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58화 (258/430)

# 258화

해랑의 표정을 본 우형의 눈썹 끝이 내려갔다.

표정 변화가 많지 않은 해랑이 저런 절절한 표정을 한다는 것이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옆에서 형제의 모습을 지켜보던 멤버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욕심부리지 않고, 그저 짝사랑하는 이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드라마 속 조연을 보는 기분이었다.

준해의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이 중독성이 있긴 하지만 해랑은 평소에도 준해의 머리를 잘 쓰다듬고는 했다.

실은 그게 동생에게 해주고 싶었던 행동이 아니었을까.

이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 더욱 마음이 아려오는 것 같았다.

“해랑이 형 불쌍해…….”

멤버들이 입 밖으로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 하지만 모두가 다 같이 느끼는 이 감정을 정확히 표현해낼 수 있는 말을 재민이 결국 입 밖으로 꺼냈다.

우형은 침울한 표정의 동생들을 바라보며 그나마 해랑에게 멤버 동생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귀엽고 말 잘 듣고 가끔 짜증도 부리게 만드는 동생들. 하지만 해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동생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게 최선의 방법이라니.’

그래도 눈앞에서 보니 효과가 확실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옆에서 보면 정말 별다를 것 없는 형제 같았다. 두 사람의 원래 관계를 모른다면 더더욱 그렇게 보이겠지.

연찬은 형을 좋아하는 동생처럼 인터뷰를 해 놨으니 싫어하는 티를 내지 못한다. 해랑이 살갑게 군다면 더 불편해지는 건 연찬이다.

주인도 그것을 의도했고, 해랑도 어려워하지 않아서 잘된 일이긴 한데…….

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결국 먼저 시선을 돌려버렸다.

“저 모습을 이 프로그램 촬영 끝날 때까지 계속 봐야 한다니 우리가 고통이다.”

“그냥 우리가 가서 꿀밤 한 대 때릴까?”

꿀밤을 포기하지 못한 준해가 주먹을 꼭 쥐었다.

남에게 이렇게 잘해 주면 상대방의 태도가 변할 것을 기대하는 게 보통일 텐데.

연찬이 변할 가능성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씁쓸한 현실이었다.

“왜요?”

모노크롬의 옆에 불쑥 나타난 인영이 있었다.

데뷔조로 내정되지 못한 연습생 중 한 명, 한보현이었다.

그는 정말 모노크롬의 후배가 되는 것이 목표인지 인터뷰에서도 ‘모노크롬 선배님들을 따라 소속사에 들어왔다’라고 언급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멤버들의 책임감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모노크롬이 이렇게 모여 있는 이유가 궁금한지 빼꼼 어깨 너머를 보고, 그래도 모르겠다는 듯 다시 모노크롬을 쳐다봤다.

“연찬이 형한테 뭐 있어요?”

보현은 또 의도하지 않게 멤버들의 양심을 쿡 찔렀다.

우형은 물리적인 타격이라도 받은 듯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아무것도 아냐……. 그나저나 연찬이가 너한텐 형이구나.”

“네!”

멤버들에게 연찬은 항상 ‘해랑의 어린 동생’이었는데.

해랑에게 심한 어리광과도 같은 행동을 보였기에 더욱 그런 인상이 강했다.

그런 연찬이 연습생 중에서는 형 라인이었다.

아이돌은 보통 어릴 때 데뷔한다. 연예대상을 받은 원만호 정도의 유명인사가 아니라면 말이다.

연찬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데뷔 기회를 모노크롬이 방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멤버들의 양심을 쿡 찔러왔다.

“너희도 알지? 연찬이가 해랑이 동생이란 거.”

“네. 형이 아이돌이면 좋을 것 같아서 부러웠어요.”

이 프로그램에 얼마나 많은 뒷사정이 있는지 모르기에 지을 수 있는 해맑은 표정이었다. 모르는 게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지만.

우형은 보현이 가까이 온 김에 연습생들의 현재 상황을 물어보기로 했다.

모노크롬은 뉴레인 건물에도 얼마 전에 처음 들어가 본 처지라서 뉴레인 연습생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전혀 몰랐다.

“혹시 연습생끼리 분위기는 좋아? 경쟁자기도 하지만 같이 데뷔할 수도 있는 사이잖아.”

“으음. 괜찮은 것 같은데요?”

“다들 친하게 지내?”

“저처럼 뉴레인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도 있긴 한데, 친한 사람은 다 생긴 것 같아요.”

아마 그와 함께 뉴레인으로 소속을 옮긴 기존 뉴마 연습생이나 연찬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 뭉쳤겠지만.

보현은 파벌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번엔 준해가 나서서 최대한 수상하게 들리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뒀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뉴레인이랑 에이펙트랑 방송을 같이 하잖아. 방금 에이펙트 연습생들도 보고 왔는데 거기는 오래 같이 지낸 연습생들이 많이 있는 것 같더라.”

“맞아요. 저도 되게 친해 보여서 물어봤는데 몇 년이나 같이 연습생 생활 했대요.”

대형 소속사는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것부터가 힘들다. 그러니 에이펙트 엔터의 연습생들은 웬만하면 소속을 쉽게 옮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해랑이 집을 나오기 위해 에이펙트 엔터에 연습생으로 들어갔던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에이펙트 엔터는 연습생들에게도 숙소를 제공했다.

오래 같이 지내오니 더욱 유대감이 깊어질 수밖에.

“응. 편하게 지내니까 캐릭터성도 잘 드러나고 좋아 보이더라고. 그래서 너희도 좀 더 사이좋게 뭉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방송에 나오기도 좋을 테고.”

이것은 특정 개인만 튀거나 내정된 데뷔조끼리만 너무 뭉치지 않도록 미리 밑밥을 깔아두는 것이었다.

뉴레인 방해 계획의 일환이었지만 방송을 위해서라는 말도 거짓은 아니었다.

어색하고 딱딱하게 있는 것보다는 편히 있는 쪽이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좋을 테니까.

그리고 보현은 모노크롬이 무슨 말을 하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들었다.

‘아하.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구나.’

애초에 모노크롬처럼 되고 싶어서 들어왔던 보현이었다.

그 가파른 성장세를 목격한 그는 모노크롬만의 노하우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따라서 모노크롬이 하는 이야기는 한 치의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하긴 선배님들도 가족처럼 지내고 팬분들도 그런 점을 좋아한다고 했지.’

그런 사고 과정을 거쳐 보현은 머릿속에서 ‘친하게 지내야만 한다’라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뉴레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보현은 아직 연습생 모두와 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보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왠지 거리감이 남아 있는 연찬이었다.

***

“너 왜 이렇게 나를 따라다녀?!”

카메라가 설치된 로비를 벗어나 복도로 들어서자마자 연찬이 미간을 찌푸리며 뒤돌았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보현은 연찬의 주위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식사 시간에 은근슬쩍 자신의 옆자리에 와서 앉고, 다른 시간에도 자꾸 옆에 붙어 있으려 하고.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요.”

“누가 이러라고 시키디?”

“시킨 건 아닌데…….”

시킨 건 아닌데 뭔가 말은 들었다 이거지.

연찬은 모노크롬이 촬영하러 왔던 날 이후로 보현이 갑자기 자신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연찬이 제일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을 꼽자면 단연 보현이었다.

연찬의 눈에 보현은 행동이 너무 과했다. 처음부터 모노크롬을 좋아한다고 티 내고 다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거리를 두었는데, 그 때문에 보현은 연찬과만 친해지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자꾸 따라다닌 것이다.

“어쩌면 같이 데뷔할 수도 있는데 미리 친하게 지내면 안 돼요?”

“하…….”

그런 이유라면 연찬 입장에선 친해질 이유가 더더욱 없었다. 어차피 보현은 탈락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갑자기 해랑이 친근하게 구는 것도 그렇고, 보현이 마치 자기를 감시하듯이 따라다니는 것도 그렇고.

모르는 사이에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연찬은 이를 으득 갈았다.

“따라오지 마!”

“혀엉…….”

애처롭게 자신을 부르는 보현의 목소리에 연찬은 질색하며 도망가 버렸다.

***

얼마 후, 완성된 연습생들의 미션 무대는 특별 심사위원, 각 소속사의 프로듀서, 멘토의 심사로 평가되었다.

멘토 점수는 모노크롬과 SPID의 평가 점수 합산. 어느 그룹이 누구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시청자들이 모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이돌이 누군가를 평가하는 입장이 되면 괜한 말이 나오기 마련이라 조심스러운 것도 있고, 타 소속사의 연습생을 평가하는 것은 더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소속사 직속 선배라면 몰라도 관계없는 타 소속사 선배면 남남이나 마찬가지인데. 평가하기가 좀 그렇지.’

멘토는 심사평도 최대한 좋은 쪽으로 할 예정이다. 이른바 당근 역할이었다.

멘토 역할은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문제없고,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소속사 프로듀서가 연습생들을 어떻게 평가할지’였다.

그들은 실제로 데뷔할 신인들과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이라, 그냥 소속사의 의견을 대변하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뉴레인의 프로듀서로 나서는 사람은 해외 팝가수 프로듀싱에 참여한 경력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예전에 송 피디님이 그랬지. 뉴레인이 해외에서 사람을 자꾸 섭외해와서 자기가 굳이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고.’

지금 뉴마의 프로듀스 팀을 맡고 있는 송준오 피디를 스카우트할 때 들은 이야기였다.

아무튼 뉴레인의 프로듀서가 뉴레인의 연습생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들어보면 그들이 어떻게 데뷔조 다섯 명을 밀고 싶어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최근 탈뉴마 계획 때문에 계속 이사실에 붙어 있던 나도 평가 현장은 직접 관람하기로 했다.

“연찬 군은 보컬 스타일이 독특해서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는데, 이번엔 자기 스타일을 잘 받쳐줄 팀을 잘 꾸렸네요. 무대를 보면서 신선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고요.”

뉴레인의 프로듀서는 뉴레인의 기획팀에서도 밀고 싶어 했던 연찬의 유니크한 보컬 스타일을 콕 집어냈다.

‘사람들은 본인이 판단하기보다 전문가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가 있으니까.’

음악을 오래 했다는 사람이 이렇게 먼저 말해두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아, 이게 저 출연자의 강점이구나. 잘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겠지.

같은 말이라도 ‘호불호가 갈릴 스타일이라 걱정이다.’라고 하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유도할 수도 있다.

어쨌든 뉴레인은 이 강점을 계속 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뉴레인의 또 다른 팀은…….’

연찬이 속하지 않은 다른 팀의 주요 보컬 파트는 보현이 맡았다.

그런데 프로듀서는 의외로 보현에게도 좋은 평가를 남겼다.

“원곡의 느낌을 잘 살린 걸 보니까 연구를 많이 했다는 게 느껴지네요. 그 사이에서 보컬이 특히 균형을 잘 맞춰준 것 같습니다.”

이게 끝이야? 트집을 잡지는 않고?

‘첫 미션이어서 일단 다 평가를 좋게 주려는 건가?’

그런데 계속 들어보니 뉴레인의 타 연습생보다 보현의 평가가 확실히 좋은 편이었다.

뉴레인은 에이펙트 엔터보다 보컬 특화 연습생 수가 적다. 뉴레인이 메인 보컬로 점찍어놨을 연찬의 경쟁자가 될 사람은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인 보현을 초장부터 억누르지는 않는단 말이지.

‘아마도 방송을 위해서 보현이를 꽤 길게 데려갈 생각인 것 같아.’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더라도 경쟁 구도를 보이다가 드라마틱하게 선발되어야 더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테니까.

만일 그렇다면 보현에게는 앞으로의 방송 촬영은 전부 희망 고문일 터였다.

모노크롬 데뷔조로 뽑힐 뻔했다가 만년 연습생으로 남았던 도한이 떠올랐다.

‘연찬이가 소속사의 뒷배를 업고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 제일 견제하기 좋은 수는 보현이야.’

나는 이전에 보현이 뉴마의 배우 지망생으로 있을 적 기록을 찾아봤었다.

뉴마의 배우팀이 평가한 그의 장점은 쾌활한 인상과 울림이 좋은 목소리. 단점은…… 감정 과잉.

대체 연기를 어떻게 했길래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연기를 할 줄 아는 그가 이익을 위해 좀 더 영악하게 움직일 수 있다면…….

모노크롬이 직접 움직이거나 SPID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 외에도, 다른 쪽으로 뉴레인의 계획을 방해할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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