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79화 (279/430)

# 279화

뉴레인이 번안해서 내려고 했던 일본 앨범의 타이틀곡도 아이리스의 기본 설정을 차용하여 무지개의 요정이라는 컨셉을 내세웠던 듯하지만…….

‘요정이 아니야! 신이라고, 신. 그걸 착각하면 안 되지.’

무지개의 요정이라고 하면 무지개가 있어야 나타나는 부수적인 존재처럼 들리잖아.

하지만 내가 원했던 이미지는 무지개 자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이번 컨셉은 ‘아이리스’야.”

내가 모노크롬의 그룹 색을 정착시키기 위해 데뷔곡인 모노필름을 다시 꺼냈던 것처럼, 이번에도 아이리스 고유의 이미지를 내세울 생각이었다.

지금 뉴레인은 요정이나 인형 같은 컨셉을 미는 것 같은데, 귀여운 것도 물론 좋지만 아이리스의 기조는 무지개의 여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 아이리스의 꽃말은 ‘좋은 소식’.

팬들이 오매불망 아이리스의 소식을 기다리는 지금이야말로 이 컨셉을 꺼내야 할 때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이건 내가 정해온 것. 멤버들에게 무작정 따르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혹시 다른 의견 있는 사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이리스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모노크롬 멤버들의 표정은 이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겠는데, 아이리스 멤버들의 표정을 읽는 능력은 아직 습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리스 멤버들이 딱히 별말이 없는 것이 내 기획에 동의하는 것인지, 말을 쉽게 못 꺼내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모노크롬과 처음 대면한 날의 모습이 겹쳐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아냐. 일단 지금은 리더인 레드가 나를 지지해주고 있으니까!’

혹시라도 정말 별로면 레드가 뭐라도 말했겠지.

그래도 역시 임원에게 ‘다른 의견이 있다.’라고 바로 말을 꺼내기는 어려울 거란 생각에 나는 질문을 바꿨다.

“아니면 바라는 거 있는 사람? 뭐든 일단 말해 봐. 다는 못 들어주더라도 최대한 들어줄게.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나는 다시 한번 멤버들의 얼굴을 한 번씩 훑었다.

날 믿어도 되는지 의심 중이라면 이것도 말하기 쉽지는 않겠지.

그래도 누구라도 스타트를 끊어주면……!

“저…….”

내 바람에 부응하듯이 들려온 목소리는, 퍼플이었다.

“저 이 머리로 컴백 하고 싶어요.”

퍼플은 세팅을 하지 않아서 컬이 좀 풀려 있긴 했지만 나와 샵에 가서 정돈한 단발을 지금도 유지 중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컨셉에 따라 지금부터 머리를 계속 길러야 할지도 모르니까 지금 미리 물어보는 듯했다.

“그래도 될까요……?”

“당연하지.”

내가 허락하자 퍼플의 입가에 작게 웃음이 어렸다. 다행히 지금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이전에 번아웃이 온 모습으로 만나서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 퍼플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옆에 앉은 네이비와 작게 소곤거리며 웃었다.

막내 두 사람이 편안한 얼굴로 대화하자 긴장이 흐르던 이 회의실의 분위기도 덩달아 온화해졌다.

‘역시 막내의 힘.’

막내의 성격이 귀여운 스타일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막내는 존재 자체로 그 역할을 다하곤 한다.

옐로가 내 시선을 피하기에 생각보다 갈 길이 멀 줄 알았는데, 퍼플이 내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서 다행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주면 돼. 지금 당장 얘기하지는 않아도 되고, 뭔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말해 줘. 매니저나 직원들을 통해서 전달해도 좋으니까.”

이제 기획을 설명해줬을 뿐이니까 멤버들에게도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의견이 생기면 그때그때 들어보고 반영 가능하면 반영하고, 안 되면 같이 고민해 보면 되겠지.

“그리고 그린이.”

그린은 느닷없이 내가 지목하자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기획을 짤 때만 해도 없었던 내용이지만, 멤버들에게 제안할 것이 있었다.

“기본 멜로디가 완성될 때마다 전달해 주면 작사로 참여할 수 있을까?”

“제가 작사하는 걸 이사님이 어떻게 아세요……?”

“……그런 게 있어.”

지금까지 아이리스의 곡에 멤버가 작곡이나 작사로 참여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린이 작사를 한다는 것을 내가 아는 이유가 있었다.

‘그야…… 마이 엔터로 확인했으니까.’

이번 싱글 제작에 내가 참여하기로 결정된 후, 아이리스 멤버들의 능력치를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는 보컬 레벨이 높고, 누구는 댄스 레벨이 높다는 등의 정보는 플레이 당시의 기억과 크게 차이가 없었으나 다른 점이 있었다.

‘이 세계에 와서 새로 열린 능력치들이 있지.’

모노크롬에게 시킨 이후에 해금된 작곡, 작사, 연기 레벨. 그 능력치가 아이리스의 멤버 관리창에서도 새롭게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멤버 중 작사 레벨이 가장 높은 것이 그린이었다.

‘시스템이 어떤 기준으로 성공도를 판단하는지 모르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해.’

마이 엔터 유저 커뮤니티에서도 성공도는 그냥 ‘운’으로 결정되는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도 그룹 자체의 인기가 많아지면 실패가 뜰 확률은 낮아진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노래가 객관적으로 안 좋더라도 많은 팬이 들어준다면 대차게 망했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그런 듯했다.

이런 부족한 정보 속에서 음반을 대성공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고민해 봤는데, 음반이 좋아야 한다는 당연한 대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기준이 없으면 일단 팬들이 만족할 만한, 더 나아가서 멤버들이 만족할 만한 음반을 내야겠지.’

멤버들과 팬들이 만족하지 않는데 대중이 만족할 리는 없으니까. 이들부터 만족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직접 참여해서 애정이 생긴 음반이 잘 나오면 멤버들도 더 보람찰 테고. 멤버들이 기뻐하면 팬들도 좋아할 테고.

“곡이 나와봐야 판단이 설 테니까 생각해 보고 얘기해 줘. 그린이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뭔가 넣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말해줘도 괜찮고. 그리고 레드랑 블루는…… 작곡을 하는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내 말을 듣자마자 송 피디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우형처럼 송 피디에게 작곡을 배웠던 모양이다.

둘의 시선을 받은 송 피디는 자기가 말하지 않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잘 아는 걸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걸 변명할 시간은 없어!’

막무가내지만 지금은 에둘러서 의향을 떠보기보다는 직접 묻는 방식이 필요했다.

“싱글이라도 한두 곡 정도는 더 들어갈 수 있으니까 혹시 짧게라도 만들어놓은 게 있으면 완성해서 수록곡으로 넣어 보면 어떨까 하는데…… 수록곡이니까 큰 부담 느끼지 말고.”

싱글 음반은 이름만 보면 한 곡만 수록하는 음반 같지만, 두세 곡이 들어가기도 한다.

우형이 하고 싶은 말을 노래에 담았던 것처럼, 아이리스 멤버들도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지 않을까.

다행히도 내 생각이 맞았는지 두 사람은 비장한 얼굴로 “해 볼게요!”라고 대답했다.

***

아이리스의 매니저, 공다혜는 최근 걱정이 많았다.

동생처럼 돌보던 아이리스 멤버들은 이어지는 해외 활동에 피로를 호소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겹쳐 더욱 몸과 마음에 부담이 가는 듯했다.

그게 폭발한 것이, 퍼플이 머리카락을 마음대로 자른 사건이었다.

회사와 이야기되지 않은 일이었고 이것을 계기로 회사와 아이리스 멤버 간의 대치 구도가 생겨났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레드는 갑자기 뉴마의 이사를 뉴레인에 데리고 나타났다.

‘잘 따르는 것 같더니 그게 이렇게…….’

기획실이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해서 눈치가 보였지만, 레드 입장에선 이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기획실과 잘 이야기되었는지 주인이 이번 싱글 제작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다혜의 걱정은 혼란으로 변했다.

“아이리스 공식 SNS나 뷰이라이브 관리는 누가 하나요?”

“계정은 저희 매니지먼트팀이 관리하고 있어요.”

주인의 질문에 다혜가 바로 대답했다.

‘SNS에 뭔가 준비 중이라는 티부터 내야 한다’고 주인이 강력히 주장해서, 멤버들 전원이 연습실로 이동해 사진을 찍은 참이었다.

다혜가 SNS에 올릴 사진을 고르고 있으니 주인도 그 옆에 서서 구경하며 다시 질문했다.

“원래 1년에 앨범을 하나 이상은 내기로 했다고 그랬죠?”

“네.”

이는 아티스트가 원하는데 활동을 못 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티스트가 비협조적일 경우 회사의 최소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서 생긴 조항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해외 유닛 활동만 있었고 단체 앨범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면밀히 말하자면 싱글과 앨범은 다르다. 하지만 싱글과 앨범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음반을 통칭해서 편의상 ‘앨범’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았기에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있었다.

주인은 이번 싱글로 올해의 앨범 할당치를 채웠다면서 뉴레인이 또 손을 놓을까 봐 걱정했다.

“그럼 SNS에 글 올리면서, 이번 곡을 은근슬쩍 다음 앨범의 선공개 곡인 것처럼 써놓으면 어떨까요? 다음 앨범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게요.”

“네……?”

주인은 이번 싱글 제작에만 참여할 예정이고 다음 앨범까지 책임지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아는 다혜가 조심스럽게 이견을 내놓았다.

“그러다가 앨범이 안 나오면 팬들 반발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뭐…… 말 바꾼 회사가 감당할 일이 아닐까요? 멤버들 탓은 아니잖아요.”

무책임한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앨범을 제작할 책무를 적극적으로 지지 않는 것은 회사였으니까.

‘국내 활동을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으면 애들도 걱정이 덜할 텐데.’

대놓고 쓰지는 말고 뉘앙스만 풍기라고 부추기는 말에, 다혜는 귀가 팔락이고 말았다.

[아이리스는 무지개들을 조금 더 빨리 만나기 위해 준비 중!]

마치 다른 계획이 있는데 일부만 앞당긴 것처럼 ‘조금 더 빨리’라는 말을 소심하게 추가했다.

이 정도로는 ‘다음 앨범 계획이 있다’라는 가짜 정보를 전하기엔 부족했지만, 주인은 조금씩 뉘앙스를 풍기다 보면 팬 중 누군가는 알아본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다혜는 그 모습을 보고 주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표님 따님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회사에 손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을 시키는 걸까.

혼란에 빠진 다혜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아직 뉴마 아티스트팀에 남아 있는, 지금도 주인의 아래서 일하는 중인 윤희였다.

이전에 같은 뉴마 매니지먼트팀 소속이었던 데다가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두 사람은 지금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혜는 조심스레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물었고, 윤희에게서는 이런 답장이 왔다.

[이사님이 하시는 말씀은 그냥 그대로 믿으면 돼요.]

‘……윤희 씨가 이런 말을 할 인물이 아닌데.’

다혜가 기억하는 한, 회사에 가장 불만이 많았던 직원이 바로 윤희였다.

그런데 1년이 조금 지났다고 이렇게 태도를 확 바꿀 수가 있나.

다혜의 머릿속은 더더욱 혼란으로 빠져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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