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화
데뷔 서바이벌 기획에 참여하는 것은 뉴마가 아니라 모노크롬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제작진에게 뭔가를 요구하려면 일반적으로 뉴레인을 통해야 했다.
그런데 그 뉴레인이 비협조적으로 나온 탓에 연찬이 소개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는데.
‘이렇게 항상 다른 회사를 통해서 일을 진행해야겠냐고…….’
에이펙트 엔터와 함께 ‘타 소속사 연습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아직 익히지 못했으니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요구한 덕분에 연습생 전원의 인터뷰 촬영본을 입수할 수 있었다.
SPID 멤버들을 통해 에이펙트 엔터의 협조만 구한다면 우리는 뉴레인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뭐, 우리가 이걸 받아서 연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단 것도 아니고 진짜로 타 회사 연습생들 얼굴도 알아두긴 해야 하니까.’
에이펙트 엔터에도 뉴레인 연습생들의 인터뷰 영상이 전달됐겠지.
다른 회사에 소속 연습생들의 정보를 자세히 넘긴다는 것은 회사 입장에선 민감한 일이었다.
연습생들은 회사를 나가거나 소속을 옮길 수 있는 존재니까.
그래서 이번에 두 회사의 연습생들은 탈락하더라도 방송 이후 일정 기간은 서로의 회사로 빠지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었다나.
혹시나 상대 회사에 마음에 드는 연습생이 있으면 뒤에서 접촉하거나 방송 이후에 데려오려고 일부러 심사 점수를 낮게 주는 등 떨어트리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두 회사가 이번에 신인을 데뷔시키면 다음 보이그룹 런칭까지는 시일이 걸릴 테니까. 탈락한 연습생들한테도 상대 회사가 좋은 선택지는 아니겠지.’
데뷔 서바이벌 참가자들의 소개 인터뷰는 멤버들과 함께 확인했다.
참가자들 얼굴도 익히고, 내정된 데뷔조만 너무 튀지 않는지 확인도 하고, 연찬이 해랑에 대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듣고.
탈락 예정자들이 얼마나 데뷔를 간절히 염원하는지를 본인의 입으로 듣고 있다 보니 우리의 목표 의식이 강화되기도 했다.
‘모노크롬에게는 뉴레인이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 탈뉴마를 계획 중이지만…….’
신인 입장에서는 뉴레인에서 데뷔하는 것이 그리 나쁜 선택지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소속사에서 데뷔해 아무 인상도 남기지 못하고 스러지는 그룹도 많은데, 유의미한 성적을 남긴 선배 가수가 있고 소속사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는 건 확실한 장점이었다.
게다가 지금 뉴레인에는 소속 보이그룹이 없으니 신인을 밀어줄 수밖에 없고.
모든 연습생에게 데뷔의 기회를 주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선택지가 얼마 없는 이들에겐 뉴레인이 선택지가 될 만해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상을 확인하다 보니, 드디어 연찬의 순서가 다가왔다.
[모노크롬 백해랑 씨 동생이라고 들었는데, 이번에 데뷔조 선발 기회를 얻게 된 데에 형의 도움이 있었나요?]
[아……. 여기서 형 얘기 해야 하나요? 사람들이 가족 얘기 할 것 같아서 조금 그런데.]
영상 속의 연찬이 머쓱하게 웃으며 곤란한 듯이 말했다.
의외로 연찬도 가족사는 밝히고 싶지 않은 걸까?
‘……그런 것치고는 나한테는 만나자마자 얘기했는데.’
의아한 마음으로 계속 들어보니, 방금 그건 그저 운을 떼는 서론에 불과했고 그 뒤가 본론이었다.
[사실 형이 학생 때부터 밖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다 보니 다른 형제들처럼 친하게 지내거나 그러질 못해서요. 요즘엔 특히 바빠서 연락이 잘 안 되기도 하고. 형은 제가 뉴레인 들어간 것도 몰랐을걸요.]
……얘는 무슨 해랑이를 동생한테 관심 없는 냉정한 애로 만들고 있어?
해랑이 요즘 연찬의 연락을 피한 것은 맞지만, 전후 사정이란 게 있잖아.
아이돌이 되겠다고 해랑을 들들 볶았던 것이나, 뉴레인에 들어온 것을 일부러 숨겼던 것이나.
연찬은 그런 사정은 쏙 빼고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말했다.
딱히 거짓은 아닌데 사실이라고 하기에도 오묘한 선을 타면서.
“…….”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멤버들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한 표정이었다.
……일단은 무슨 말을 더 하는지 계속 확인해 보자.
[그러면 이번에 형의 도움은 전혀 기대하지 않나요?]
[그렇죠. 원래 그게 공평하니까요. 사실 형은 래퍼고 전 보컬이라 도와줄 만한 것도 없어요. 형은…… 그냥 여기서라도 볼 수 있으니까 반갑고…….]
이렇게 말하며 연찬은 어딘가 쓸쓸한 듯한 표정까지 지어냈다.
‘얘 무슨 연기라도 배웠나?!’
남의 동생을 두고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영악하다’란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모노크롬 팬미팅 때도 그랬지.
연찬이 아프다고 해서 해랑의 부모님이 못 오신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결국엔 별일이 아니었다.
그 별것 아닌 일로 어떻게 부모님 둘의 발을 묶었나 했더니…….
아픈 척 연기를 정말 잘했던 게 아닐까.
‘해랑이는 연기 레벨이 그렇게 낮은데…….’
피가 이어진 형제가 아니라는 것이 이런 점에서도 느껴졌다.
저번에 카메라 앞에서 만났을 때 아는 체도 안 하고 데면데면하게 굴던 건 이 인터뷰의 연장선이었던 듯하다.
어릴 적부터 형이 아이돌을 하겠다고 집을 나가는 바람에 어색해진 형제 사이. 형과 친하게 지내지 못해서 쓸쓸한 동생.
연찬은 그런 캐릭터를 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안 되겠다. 그냥 다음에 만나자마자 꿀밤을 콱 쥐어박아.”
잠시 이어진 정적을 깨트린 것은 한이였다.
연찬이 ‘외로운 동생’ 캐릭터를 잡은 이상, 우리도 방송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정해야 했다.
전처럼 보디가드 포지션으로 해랑을 둘러싸고 두 사람이 엮이지 않도록 부자연스럽게 떨어트리면 그게 더 이상해 보일 테고.
해랑이 동생과의 이 억압적인 관계만큼은 마무리 짓고 싶어 했기에 멤버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한 대 콱 쥐어박고 치고받고 싸워. 감정의 골이 깊으면 아예 툭 터놓고 싸우는 게 나을 때가 있더라. 그렇죠, 이사님?”
“왜 나한테 동의를 구하는 거야……?”
“전에 이사님이 저한테 천상식 선배님이랑 치고받고 싸우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아, 아니, 뭐…… 계속 참기만 하지 말라는 뜻이라면 맞는데.”
해랑은 그 옛날부터 참고만 있었다. 기껏해야 용기를 낸 게 동생의 연락을 피하는 것 정도.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면 나쁘지 않은 방향 제시였다.
그러나 해랑은 이 말을 한 사람이 한이라서인지, 아니면 싸운다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큰둥했다.
“네 해결법은 별로…….”
동생 일에는 항상 소극적인 태도인 해랑을 보고 동생이 있는 준해가 한마디 거들었다.
“동생이랑은 원래 싸우면서 지내는 거야!”
“내 말이.”
연찬을 또라이라고 부르던 준해였기에 꿀밤이라는 강경한 대응법에도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한이는 그 싸우는 동생 입장이었는지 “그럼, 그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누나랑 싸우지도 못하고 맞았는데…….”
……똑같이 동생 입장인 우형은 상황이 좀 다른 듯했지만.
착한 동생이었을 것 같은데 왜 맞았을까. 이전에 만난 우형 누나의 말을 떠올려보면 자신 없는 모습을 보여서 어깨 좀 펴고 살라고 등짝을 한 대 때려준 게 아닐까.
아무튼 형제 관계에서 힘이 오가고, 싸우고, 화해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인 듯했다.
멤버 중 유일하게 외동인 재민만이 그 옆에서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준해랑 싸우고 싶지 않은데.”
“그거야 말싸움하면 네가 밀리니까 그런 거겠지.”
재민이 친동생은 아니지만 동생인 준해를 보며 그런 말을 하자, 한이는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게 ‘너는 바보다’ 같은 소리로 들렸는지 재민의 표정이 바로 불퉁해졌다.
이러다가 형제간의 싸움을 친절하게도 바로 눈앞에서 재현하게 되겠어.
“아무튼 해랑이는 거짓말은 잘 못하는 성격이잖아.”
내가 분위기 환기 겸 입을 열자 잠시 옆길로 샜던 멤버들은 다시 회의 분위기로 돌아왔다.
해랑은 성실하고 솔직한 성격이다. 동생과 다르게 영악하게 행동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시키면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해랑도 동의하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에게 꿀밤을 먹이라든지 한번 대차게 싸우라는 등 그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을 시킨다고 그가 갑자기 잘 해내겠는가. 그러지 못해서 지금 이 지경이 된 건데.
그런데 한이가 뭔가 반박할 것이 있는지 손을 들었다.
“해랑 형이 저한테는 짜증 많이 냈는데요.”
“그건 형이 이상한 거야.”
“그래?”
준해의 한마디에 바로 수긍했는지 손을 바로 내렸지만.
왜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지. ‘해랑의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자’ 정도로 알아들은 거 아니야?
아무튼 멤버들에게선 별다른 방도가 나오지 않았다.
몇 년이나 같이 고민하고 고통받던 일인데 갑자기 좋은 해결책이 반짝 떠오를 리는 없지.
그리고 지금 여기서 멤버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내가 아닐까.
‘나는 해랑이랑 같이 지낸 기간이 멤버들보다 짧으니까.’
멤버들은 몇 년 동안이나 연찬을 적대해 왔기에 본인들의 감정이 들어가서 ‘한 대 쥐어박아라’ 같은 소리부터 하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해랑이 며칠 틀어박히는 상황만 한번 겪어봤지, 힘들어하는 모습을 직접 봐온 것은 아니었기에 멤버들보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지금 이렇게 골머리를 썩이고 있지만 사실은…….’
해랑은 동생을 좋아한다.
아끼기 때문에 아직도 그에게 휘둘리면서 얽매여 있는 것이다.
최근에 연락을 피하기는 했지만 그건 다른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였지, 동생에게 정이 떨어져서는 아닐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불편한 것은 다르다.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일대일로 만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은 기쁘지만, 자신의 모습이 상대에게 어떻게 비칠까 신경 쓰여서 불편하겠지. 그런데 상대가 자신을 싫어하는 걸 알고 있으면 슬플 테고.
해랑은 지금 그런 상태인 것이다.
‘평소에도 동생들이나 후배들을 볼 때 더 챙겨주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단 말이지.’
동생…… 그러니까 한이를 제외한 동생들을 볼 때 해랑의 표정은 선배인 라솔이나 형인 우형, 친구인 하범을 대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뉴레인의 연습실에서 연습생들 사이에 섞여 있는 연찬과 마주했을 때, 같은 표정이었던 것을 보고 그런 확신이 들었다.
해랑은 동생에게 한없이 약하다.
“이렇게 하자. 연찬이가 형을 좋아하는 동생 이미지를 만들어놨으니까, 너는 그냥 거기 맞춰서 좋은 형이 되어 줘.”
매정하게 구는 방법만 생각했는지, 해랑은 내 말을 듣고 의외라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사실 동생을 견제한다는 것이 해랑 입장에선 찝찝할 터였다. 아마 부모님도 방송을 볼 테니 더욱 그럴 테고.
“그냥 다른 평범한 형제처럼 대해 봐. 동생한테도 나쁘지 않을 거야.”
이게 해랑에겐 가장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연찬에게는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 사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
모노크롬은 또다시 멘토 역할로 나섰다.
오늘 찾아온 이유는 저번처럼 아이돌이란 직업에 대한 전반적인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이번 미션 무대의 중간 점검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SPID는 전날에 이미 따로 다녀갔다고 하고, 오늘은 모노크롬과 연습생들이 모여 촬영을 준비 중이었다.
“뭐, 뭐야?”
연찬이 자신의 머리로 와 닿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았다.
그의 뒤에는 천천히 손을 내리는 해랑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떠서.”
“……내가 알아서 할게.”
남들 앞이기에 팩 쏘아붙이지 못하고 비교적 온순하게 대답한 연찬은 바로 다시 뒤돌았다.
해랑의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었으나, 해랑은 아련한 눈빛으로 그런 동생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는 이들이 있었다.
“왜 보는 내가 이렇게 짠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