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화
“제가 거기 껴도 될까요……?”
서정수는 부담을 느꼈는지 소극적인 태도로 말했다.
자신을 가수가 아니라 일반인에 가깝다고 소개하는 사람에게 이런 라인업은 오히려 부담되는 모양이었다.
뜻밖의 반응에 나도 덩달아 당황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내 의도를 더 정확히 설명했다.
“들으신 것처럼 남성 그룹 곡은 맡아 봤는데 남성 솔로 가수 곡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요. 이번엔 지금껏 같이 작업해 보지 못한 분을 모시고 싶었거든요.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신인 작곡팀의 초대라고 생각해 주시겠어요?”
“아, 그런 거라면…….”
작곡팀은 이제 막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하려는 것이라 경험이 부족하다.
우리가 그를 라인업에 끼워주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경험을 하도록 도와줄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그 점을 설명하니 서정수도 부담이 덜해진 듯 이번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기세를 타서 이번엔 우형이 나섰다.
“아무 정보도 없이 무턱대고 부탁드릴 수도 없어서 저희가 조금 구상해본 게 있는데, 러프하게 느낌만 대충 잡아봤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우형은 미리 준비해 뒀던 노트북을 자신 앞으로 끌어와 열었다.
그가 음악 파일을 하나 선택해 재생시키자 마치 곡의 중간을 떼어놓은 듯, 도입부 반주가 아니라 노랫소리가 바로 흘러나왔다.
곡이 나오자마자 집중하는 서정수와 함께 나도 노래를 감상했다.
허밍에 가까운 가이드는 아마 성운의 목소리인 듯했다.
‘목소리는 성운 씨인데 확실히 서정수 씨한테 어울리는 곡 같아.’
서정수의 노래를 많이 들어본 것은 아니었으나 곡에서 그의 스타일이 느껴지는 듯했다.
1분이 안 되는 짧은 길이였지만 곡의 분위기는 확실히 전달되었다.
재생이 끝난 것을 확인하고 우형이 서정수를 보며 말했다.
“이런 곡을 만들까 생각 중이거든요.”
“이 곡을 저한테 주시는 건가요?”
“저희가 만들어둔 곡을 드리는 게 아니라, 정수 님이 불러주셨으면 하는 곡을 생각하면서 만들어 본 거예요.”
가수에 맞춰 노래를 만든다. 그게 우형과 성운의 작업 방식이었지.
서정수는 자신에게 맞춰서 만든 곡이라는 이야기에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정성 들여서 초대해주시는데 제가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을까요.”
서정수는 쑥스러운 듯이 웃으며 앨범 참여 제안을 수락했다.
성의를 봐서 기꺼이 넘어온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곡을 듣고 나니 의욕이 생긴 듯했다.
가수가 본업이 아니라고 하지만 역시 가수 활동엔 욕심이 있었던 거다.
‘두 사람의 데모곡은 백발백중이지.’
<너의 별>을 부르고 싶다며 먼저 탐을 냈던 라솔도 그렇고, 꼭 자기에게 달라며 적극적으로 나왔던 만호도 그렇고.
라솔네 소속사의 한은아도 얼마 전 이 정도의 러프한 가이드 버전을 듣고 바로 오케이했다고 들었다.
곡이 제대로 완성되어서 사람들에게 공개되면 또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듯했다.
서정수가 수락했으니 이제는 그 홍보에 관한 이야기를 할 차례.
곡을 발매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듣게 만드는 건 어려우니까.
사업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건 내 담당이었다.
“그리고 홍보 겸…… 저희 멤버 재민이랑 같이 라이브 클립 촬영도 가능할까요?”
“물론입니다.”
뉴마에 와서 긴장-당혹-기대-의욕 순서로 변하던 서정수의 표정은 재민의 이름이 나오자 ‘안심’으로 변화했다.
마치 고향 친구의 이름이라도 들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서로 노래를 주고받았으면 이런 기회도 한 번쯤 있어야지.’
컬러즈도 ‘이 정도면 한번 만나서 밥이라도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며 이들의 관계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봤으니까.
그럼 곡이 완성되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말로 용건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 커버 영상을 위해 기타 연습 중이던 재민을 불렀다.
“어!”
재민은 우리가 있던 회의실로 들어오자마자 서정수를 보고 놀란 얼굴이 되었다.
오늘 온다는 이야기는 미리 전해뒀는데 정작 실물로 마주치니 느낌이 다른 모양이었다. 반가운 마음 반, 놀라운 마음 반이 섞인 얼굴이었다.
“어, 그, 뭐라고 불러야 하죠?”
“그, 그냥 편하게 부르셔도…….”
가수 연차로 따지자면 모노크롬의 데뷔 연도가 더 빨라서 선배님이라고는 할 수 없고, 서정수의 나이는 3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어서 후배님이라고 부르기에도 조금 어색했다.
우형도 ‘정수 님’이라고 했던지라 ‘님’ 호칭을 추천하니 두 사람은 ‘정수 님’, ‘재민 님’ 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맞는 호칭인데 두 사람이 하니까 왠지 온라인 동호회 모임 보는 것 같아.’
두 사람은 온라인 친구와 비슷한 관계였으니 틀린 말은 아닌가.
모노크롬의 ‘사람을 끌어모으는 능력’이 온라인에서도 발동된다는 점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점들을 이용해서 이제 아이돌을 넘어서서 다른 아티스트로까지 자연스레 인맥을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멤버들이 좀 더 안정된 미래를 위한 토대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듯해서 안심되었다.
***
한이가 촬영하던 드라마 <기로>가 방영을 시작했다.
1화의 내용은 주인공이 어릴 적부터 꿈꾸던 형사가 된 것, 아버지의 수첩을 통해 타임 슬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까지.
한이는 과거 시점에만 등장하기에 1화에는 등장하는 장면이 없었다.
그래도 예고편에는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과거에 들어가 움직이는 장면이 나와서 컬러즈는 기대감을 불태웠다.
다만 그들에게도 슬픈 소식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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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한이 역할 현재 시점엔 없는 거
기사 보니까 현재 시점에선 죽어서 안 나오는 거 맞네 ㅜㅜㅜㅜ
쌍둥이 형이 유일한 후계자로 회사 물려받았다고 되어있음
└아니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사망 확정이라니요
└진우 살려
└소재가 소재니까 주인공이 과거에서 살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헐 진짜 그러면 진우 중년역 캐스팅이 스포라서 안 뜬 거일 가능성도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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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가 맡은 ‘최진우’라는 캐릭터의 사망이 거의 확실시되자 컬러즈는 벌써 마지막 회라도 본 것처럼 슬퍼했다.
드라마는 이제 막 방영을 시작했고 최진우는 등장하지도 않았건만 이미 컬러즈에게 최진우는 ‘우리 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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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최진우 그렇게 되는거면(스포)
진우 죽는 씬 나오려나?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한이 연기하는 거 기대된다ㅎ..ㅎㅎㅎ
└2222나도ㅎㅎㅎㅎ..
└마음은 아플 것 같은데 보고싶다ㅎㅎㅎ
└원래 마음 아프게 사라진 캐릭터가 더 인상에 남는 거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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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사망 장면이 궁금하다는 어둠의 컬러즈도 적지 않은 듯했지만.
다양한 장면, 다양한 상황을 연기하는 게 배우로서는 좋은 일이었으니 컬러즈도 계속 슬픔에 빠져있지는 않았다.
2화에서도 최진우는 평화 그룹 오너 일가에 관한 설명 정도로 스쳐 지나가듯이 나왔다.
컬러즈는 그것만으로도 기립 박수를 치면서 명드라마라며 칭찬하고 나섰다.
그래도 ‘오늘도 분량은 이게 끝인가?’ 하며 아쉬워질 때쯤, 최진우가 다시 등장했다.
[……괜찮으세요?]
건달에게 쫓기던 주인공을 구해준 최진우.
그의 얼굴을 보고 주인공은 수첩에 적혀 있던 내용을 회상하며 그가 아버지를 도와주던 익명의 제보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게 2화의 엔딩 장면이었다.
‘한이는 더 안 나오나 보다.’ 하고 다음 화 예고편만 기다리고 있던 컬러즈는 생각지 못하게 등장한 한이를 보고 텍스트로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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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 지금 여기서 이렇게 나온다고?!!??
와씨 미 쳤 다
└나 드라마 끝나자마자 물 뜨러 나가려고 대기 타고 있었는데 일어서다가 주저앉음
└내가 주인공이었으면 진우 얼굴 보자마자 반했다
└ㄹㅇ
└저 눈빛 보면 진우 안 살려줄 수 없다 생존루트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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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임팩트 있게 등장한 덕분에 저 배우는 누구냐며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았다.
2화 방영 후, 회사에서 한이를 마주쳐서 그에게도 이런 반응들을 전해줬다.
“한이 너도 어제 본방송 봤어? 반응 좋더라. 사람들이 마지막에 나온 배우 누구냐고 묻더라고.”
배우 한이를 잘 모르던 사람도 ‘저 얼굴은 단역으로 지나갈 상은 아니다.’ 하고 생각했다나.
반응이 좋다는 이야기에 한이는 뿌듯한 표정이 되었다.
“본방송 저도 봤죠. 멤버들 다 숙소에 있어서 모아놓고 같이 봤어요.”
“멤버들은 뭐래?”
“김형운 선배님 닮았다는 소리밖에 안 하던데요.”
컬러즈는 그 잠깐 나온 눈빛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는데.
멤버들은 몇 년을 붙어있다 보니 내성이 생겼는지 한이의 멜로 눈빛을 이해하지 못했다.
“재민이는 드라마 자주 보니까 스토리 얘기도 하지 않아?”
“아! 맞아요. 저보고 곧 죽냐고…….”
“…….”
작중에서 최진우가 죽느냐는 소리 같은데 말이 이상하잖아.
그런데 컬러즈가 벌써부터 최진우 캐릭터의 사망을 슬퍼하는 모습을 계속 봤더니 나도 궁금하긴 했다.
“최진우는 진짜 죽어? 아니면 주인공이 과거를 바꾼 나비효과로…… 현재가 바뀌나?”
궁금해하는 내 표정을 보고도 한이는 스포일러를 해 줄 생각이 없는지 씩 웃었다.
“보시면 알아요.”
예전에 웹드라마를 찍을 때도 한이가 ‘작가님께 주 시청자층의 의견을 전달해드렸다.’라면서 이 말을 똑같이 했었는데.
‘뭔지는 몰라도 보여줄 게 많이 남아 있다는 얘기겠지.’
방영된 것은 아직 2화뿐이니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배역에 얽힌 궁금증과 더불어, 그것을 연기할 한이의 모습을 앞으로 기대해봐도 좋을 듯했다.
***
주인공이 최진우를 협력자로 인식하고 난 후, 3화 방영분부터는 최진우의 서사가 더 자세히 서술되었다.
평화 그룹의 오너 일가.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태어났으나 회사를 물려받을 후계자는 단 한 명.
쌍둥이 형제에 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하자 시청자들의 반응도 방영 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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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ㅁㅊ 닮은꼴이라더니 진짜 닮았네
어떻게 배우를 저렇게 골라왔지 캐스팅 디렉터 뿌듯하겠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영상으로 보는 게 ㄹㅇ임 쌍둥이 역할을 이렇게 살릴줄이야ㅋㅋㅋㅋ
└나 사람 얼굴 잘 못 외우는데 그냥 대화 맥락으로 구분하는 중
└얼굴보다는 분위기가 닮아서 더 닮아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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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은 일란성 쌍둥이 설정을 바로 납득했다.
그러나 얼굴이 같다고 모든 게 같을 수는 없는 법.
형제는 어릴 때부터 ‘누가 회사를 물려받을 것인가’라는 문제로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비교당해왔다.
주로 밀리는 쪽은 동생 최진우였다.
[역시 회사는 장남이 물려받아야…….]
[한날한시에 태어났다고 해도 진수 군이 확실히 형답지 않습니까.]
현재보다 보수적이던 시절, 형 최진수에겐 장남이라는 위치가 유리하게 작용했다.
처음부터 입지가 탄탄했던 형 최진수는 모여드는 기대감에 자신을 얻어 더욱 날개를 펼치고, 그럴 때마다 동생 최진우는 열등감을 더 강하게 느꼈다.
형제의 이런 우열 관계를 두고 [진수-진우 이름 헷갈리면 수우미양가로 외워라. 수 다음이 우.]라며 이름 외우는 법을 전수하는 시청자도 있었다.
그리고 동생 최진우가 아버지가 경영하는 평화 그룹에 반발심을 가지게 되는 가장 큰 계기는, 학생 시절부터 애틋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연인 때문이었다.
그녀의 집안 사업이 커지자, 두 집안은 형과 그녀를 약혼시켜 가문끼리의 결합을 추진한다.
[아버지! 어떻게 저한테 한마디도……!]
[진우야. 사업을 하려면 사사로운 것은 포기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면 역시 네겐 큰 자리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구나.]
이 일로 인해 최진우는 후계자가 될 가능성과 연인을 동시에 잃고 절망감에 빠진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러브라인을 연기하는 것은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
이전까지는 [뭐? 애인이 있어?] 같은 반응을 보이던 컬러즈도 이 전개를 보고는 [뭐? 애인을 뺏겨?!!] 하며 분개했다.
러브라인은 호불호 수준에 그치지만 ‘우리 애’가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은 절대 못 참는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