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56화 (256/430)

# 256화

‘갑자기 인터넷에 한이 집안에 대한 소문이 왜 퍼졌지……?’

한이가 가족 이야기는 사생활로 여기기에 외부에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느닷없이 이런 일이 생겼다.

아니, 따지자면 아예 느닷없는 일은 아니었다.

한이가 얼마 전 <송투유> 촬영을 마치고 오더니 내 앞에서 “그 부분을 싹 편집해 달라고 하면…….”, “아니지. 그 내용이 빠지면 갑자기 태도가 바뀐 게 이상해 보일 텐데?”라며 제자리를 뱅뱅 돌며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모노드라마. 내적 갈등을 표현하는 일인극을 보는 것 같았다.

소문의 출처가 대개 ‘음대’인 것으로 봐선, 그날 한이가 촬영하며 만났다는 교수라는 사람이 이 소문의 근원지로 추정되었다.

그녀가 직접 퍼트린 건 아니고, 아마도 동료 교수나 조교 등 가까운 사람에게 말한 것이 입을 통해 퍼져나간 듯했다.

‘원래 아이돌에 대한 소문이 빨리 퍼지긴 하지…….’

그러나 누가 비방용으로 소문을 퍼트린 것도 아니고, 부정적인 뉘앙스로 이야기가 도는 것도 아니고, 단순 사실이 퍼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 소문을 접한 컬러즈는 대개 반응이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이 완전 도련님이었잖아!’ 하며 감탄하는 사람들과, ‘한이가 말 안 한 건데 우리가 알아도 되나……?’ 하며 동공 지진을 일으키는 사람들로.

멤버들에 관한 것은 무엇이든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인데 한이가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다면 그럴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듯했다.

‘으음. 그 당사자인 한이도 예상 못 하게 알려진 일이라 어느 한쪽만 올바른 반응이라고는 못 하겠네.’

한이가 빙글빙글 돌며 일인극을 펼치는 동안, 나는 촬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매니저에게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하필 한이 가족의 얼굴을 알던 음대 교수님이 한이를 알아봤고 묘해진 분위기 속에서 제작진이 무슨 일인지를 물어봤다고 한다.

사소한 일이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천상식이 갑자기 “아버님은 잘 지내시는지…… 전에 딱 한 번 뵀었는데.” 하며 공손해지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이는 제작진에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성악가라는 점을 알려주며, 방송에서 가족 이름은 안 나오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그 정도는 제작진도 오케이했다고.

‘그래도 2대를 이어온 성악가 중에서 유 씨를 찾아보면 이름도 금방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이의 성씨가 ‘김’이나 ‘이’였다면 그나마 찾기 어려웠을 텐데. ‘유’ 씨 성악가는 왠지 손에 꼽을 것 같단 말이지.

그것도 그 음대 교수라는 사람과 천상식이 이름을 듣고 바로 알 만한 유명한 사람이면.

그래서, 촬영을 마치고 와서 빙글빙글 일인극을 펼치던 한이는 지금 어찌하고 있냐면…….

‘요즘은 멤버들 멘탈이 어떤지 알기가 쉬워.’

또 기타를 연습하는 재민의 청중이 되어주고 있었다.

멤버들은 멍하니 모닥불을 바라보며 상념을 지우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재민을 활용하고 있었다.

이미 소문이 퍼진 이상 자신이나 회사가 통제할 수도 없으니 체념한 듯 보였다.

옆으로 다가가자 한이는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역시 두목님께 처리를 부탁해야…….”

“뭐를?”

촬영본을? 아니면 PD나 천상식을……?

눈을 끔뻑이고 있으니 한이가 작게 한숨을 쉬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장난이에요. 어차피 소문난 김에 방송 나가나 안 나가나 크게 달라질 건 없겠죠. 뭐…… 거창한 정보도 아니고.”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단지 좀 마음에 안 드는 건.”

바로 몇 초 전까지 힘없이 대답하던 한이는 고개를 불쑥 치켜들며 심통 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의 일인극 모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천상식 선배님이 갑자기 친절해졌다는 점이에요!”

“……그건 좋은 일 아냐?”

“제가 지금까지 그렇게! 노력해서 의견을 좀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됐는데, 선배님이 이렇게 나오면 제 노력이 아니라 그냥 제 집안 때문에 봐주는 것처럼 되어버리잖아요.”

하긴, 한이는 요즘 <송투유>를 촬영하러 다녀오면 ‘오늘도 해냈다’라는 표정을 짓고는 했다.

선배에게 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듯한,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관계가 갑자기 휙 바뀌어 버렸으니.

‘천상식 그 사람도 웃기네.’

그도 이런 점을 노리고 갑자기 한이에게 친절해진 게 아닐까.

자신은 후배와의 기 싸움에서 진 게 아니라, 존경하는 선생님의 손주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그림으로 만들기 위해.

결과적으로는 이제 그와 다툴 일 없고 촬영도 수월하게 진행될 테니 좋은 일이긴 한데, 한이의 자존심 대결은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그러면서 계속 ‘왜 아이돌 하냐’는 눈으로 보는 것도 그렇고…… 제 주변 어르신들은 왜 다 그런지 몰라요.”

“누가 또 그러는데?”

“저희 아버지가 딱 선배님 같은 스타일이시거든요. 하필이면 트로트도 좋아하셔서.”

아하. 그래서 한이가 천상식에게 대들 마음을 쉽게 먹었나 보네.

한이는 천상식보다는 아버지가 더 신경 쓰이는지 아버지에 대한 화제로 옮겨갔다.

“사실 어릴 때 피아노를 치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저한테 노래를 더 잘 부르니까 노래를 배우라고 하시더라고요. 전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해서 그걸로도 만족했어요.”

“그래서 노래를 배우기 시작한 거야? 보컬이 된 것도?”

“네. 노래를 잘 부르면 뭐든 다 좋아하실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성악 한정이었더라고요.”

그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나니, 부모님 얘기가 나올 때마다 ‘괜찮다. 신경 안 써도 된다.’라고 했던 그의 태도가 이해되었다.

한이는 아이돌을 꿈꾸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에겐 내놓은 자식이 되어 버렸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 아버지한테 배운 거 싹 지우고 다시 처음부터 제 스타일 찾으려고 엄청나게 공부 많이 했어요. 저 혼자서도 충분히 잘한다고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고 보니 한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대중적인 스타일을 만들려고 고민을 많이 했었다고. 공부하면서 라솔의 노래도 엄청 많이 들었다면서.

그리고 실제로 그는 대중적이고 어디든 잘 어울리는 보컬 스타일을 구사해냈다.

“노력해서 진짜로 잘하게 됐잖아.”

“그런데 그것도 아버지 눈에는 다 쓸데없는 일처럼 보이나 봐요.”

“아이돌로 상도 받고 1위도 하고 그랬는데도?”

“저도 그러면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아직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니신다고…….”

한이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게 아마도 그가 음악대상을 좋은 목표라고 했던 이유인 듯했다.

“저는 아이돌 아들 있으면 자랑스러워해 줄 건데. 이렇게 오래 유지하고 자리 잡은 그룹이면 주변에 자랑도 하고.”

자화자찬 같지만 다 맞는 말이었다.

‘제게 아들이 있다면’을 상정한 말이지만, 아마도 본심은 한이 본인이 아버지에게 그런 아들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어렵네…….’

천상식도 그랬듯이, 한이가 아무리 잘하고 노력해봐도 상대방의 마음이 닫혀 있으면 요지부동일 텐데.

“그래서, 넌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어?”

“그러면 뭐, 좋죠. 근데 이렇게 돼서!”

한이는 다시 내적 갈등을 온몸으로 표현하듯이 손을 들어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성악 안 한다고 나갈 땐 언제고 이제는 또 방송에서 써먹는다고 뭐라고 하실 것 같은데!”

“…….”

방송국 앞에선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아이돌의 숙명이었다.

아무도 대들지 못하는 천상식에게 대드는 것은 방송적 재미로 넘어갈 수 있지만, 그 캐릭터가 잘 먹힌다고 제작진에게도 대들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촬영분을 잘라 달라고 하기에는 그날 촬영엔 초대 손님까지 있었고. 천상식의 행동도 부자연스럽게 싹 바뀌어 버렸고.

“회사가 나서서 얘기해 볼까?”라고 물었더니 한이도 “아니에요…….” 하고 말았지만 마음에는 계속 걸리는 모양이었다.

‘흐음. 이렇게 된 이상…….’

아버지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반.

이미 퍼진 소문을 주워 담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으니, 이제는 정면돌파밖에 방법이 없지 않을까.

한이의 마음이 좀 편해지려면 말이다.

“아버지가 트로트 좋아하신다고 했지?”

“네.”

“그럼 천상식 씨도 좋아하시려나?”

“그쵸. 트로트 좋아하는 사람 중에 선배님 노래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걸요?”

“그럼 이렇게 하자.”

한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전혀 예상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천상식이 이제 한이에게 우호적으로 돌아섰으니 그걸 이용해서…….

“너는 그냥 마음껏 효도하는 거야.”

***

“교수님. 작은 아드님이 아이돌 가수라면서요? 왜 저희한테는 말씀 안 해주셨어요.”

“어쩐지~. 큰 아드님도 인물이 훤하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아드님은 연예인일 줄이야!”

“선배. 그것도 보셨어요? 최근에 하는 드라마 중에 <기로> 있잖아요. 재밌게 봤는데 알고 보니까 거기 나온 배우가 교수님 아드님이라 해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정말? 아니, 이렇게 유명한 아들을 어떻게 한 번도 자랑하지 않으실 수가 있죠?!”

“아, 한번 실제로 보고 싶다~.”

“잡담하지 말고 일들 해.”

한이의 아버지이자 성악가인 유찬일 교수. 그는 최근에 어딜 가든 이런 소리를 들었다.

한이의 가족에 대한 소문이 가장 많이 도는 곳은 아이돌 팬들이 자주 드나드는 온라인 커뮤니티, 그다음이 음대였다.

교수, 학생 할 것 없이 전공자이다 보니 이 학교, 저 학교에 인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입에서 입을 통해 이야기가 쉽게 퍼져나간 것이다.

‘그렇게 시끄러운 걸 좋아하더니…….’

이렇게 아버지 주변까지 시끄럽게 만들 줄이야.

그가 평소에 항상 듣는 ‘아들’ 이야기는 주로 큰아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엔 말한 적도 없는 작은아들 이름이 나와 깜짝 놀라 ‘대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냐’며 물으니.

[개화예대 황 교수님이 같이 방송 촬영을 했다던데요?]

그 녀석은 뭘 하길래 성악과 교수랑 방송 촬영을 해? 얼마 전까지는 무슨 배우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아이돌이 어떻게 바쁘게 지내는지 정확히 모르는 그는 ‘원래 한이는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유찬일은 해외에서 주문한 공연 DVD를 찾으러 조교실에 들렀다가 또 잡담하기 좋아하는 조교에게 붙잡혔다.

“아유, 교수님. 아드님이 아버지를 이렇게 아끼니까 정말 좋으시겠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어머. 아직 못 보셨어요?”

그러면서 조교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보여준 것은, 2시간 전에 올라온 한이의 SNS 글이었다.

[(사진) 아빠가 참 좋아해서 특별히 부탁드린 천상식 선배님 사인^^ 아빠 가져다드려야지~ 아빠 너무 좋아하시겠다~~^ㅇ^~~조만간 들고 집에 들를게요!!]

한이가 지금껏 하지 않던 가족 얘기를 먼저 꺼내자, 사생활을 건드려도 되나 주저하던 컬러즈는 금기가 풀린 것처럼 같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와! 아버님이 천상식님 좋아하시는구나! 우리 아빠도 되게 좋아하시는데 진짜 좋아하시겠다! 한이 촬영 힘내!!]

[우리 한이 효자다 효자야]

[나도 이렇게 일하면서도 생각하고 챙겨주는 아들 있었으면 좋겠다ㅠㅠㅠ]

유찬일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희대의 효자를 둔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조교실을 나와 교수실로 들어오자마자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아버지. 지금 촬영 중인 줄은 또 어떻게 아시고. 천상식 선배님, 지금 전화 저희 아버지신데…….]

천상식에게 전화를 넘기려고 하기에 바로 뚝 끊어버렸지만.

더 황당한 것은, 집에 와서 본 아내의 반응이었다.

“한이가 안 그런 척 보여도 평소에 아빠 생각을 많이 했나 봐.”

그녀도 음악계에 몸을 담은 사람이고 주변인들에게 아들 이야기를 들었을 터.

그런데 유찬일과 다르게 그녀는 아들의 행동을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

‘이게 뭐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이상한 세계에 빠진 것 같았다. 황당해하는 자신만이 이상해진 상황.

그는 뭐라 반박하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강제 효도를 받는 아버지가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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