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저번엔 모노크롬과 SPID 멤버 전원이 출연했지만, 그것은 아직 연습생들이 시청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을 초반 방송분이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는 상황에 따라 필요한 멤버들만 나올 예정이었고, 오늘 첫 미션 무대 심사에 모노크롬 대표로 출석한 것은 우형이었다.
‘리더고, 랩이랑 보컬 포지션 둘 다 맡고 있고, 가장 프로듀서 입장에 가깝기도 하고.’
우형은 메인 포지션은 없어도 만능캐였다. 전체적인 무대를 심사하는 데에는 그가 가장 어울렸다.
만일 퍼포먼스 관련 미션이 나오면 그땐 재민이 심사위원으로 출연하는 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제작진이나 뉴레인은 형제 관계를 방송에서 써먹고 싶은지 해랑이 자주 나와줬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심사할 땐 해랑이는 웬만하면 안 나오는 게 나은 것 같아요. 동생 볼 때마다 표정이 너무 아련해서…….”
“으응……. 너무 한 명만 아끼는 게 눈에 보이면 안 좋으니까.”
좋은 형 역할을 너무 잘 해냈는지, 저번에 멘토 촬영을 하고 온 멤버들이 다들 안타까운 표정으로 해랑을 바라봤던 것이 떠올랐다.
만일 다른 연습생을 응원하는 시청자가 생기면 그 시선을 편파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
“안녕하세요!”
첫 미션 무대를 마치고 해산하려는데 보현이 허리를 꾸벅 숙이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처음 뉴레인에서 만났을 때 인사하겠다고 우리를 기다리던 것도 그렇고, 인사성이 참 밝은 아이였다.
“수고했어. 제대로 무대에 서는 건 처음 보는데 잘하더라.”
“헤헤. 감사합니다.”
“힘든 건 없고?”
잠이 부족할 정도로 연습에 매진할 테니 힘이야 당연히 들겠지만.
내가 묻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든 것 외에 혹시나 다른 쪽으로 힘든 게 없냐는 뜻이었다. 예를 들면…….
“어어, 다 괜찮은데요. 아직 사이가 좀 어색한 형이 있는 게 고민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이런 거.
이렇게 바로 예상했던 말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지만.
“혹시 몇 명이 특히 뭉쳐 다니거나 누굴 은근히 배제한다거나 그래……?”
“아뇨. 그런 건 아닌데요. 저번에 선배님들이 다 같이 친하게 지내라고 하셨잖아요.”
분량 몰아주기를 피하려면 우선 최대한 몰려다니는 게 낫겠다 싶어서 연습생들에게 넌지시 말해두라고 했었는데, 보현은 그 말을 잘 지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얘기를 들어보니 그 어색한 형은 연찬인 듯했다.
“그냥 옆에 있으려고 한 건데 따라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혹시 제가 그 형을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닐까요?”
“…….”
이 방송의 피해자로 예정된 그가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왠지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연찬이랑 특히 안 맞는 스타일인가 봐.’
어디든 그렇지만 연예계는 특히, 카메라와 잘 보여야 할 사람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으므로 편하고 좋은 것만 취할 수 없었다.
싫어도 웃어야 하고, 성격에 맞지 않아도 참아야 할 게 많다.
만일 연찬이 정말 데뷔하더라도, 이렇게 싫은 것을 피하기만 한다면 그에겐 그 성격이 언젠가 넘어야 할 벽으로 다가올 것이다.
“아냐. 넌 잘하고 있어. 안 맞는 사람끼리 잘 지내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하거든. 게다가 아직은 서로를 잘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고.”
보현은 내 말을 새겨듣듯이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지만 보현은 말수가 많은 타입이었다. 덕분에 다른 연습생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지원 형은 이번에 데뷔 못 하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연습생 생활 몇 년 더 했다간 너무 늦다고…….”
“아, 아무래도 나이가 조금 걸릴 수 있지…….”
연찬처럼 형 라인에 포함되는 연습생 이야기였다. 이름을 들어보니 탈락 예정자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우형이 반응했다. 우형도 연습생 시절에 비슷한 처지였기에 더욱 이입하는 듯했다.
누군가에겐 절실한 마지막 기회가 조작으로 농락당할 수 있다.
다시금 우리의 목표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미 완성된 이 판을 깨트리려면 역시 얘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아.’
물론 조작 사실을 알려줄 수는 없고, 방송적으로 좋은 방향을 제시하면서 은근슬쩍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겠지.
그리고 이건 보현에게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탈락 예정자들이 방송에서 주목을 받는 것만큼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으니까.
“아무래도 시청자들은 에이펙트 엔터 쪽에 더 관심을 가질 것 같아서 말야. 묻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봤거든.”
그래서 우리는 연습생들에게 제작진과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좋은 장점이나 포인트를 제시해 보기로 했다.
아직 다른 연습생들은 관찰하는 중이지만, 보현은 뉴마에 기록이 남아 있었기에 방향을 제시하기가 쉬웠다.
“너는 연기를 배웠으니까, 어색하더라도 조금 과장되게 행동해 보면 어떨까? 리액션도 크게 크게 하고, 감정 표현도 확실히 하고.”
“저 평소에도 과하단 얘기 많이 듣는데.”
……감정 과잉이라는 건 평소 행동에서 비롯된 거였나.
과하다는 건 보통 칭찬할 때 쓰는 표현은 아니었다. 아마도 뉴마에 있을 때부터 직접 지적받아 왔겠지.
만일 지적받았던 게 신경 쓰여서 반대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간 탈락의 빌미가 될 뿐이다.
“여긴 어필이 중요한 자리니까, 그걸 얼마든지 장점으로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어디서든 적극적으로. 알았지?”
보현은 내 말을 마음에 새겨두기라도 하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
한이의 <송투유> 촬영은 방청객과 연예인 패널들이 보는 앞에서 두 사람이 함께 완성한 노래를 부르는 본 무대 녹화로 끝.
처음엔 골칫거리였던 천상식이 한이의 편으로 돌아선 이후로 촬영은 걱정할 것이 없었다.
이제 내가 궁금한 것은 딱 하나. 나는 무사히 본 무대 촬영까지 마치고 나서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회사로 복귀한 한이를 반기며 물었다.
“잘하고 왔어?”
사실 이사실에서 마이 엔터로 한이의 보컬 경험치가 오르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촬영 시간에 경험치가 오른 걸 보니까 분명 사람들이 ‘잘 부른다’고 생각할 만한 무대를 선보였을 텐데.
<송투유>는 듀엣 무대 후, 심사위원 패널들과 방청객 100명의 점수를 받아 방송 내 자체 랭킹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순위 상위권에 올랐을까? 한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 순위가 계속 방송에 노출될 테니 상위권에 올랐으면 좋겠는데.
“잘했을 것 같아. 몇 위로 올라갔어?”
“그건 방송을…….”
“보면 안다고?”
“역시 두목님. 이제 제 마음도 읽으시네요.”
한이가 엄지를 척 올리며 말했다.
보시면 알아요. 한이가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 않을 때 항상 하는 말이었다.
결과가 좋지 않은데 이렇게 장난식으로 얘기하지는 않을 테니까 기대할 만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거겠지.
<송투유>는 서너 팀이 동시에 촬영하고 그 과정과 무대가 2주에 걸쳐 방송된다.
그러나 천상식과 한이의 팀은 음악대상 수상자에 대한 예우인지 다른 팀보다 방영 회차가 더 많았다.
보통이라면 이전에 촬영한 팀들의 무대가 끝나고, 다음 화 예고로 다음에 어떤 팀이 나올지 짧게 소개한다.
그런데 제작진은 천상식과 한이의 팀 소개를 예고로 끝내지 않고 약 5분가량으로 늘여서 본편에 삽입했다.
여기서 문제는, 천상식과 한이의 첫 만남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지만 이 상태로 끊으면 어떡해……!’
한이의 팀이 처음 방송을 타는 날.
천상식과 한이를 간단히 소개하는 영상이 흐르고,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의 모습이 나왔다.
어색한 분위기 속 인사를 나누고 한이가 미리 뽑아온 곡 리스트를 소개하려고 하자 천상식은 갑자기 트집을 잡으며 촬영을 끝내고 나가 버렸다.
나야 촬영 내용을 미리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영상으로 확인하니 한이의 당황하는 얼굴이 보여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거 컬러즈가 난리 나겠는데…….’
바로 확인한 컬러즈의 반응은 내 예상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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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진짜 저러고 촬영 끝난다고?
이유도 안 알려주고??
└한이도 당황한 것 같은데ㅠㅠㅠㅠ..
└아ㅋㅋ.. 이게 뭐지..?
└대본인가? 차라리 대본이길 바라는 건 또 처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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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된 장면이기를 바라는 컬러즈의 기대를 배신하듯이, 바로 이어진 예고편에는 한이가 녹음실에서 고생하는 장면이 나왔다.
나도 얘기로만 들었지, 한이의 표정이 생각보다 좋지 않아서 걱정될 정도였다.
예고편 또한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전혀 보이지 않고 파국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끝나 버렸다.
이전부터 천상식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을 내비치는 컬러즈가 있었다.
그러나 한이가 아버지에게 준다며 천상식의 사인 사진을 올리자 다들 ‘잘하고 있나 보다.’ 하고 걱정을 조금 내려놓았는데.
‘그런데 방송 내용이 이러니…….’
컬러즈는 결국 폭발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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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거면 우리 애 왜 데려간 거지?
만만해서 데려간 건가; 와 어이가 없네
└후배 잡는 모습 내보내려고 섭외했냐고ㅋㅋㅋ 개빡쳐
└한이 목은 괜찮은지 너무 걱정되는데ㅠ
└뭔 생각으로 촬영하고 방송한거지? 하 ㅅX,, 혼자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했을 한이 생각하면 가슴 찢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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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한 와중에도 대선배를 비난하기엔 조심스러웠는지 대부분의 분노는 제작진에게 향했다.
제작진도 욕은 먹을지언정 시청률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장면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겠지.
민감할 대로 민감해진 컬러즈는 커뮤니티 밖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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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식! 무대뽀 성격은 어디 안 가는구나, 크크. 누가 뭐라한들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요즘 세상 보면 이런 사람 또 없더라. 후배에게 뼈와, 살이 되는 조언을 전해주기를!
└저런 사람 회사 가면 한트럭 있는데요?
└꼰대 조언=노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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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랑 싸우지 마…….’
<송투유> 관련 기사 댓글란에는 한이 이야기를 보러 온 컬러즈와 천상식 이야기를 보러 온 중년 네티즌들이 뒤섞여 혼란의 도가니가 펼쳐져 있었다.
천상식의 그런 성격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사실이었는지 중년 네티즌들의 반응은 긍정적인 편이었다.
그래서 컬러즈는 더욱 분통을 터트렸고.
‘스포일러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당연히 우리가 나서서 스포일러를 할 수는 없었다.
한이의 말대로 ‘보시면 알아요’ 상태. 그런데 나와 다르게 컬러즈의 머릿속엔 기대가 아니라 불안만 가득 차 버렸다.
본격적인 내용은 다음 주에 방영될 테고, 그동안 컬러즈는 한이가 선배에게 인성질 당하는 모습만 상상하며 가슴을 치겠지.
‘이 상황…… 데자뷔가 느껴져.’
<최고의 팀메이트>에 재민과 윤환이 함께 나온다는 소식이 떴을 때였지.
그때는 좀 더 상황이 민감했지만 분위기는 비슷했다.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도 그렇고.
시간이 지나면 컬러즈도 두 사람의 관계가 개선된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일주일이란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팬들의 피로도가 높아지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사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처럼 다시 ‘단짠단짠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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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계획. 고통스러운 떡밥이 있을 땐 힐링 컨텐츠로 치유하자.
그리고 최근 모노크롬의 힐링 컨텐츠는 정해져 있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멤버들만의 공간, 몬클 하우스가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은 이 몬클 하우스에 특별한 게스트를 모실 예정이었다.
‘힐링에 이보다 더 좋은 게스트는 없지.’
멤버 네 명은 먼저 도착했고, 게스트를 맞이하기 전 카메라도 미리 세팅을 완료했다.
한이는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말처럼 뒤늦게 차를 타고 나타났다.
그리고 차 문을 열자.
“헥헥.”
사람이 내지 못할 숨소리와 함께 차 뒷좌석에서 검정과 하양이 섞인 털 뭉치가 펄쩍 뛰어 내려왔다.
몬클 하우스의 첫 강아지 게스트. 줄여서 개스트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