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화
처음 섭외 내용을 확인했을 땐 또 음악대상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성 얘기라니.
“천상식 씨가 재전성기를 맞은 게 작년에 젊은 트로트 가수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에 나간 것 때문이었거든요.”
“네. 저도 그건 알아봤어요.”
나도 윤희에게 물어보기 전에 기본적인 정보는 검색해 봤기에 아는 정보였다.
그러나 검색 결과로 알 수 있었던 것은 대외적으로 정제된 정보였고, 윤희는 더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런데 그때 좀…… 기강을 과하게 잡았다고 표현해야 하나? 어린 출연자들은 우는 게 예삿일이라 불쌍하다는 반응도 많이 나왔었어요.”
“호랑이 선생님 같은 느낌으로요?”
“귀엽게 표현하자면 그것도 맞는 소리긴 한데. 홍보 기사 같은 데서는 ‘사자가 새끼를 절벽에 떨어트려서 강하게 키운다’는 말에 비유하더라고요.”
“흐음…….”
모노크롬도 몇 년 늦게 데뷔한 후배들에게 90도 인사를 받을 때가 있는데, 몇십 년이나 더 선배면 어린 학생들은 무섭게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종류의 기강이 아니었는지 윤희가 말을 덧붙였다.
“쉽게 말하자면 인성질……이라고 하죠.”
인성질. 단 세 글자였지만 확실히 와닿는 표현이었다.
단순히 ‘무서운 선배’가 아니라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짜증을 부리거나 화를 냈기에 그런 반응들이 나온 듯했다.
“그런데 촬영 중에 그런 장면이 찍히면 보통 편집하지 않아요? 연예인 이미지도 있잖아요.”
“그게 이번만 그런 게 아니라 몇십 년이나 이어져 온 캐릭터라서요. ‘천상식’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애초에 그거예요. 오랜 팬 중에는 오히려 그런 성격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요.”
“아……. 어린 출연자들은 어려서 잘 모르니까 더 무서워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애초에 트로트를 즐기는 나이 대는 한정적이었는데 이번에 확 넓어진 거니까요.”
트로트란 예전까지는 ‘어르신들의 전유물’ 같은 느낌이었으나 최근엔 젊은 층도 관심을 가졌다.
거기에 천상식이 많은 이바지를 했기에 그가 음악대상까지 받은 거고.
그의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으나 새로 젊은 시청자들이 유입되어서 이런 호불호가 갈리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도 젊은 층까지 관심을 가졌다는 건 그만큼 방송이 잘됐다는 거겠죠?”
“천상식 씨가 나온 방송이 잘된 이유가 있어요. 그렇게 대놓고 신랄하게 말하는 연예인이 얼마 없기도 하고, 그걸 버텨내고 실력을 발휘하면 시청자들이 더 응원해주고 인정해주거든요.”
혹독한 환경에서 새끼 사자를 기른다는 말이 정말 어울렸다.
천상식에게 질타를 받는 출연자들은 반대급부로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게 된다.
‘방송 관계자 입장에선 이런 사람을 놓칠 이유가 없겠네.’
영화나 드라마로 비유하자면 천상식은 ‘짜증 나지만 매력적인 빌런’ 역할이었다.
그런 까칠한 면이 시청률을 유지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겠지.
적국 황제라는 별칭이 이제 확실히 이해되었다.
“아마 제작진도 천상식 씨를 섭외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트로트 관련 방송이 아니면 잘 안 나가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천상식 씨를 겨우겨우 섭외하고 나서 듀엣 상대를 바로 섭외했다면 촬영까지 얼마 안 남은 것도 있을 법한 일이에요.”
냉철한 분석이었으나 자세한 사정을 알고 나니 걱정이 더해졌다.
“한이를 내보내도 괜찮을까요……? 이번엔 듀엣이라 일대일로 계속 붙어 있을 텐데.”
신인 트로트 가수 육성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수십 명이나 되었지만 이번엔 한이가 혼자서 그를 마주해야 한다.
똑같은 질타라도 광범위로 분산되는 것과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은 매우 다르다.
윤희도 여기엔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듯 얼버무렸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옆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면 좋은 기회긴 한데 그 과정이…….”
마침 좋은 기회가 굴러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고난이 함께 찾아왔다.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고통이 확실하다니.’
내가 “끄응.” 소리를 내며 고심하자 윤희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다.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역시 당사자의 의견을 물어보고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편이 낫겠지.
나는 윤희를 자리로 돌려보내고 한이를 불러왔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네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흐음. 마침 드라마 촬영도 끝났는데 나가죠? 데뷔 서바이벌이랑도 촬영 일정 안 겹칠 것 같고.”
한이는 문제 될 게 뭐가 있냐는 듯이 흔쾌하게 대답했다.
내 얘기를 제대로 듣고 대답하는 건가 의심하는 눈으로 보자 한이는 더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꺼냈다.
“직접 만나본 건 아닌데, 아버지가 트로트 좋아하셔서 저도 좀 봤어요. 천상식 선배님 나오신 방송. 그런데 거기 나온 출연자들은 주로 방송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저는 이제 7년 차 연예인이고. 적어도 카메라 앞이라고 더 긴장하지는 않을 거란 말이죠.”
그의 질타를 받은 출연자들은 비연예인이기에 더욱 타격이 컸을 수도 있다는, 논리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천상식의 그 성격은 특정 방송에서만 두드러진 것은 아니었다.
“까칠한 캐릭터로 유명하다던데 감당할 수 있겠어? 너는 오히려 가요계 후배라서 더 어려울 수도 있잖아.”
몇십 년 동안 까칠한 캐릭터로 활동해 온 그가 한이에게 갑자기 친절하게 굴지는 않을 터.
한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촬영 기간이 한 3주? 그 정도랬죠?”
“응.”
3주 동안 매일 촬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촬영 기간은 대략 3주로 잡혀 있었다.
<송투유>를 거쳐 갔던 다른 출연팀들은 보통 3주 동안 주 2, 3회씩 만나서 호흡을 맞추는 과정을 촬영했다고 들었다.
“그동안만 잘 넘기면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끝날 일이면 그렇게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잖아요. 의외로 의견이 잘 맞을 수도 있고요.”
“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긴 하지.”
우리가 걱정하는 것도 지레짐작일 뿐, 의견이 잘만 맞는다면 무난히 촬영하고 큰 문제 없이 끝날 수도 있다.
특히나 제작진은 천상식이 트로트가 아니라 다른 장르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선보이려고 그를 섭외했다고 했다.
‘본인의 주 장르인 트로트가 아니라면…… 고집이 덜할 수도 있어.’
그의 성격이 장인 정신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말이다.
한이의 낙관적인 전망에 마음이 기울어지려는데 한이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니면 저라는 귀여운 후배를 보고 선배님이 마음을 여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너는…… 정말 멘탈 최고다.”
허탈하게 웃게 만드는 그의 능력이 과연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될까.
일단 이번 일에는 자신만만한 한이를 믿어보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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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 쉬기는 하는 건가?!
드라마 촬영 끝났다는 기사도 얼마 전에 떴는데 이렇게 바로 예능이요??
└아니 뉴마.. 거참.. 뉴마.. 할말은 많은데 일단 참는다
└얼굴 많이 보는 건 좋은데 우리 애 슈스라서 다들 쉬게 놔두지를 않네ㅠ
└홍삼 멕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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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이 확정되자 ZBS 측은 한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바로 홍보 기사를 내보냈다.
한이의 예능 소식이 뜨자 컬러즈의 반응은 ‘와! 새 스케줄!’과 ‘헉. 새 스케줄?’로 나뉘었다.
‘뉴마가 또 멤버들을 소처럼 굴린다는 소리가 바로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컬러즈는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무리한 일정들이 전부 멤버들이 원해서 강행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이번엔 좀 참는 듯했다.
대신, 멤버들 건강을 잘 챙기라며 뉴마에게 요구하는 글이 그만큼 많아졌다.
그리고 한이와 함께 촬영하게 될 천상식에 관한 글도 종종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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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우리 엄마가 천상식님 노래 엄청 좋아하는데 방송 같이 보자고 할 수 있겠다
└트로트 좋아하시는 분들 방송 엄청 볼 듯!
└ㅁㅈ 어르신분들한테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이에요! 하면 까먹으셔도 천상식이랑 같이 노래 부른 가수예요! 하면 바로 알아보실걸ㅋㅋㅋㅋㅋ
└몬클이들 진짜 대상 콜렉터인가? 대상분들이랑 같이 일하는거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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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에는 대개 이런 좋은 글들이 올라왔으나 SNS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아.. 같이 예능나가는 그분 성격 보통 아닌데ㅠㅠ 아이고 우리 애 살려]
천상식의 성격을 알고 걱정하는 컬러즈도 많았으나 대놓고 말하기는 어려웠는지 이 정도로만 걱정을 내비쳤다.
괜히 말을 잘못 꺼냈다가 ‘대선배도 무시하는 팬덤’이란 소리가 나오면 모노크롬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었기에 다들 언급이 조심스러웠다.
‘촬영은 전적으로 한이한테 달린 일이라 우리나 컬러즈나 한이를 믿을 수밖에.’
그래도 한이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넉살 좋은 사람이니까 생각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한이의 <송투유> 첫 촬영일을 맞이했다.
***
전쟁 나가는 것도 아니니 안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회사를 나온 게 방금이었는데.
‘와. 분위기는 거의 전쟁터네.’
한이는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서 이 현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했다.
첫 촬영 장소는 식물이 장식되어 싱그러운 느낌이 드는 한 카페. 천상식의 소속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장소를 잡은 듯했다.
그만큼 제작진이 그를 예우한다는 뜻이었으나 그 천상식은 뭔가가 못마땅한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촬영을 위해 카페 2층 전체를 빌렸기에 카메라 앞에 있는 것은 천상식, 그리고 그와 마주 보고 앉은 한이뿐이었다.
둘 중 한 명이 촬영에 비협조적이자 제작진은 안절부절못하고 눈치만 봤다.
지금 이곳에 천상식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ZBS의 예능국장이 와도 천상식을 편하게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가 무슨 노래를 부르면 좋을지 몇 곡을 미리 뽑아 왔거든요! 한번 들어보시고, 어떤지 말씀해주시겠어요?”
한이가 밝은 목소리로 운을 떼자 천상식도 아예 귀를 막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는지 고개를 까딱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제작진은 한이를 응원하듯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천상식이 어떤 태도를 보이든 한이는 살가운 후배 컨셉을 고수할 생각이었다.
“우선 이라솔 선배님의 . 이건 제가 좋아하는 곡인데 남성 듀엣으로 불러보면 색다른 느낌이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다음은 이제 해외 쪽인데, 선배님 목소리에는 팝송도 잘 어울릴 것 같아서 80년대에 유행했던…….”
같은 음악대상을 받았던 라솔의 곡부터, 요즘 세대 젊은이들은 잘 모를 만한 윗세대의 곡까지.
한이는 최대한 천상식에게 맞춰 골라온 곡 라인업을 읊었다.
후배로서 성실한 모습을 어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송준오 피디를 포함한 뉴마의 프로듀스팀이 합세해서 열심히 찾아온 곡들이었다.
“아니.”
그러나 한이의 곡 소개를 가만히 듣던 천상식이 입을 열었다.
뭐가 아니란 건지 알 수 없어서 한이는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 이 곡은 넘어갈까요? 다음은 또 80년대 노래인데-.”
“아니. 나는 곡보다 먼저 네 실력을 확인하고 싶은데.”
“네……?”
“무슨 자신이 있어서 나랑 듀엣을 하겠다고 하는지 보고 싶다고.”
거의 평생을 바쳐온 트로트와 관련된 방송에만 주로 출연하던 천상식.
다른 예능에는 좀처럼 출연하지 않았기에 그가 요즘 아이돌과 엮이면 어떤 케미를 보여줄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는 하필이면 한이와 정말 안 맞는 타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