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화
선후 관계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느낌이 달랐다.
초대도 못 받았는데 팬들과 경쟁해가며 티켓팅까지 해서 오기는 좀 힘들 테니까.
애초에 초대를 안 하는 이유가 또 따로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가족으로서는 친하지만 아이돌 한이와는 거리감이 있는 모양이었다.
‘한이의 형이라…….’
멤버의 형제라고 하니까, 분위기는 다르지만 우형과 민형, 그리고 우형의 누나는 눈매가 비슷했던 것이 떠올랐다.
준해 동생도 동글동글한 인상이 준해와 비슷했고.
“그럼 한이 형도 배우 김형운 씨랑 닮았나?”
“으음…….”
우형은 한이의 형 얼굴과 김형운의 얼굴을 동시에 떠올려보려는 건지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 질문에는 옆에 있던 준해가 대신 대답했다.
“한이 형을 기준점에 두고, 김형운 선배님이 오른쪽이라면 한이 형네 형님은 왼쪽에 있는 느낌이에요.”
“맞아. 딱 그런 느낌이다.”
준해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래프 같은 것을 그리며 열심히 설명했다.
추상적인 설명이지만 대충 어떤 것을 표현하려는지는 알 것 같았다. 두 사람 다 한이와 닮긴 닮았는데 다른 계통으로 닮았나 보군.
이렇게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얼굴은 상상이 안 가지만.
내가 생각에 빠져 있자 준해가 뭔가 떠오른 듯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포털에 검색하면 나오는데.”
“음? 한이 형이? 유명한 분이셔?”
“어, 모르셨어요?”
형이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굳이 알아볼 생각을 안 했지.
멤버의 형제가 있다고 그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볼 생각은 보통 안 하잖아? 그냥 형제가 있나 보다, 그렇구나, 하고 끝나지.
내가 전혀 모르는 눈치자 우형이 먼저 말했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하시거든요. 한이네 형님.”
“아. 난 또. 얘기 듣고 연예인이신가 했어.”
포털 사이트에서 인물 정보를 검색하면 연예인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나 예술인, 평론가 등 다양한 사람이 나온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어야 인물 정보가 올라가지 않나?’
내가 오기 전부터 모노크롬은 이미 인물 정보가 등록된 상태였기 때문에 등록 기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리고 보통 가족이 인물 정보에 등록된 사람일 경우 가족 관계로 같이 뜨기도 하던데.
한이는…… 프로필에 따로 가족 항목으로 뜨는 게 없었지.
“혹시 남들한테는 숨기는 중이야?”
“그건 아닐걸요? 가끔 형님 연주회 있다고 회사에서 얘기한 적도 있어서. 예전부터 일하신 직원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모노크롬 전담팀 메인 인원 중 내가 가장 멤버들과 알고 지낸 기간이 짧아서 나만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팬들은?”
“팬들한테는 말한 적 없었어요. 아무래도 얼굴이 알려져서 그런 것 같더라고요.”
공개된 정보는 아니고, 한이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내용이고.
한이는 가족에 대한 정보를 사생활의 범위로 생각하는 듯했다.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활동하는 분이면 신경 쓰일 수도 있지.’
알려지는 순간 그는 ‘아이돌 한이의 형’으로 불리게 될 테고, 사람들이 얼마든지 자신의 형이 뭘 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면 한이도 부담될 테니까.
모노크롬만 해도 4년이나 학교에 다니면서 신분을 숨긴 준해도 있는데, 뭐.
7년 차에 가족 관계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피아니스트라…….’
한이가 항상 자기는 피아노를 못 친다고 했었는데.
그는 정말 꾸준히 그렇게 말해 왔었다.
다른 멤버가 피아노 치는 것을 보면서도, 피아노 학원 선생님 역할로 연기를 하게 되었을 때도.
‘피아노……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그가 피아노에 거리를 두는 이유엔 가족이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왜 갑자기 제가 성악 발성을 배워야 하죠……?”
“편곡 방향 못 들었어? 좀 더 웅장한 느낌으로 가자고 했잖아.”
그거야 물론 들었다.
원곡보다 좀 더 낮고 차분하게 진행하다 후렴에선 스트링 사운드를 풍성하게 사용하여 감정을 터트리듯이 진행하자는 의미였다.
평소보다 더 저음을 많이 써야 했기에 한이의 기존 보컬 스타일과는 조금 달라지긴 했다.
“지금 상태로는 안 돼. 울림이 부족해, 울림이.”
“아니, 저번엔 저 부르는 거 잘 들으시고는-.”
눈에 콩깍지가 씌듯이 그의 귀에는 한이에 대한 편견이 한 겹 씐 게 아닐까.
한이의 장점은 귀에 안 들어오고, 못하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만 열중인 것처럼 보였다.
천상식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오늘 촬영장엔 두 사람 외에 중년 여성 한 명이 더 와 있었다.
황여진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천상식의 학교 후배로, 현재 한 대학교의 성악과 교수로 재임 중이었다.
“아유. 이 선배 고집은 아무도 못 꺾어. 그냥 하자는 대로 다 해주고 ‘네~, 네~’ 하고 넘어가는 게 제일 마음 편해요.”
“쓸데없는 말을 해!”
천상식이 괜한 소리 말라는 듯이 소리를 높이자 그녀는 깔깔 웃어넘겼다.
인정한 후배와는 이렇게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는 건가. 천상식과 몇십 년을 선후배 관계로 지낸 그녀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지금 발성은 어디서 배웠어요?”
“레슨도 받고, 스타일 찾으려고 혼자 연구도 많이 했어요.”
한이의 현재 보컬 스타일은 여러 고민과 연구의 산물이었다.
당시 한이가 가장 신경 썼던 점은, 어떻게 성악 습관을 버리고 대중적인 스타일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대중가요 스타일을 완성해놨는데 다시 성악을 가르치겠다니. 황당하지만 일단 따라가야겠지.
한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황 교수는 정말 기초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많은 분이 복식호흡을 어렵게 생각하시는데요. 우선 배꼽을 기준점으로 생각하면…….”
이것은 한이에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방송을 위해 쉬운 설명을 부탁드린다고 PD가 그녀에게 부탁하는 것을 한이도 옆에서 들었다.
음악 예능이다 보니 시청자 중에도 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나.
한이는 황 교수의 옆에 서서 시범을 보이듯이 그녀의 설명을 따랐다.
‘……이거 진짜 어릴 때 배우던 거네.’
한이가 아주 어릴 적에는 아버지도 그에게 성악을 본격적으로 가르치지는 않았다.
변성기가 오기 전엔 목을 너무 혹사하는 것도 좋지 않고 목소리 톤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단순히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던 어린 한이는 할아버지에게서 이런 기초들을 배운 적이 있었다.
물론 제대로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하며 더 정확히 배우긴 했지만 그보다는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자연스레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는데, 천상식과 눈이 마주쳤다.
마치 ‘지금 이게 장난하는 것 같냐’는 듯한 눈빛에 한이는 서둘러 웃음을 갈무리했다.
피아노 음계에 따라 ‘마’ 소리를 내며 발성 연습을 하는 것까지 한이가 잘 따라가자 황 교수는 웃으며 칭찬했다.
“오우. 잘하는데요?”
“그렇다고 하십니다, 선배님.”
“그거 잠깐 했다고……!”
한이는 중간중간 천상식을 도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예 노래를 안 부르던 사람도 아니고 몇 년이나 노래를 불러온 가수에게 이 정도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발성 연습이 이어질수록 칭찬은 점점 의문으로 변해갔다.
“으음? 잘하는데요?”
그저 보컬리스트라 빨리 배운다고 생각했으나, 몇 번 더 해보니 이상함을 느낀 듯했다.
한이도 꽤 오래 성악을 쉬었기에 잘 될지는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몸에 각인이라도 된 것처럼 목에서 뻗어져 나오는 소리는 예전과 변함이 없었다.
‘지금 돌아와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던 형의 말이 떠올라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이 친구는 원래 성악 발성을 할 줄 아는 것 같은데요? 어디서 배운 적 있어요? 전공이 뭐예요?”
“저 대학교는 방연과…….”
황 교수는 이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야겠다는 듯이 점점 한이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캐내려 했다.
“그 이전에는?”
“하, 하하. 오래 배운 것처럼 잘 부른다는 말씀이시죠? 그러면 오늘은 통과인 걸로…….”
“아예 배운 적이 없어요?”
화제를 바꾸려던 한이는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가족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 성악을 배웠던 시절까지 전부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쩌면 이 방송을 가족이 볼 수도 있고.
항상 당당한 모습만 보이던 한이는 결국 소심하게 대답했다.
“어릴 때 좀 배우긴 했는데요…….”
별로 카메라 앞에서 말하고 싶지 않아서 대충 얼버무린 것이었으나 황 교수는 ‘어릴 때’라는 점에 집중했다.
그녀에겐 많은 이들을 가르쳐오면서 쌓인 데이터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성악이라는 쉽게 접하지 못할 분야를 배웠다면 대개 두 가지 케이스였다.
재능을 보여서 학교 음악 선생님 등 음악인의 눈에 띄었거나, 애초에 부모님이 음악에 관심이 있었거나.
부모님. 가족. 그 가능성이 떠오르자 처음엔 ‘요즘 애들 좋아할 것처럼 잘생겼네’ 하고 생각했던 한이의 얼굴이 눈에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이름도.
“혹시, 형이 피아니스트 아니에요?”
“저, 교수님. 그건.”
한이가 카메라를 곁눈질하며 빠르게 입술 앞에 검지를 세우고 내렸다.
그래도 그 모습으로 충분히 대답이 되었는지 그녀도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상식까지 입을 닫은 것은 아니었다.
“황 교수.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녀는 마이크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천상식의 귓가에 소곤댔다.
“유병학 선생님 손주분이시잖아요……!”
천상식은 트로트 가수로 진로를 틀었지만 그녀는 음대 교수로서 지금도 여러 음악인과 활발히 교류하는 중이었기에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유병학 선생님에겐 두 명의 손자가 있었다는 것을.
한이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황 교수는 아버지를 따라 공연장에 온 어린 한이를 직접 본 적도 있었다.
‘손주? 그렇다면 할아버님 나이 대에, 황 교수가 ‘선생님’ 호칭으로 부르는 유병학이란 분은…….’
거기까지 생각한 후, 천상식도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시 한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화장을 허옇게 해놔서 얼굴을 봐서는 잘 모르겠……. 아니, 듣고 보니 피가 이어진 것처럼 닮은 것도 같고.
천상식은 유병학 선생님의 아들, 유찬일 교수의 얼굴을 흐릿하게나마 떠올려냈다. 확실히 부자 관계라고 하면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아니. 왜 그 집안에서 성악을 배우지 않고…….”
왜 아이돌이 되었냐는 질문이었다.
이 점까지 아버지와 닮은 듯해서 한이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제작진만이 어리둥절한 채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뀐 이 현장을 지켜봤다.
***
━━━━━━━━━━━━
음대 다니는 지인한테 들었는데 현역 아이돌 중에 유명한 음악가 집안 출신 있대
음악으로 3대 이어진 집안인데 아이돌 한다고 나왔다더라
└오 누구?
└몰라 유명 아이돌 중에 있다던데
└소문으로는 내돌도 유럽 귀족 혈통임
└아나 뻘글에 낚엿네
└ㅋㅋ나도 사실 재벌가 3세인데 취미로 서민들 커뮤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