버를 껴안고 눕는 것은 신선한 그림이었다.
보이그룹만 지켜보다가 걸그룹을 보고 있자니 공통점과 차이점이 둘 다 느껴져서 구경만 하고 있어도 시간이 금방 지났다.
“모노크롬 선배님들도 평소에 이렇게 연습하세요……?”
지친 목소리가 들려와서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레드가 내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노력이 부족했나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모노크롬도 그렇긴 한데, 힘든 건 너희 탓이 아니고 팀 미로가 특이한 거야. 신셋 멤버들도 처음엔 다 나가떨어졌는걸…….”
레드는 “그런가요…….” 하면서 벽에 기대앉았다.
레드가 내 옆으로 다가왔을 때부터 오렌지로 추정되는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지만 애써 무시하며 레드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또 ‘나야, 이사님이야?!’ 하는 상황에 어색하게 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활동기처럼 땀을 쪽 빼니까 정신은 개운해지는 것 같아요.”
“그렇지?”
역시 마음의 고통을 몸의 고통으로 대신하는 방법은 효과가 좋다니까.
트레이닝부터 시킨 이유에는 그것도 있었다.
바로 뭔가를 하기에는 아이리스 멤버들이 너무 무기력한 상황이었다.
강제로라도 체력을 만들어내야 의욕도 생겨나지.
레드는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반대쪽 연습실 벽을 보며 말했다.
“저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되게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도와줬으면 했을 때 이사님이 딱 먼저 나타나 주셨거든요. 마치 제 마음을 읽은 것같이.”
“우연이 도와준 거지. 아니면 운명이 작용했거나.”
나는 아무렇게나 뜬구름 잡는 말로 대답했다.
실은 마이 엔터에 퀘스트가 발생한 덕분에 아이리스가 위기란 것을 미리 알아챘다고는 말할 수 없…….
‘아니, 잠깐.’
내가 모노크롬의 해체를 막기 위해 나타난 것 같다는 준해의 말이 지금 다시 떠올랐다.
시스템은 내 소원에 반응해서 대표와 나를 이리로 보낸 것 같았는데…….
‘혹시 타이밍 맞게 내게 퀘스트가 나타난 게 우연이 아니라면?’
모노크롬과 아이리스의 소원에 시스템이 반응했고, 그게 플레이어에게…… 퀘스트의 형태로 나타난 거라면?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라 나는 서둘러 기억을 뒤적였다.
‘퀘스트. 내가 받은 퀘스트가 또 뭐가 있었지?’
마이 엔터에서 불시에 뜨는 퀘스트를 수행하면 일반 스케줄보다 더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분명 플레이하면서 퀘스트를 몇 번 받은 기억이 있었다.
당장 하기 어려울 것 같은 퀘스트는 무시해 넘기고, 보상이 괜찮아 보이면 무리해서라도 퀘스트를 수행하고는 했는데…….
“혹시 앨범 때, 활동 끝나고 회사에 휴가 가고 싶다고 한 적 있었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레드는 잠시 이전 기억을 떠올리듯이 눈을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뇨. 회사에 직접 말한 건 아니었는데…… 활동에 행사도 겹쳐서 다들 지쳐 있으니까 컨텐츠 촬영 뒤로 미루고 휴가 보내주셨어요. 저희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거든요.”
회사에 직접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마음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언제 한번 크리스마스 특별 싱글 낸 적 있잖아. 그것도 멤버들 아이디어야?”
“아, 맞아요! 처음엔 블루가 얘기를 꺼냈던 건데, 그건 회사에 말하니까 들어주셨어요.”
“이번에 음반을 내고 싶어 했던 것도, 꼭 성공시켜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거지?”
“지금 저희에겐 그게 필요했으니까요.”
내가 전혀 관계없는 일들을 차례대로 묻자 레드는 의도를 전혀 모르겠다는 듯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착실하게 대답해주었다.
이 대화로 확실해졌다. 퀘스트는 분명 아이돌의 소원이다.
마이 엔터 내에서 소속 아이돌의 의견을 청취할 방법은 없었지만, 적어도 퀘스트의 형태로는 아이돌도 플레이어에게 요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노크롬도 초반에는 퀘스트가 떴었지.’
아이리스를 데뷔시킬 때쯤에는 대부분의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었으니, 모노크롬을 플레이하면서 퀘스트를 여러 번 수행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리스를 데뷔시킨 후에는, 내 플레이는 철저히 아이리스 위주로 돌아갔다.
그때도 모노크롬의 퀘스트가 계속 떴던가? 잘 기억이 안 난다.
모노크롬의 퀘스트가 떠도 무시해서 기억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이리스가 인기 궤도에 올라탄 이후로 모노크롬의 퀘스트창을 본 기억이 없는 것은 확실했다.
내가 이 세계에 와서 모노크롬의 퀘스트를 보고 처음 느낀 감정은 ‘생소함’이었으니까.
“왜, 왜 그러세요? 어디 안 좋으세요?”
“응? 아, 아니. 쪼그려 앉아 있었더니 갑자기 다리가 저리네.”
내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는지 레드가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표정 관리를 해야 할 상황인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탓에 그러기가 어려웠다.
‘회사에 바라는 게 없었을 리가 없지.’
아무 의견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이내 포기해 버린 거겠지.
어쩌면…… 나는 재민의 복귀 요청을 봤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무시했을지도 몰라.
내 기억에 없으니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멤버들이 회사에 뭔가를 요구할 의지를 잃은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얘기를 들어주니까 하고 싶은 게 많이 생겨났다던 우형의 이야기가 떠올라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지금 모노크롬한테 발생한 음악대상 수상 퀘스트는…….’
마침 퀘스트가 발생한 것이 1월 1일 새벽. 음악대상이 전파를 타던 시각.
모노크롬 멤버가 음악대상을 시청하다가 뭔가를 강력히 바랐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한번 해체 위기에 섰던 모노크롬을 위한 소원을.
그게 무슨 마음이었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서 나는 또 울고 싶어졌다.
***
아이리스 멤버들의 마음속 불안을 털어내 주기 위해 트레이닝을 시키고 지켜보고 있었던 건데.
같은 공간에 있던 나는 반대로 강한 죄책감을 얻어왔다.
‘운동하라는 말을 진작 들었어야 했어.’
나는 힘들게 몸을 움직일 일이 없으니 이 죄책감을 발산할 방법이 없었다.
아니지. 내가 이 죄책감을 털어내려 하는 건 모노크롬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내가 벌인 일은 이미 다 파헤쳤다고 생각했는데 강력한 시간차 공격이 남아 있었다.
예상치도 못하게 업보를 너무 세게 맞아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뉴마로 복귀했다.
‘하아…… 내가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과거는 어쩔 수 없고 앞으로 더 잘하자.’
그나마 지금은 내가 이 세계에 와서 멤버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사소한 바람도 내가 바로 들어줄 수 있으니까.
지금 이 상태로 모노크롬 멤버들을 보면 너무 슬플 것 같았는데, 뉴마로 복귀하자마자 한이를 마주치고 말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안녕하세요, 두목님. 저희가 잠시 앙케트 중인데요. 시간 잠시 괜찮으신가요.”
한이는 나를 보자마자 과제를 위해 설문 조사를 부탁하는 대학생처럼 해맑게 말하며 다가왔다.
이렇게 사근사근 웃으며 다가오는데 죽을상으로 마주하는 것도 몹쓸 일이었기에 나는 이마를 짚던 손을 내리고 표정을 갈무리했다.
“……웬 앙케트?”
“저희 이번 앨범에 솔로곡을 하나씩 넣기로 했잖아요.”
“그랬지.”
이번에 준비 중인 앨범은 스페셜 앨범.
뭐가 가장 스페셜하냐면 수록곡으로 멤버별 솔로곡이 들어간다는 점이 그러했다.
“얘기하다가 ‘준해한테 섹시 컨셉을 시켜도 되는가’라는 안건이 나와서요. 많은 분의 의견을 받아보고 있어요.”
분명 방금까지 죄책감에 깊이 빠져 있었는데, 이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머릿속의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물음표 하나가 떠올랐다.
“준해한테, 섹시 컨셉……?”
전혀 생각해본 적 없던 단어의 조합.
귀로 내용이 들어오긴 했는데 머릿속에서 잘 처리가 되지 않았다.
한이가 설문지처럼 내민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내려 보니 화면 속 메모장에는 이미 투표를 한차례 진행했는지 찬성부터 반대까지 다양한 의견이 숫자가 붙어 나열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