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47화 (247/430)

# 247화

주 5일 근무하는 직장인처럼 회사에 자주 나와 있는 모노크롬.

따로 잡힌 일정이 없고 개인적인 일이 있으면 알아서 자리를 비우기도 했지만, 보통은 근무 시간에 맞춰서 멤버들도 회사에 나와 있어서 볼 일이 있으면 바로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한이만 빼고 네 명만이 주로 회사에 나왔다.

‘드라마 촬영이 바쁘니까 그걸 우선하는 게 맞지.’

한이에게는 촬영이 없는 날에는 회사에 굳이 나오지 말고 최대한 쉬면서 컨디션 조절에 집중하라고 전달해두었다.

최근엔 촬영 일정이 몰렸는지 일주일 넘게 회사에서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고 드라마의 크랭크업은 아직이지만 과거 시점에만 등장하는 한이는 먼저 촬영 종료를 맞이하고 바로 회사로 나왔다.

나는 법카로 고기라도 먹고 오라고 할 겸 멤버들이 있는 연습실로 내려왔다.

“촬영 수고했어. 좀 더 쉬다가 나와도 되는데.”

“주말에 몬클 하우스 가서 쉬었는데, 한동안 바쁘게 지내다가 갑자기 멍하니 있으려니까 심심하더라고요.”

한이는 그렇게 말하며 활력이 넘친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건지 팔을 쭉쭉 펴며 스트레칭했다.

외향형 인간은 역시 뭔가 다르긴 달라. 그가 괜찮다면야 나도 쉬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한이의 촬영 종료에 관해서 대화하자 옆에 있던 준해가 뭔가 떠올랐는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방도 다시 바꿔야겠네? 몇 주 이렇게 지냈더니 익숙해져서 까먹고 있었어.”

“방도 바꿨었어?”

“네. 한이 형 새벽에 나갔다 들어오고 그러니까 임시로요.”

촬영 시간은 일정하지 않고 변동이 생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새벽에 왔다 갔다 하면 룸메이트의 잠까지 방해할 수 있어서 한이가 임시로 준해의 독방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방 세 개를 나누어 쓰면 불편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했는데, 멤버들은 때에 따라 알아서 잘 분배해가며 효율적으로 사용 중이었다.

“형 잠깐 방 옮기니까 해랑이 형이 조용해서 좋았대.”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해랑이 이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러다 시치미를 떼는 것처럼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보며 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없으니까 집이 조용하게 느껴질 만큼 형에게 내 존재감이 컸단 거겠지. 그렇게 말하면 형을 위해 바로 룸메로 복귀해줘야겠네.”

“해랑이 못 들은 체한다.”

옆에서 보던 우형이 그 모습이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멤버들이 한이를 자주 놀리는 이유가 있다니까.’

금방 상처 입는 사람 앞에서는 장난치기도 조심스러워지는데, 한이는 무슨 소리를 들어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줄 아니까 마음 편히 놀리게 되는 거지.

네 명만 모여 있을 땐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었는데 평상시대로 돌아온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다시 완전체로 모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어느새 화제는 한이의 촬영장 에피소드로 바뀌었다.

“스태프분들이 뭐랬더라? 얼굴은 조각 같은데 연기는 물 흐르듯이 잘한다던가. 눈빛 때문에 시청률이 3퍼센트는 더 오를 것 같다고, 눈매에 보험 들어야겠다고 그러더라니까.”

“아, 거짓말 그만해.”

준해가 웃긴 소리라도 듣는 듯이 빵 터져서 웃었다.

한이의 자화자찬은 과장이 들어가긴 했어도 다 맞는 소리인데 말투 탓에 항상 웃기는 소리로 치부되곤 했다.

“연기를 너무 잘해서 사람들이 제가 가수인 줄 모르는 건 아니겠죠? 하아. 제가 없는 동안 재민이는 보컬로 엄청나게 성장했다던데.”

“엄청난 흡인력을 발휘하긴 했지.”

그 말대로 재민은 최근 메인 댄서보다 서브 보컬 활동에 열중했다. 지금도 연습실 한구석에서 뚱땅뚱땅 기타 줄을 튕기는 중이다.

그 앞에는 해랑이 앉아서 재민의 유일한 관객이 되어주고 있었다.

우형은 재민의 기타 연주를 두고 ‘앵무새가 옆에서 하루 종일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고 표현하며 괴로워했으나, 해랑은 자주 저렇게 재민 옆에 앉아 있곤 했다.

‘집중해서 연주를 듣기보다는 명상 BGM으로 사용하는 것 같긴 하지만.’

뉴레인의 신인 데뷔 서바이벌이 시작할 때까지 마음을 최대한 가다듬어 놓으려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했다.

목적이 달라도 둘 다 만족한다면야 좋은 일이지.

아무튼, 한이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배우 활동에 집중하다 보니 가수로서의 자신이 흐려지는 느낌을 받은 듯했다.

전부터 가수로서 뭔가 이루고 싶다고 말했던 한이니까.

“이번에도 OST로 참여했으니까 시청자들도 네가 가수라는 건 다 알지 않을까?”

“그렇긴 한데, 그냥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왠지 노래를 오래 쉰 기분이에요.”

올해 이미 컴백을 한 번 마친 데다가 활동을 끝마친 지 그리 오래 지나지도 않았는데.

비활동기라고 온전히 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앨범 준비 기간을 작년보다 좀 더 길게 뒀더니 공백기를 크게 느끼는 듯했다.

‘작년에 너무 굴렸나…….’

다들 성실한 스타일이라 작년의 그 쉴 틈 없던 활동 빈도에 익숙해져 버린 모양이었다.

혹은 과거 공백기에 안 좋은 기억이 많았기에 무의식적으로 공백기에 더 초조함을 느끼는 걸 수도 있고.

그렇다고 지금 당장 앨범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생각에 빠져 있는데 한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도 작곡팀 음원 내는 거 가창으로 참여하면 안 될까요? 만드는 곡마다 엄청 좋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건 우형이나 성운 씨한테 직접 말해 봐. 회사는 서포트만 하지, 주도하는 역할이 아니라서.”

우형의 작곡 활동은 회사가 시키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거라 그의 의지가 더 중요했다.

모노크롬의 앨범은 활동이 동반되어야 하니 준비할 게 많지만, 작곡팀은 디지털 음원만 낼 예정이라 작업만 완료된다면 빠르게 공개할 수도 있었다.

새 노래를 부르고 싶은 거라면 지금은 그쪽이 더 나을 것이다.

한이는 내 말을 듣더니 바로 옆에 있던 우형에게 가서 말했다.

“나도 곡 줘.”

“난 일단 먼저 만들 곡이 두 개가 있어서……. 해랑이한테 부탁해 봐.”

외부에 드러나는 활동을 하는 건 주로 우형이지만 모노크롬의 작곡가는 엄연히 둘.

한이는 그중 한 명인 해랑을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 형은 다크한 곡만 만들잖아. 이제 봄인데.”

“해랑이도 요즘은 좀 밝은 노래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

노력하고 있을 뿐, 아직 노력의 결과가 나온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작곡팀에 해랑을 객원 멤버처럼 참여시키는 것도 생각 중이라고 한다.

해랑의 신선한 작곡 스타일을 살려보는 것도 우형과 성운에게는 새로운 도전과제처럼 느껴진 듯했다.

그만큼 음악적으로 많은 것을 시도해 보고 다양한 사람들과 작업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적으로 두 사람의 작업 속도에 달린 일이라 지금 당장 뭔가 하고 싶다는 한이의 바람을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으려나.’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마침 한이에게 노래와 관련된 방송 섭외가 들어왔다.

***

음악 예능 <송투유>. 제목의 ‘투’는 to가 아니라 two로 표기한다.

두 사람이 듀엣을 짜서 노래를 부르고 그것을 시청자인 당신과 함께한다는 의미의 타이틀이었다.

출연자는 주로 가수, 혹은 노래를 부르고 싶은 연예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팀을 미리 짜서 방송에 나가기보다는, 제작진이 알아서 섭외하여 매칭해 주는 사람과 듀엣을 이루는 방식이었다.

‘어떻게 보면 <최고의 팀메이트>의 가요 버전?’

심사위원과 방청객이 듀엣 무대를 보고 점수를 매기고, 그 점수에 따라 순위에 오르는 시스템이었다.

상위권에 올라가 있으면 방송 때마다 이름이 계속 노출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화제성을 챙길 수 있었다.

‘좋은 점수를 내면 대중들한테 보컬로서의 존재감을 인식시킬 수 있으니까 지금 한이한테는 딱 맞는 기회지.’

다만 노래만 심사하는 것은 아니고, 두 사람이 만나서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도 비중을 많이 둔다.

따라서 곡 선정부터 완성 무대까지 이르는 과정을 전부 촬영하며, 심사위원들과 방청객들은 그 과정을 영상으로 확인하며 평가에도 반영한다.

한마디로, 방송적으로 재미있으면 좋은 점수를 받기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이는 보컬 레벨처럼 예능 레벨도 모노크롬 톱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걸리는 점은…… 방송국이 ZBS라는 거?

ZBS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닌데, 같이 일할 때마다 하나씩 삐끗하고는 해서 별 이유 없이 마음에 거리감이 생겼다.

게다가 지금까지 멤버 개인에게 들어온 예능 스케줄은 펑크 땜빵인 경우가 많았단 말이지.

이번에도 섭외가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레 펑크 땜빵이 아닌지 의심부터 하게 되었다.

‘이번엔 당장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닌데 묘하게 촬영까지 기간이 얼마 안 남았어.’

얘기를 들어보니 담당 작가가 뉴마로 연락하면서 가능하면 일정도 맞춰주고 이것저것 배려를 해 주겠다며 간절하게 출연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만큼 섭외에 간절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역시 대타인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엔 내가 생각하지 못한 원인이 있었던 듯했다.

“같이 조를 짜게 될 사람이…… 천상식 씨요?”

“네. 아세요? 아니, 아는 게 당연하구나.”

윤희는 내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자마자 반응했다.

연예계 정보통인 윤희라면 뭔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물었는데, 내 기대대로 그녀는 이름을 듣자마자 뭔가 걸리는 점을 바로 찾아낸 듯했다.

“촬영까지 얼마 안 남은 건 땜빵 같지는 않고, 아마 천상식 씨 일정에 맞추느라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그, 천상식이란 분이 바빠서요?”

“이사님은 천상식 씨 잘 모르세요?”

내가 ‘천상식이란 분’이라고 표현하자 윤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물었다.

작년에 라솔에게 처음 연락이 왔을 때, 라솔을 잘 모르는 나를 보던 송준오 피디의 표정이 딱 저랬는데.

그리고 내가 할 대답도 그때와 똑같았다.

“음악대상…….”

그렇다. 그는 이번 음악대상 수상자였다.

최근 트로트의 부흥기를 선도했다는 원로 트로트 가수. 내가 아는 정보는 그게 끝이었다.

다만 유명 트로트 가수라면 몇십 년 경력이 기본. 트로트계는 데뷔한 지 10년, 20년 되는 가수들도 젊은 축에 속하는 곳이었다.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살아왔다면 이름과 가장 유명한 곡 정도는 아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내가 살던 세계엔 없었던 게 확실해.’

처음엔 연예인들의 이름을 봐도 내가 그들을 모르는 게 TV를 안 봐서인지, 혹은 원래 살던 세계엔 없던 사람이어서인지 헷갈리곤 했었다.

내가 아는 유명한 해외 팝송이나 오래된 가요 등은 이 세계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까.

1년 넘게 이곳에서 지내오면서 내가 낸 결론은 ‘적어도 내가 만날 수 있는 범위 내의 사람들은 원래 세계에 없던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였다.

아마도 마이 엔터에 나오는 연예계가 한정적이었기에 그 정도만 반영이 된 듯했다.

이 정도 연차의 트로트 가수라면 나도 알았을 텐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게 그 증거였다.

“저, 그, 외국에서 지내느라 이름만 들어봤어요.”

그리고 나는 이번에도 원래 세계와의 괴리감을 내게 주어진 편리한 설정으로 얼버무리기로 했다.

윤희도 이 말에 바로 납득했는지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트로트의 황제라고 불리거든요. 천상식 씨.”

트로트의 황제. 국민 트로트 가수에게 붙을 만한 타이틀이었다.

종종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가왕’ 등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트로트계는 왕이 아니라 황제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왕국이 아니라 제국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젊은 사람들도 트로트를 접하게 되면서 좀 다른 별명이 생겼어요.”

“뭔데요?”

“황제는 황제인데 적국 황제라고…….”

“적국 황제요……?”

‘트로트의 황제’라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으나 ‘트로트의 적국 황제’라는 생소한 별명은 처음 들었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또 무슨 설정이지.

전혀 감도 안 잡힌다는 내 표정을 봤는지 윤희가 바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실력으론 아무도 뭐라고 못 하는데, 으음, 속된 말로 인성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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