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화
마당에서 맥스의 보호자인 한이, 그리고 컬러즈의 강아지인 준해의 진행 아래 해랑이 맥스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
우형과 재민은 미튜브용 요리 영상을 찍기 위해 주방에 있었다.
‘역시 모노크롬의 메인 셰프.’
요리를 하든, 악기를 연주하든. 우형은 손으로 하는 것은 대개 잘 어울렸다.
그리고 말 잘 듣는 재민은 보조 셰프로 그의 옆에 붙어 있었다.
우형이 접시에 예쁘게 데코레이션하는 것을 옆에서 빤히 쳐다보던 재민은 뒤늦게 의문이 떠올랐는지 나지막이 물었다.
“강아지가 이만큼 먹을 수 있어?”
“…….”
자르고 삶은 재료들을 잘 섞어서 그릇에 케이크 모양으로 쌓아두고 보니 남은 재료가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섞어둔 재료만 해도 케이크를 두 개는 더 만들 수 있는 분량. 섞지 않은 재료도 그만큼 더 남았다.
“이상하게 양이 점점 불어나네?”
“이 정도면 사람이 먹어도 딱 5인분은 되겠다.”
재민은 말하다가 “5인분…….”이라고 되풀이하더니 뭔가 깨달은 듯이 입을 벌렸다.
“여우 형은 무의식적으로 우리를 먹일 생각으로 이걸 만들고 있었던 거야!”
여기서 ‘우리’란 모노크롬 멤버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긴 숙소에서 요리하면 항상 5인분을 했을 테니…….’
5인분을 가늠하는 버릇이 자연스레 몸에 밴 게 아닐까. 가끔 양 조절 센서가 고장 나지만.
하지만 이것은 사람 음식이 아니라 강아지 음식.
양 조절 실패를 인정한 우형과 재민이 동시에 카메라 뒤에 서 있던 나를 바라봤다.
“……응?”
나보고 먹으라는 소리는 아닐 테고.
멤버들이 날 찾을 땐 보통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을 때였다.
“내일까지 같이 있을 거니까 내일도 먹이고, 집에 갈 때 도시락 싸서 같이 들려 보내면 안 되나?”
“그래도 좀 많아서요. 이것저것 섞어놔서 오래 두면 금방 상할 것 같은데…….”
섞기 전인 재료는 멤버들이나 스태프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간은 안 되어 있어도 평범하게 사람이 먹는 재료들이니까.
하지만 단호박과 닭가슴살, 연어를 섞고 북어채를 레이어링한 후 강아지용 육포를 토핑한 케이크는 사람이 먹기엔 아무래도 힘들겠지.
‘뭐, 먹지 못할 건 없지만…… 굳이?’
육해공 재료가 한 상에 올라오면 진수성찬이지만, 육해공이 한 뭉텅이로 섞여 있으면 말 그대로 개밥이었다.
“먹을 사람이 아니라 먹을 강아지가 필요하겠는데.”
“어! 하니…….”
재민이 뭔가 떠오른 듯이 손뼉을 짝 쳤다.
하니? 하니가 분명 강아지 인형이긴 한데.
“인형한테 먹인다고?”
“아뇨, 하니 친구 있어요.”
“하니 친구?”
다른 인형을 말하는 건가? 한이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여줬더니 인형도 인싸가 되었나?
종잡을 수 없이 이어지는 대화에 물음표만 띄우고 있는데, 우형은 재민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챘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매일 여기 앞에 지나다니는 강아지 있거든요. 저기, 제일 가까운 집 강아지요.”
“예전에 여기 관리해주시던 이웃분?”
“네, 맞아요.”
얘기를 들어보니 멤버들이 몬클 하우스에 있을 때 집 앞을 기웃거리는 강아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떠돌이 강아지치고는 샴푸로 씻긴 것처럼 하얗다’라는 한이의 추측에 따라 어느 집 강아지인지 따라가 봤더니 이웃집 강아지였다고.
모노크롬이 입주하기 전, 비어 있던 이 집을 대신 관리해주던 그 이웃집 말이다.
이웃분이 이 집을 오갈 때마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녔고, 강아지는 이 길에 익숙해져서 지금도 혼자서 돌아다니는 듯했다.
‘정말 시골 생활 그 자체네.’
모르는 새에 강아지 이웃까지 생겼을 줄이야.
그리고 음식을 많이 하면 베푸는 것도 시골의 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럼 앞에 오면 나눠주거나, 이따가 직접 가져다주자.”
음식 낭비 걱정이 사라지자 두 사람은 다시 데코레이션에 집중했다.
요리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가보니, 어느새 그곳은 친목의 자리가 아니라 새로운 개인기 교육 현장으로 변모해 있었다.
뷰이라이브용 스마트폰은 삼각대로 고정해 스태프에게 맡겨두고, 세 사람은 맥스를 둘러싸고 뭔가를 시켰다.
“여기, 여기 턱을 올려!”
한이가 엄지와 검지로 브이 자를 만들어서 반대쪽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맥스는 한이의 얼굴만 쳐다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한이가 “잘 봐. 이렇게.” 하며 브이 자를 만든 손을 준해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대자 준해가 시범을 보이듯이 그 위에 턱을 얹었다.
“옳지. 잘한다.”
“왜…… 내가 훈련받는 기분이지?”
이상함을 느끼며 미간을 살짝 찌푸린 준해의 머리를 해랑이 쓰다듬었다.
스마트폰으로 채팅창을 확인해 보니, 컬러즈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강아지라며 준해를 칭찬하고 있었다.
‘명문대 나온 강아지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할 만하지.’
똑똑이 준해가 시범을 보인 후 다시 시키려던 순간, 맥스가 간식 냄새를 먼저 맡았는지 그릇을 들고 나오는 우형에게로 몸을 돌렸다.
모노크롬이 요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아는 컬러즈는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요리가 끝났다는 점에 놀랐다.
아마도 멤버들은 간을 보고 맛을 내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쓰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간을 할 필요가 없어서 빨리 끝난 거고.
“사람 먹을 간식은요?”
“부엌에 닭가슴살 있으니까 가서 주워 먹어.”
“아-, 센스가 없네.”
한이의 말을 무시하고 우형은 앞발로 자신을 채근하는 맥스의 힘에 휘청거리면서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맥스는 냄새를 맡고 감사 인사를 하듯이 우형의 얼굴을 한번 보고는 본격적인 시식에 나섰다.
그 모습을 보고 우형이 뿌듯한 표정으로 맥스의 등을 쓰다듬었다.
“맥스는 안 투덜거리고 잘 먹어서 좋다.”
“강아지가 투덜거리면서 먹기도 해?”
해랑의 논리적인 지적이 들어왔지만 우형은 굴하지 않고 맥스를 기특하게 바라봤다.
맥스는 편식하지 않고 야무지게 그릇을 비워나가고, 옆에 쪼그려 앉아 먹방을 직관하던 준해가 맥스에게 물었다.
“맛있어?”
마침 이웃 강아지에게 줄 간식을 용기에 담아 챙겨 나오던 재민이 그 말을 듣고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맛있는지는 모르겠고. 많이 남았는데 먹어볼래?”
“아니. 전 강아지 아니고 사람인데요.”
방금까지 강아지라면서 주접을 떨던 컬러즈는 준해의 발언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를 보며 ‘우리 강아지’라며 애정을 담아 불렀는데 손주가 갑자기 ‘전 강아지가 아닙니다만?’이라고 대꾸해 버린 상황.
결국 준해는 강아지가 아니라 공식 아기 늑대였던 것으로 판정되며 이날의 뷰이라이브는 종료되었다.
***
뷰이라이브를 종료하고 우형과 재민은 강아지 간식을 들고 이웃집으로 향했다.
강아지들도 특정 재료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들어간 재료를 아는 두 사람이 가기로 한 것이다.
강아지 줄 것만 들고 가기가 뭐해서, 음료 냉장고에 새로 채웠던 음료 몇 가지와 멤버들 먹으라고 사둔 과일 일부도 함께 챙겼다.
그리고 나는 몬클 하우스를 임대 계약한 책임자로서 동행했다.
‘집주인 할아버님은 뵀는데 이웃분은 직접 뵌 적은 없으니까 한 번쯤은 인사해두는 게 낫겠지?’
몬클 하우스를 세팅할 땐 내가 매번 내려올 수도 없었고 지식도 없었으니 전부 중개인이나 사람을 통해서 진행했다.
그리고 그때, 집에 관해 잘 아는 이웃분이 관심을 보이고 도와주셨다고 들었다.
뒤늦지만 책임자로서 그 감사 인사도 겸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조금만 걸어가면 될 거리인데 가만히 있기도 뭐하고.
다행히도 부부 두 분은 집에 계셨기에 바로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여긴 학생들 누님이신가?”
할머님이 처음 본 얼굴인 나를 보며 물었다.
오늘 갑자기 누나란 소리를 여러 번 듣네.
“아, 아뇨. 멤버들 소속된 회사 책임자예요.”
대답을 듣고도 누나냐고 물어보던 표정에서 변함이 없는 것을 보면 이런 소개는 잘 와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 집 임대 계약한 사람……이라고 보시면 돼요.”
“아아. 하숙집 관리하시는 분?”
……하숙집?
내가 모르는 대화가 오갔나 해서 옆에 있던 우형에게 작게 말했다.
“……몬클 하우스가 언제 하숙집이 된 거야?”
“어쩌다 여기까지 내려왔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거든요. 숙소라고 하니까 하숙집 같은 거냐고 물으셔서…….”
젊은 청년 다섯 명이 외딴곳에 입주한 목적이 궁금하셨던 듯하다.
나이 있으신 분들은 아이돌 숙소라는 것의 존재는 잘 모르시려나.
“너희 연예인인 건 알고 계셔?”
“설명해 드리긴 했는데 그냥 미튜브 하는 사람들인 줄 아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직업을 말했는데도?”
“가수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왜 여기 있냐고 하셔서, 미튜브 영상 촬영한다고 하니까 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요새는 미튜브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연예인이라고…….”
모노크롬은 거의 연예인이 아니라 그냥 연예인인데.
모노크롬의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어르신들에게도 유명한 것은 아니었다. 어르신들은 10년, 20년 전부터 활동해 온 방송인이 아니면 얼굴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어르신들에겐 아이돌보다 크리에이터가 더 와닿는 세상이라니.’
몬클 하우스는 하숙집, 모노크롬은 미튜브 영상 찍는 학생들이 되어버렸지만 그게 더 이해하기 쉽다면 딱히 정정할 필요는 없나.
멤버들이 밥값을 하는 덕분에 집도 유지할 수 있고 미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것도 맞잖아.
아무튼 우리가 온 목적대로 이웃집에 사는 강아지 두 마리에게 간식도 무사히 전달했다.
잘 먹는 모습을 보며 우형이 또 뿌듯해하는 사이, 재민은 할머님과 함께 텃밭을 구경했다.
“토마토는 열매 언제 열려요?”라고 묻는 것을 보니 자신이 심은 토마토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길, 재민이 뭔가 떠올랐는지 손뼉을 짝 쳤다.
“아! 한이 형 데려왔으면 저희 가수인 거 믿으셨을지도 모르는데.”
“왜? 한이 얼굴은 아신대?”
어르신들은 아이돌 나오는 방송은 잘 안 봐도 드라마는 보시니까. 스릴러물도 즐겨 보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재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새 한이 형이 천상식 선배님 사인 안 필요하냐고 막 묻고 다녔거든요. 아마 같이 왔으면 두 분한테도 물어보면서 후배라고 자랑했을걸요.”
“맞아요. 한이가 저희 엄마한테도 전화해서 천상식 선배님 사인 앨범 드리겠다고…….”
우형도 얼마 전 기억이 떠오른 듯이 오묘한 표정이 되었다. 나도 이야기를 듣고 비슷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선배를 사인 셔틀로 써먹고 있어……?’
한이는 의외로 뒤끝이 강한 타입이었나 보다.
몬클 하우스로 돌아오니 준해가 맥스에게 가르쳐주겠다며 개인기 앞구르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맥스 개인기가 아니라 준해 개인기만 늘어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보통 아이돌의 개인기란 성대모사, 모창 같은 종류인데 준해는 제법 신선한 방향으로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개인기 왕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나도, 멤버들도, 심지어 맥스도 평화롭게 구경했다.
***
단짠단짠 계획 이후 컬러즈가 멤버들과 맥스가 노는 클립을 무한 재생하며 힐링하는 동안 큰 문제 없이 <송투유> 방영을 맞이했다.
한이가 며칠이나 추가 촬영을 하며 천상식의 회사 녹음실에서 고생한 것은 짧게 편집되었다.
‘……이건 악마의 편집이 아니라 천사의 편집이네.’
많이 편집된 파편만 보고도 컬러즈가 슬퍼하고 분노하려던 그때.
한이의 반란이 시작되며 분위기가 확 반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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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ㅋㅋ 송투유 보는데 유한이 세다ㅋㅋㅋㅋㅋㅋ
방송에서 누가 천상식한테 저렇게 말하는거 처음 봄ㅋㅋㅋㅋㅋ
└나 방금까지 팬들은 속 썩어나겠다;; 이러면서 보고 있었는데ㅋㅋㅋㅋ
└대본 아냐?
└천상식이 대본 따를 사람이냐 ㅋㅋㅋ
└보통 선배한테 저러면 예의없어 보일 텐데 상대가 천상식이라 그런가 ㅈㄴ맞말이라 나도 모르게 끄덕끄덕하면서 듣고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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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클라이맥스는 예고편에 있었다.
한이에게 갑자기 유한 태도를 보이는 천상식의 모습이 짧게 나오자, <송투유>를 시청하던 시청자들은 눈을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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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식을 대체 어케 한 거야
천상식 왜 공손해졌냐고???
└아니 ㅁㅊ 닮은꼴 아니지?
└퇴마한 거 아녀?
└전에 지오엘 회개시킨 것도 그렇고 모노크롬 진짜 뭐 있나봄
└가요계는 갑자기 판타지 세계관이 되어버리는데..
└몬클보고 0군 아이돌이라고 하는거 보면서 개쪼갰는데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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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는 이날 방송으로 ‘천상식을 이겼다’라는 뜻으로 ‘상식을 뛰어넘는 유한이’라는 타이틀을 얻어냈다.
‘다음 화 시청률은 걱정 안 해도 되겠어.’
시청률이 높아질수록 많은 사람이 한이의 노래를 듣게 될 테니까 좋은 일이지.
그리고 보컬 레벨 상승.
내가 노리는 것은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