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화
촬영부터 많은 고난이 있었던 <송투유>. 한이의 팀 마지막 방영분이 전파를 타는 날이 드디어 다가왔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
드라마 촬영을 잘 마친 것부터, 가수로서 인상을 남기고 싶다면서 <송투유> 출연을 결정하고, 몬클 하우스에 게스트로 맥스를 데리고 온 것까지.
관련 없어 보이는 일련의 활동들이 전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저번 주 <송투유> 예고를 본 사람들은 한이가 대선배 천상식을 어떻게 구워삶는지 궁금해하며 본방송을 기다렸다.
흥미진진한 전개, 기다리는 반전. 높은 시청률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너무 수월해서 오히려 불안한…… 아니, 이런 플래그 같은 말은 하지 말자.’
본방송이 시작되고, 한이가 아이돌 후배라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고생 했던 컬러즈도 웃으며 방송을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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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선배님 참ㅎ..
우리 애 성격이 좋아서 방송은 잘 나왔다ㅎㅎ..
└진짜 한결같으시네 ^^ㅎㅎ..
└ㅋㅋㅋ.. 편집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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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온점을 많이 붙이긴 했지만.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현법이었다.
천상식이 한이를 괴롭힐 대로 다 괴롭힌 후에 홀랑 태도를 바꾸는 것을 보면서도 컬러즈는 계속 [ㅎㅎ^^..] 모드를 유지했다.
한이가 선배를 사인 셔틀로 써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이 일방적인 감정의 골은 메워지지 않을 듯했다.
그리고 의외인 것은, 한이는 잘 몰라도 천상식은 잘 아는 중년 이상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이 방송을 보며 온라인에 실시간으로 반응을 남긴 것은 아니었지만, 컬러즈나 다른 커뮤니티 반응을 보며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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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천상식 나오는 방송 할머니가 박수 치면서 재밌어하신다ㅋㅋㅋㅋㅋㅋㅋ
전성기에 라이벌이던 다른 트로트가수하고 싸우던 모습이랑 똑같다곸ㅋㅋㅋㅋㅋㅋ 옛날 생각 난대
└우리 부모님도 옛날 얘기 하심ㅋㅋㅋㅋ
└어쩐지 엄마가 다른 데로 채널 돌리란 소리를 안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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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성격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더니.’
드센 천상식이 당하는 모습까지도 좋아하는 범위에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예능으로 즐기던 사람들의 반응은 본 무대가 시작하자 다시 한번 반전되었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그대를 찾아가 볼까……)]
천상식의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연예인 패널들도 차분하게 무대에 집중했다.
곡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대 뒤의 전광판에는 길게 이어진 가로수길이 펼쳐졌다.
‘역시 음악대상…….’
그가 발라드로 음악대상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음악대상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의 실력이었다.
목소리에서 연륜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노래 가사처럼 상대를 그리는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오는 듯했다.
그에 비하면 한이는 이제 20대 중반에 7년 차 가수.
아이돌로서는 선배 축에 속하지만 가수로서는 그리 긴 경력이 아니다.
‘방송은 한이가 주도해서 잘 풀어나갔는데, 가장 중요한 보컬 실력이 묻히지는 않겠지……?’
한이의 보컬 실력은 걱정 없지만 몇십 년을 트로트 외길만 걸어온 천상식의 발라드 무대는 임팩트가 너무 강렬했다.
그런 걱정을 하는 사이에 한이의 파트가 다가왔다.
한이가 서 있는 곳에 더욱 밝은 조명이 켜지고, 한이가 마이크를 천천히 들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뒤이어 흘러나온 것은 생각보다 낮은 목소리였다.
[(이 길의 끝에서 그대와 마주 볼 수 있을까요-.)]
한이의 노래가 시작되자 눈을 크게 뜨거나 눈썹을 들썩이는 패널들의 표정이 화면에 비쳤다.
물론 방송 리액션은 과장된 법이지만, 방송을 보는 내 표정도 비슷했기에 어느 정도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 저 나이에 이 노래를 이렇게 소화한다고?]
패널석에 앉은 한 중년 연예인이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준비 과정을 촬영한 영상 속, 한이가 노래 부르는 장면은 많았지만 무대에서 이런 창법을 선보이는 것은 예상 밖인 듯했다.
‘저런 허스키한 목소리는 나도 의외였어.’
목을 긁는 것이 아니라 저음에 숨소리를 섞은 듯한 차분한 목소리.
아이돌 보컬이 가장 확실하게 가창력을 뽐내는 방법은 고음을 내지르는 것이다. 한이도 모노크롬의 노래에서 고음 파트를 많이 맡는다.
그런데 지금 무대에선 마치 ‘저음에도 클래스가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칼을 갈고 나온 것 같았다.
천상식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한 포부가 느껴지는 듯도 했다.
한이의 파트가 시작되기 전, 혹시나 천상식에게 묻히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이야!’
두 사람의 듀엣 무대가 끝난 후, 패널과 방청객들의 반응도 열렬했다.
[제가 만약 이 노래를 길 가다가 들었다? 분명 ‘어? 이거 누구 노래예요?’ 하면서 물어봤을 거예요.]
[두 분의 장르가 굉장히 다른데 이렇게 조화롭게 하모니를 이룰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이어지는 호평 속에 MC가 천상식을 바라보며 멘트를 이었다.
[트로트가 아니라 발라드로! 무대에 서셨는데, 소감 한마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가 트로트 가수지만 음악이란 건 전부 통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도 항상 다른 장르에 관심이 있었고-.]
천사의 편집은 ‘장르를 떠나서 ‘음악’을 하고 싶다……’라는 아련한 자막을 붙여서 그를 마치 대중음악계의 거장처럼 연출해냈다.
아이돌 가수 한이는 한껏 무시해 놓고 이게 무슨 소리야…….
[이번 기회를 통해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무대를…….]
[어? 지금 저랑 함께해서 만족스러웠다고 칭찬해 주신 건가요? 준비하는 동안 노래 잘한다는 한마디를 안 해주셔서 언제 해주시려나 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옆에서 한이가 깐족깐족하자 천상식은 부글대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송투유>의 패널진도 다양한 경력의 연예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 공간에서 천상식의 멘트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은 한이가 유일했다.
방금 절절한 눈빛으로 노래를 부르던 한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VCR로 확인했던 하극상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패널과 방청객들도 와하하 웃었다.
‘한이는 뒤끝 있는 게 맞아.’
아마도 촬영 당시, 한이는 천상식의 소감을 듣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더 장난스럽게 웃음을 사는 상황을 연출해낸 듯했다.
그리고 점수 산정 직전, 한 패널은 이렇게 말했다.
[이 팀, 무조건 5위 안으로 들어갑니다. 제가 장담해요.]
그는 ‘5위 안’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4위권 내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재 <송투유> 자체 순위의 1위는 병세로 노래를 포기해야만 했던 한 원로가수와 그를 응원하는 후배 가수의 팀이었다.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았던 휴먼드라마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그 팀이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기에 1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가장 높은 순위는 2위라고 할 수 있지.’
패널과 방청객의 점수를 합산하여 총 1000점 만점.
긴장되는 분위기 속 점수가 집계되고, MC는 프롬프터를 확인하며 진행을 이어나갔다.
[천상식 씨와 유한이 씨의 듀엣 무대 점수는…… 975점! 그렇다면-.]
이미 순위를 예감한 방청객들의 환호 속, MC가 큐 카드를 높게 들어 올리며 뒤돌고 모두가 전광판을 주목했다.
[2위! 2위로 올라갑니다!]
스포츠 경기를 보듯이 양손을 맞잡고 보다가 결과를 듣고 주먹을 꽉 쥐었다.
한이가 ‘보시면 알아요’라고 하기에 기대는 하고 있었는데 상상 이상의 결과!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스마트폰에 알림이 울렸다.
‘그래! 보컬 레벨!’
예상했던 대로 레벨 UP 알림이었기에 신나는 마음으로 곧장 마이 엔터를 확인했다.
그리고 한이의 능력치 중 보컬 레벨이…….
“아니, 대체 왜!”
보컬 레벨이 아니라, 예능 레벨이 8로 올라 있었다.
***
‘다재다능하면 이게 문제야…….’
해랑의 얼굴에 랩 실력이 묻히던 것처럼, 한이가 예능을 너무 잘한 덕분에 보컬 실력이 묻혀 버린 게 아닐까.
물론 레벨이 오르면 좋은 일이긴 한데…… 조금 김이 빠진다고 해야 하나.
보컬 경험치도 많이 오르긴 했으나, 하필이면 레벨 업 직전에 멈춰 버렸다.
마치 한 끗 차이로 2등이 되어버린 당첨 복권 종이를 본 기분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걸어 버렸어.’
주어진 행복에 만족하자. 나는 심호흡을 내쉬며 마음을 다스렸다.
<송투유>에서 한이의 팀은 마무리까지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방송 후, 한이가 배우와 가수를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음악가 집안이라는 것까지 소문난 탓인지 이런 글이 보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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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ㅎㅇ는 아이돌 왜 하지?
예전엔 ㅁㄴㅋㄹ 별로 잘 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때 다른 길로 빠져도 됐을텐데
└그럼 너는 왜 사냐
└아이돌치고 오버스펙이라 좀 부담스럽긴 함
└스펙 좋은데 왜 니가 부담스러움ㅋ? 직원 뽑으세요?
└아이돌 좋아서 하겠지 싶은데 망했어도 별 걱정은 없었겠음ㅋㅋ
└ㄴㄴ배우로 빨리 노선 틀었으면 더 잘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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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멤버들이 남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긴 해.’
모노크롬이 워낙 좋지 않은 환경에 있었으니까.
다른 길을 포기하고 왔던 한이는 그동안 더 흔들리지 않았을까.
원하는 건 하고 마는 그의 성미가 아니었다면 원래의 길로 돌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한이는 아이돌 하고 있잖아? 뭐 어쩔 거야.’
이번엔 여러 가지 활동이 겹쳐서 이 화제에 반응하는 사람이 많아졌을 뿐이지, 사실 이런 글은 예전부터 종종 봐왔다.
누군 아이돌치고 명문대를 다녀서, 누구는 아이돌 하기엔 실력이 좋아서, 얼굴이 잘나서, 다른 일로 더 돈을 잘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등등.
마치 수도꼭지로 냉수와 온수를 조절해 적절한 온도를 찾듯이 ‘쟤는 못하는데 왜 아이돌 하냐’와 ‘쟤는 잘하는데 왜 아이돌 하냐’의 중간 영역이 매우 좁았다.
그런 기준으로 생각하면 아이돌은 대체 누가 하는 거냔 말이야.
“이렇게 각자 잘하는 애들이 한 팀으로 모여 있으니까 더 좋은 거 아니에요?!”
‘좋은 거+좋은 거=더 좋은 거’라는 공식이 있잖아.
이런 반응에 관해 함께 대화를 나누던 윤희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갑자기 짝짝 박수를 쳤다.
“박수는 왜…….”
“갑자기…… 이사님 처음 오셨을 때가 생각나네요.”
윤희는 먼 과거의 일이라도 떠올리는 듯이 시선을 허공에 뒀다.
왠지 어릴 적 친척 어른이 날 보며 ‘언제 이렇게 컸니?’라며 세월을 되짚어보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튼, 그냥 넘어가도 될 이런 말들이 지금 더 신경 쓰이는 이유는, 이게 한이가 최근 가장 싫어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랑 선배, 거기에 권 실장한테까지 이런 소리를 연타로 들어서 더 짜증 났을 텐데.’
거기에 온라인에서도 이런 말들이 오가는 것을 알면 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한이도 이런 얘기 도는 거 알고 있어요?”
“한이가 발이 넓잖아요.”
윤희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인싸는 그런 단점이 있나 보네.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도 누군가 한 명쯤은 얘기를 먼저 들고 온다는 것.
그리고 역시 이런 반응이 신경 쓰였는지, 잠시 후 한이가 내게 뭔가 허락을 받으러 찾아왔다.
***
다음 날, 모노크롬은 평소처럼 뷰이라이브로 근황 토크 중이었다.
멤버들은 편하게 오가며 출연했다가 나갔다가 하는 것이 모노크롬 뷰이라이브의 룰. 지금 화면 안에는 우형과 재민이 있었다.
재민은 뷰이라이브를 시청하는 컬러즈들에게 손가락을 보여주며 말했다.
“기타 너무 쳤더니 손가락 아파서 잠시 쉬고 있어요.”
[아프지매ㅜㅜ]
[째미니 손가락 소중해ㅠㅠㅠㅠ]
컬러즈가 텍스트로 입바람을 불어주는 사이, 작업실 문이 슬쩍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작업실 안의 동태를 살피며 그대로 멈췄다.
보통 이런 경우는 멤버들에게 할 말이 있는 직원이기에 컬러즈도 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자에 앉은 채로 뒤돌아서 누군지 확인한 우형이 눈을 의심하며 그를 불렀다.
“어? 야. 이리 와 봐.”
우형이 ‘야.’라고 부르고 뷰이라이브 중인 화면 안쪽으로 부른다는 건 멤버일 가능성이 컸다.
다른 멤버가 왔나 보다 하고 반기던 컬러즈들은 곧바로 우형처럼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을 맞닥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