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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60화 (260/430)

# 260화

한이는 최근 아버지를 놀리는 데 맛을 들였는지 평소보다 자주 집을 오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집에 있는 강아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집에 강아지가 한 마리 있는데 몬클 하우스에 데려가도 돼요?]

[그거야 괜찮은데. 작은 강아지? 큰 강아지?]

[으음……, 중간 강아지?]

3B 법칙이란 것이 있다. 동물, 미인, 아이가 나오면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법칙.

‘그런데 아이돌과 강아지면…… 그중 둘이 충족되잖아?’

당연히 이런 좋은 기회를 내가 거절할 리 없었다.

[아버지가 매일 새벽이나 퇴근 후에 산책시키거든요. 퇴근했더니 강아지가 집에 없으면 깜짝 놀라시겠죠?]

……한이는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리고 마침 이때쯤 <송투유>의 예고를 본 컬러즈의 분위기가 흉흉할 듯하여 바로 일정을 잡아뒀다.

‘날이 더워지면 풀벌레나 진드기가 많아지니까 지금 시기가 좋지.’

많이 춥지도, 덥지도 않고 선선하니 강아지랑 놀기 딱 좋은 날씨였다.

한이가 데려온 강아지는 차 안에 있다가 밖에 나오니까 신났는지, 땅으로 내려오자마자 처진 귀가 펄럭거릴 정도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강아지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대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강아지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내가 강아지를 무서워한다고 생각했는지 한이는 리드줄을 붙잡고 속도를 줄이게 했다.

“어허, 맥스. 누나한테 몸통박치기 하면 안 돼.”

“누나……?”

“아, 남자애거든요. 제가 형이라서 무심코. 두목님한테 대들면 큰일 난다, 너.”

무슨 아이한테 ‘떼쓰면 경찰 아저씨가 맴매한다.’ 하는 듯한 말을 강아지한테 한담.

맥스는 처음 오는 곳이라 여기저기 궁금한 게 많은지 한이 옆에 서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파악했다.

“몇 살이야?”

“저요? 스물여섯인데요.”

“아니, 내가 네 나이를 물어봤겠니.”

농담이었는지 한이는 웃어넘기고는 자신의 옆에 얌전히 서 있는 맥스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섯 살이요. 태초에 순복이라는 맥스 할아버지가 있었고 순복이의 2세 중 하나를 저희가 키웠는데…….”

그렇게까지 자세히 설명해주지는 않아도 괜찮은데, 한이는 맥스의 가족력을 줄줄 읊었다.

지금 여기 와 있는 맥스는 순복이 2세의 자견은 아니고, 따지자면 조카. 그래서 순복이 3세.

“순복이 유전자가 강한지 3대가 생긴 게 똑같아요. 그래서 가끔 순복이라고 불렀는데 그것도 자기 이름인 줄 알더라고요.”

긴 이야기였지만 요약하자면 맥스라고 불러도 되고 순복이라고 불러도 된다는 말이었다.

내가 앞에 쪼그려 앉자, 그새 차분해진 맥스는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이며 천천히 다가왔다.

아까는 신나서 내게 몸통박치기를 할 뻔했지만, 이렇게 보니 사람에 맞춰서 조심스럽게 인사할 줄 아는 강아지였다.

“얘 정말 착하다.”

“역시 저를 닮아서…….”

“네가 순복이야?”

맥스와 잠깐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몬클 하우스의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강아지다!”

집 안에서도 차 엔진 소리가 들렸는지, 재민이 차에서 방금 나온 맥스처럼 펄쩍펄쩍 뛰며 대문 밖으로 나왔다.

맥스는 저를 반기는 걸 아는지 꼬리를 흔들며 재민에게 다가갔다.

“얘 이름 뭐야?”

“맥스.”

“이름이 백수야?”

“백수 아니고 맥스…… 아니, 그냥 순복이 3세라고 불러.”

“순삼아~.”

순식간에 백수부터 순삼이까지, 제 이름이 두 번이나 바뀐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맥스는 자세를 낮춘 재민의 머리카락을 코로 마구 헤집었다.

재민과 맥스의 인사 장면은 재민을 따라 나왔던 카메라가 이미 찍고 있었다.

벌써부터 역대급 힐링 컨텐츠가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멤버들은 다들 강아지 좋아한대?”

“좋아한다고는 하는데 큰 강아지는 다들 별로 본 적이 없다고, 직접 보면 좀 다를지도 모르겠대요.”

맥스는 진돗개보다 조금 클까 말까 한 정도의 중형견.

다들 도시 사람들이라 동물에 익숙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재민이 신나서 먼저 밖으로 튀어나왔지만 원래 촬영은 마당에서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다.

맥스를 데리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게스트를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도 마당으로 나왔다.

“어, 생각보다 작은데? 아니 잠깐, 커흑.”

우형이 눈높이를 맞추려고 쪼그려 앉자 리드줄이 풀려서 신난 맥스가 그에게 몸을 날렸다.

몸통박치기를 당한 우형이 힘없이 휘청이며 땅에 손을 짚었다.

그 모습을 보고 조금 무서워졌는지 준해는 해랑 뒤로 숨어 버렸다.

마당을 한 바퀴 돌고 온 맥스는 해랑 앞에서 순간 멈칫하며 물러섰다.

“왜 나한테는 안 와?”

“형 인상이 너무 안 좋아서 그래.”

“맥스.”

한이의 말을 무시한 해랑이 이름을 불러도 맥스는 그를 바라만 볼 뿐, 한 발짝 정도 거리를 뒀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강아지의 시선에선 키가 큰 해랑이 덩치가 커 보여서 그런가?

사람의 눈엔 한없이 호감형인 해랑이 강아지에겐 무서워 보일 이유가 뭐가 있을까.

매력 레벨이 동물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흥미로운 주제라 생각하다 보니 인터넷에서 본 영상이 떠올랐다.

“아, 어디서 봤는데 강아지는 원래 높은 목소리를 더 좋아한대.”

해랑 특유의 저음이 혹시 동물에겐 위협적으로 들린 게 아닐까. 보통 맹수라고 불리는 동물들의 소리가 낮고 울리니까.

“해랑이 저음밖에 못 내잖아.”

“그거다! 형이 고음 알레르기가 있어서 낯을 가리는 거야. 역시 메인 보컬인 나를 닮았다니까.”

우형이 웃으면서 해랑을 바라보고, 한이는 또 맥스가 자신을 닮았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전에 음악 방송 1위 공약으로 앵콜 무대에서 파트 체인지를 할 때였다.

한이의 고음 파트를 맡고도 꿋꿋이 저음을 고집하던 해랑이었는데, 강아지를 회유하기 위해 높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모두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해랑은 입을 꾹 닫아 버렸다. 저음 고집을 고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말고 한번 불러봐. 맥스야~.”

해랑 대신 준해가 가성으로 이름을 불렀으나, 맥스는 다른 게 더 궁금한지 몸을 옆으로 홱 돌려 버렸다.

목소리 높낮이가 원인은 아니었나 봐.

“뭐, 그럼 1박 2일 동안 천천히 친해지도록 하고…….”

“순삼아아악! 온실은 파면 안 돼!”

슬슬 인사는 이쯤 하고 본 컨텐츠 촬영으로 들어가려는데 재민이 후다닥 맥스를 붙잡았다.

친해지기는커녕 온실을 뒤엎는 바람에 사이가 멀어지는 건 아니겠지?

말이 안 통하고 예측 불가능한 게스트와 어떤 케미를 보여줄지가 굉장히 기대되었다.

***

“안녕. 컬러즈!”

[몬클ㅠㅠㅠ]

[안녕!!]

<송투유> 예고를 보고 한껏 예민해져 있던 컬러즈는 뷰이라이브 알림을 보고 ‘팬들이 걱정할까 봐 얼굴 보여주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채팅으로는 열심히 인사를 올려 나가면서도 실제로는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두드리려던 순간.

화면에 나타난 멤버들의 얼굴과, 먼지떨이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털 달린 물체에 컬러즈는 바로 정신이 팔려 버렸다.

[밑에 인형인가?]

“인형 아니고 오늘 게스트인데, 짜잔-.”

[허허ㅓㄹ]

[강아지다!!!]

[귕여워ㅠㅠㅠㅠㅠ]

준해가 카메라를 돌려 꼬리만 나오던 맥스의 얼굴을 비췄다.

정체불명의 물체가 강아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컬러즈의 마음은 순식간에 사르르 녹아 버렸다.

좋아하는 아이돌과 강아지가 함께 있는 모습이란 실패가 없었다.

“한이네 본가에서 키우는 강아지인데, 오늘 하루 몬클 하우스에서 같이 자고 갈 거예요.”

“순삼아, ‘안녕’해.”

[브로콜리인가?]

[이름이 순삼이에요?]

[말할 줄 알아??]

컬러즈는 처음 보는 게스트에게 궁금증을 쏟아냈다.

하지만 맥스는 브로콜리도 아니고 순삼이도 아니며 한국말도 하지 못한다.

“브로콜리 아니고 보더콜리.”

“원래 이름이 뭐랬지? 아, 백수!”

[누가 브로콜리랰ㅋㅋㅋㅋㅋㅋ]

[강아지 이름이 백수요?]

“우리 맥스 백수 아니에요. 집에서 할 일 잘하고 있어요.”

맥스를 데려온 한이는 시작부터 잘못된 정보를 정정하느라 바빴다.

산책 시간 외에는 집에 있긴 하지만 맥스가 백수처럼 놀고먹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열심히 뛰어다니고 가족들을 반기며 매일매일 충실하게 제 할 일을 다 하는 똑똑한 강아지였다.

준해도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 잘 모르지만 맥스를 변호하고 나섰다.

“그래, 강아지는 귀여운 게 일이야!”

[준해도 지금 일하는거야??]

[귀여운게 일이면 몬클이들은 과로야ㅜㅠ]

[어우 왠지 피곤하더라]

멤버들이 귀엽다는 채팅에 자기들이 귀엽다는 자신감 넘치는 채팅까지.

갑자기 펼쳐진 주접 파티 속에 맥스의 업무 조건을 묻는 채팅도 있었다.

“맥스 그렇게 일해서 연봉이 얼마냐고요? 그건 저희 고용주님께 한번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어, 아빠.”

한이가 스마트폰을 들며 아버지에게 전화하는 척을 했다.

몬클 하우스 입주에 실패한 컬러즈들은 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기도 고용되고 싶다며 숨 쉬기, 집 지키기 등 온갖 특기를 어필했다.

심지어 돈 주고 입사하겠다는 컬러즈가 나올 때쯤 우형이 가열되는 분위기를 진정시키며 오늘 할 일을 소개했다.

“원래 저희가 게스트가 오면 밥을 해 달라고 하는데…….”

몬클 하우스의 규칙이었다. 초대받아 온 사람은 요리를 잘하든 못하든 한 끼 정도는 책임지고 갈 것.

이미 몇 그룹이 몬클 하우스에 와서 요리 실력을 뽐내고 갔으며 그 장면들은 각 팬덤 내에서 클립으로 널리 널리 퍼져나갔다.

그러나 오늘의 게스트는 강아지였다.

[오늘 맥스가 밥해요?]

[개밥 먹어?ㅜ]

[근데 강아지 간식 의외로 맛있더라]

[맥스가 진짜 밥하면 조회수 폭발]

인간이 아닌 게스트는 처음이었기에 오늘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많았다.

컬러즈도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 머리 한구석으로는 강아지가 요리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물론 세계 최초로 인간에게 밥 해주는 강아지를 찍는다면 해외 토픽감이겠지만, 애초에 그건 불가능했다.

“맥스는 귀엽느라 바쁘니까 일을 더 시킬 수는 없고, 오늘은 제가 강아지 케이크를 만들 거예요.”

강아지 케이크란 채소와 간을 하지 않은 살코기 등으로 만드는 강아지 간식이었다.

주방에는 단호박, 달걀, 닭고기 등 재료들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요리 장면을 구경하겠구나. 그렇게 기대하던 컬러즈의 예상과는 달리, 준해가 카메라를 휙 돌리며 말했다.

“요리는 오래 걸리니까 나중에 편집본으로 보실 수 있고요. 컬러즈한테는 따로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요?”

[아 왜 우리도 요리하는 거 볼래]

[구경시켜조ㅠㅠ]

“해랑이 형한테 고민이 하나 있는데…….”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드러눕던 컬러즈는 고민이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컬러즈가 할 일. 그것은 해랑이 맥스와 친해질 방법을 멤버들과 함께 궁리하는 것이었다.

“해랑이 형 목소리가 너무 낮아서 강아지가 무서워하는 것 같길래 아까 고음으로도 불러봤는데요.”

“고음으로 부르는 모습을 컬러즈도 직접 봐야 좀 알겠다는데?”

고음으로 맥스를 불렀던 것은 준해였으나, 컬러즈가 자기들에게도 보여달라고 성화인 탓에 해랑은 어쩔 수 없이 카메라 앞으로 나섰다.

“매, 맥스야아?”

목소리가 고음이 된 것이 아니라 끝만 살짝 올라가서 그냥 의문문이 되어버렸을 뿐이지만.

맥스는 결국 해랑에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대신 컬러즈가 [네]와 손을 든 이모티콘을 올리며 반응했다.

이날 뷰이라이브에선 수많은 자칭 ‘맥스’가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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