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71화 (271/430)

# 271화

<뉴 스타 이펙트>의 특별 합숙 이후, 총 스무 명의 참가자는 개인 무대를 펼친다.

그리고 이때까지의 평가 점수를 종합하여 첫 탈락자가 정해질 예정이었다.

자신이 탈락자가 될 것이라 예상하던 뉴레인 연습생, 오지원은 아예 마음을 비우니 오히려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좀 어려운 걸 도전해 보려고요.”

지원은 방송을 함께 하는 댄스 트레이너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는 특별 합숙 날에 해랑에게서 들은 조언의 영향이 컸다.

지원은 연찬이 인터뷰에서 자신을 두고 한 말을 방송을 통해 들었다.

그래서 연찬이 불편했고 그의 형인 해랑에게도 거리감을 느꼈는데, 해랑은 의외로 모두에게 다정한 타입이었다.

그래서 지원은 남몰래 뒤에서 해랑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다들 제가 탈락할 거라고 생각할걸요……. 객관적으로 봐도 제가 유독 떨어지거든요. 그런 제가 최후의 발악을 한다고 결과가 바뀌진 않을 텐데, 웃겨 보이지는 않을까요?]

지원의 자신감은 이미 바닥을 친 상태였다.

자신의 노력이 웃음을 사리라고 생각하는 지원을 보며 해랑은 진심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그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해도 그에게는 잘 와닿지 않을 터였다.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근거 없는 희망을 줄 수도 없었다.

그래도 해랑은 최대한 선배로서 해 주고 싶은 말을 했다.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포자기해 버리면 그거야말로 후회스러운 일이 되지 않을까?]

다만 이때의 해랑은 모르고 있었다. 매력 레벨 11은 이따금 아주 강력하게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이 말은 해랑이 생각했던 것보다 지원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그래. 어차피 마지막이면 몸 사릴 필요 없잖아?’

지원의 주특기는 댄스. 보컬이나 래퍼와 달리 무대에서 직접 보여줘야 하는 것이 댄스인데, 그마저도 위치가 뒤로 밀려버리면 제대로 선보일 기회를 빼앗긴다.

항상 컨디션이 최상일 수는 없고, 매번 실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려서 보여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다른 연습생들에게 밀려 의견을 제대로 개진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지금껏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뒤늦게 억울함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미션은 개인 무대. 지원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도전적인 퍼포먼스를 펼치기로 했다.

실패하더라도 자신은 어차피 탈락할 테고, 성공하면 강한 인상이라도 남길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본 무대 후.

“으음……. 오지원 군에 대한 평가는 조금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무대 위에서 소심하다고 혹평했던 뉴레인의 프로듀서도 별말을 못 할 정도로 지원은 완벽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러나 지원이 지금까지 받아 온 평가 점수는 개인 무대에서 한 번 만회한다고 커버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뉴레인 평가 최하위는 오지원 연습생.”

뉴레인의 프로듀서는 지원을 호명했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실제로 맞닥뜨리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지원은 자신을 유독 신경 쓰던 보현과 눈이 마주쳤다. 괜찮다고 웃어 보일 정도로 여유롭지는 못했다.

반대로 조금 떨어져 서 있는 연찬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앞만 보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지원이 현실을 인정하며 탈락을 받아들이려는데.

“이 될 예정이었습니다만…….”

뉴레인의 프로듀서는 곤란하게 되었다는 표정으로 탈락자 발표를 길게 끌었다.

“뭐야?”

“뭐가 바뀌었나?”

지원이 미션마다 좋지 못한 점수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라 여지없이 그가 탈락하리라 예상했던 참가자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설마 내가 탈락자인가?’ 하는 마음에 덜컥 겁을 먹은 참가자들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뉴레인의 프로듀서는 모두의 예상과 다른 멘트를 꺼냈다.

“뉴레인 참가자 중에서 변동이 생겼습니다.”

참가자들은 몰랐겠지만 첫 탈락자, 정확히 말하자면 기권자가 생긴 것은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

“이사님이 보시기엔 어떤 조합으로 데뷔하면 균형이 좋을까요? 5인조를 생각 중이었는데, 6인조까지도 괜찮을 것 같거든요.”

뉴레인의 회의실. 진명희 기획팀장이 내게 연습생 전원의 프로필을 내밀며 이런 질문을 했다.

이미 방송 전부터 데뷔조를 정해두고는 갑자기 나한테 의견을 묻다니.

‘일이 잘 돌아가고 있어.’

데뷔조가 아닌 연습생이 두각을 보이니까 탈락시키기 아쉽긴 한 모양이었다.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 대놓고 웃을 수는 없고, 마음속으로 뿌듯해했다.

“새 그룹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잡아두신 것 같던데. 그건 상관없이요?”

“네. 저번에 들어보니까 에이펙트 엔터는 데뷔조를 정하기 전에 유닛을 엄청나게 짜 보고 팀으로서의 모습을 본다는데, 저희는 그런 게 부족했던 것 같아서요.”

진명희 팀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 그냥 연습생 목록에서 얘를 넣을까, 말까 하면서 데뷔조를 정하는 것이 뉴마, 아니, 마이 엔터의 방식이었다.

진명희 팀장은 그렇게 ‘유니크 스타일’을 강조했다가 마음을 바꾼 것이 민망했는지 말을 덧붙였다.

“원하는 그룹 색이 있긴 했는데, 일단 실력 있고 균형이 맞으면 뭐든 가능하지 않겠어요? 상황에 따라 스타일을 바꿔야 할 수도 있고요.”

“그렇죠. 더 잘 맞는 컨셉을 나중에 찾을 수도 있고.”

모노크롬이 여러 컨셉을 전전하고, 악동으로 정착했다가 결국 다시 버렸던 것처럼 말이지.

아무튼 뉴레인이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으려 하는 것은 좋은 신호였다. 내 의견이 필요하다면야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

‘뉴레인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이리스를 담당하던 사람들이니까.’

모노크롬 데뷔 시절부터 뉴마에 있던 사람은 많지 않을 듯했다.

그러니 현재 보이그룹 담당자인 내가 영향력을 키울 때였다.

‘흐음. 어디 보자.’

최대한 모두를 균등하게 어필할 만한 조합이 뭐가 있을까.

나는 마치 마이 엔터에서 데뷔조를 고르듯이 프로필 서류를 이리저리 옮기며 내정된 데뷔조와 탈락 예정자들을 적절히 섞어 조합했다.

그리고 여기서는 특히 붙여놓을 두 사람이 있었다.

“연찬이랑 보현이 조합. 괜찮지 않나요? 보컬 포지션이 겹치긴 하는데 다른 그룹들 보니까 투 메보도 괜찮더라고요.”

“맞아요. 사실 메인 보컬은 한 명으로 두고 싶었는데, 방송에는 두 사람 조합이 잘 나오더란 말이죠. 다른 연습생들이랑 잘 지내기도 하고요. 인원수를 늘려서 메인 보컬을 두 명으로 해야 하나…….”

내가 은근슬쩍 운을 떼자 진명희 팀장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본심을 말했다.

아까 6인조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한 건 데뷔조에 보현을 추가시킬지 고민되어서 한 말인 듯했다.

‘역시 우리의 멘토스. 판을 잘 흔들어놨어.’

다만 보현 한 명이 기존 데뷔조에 추가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연습생들도 특이한 캐릭터를 잡아보도록 잘 구슬려 봐야 하나.

지금 여기서 다른 연습생까지 들이밀었다간 또 나를 의심할 게 뻔했기에 오늘은 이 정도로 깔끔히 물러서기로 했다.

데뷔조 구성을 바꿀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만 해도 큰 성과였다.

그리고 다시 뉴마로 돌아오던 길. 뉴레인의 로비 앞에서 연찬을 마주쳤다.

‘……얘는 이제 인사를 안 하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사에 대표 딸인데.

연찬은 비뚜름하게 서서는 나를 그냥 보기만 했다.

해랑한테도 선을 넘었다더니 이제 막 나가기로 한 건가.

나도 딱히 그와 할 대화는 없었기에 그냥 지나쳤는데, 그와 동시에 연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저 떨어트리려고 하지 그러셨어요. 그럼 오기 때문에 더 붙어 있으려고 했을 텐데.”

뒤돌아보니 연찬은 한 회사의 임원을 대하는 공손한 시선이 아니라 불량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널 떨어트려?”

“요즘 주변 사람들이 자꾸 절 방해하려고 하길래 왜인가 생각해 봤더니. 이사님이 시켰다고 생각하면 아귀가 맞더라고요. 아닌가요?”

해랑의 태도가 바뀐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그전까지 해랑은 십 년이 넘게 동생에게 져 주고 살았으니까.

그런데 작년부터 갑자기 바뀐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해랑의 주변 환경에서 원인을 찾다 보니, 마침 내가 있었던 거지.

게다가 보현이 내게 따로 인사하러 다가온 걸 연찬도 봤을 터였다.

‘나름 머리는 굴린 것 같은데 핀트가 묘하게 어긋났네.’

모든 원인은 내가 아니라 연찬에게 있었다.

황당했지만 이런 의심은 이미 얼마 전에 뉴레인한테 받았기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반박해 봤자 연찬에겐 변명으로 들릴 것 같아서 다른 부분을 지적했다.

“너 데뷔하게 되면 어쩌려고 이래? 연예계에서 기본적인 예의도 못 차리면…….”

“안 할 거예요.”

“뭐?”

“하기 싫어졌어요. 회사도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고.”

회사가 데뷔조 구성 변경을 고민하는 걸 알고 있는 건가.

그런데 ‘하기 싫다’는 무슨 뜻인지 잘 해석이 되지 않아서 물으려 했으나 연찬은 또 인사도 없이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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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백해랑 동생 서바 자진 하차했대

└엥 그럼 뉴레인에선 탈락자 없음?

└ㅇㅇ 탈락을 하차로 대신한듯

└방송 잘하던데 왜 나가지.. 화제성으로 보면 데뷔권 아니었나? 아이돌 안 한대?

└몰라 뭐 다른 거 공부하고 싶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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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찬이 회사에 하차 의사를 밝혔고, 이는 첫 탈락자 선정 때 밝혀졌다.

‘하기 싫다는 게…… 이런 의미였어?’

하기 싫으면 하지 말지. 연찬이 분명 방송에서 그런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을 본인이 지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참가자 변동을 알린 진명희 팀장의 목소리에 당혹스러움이 묻어있던 것을 보면, 뉴레인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연찬의 하차 사유는 유학이었다. 음악을 배우러 유학하고 싶어졌다고.

‘……어쩌면 연찬이도 뉴레인이 품지 못할 그릇이었던 게 아닐까.’

회사보다 자기 기분을 우선할 정도로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울 줄은 몰랐던 거지.

그런데 방송으로만 본 시청자들은 이 상황을 다르게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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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닛 미션 때 분위기 싸하길래 박연찬이랑 오지원은 같이 데뷔 못 하겠다 싶었는데 대신 탈락한 거 실화냐;;;;

아니 이게 뭐지? 사이 ㅈㄴ 안 좋은 거 아니었나?

└대신 탈락은 아니지 않아? 걍 하차인데

└근데 그것땜에 살아난게 오지원이니까 그렇지ㅇㅇ

└박연찬.. 그는 그냥 동료를 강하게 키우는 사람이었을뿐..

└콩가루 집안인 줄 알았는데 청춘영화일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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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찬이 마치 탈락자를 살리기 위해 하차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었다.

직설적으로 지원을 저격한 적이 있는 연찬이 지원 대신 프로그램을 나간다. 그 사실은 방송에서 드라마틱하게 미화되었다.

‘연찬이가 바뀌지 않는 이상 해랑이에겐 이게 가장 좋은 결말일지도 모르겠네.’

가족이 대중적으로 비난받지 않았고, 동생이 조작에 가담한 탓에 질 뻔했던 책임도 줄어들었고, 더는 연찬에게 휘둘리지 않기로 마음을 먹기까지 했다.

갑자기 사람들이 연찬을 ‘어그로를 끄는 척하며 방송을 위해 희생한 인물’이라고 평가하는 걸 보면 기분이 묘하기는 하지만…….

우리도 연찬이 대중들 앞에서 대차게 망하길 바란 건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되면 연찬이를 메인으로 세우려 했던 데뷔조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 엔터 뉴레인 그룹 관리 창에서 이름 없는 보이그룹이 사라졌다.

***

지원은 그간 얻은 평가 점수가 낮았기에 첫 탈락자가 될 뻔했지만, 이번 일로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았으니 잘하면 만회할 수 있을 터였다.

이제야 모두가 제대로 된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이제 이쪽은 마음을 한결 놓아도 될 듯했다.

‘좋아.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어.’

너무 잘 풀린다고 자만하면 플래그를 세울 수 있으니까 적당히만 기뻐하자.

그래도 신경 쓸 일이 덜해지니 확실히 다른 업무를 보면서도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사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내 스마트폰……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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