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44화 (244/430)

# 244화

“원래 뉴마 소속이었을 텐데…… 배우가 되고 싶은 게 아니고?”

이전에 보고 받은 바에 의하면 이 연습생은 뉴마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던 것 같은데. 최근엔 뉴마도 배우 지망생들만 연습생으로 들였을 테고.

그렇다면 아이돌인 모노크롬을 보고 배우 지망생이 되었다는 소리인가?

의아한 마음에 물었는데 그는 바로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제가 배우 말고도 가수도 꿈이어서……. 배우와 가수 활동을 둘 다 지원해주는 회사가 얼마 없어서요.”

아하. 꿈이 꼭 하나일 필요는 없지.

뉴마가 배우와 가수 활동을 둘 다 지원해준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뉴마 소속 배우가 OST를 직접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고, 소속 아티스트인 한이가 배우 활동도 겸하니까.

“그래도 아마 아티스트 연습생은 안 뽑았을 텐데.”

“배우 오디션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제가 보컬도 몇 년 배웠다고 하니까 마침 잘됐다고…….”

배우팀의 아이돌 배우 레이더에 포착되었던 건가.

나는 방금 연습생들의 프로필을 본 기억을 뒤져서 우리 앞에 있는 이 연습생의 정보를 떠올렸다.

이름 한보현. 얼마 없던 보컬 메인 연습생 중 한 명이었다.

‘다른 배우 지망생 두 명한테도 밀리고 연찬한테도 밀린…….’

뉴마에게는 차기 아이돌 배우로 선택받지 못하고 뉴레인에게는 데뷔조 보컬 멤버로 선택받지 못한 비운의 연습생이었다.

멤버들에게도 뉴레인이 정한 데뷔조 구성은 알려준 상태였다.

옆을 흘끔 보니 멤버들도 이 연습생이 탈락 예정자라는 것을 알아챘는지 복잡한 얼굴이었다.

“TV에서 선배님들 모습 보고 동경해서 뉴마로 들어왔는데 마침 시기가 잘 맞아서 이런 좋은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감사 인사 드리고 싶어서 기다렸어요. 꼭 열심히 해서 멋지게 데뷔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래. 열심히 해. 응원할게.”

“네!”

우형이 어색한 얼굴로 주먹을 꼭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해 보였다.

그러자 보현은 존경하는 선배가 응원해준다는 것이 기뻤는지 밝은 표정으로 양손을 불끈 쥐고 대답했다.

‘우리가 가담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죄책감이 들지…….’

우리는 잘못하기는커녕 이런 애들을 도와주려고 섭외를 수락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보현이 탈락 예정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찝찝하게 다가왔다.

“저는 연습하다 잠깐 나온 거라 이만 들어가 봐도 될까요?”

“어, 으응. 들어가 봐.”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보현은 마지막까지 젊은이의 패기를 보이며 에너지 넘치게 인사했다.

나와 멤버들은 연습실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쳐다봤다.

“……알지? 우린 누구를 떨어트리거나 붙여주려는 게 아니야. 그냥 모두가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해 주려는 거지.”

내 말에 멤버들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사정으로 출연하게 됐지만, 이제는 선배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듯한 얼굴이었다.

***

모노크롬의 앨범 타이틀곡은 우형이 맡고 있지만, 수록곡까지 전부 우형이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작곡가의 다양한 스타일을 겪어보는 게 우형에게도, 멤버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우형이가 작업 속도가 빠르다고 해도 모든 곡에 다 참여하려면 버거울 테니까.’

편곡 등은 송 피디와 프로듀스팀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전곡을 작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우형은 비활동기에도 여전히 작업실 지박령 신세였다.

모노크롬의 다음 앨범 때문은 아니고, 계획하던 일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라솔 선배님도 얘기 들어보시고는, 작곡팀 이름으로 싱글이나 앨범을 주기적으로 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던데요.”

“그렇게도 앨범을 내?”

“노래는 가수 이름으로 나오는 게 보통이긴 한데, 아예 없는 방식은 아니에요.”

<쉰셋돌> 촬영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라솔의 소속사와 계속 연락을 나눴다.

우형과 성운의 작곡팀 활동을 <쉰셋돌>에서 끝내지 않고 장기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함이었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지.’

처음 만났을 땐 우형이 조급하게 군 탓에 피하던 성운이었지만, 방송이 끝난 후에 내가 슬쩍 뜻을 내비치자 이번엔 성운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성운의 소속사인 라솔의 회사와도 대화해보니 바로 지지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라솔 씨가 두 사람이 만든 곡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었지.’

라솔도 내가 이야기하기 전부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두 사람이 만들 곡을 누가 부를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라솔의 소속사에는 아티스트가 세 명 소속되어 있다.

라솔과 성운, 그리고 라솔의 후배인 여성 솔로 가수 한은아.

우형과 성운이 함께 만든 <너의 별>을 라솔이 피처링으로 참여해서 함께 부르자, 한은아는 성운에게 자기도 곡을 달라며 졸랐다고 한다.

그 후에도 우형이 <음악대상> 대기실에서 생일 기념 팬 사인회를 할 때 다른 가수 곡은 만들 생각이 없냐며 묻고 간 적도 있었고.

그 후에도 곡을 줄 때까지 성운을 괴롭힐 기세였다고 한다.

‘그 회사가 진짜로 가족 같은 회사지.’

가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성운을 막내로 둔 삼 남매를 보는 듯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우형과 성운은 한은아가 부를 곡을 만들던 중이었다.

“또 만들어 보고 싶은 곡이 있어서 성운이랑 얘기 중이었는데 라솔 선배님이 그 방법을 말씀하시더라고요.”

“또 만들어 보고 싶다는 곡은…… <눈길> 가수분한테 주려고?”

“어떻게 아셨어요?”

“네가 마음 쓰는 것 같더라고.”

우형은 항상 그랬다. 마땅히 노력을 보답받아야 할 사람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야 누구든 할 수는 있지만, 우형은 특히.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면 자기 일처럼 슬퍼했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해서 상황이 나아진다면 얼마든지 나설 생각인 듯했다.

‘모노크롬이 오랫동안 노력을 보상받지 못한 적이 있어서 더 이입하는 거겠지.’

이담이 신셋의 메인 보컬을 포기한다고 했을 때도 그랬고, 얼마 전에 뉴레인의 연습생을 보고 왔을 때도 그랬고.

우형은 항상 그런 사람들을 보면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럼 조만간 그쪽 소속사에 연락해 볼까?”

“앗. 갑자기 연락해도 지금은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어서. 뭔가 나오면 그때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래. 아니면 재민이 통해서 한번 만나자고 해도 되겠다.”

재민의 이야기가 나오자 우형이 웃었다.

재민은 최근, <눈길>의 원곡자인 가수 서정수와 특이한 친분을 쌓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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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이거 봤어..?(링크)

서정수님이 또 몬클 노래 짧게 불러주심 ㅠㅋㅋㅋㅋㅋ

└아니 진짜 둘이서 노래로 대화하냐구ㅋㅋㅋㅋㅋ

└끝나지 않는 뮤지컬 세계관ㅋㅋㅋㅋ

└진정한 가수는 음악으로 대화한다

└이러면 재미니 또 뷰이라이브 켜서 노래한다ㅋㅋㅋㅋㅋㅋ 컬러즈 개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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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민의 <눈길> 커버 영상에 서정수가 답가처럼 커버 영상을 올렸다.

그 후 재민이 뷰이라이브에서 이를 언급하며 서정수의 다른 노래를 불렀는데, 이걸 본 서정수는 본인의 SNS에 피아노를 치며 모노크롬의 노래를 부르는 짧은 영상을 올리고. 그걸 또 재민이 보고……의 반복.

사적인 연락 하나 없이 그저 노래만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며 컬러즈는 ‘노래로 대화하는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다.’라고 평했다.

옛날 옛적 시를 주고받으며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이 이랬을까.

‘그것 때문에 재민이가 최근에 노래를 많이 불러서 컬러즈가 좋아하니까 잘됐지.’

재민의 댄스 실력이야 다들 잘 알지만 보컬 실력을 선보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서정수가 계속 답가를 보내온 덕분에 재민도 계속 새 노래를 배워와 컬러즈에게도 불러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이 정도로 온라인에서만 친목을 쌓았으면 한번 만날 때가 되긴 했어.’

그리고 성운과 함께 작업하면 작곡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우형 덕분에 그 만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성사되었다.

***

회사끼리 연락이 닿아 서정수가 뉴마로 찾아오기로 했다.

서정수를 부른 당사자인 우형은 그를 맞이하겠다고 나와 함께 로비로 나왔다.

시간에 맞춰 찾아온 서정수는 우리와 인사를 나누며 우형과 악수를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와. 연예인…….”

“아, 앗. 오늘 메이크업도 안 했는데…….”

“연예인은 정말 비율 자체가 다르군요.”

아이돌을 처음 보는 듯한 감탄 섞인 반응에 우형이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치면 저한테도 정수 님은 방송으로만 뵙던 분인데요.”

“저, 저는 그냥 노래 부르는 일반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는 손을 저으며 자신을 일반인이라고 소개했다.

회사를 신기한 듯이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니 이런 연예인 소속사도 낯선 듯했다.

연락을 위해 미리 알아본 바로는 서정수의 소속사는 사장의 작업실이 사업장으로 등록된 소규모 회사였다.

“보셨다는 방송은 <스타를 찾다> 말씀이시죠……? 그때 성적도 별로 안 좋았는데 저를 어떻게 기억하셨는지…….”

“목소리가 기억에 남아서 정식 음원 내시면 꼭 듣고 싶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우형은 내가 재능을 꿰뚫어 보는 사람인 줄 아는데, 진짜로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는 것은 우형이었다.

아마 그의 작곡가로서의 감이 발동했던 건 아닐까. 이런 목소리를 지닌 사람은 이런 노래를 불렀으면 하는.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눠보니 서정수는 음원을 냈을 뿐, 현재 본업은 가수가 아니라고 했다.

“지금은 보컬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든요. 아! 저희 사장님이 같이 음악 공부하던 형님이라 그냥 소속만 된 거지, 다른 활동을 해도 터치는 없어요.”

그의 채널에 보컬 트레이닝 어쩌구 하는 제목의 영상이 섞여 있었던 것이 아마 학원 홍보 영상이었던 듯하다.

“가수 일이라고 해 봤자, 사장님이 작곡한 곡에 가이드 부를 때 정도?”

“<눈길>도 그럼 사장님이 직접 작곡한 곡인가요?”

“네! 네. 맞습니다. 사실 다른 쪽에 보내려다가 ‘이건 네가 부르는 게 낫겠다.’ 하면서 던져주셔서 덥석 문 거죠. 하하.”

그의 노래는 대부분 사장이 직접 쓴 곡, 혹은 건너 아는 작곡가로부터 받은 곡이라고 한다.

‘곡이 얼마 없었던 이유가 있었네. 채널에도 다른 가수 노래 커버 영상이 더 많았지.’

우리도 외부 작곡가에게 곡을 받을 때면 작곡비로 꽤 큰 지출이 들기도 했으니까 그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장의 작곡비로 유지되는 소규모 회사라면 일정 퀄리티 이상의 곡을 계속 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창력은 충분한데 부를 곡이 없는 상황. 그야말로 바로 우리가 원하던 인재였다.

서정수가 우형을 계속 연예인 바라보는 눈으로 보기에 자세한 설명은 내가 대신 하기로 했다.

“미리 간략하게 말씀드렸지만 저희가 작곡팀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어서요. 가창자로 앨범에 참여해 주실 수 있을까 해서 연락드렸어요.”

“아, 네, 네. 그 작곡팀이란 게…… 방송에 나오신 건 잠깐 봤는데 제가 잘 몰라서.”

<쉰셋돌>을 전 국민이 다 본 것은 아니니까 이해한다.

방송은 ‘예능’과 ‘아이돌’에 치중되어 있었으니 솔로 가수인 그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고.

“작곡팀으로서는 신인이라 아직 곡은 얼마 없거든요. 신셋 앨범을 맡은 것 외엔 모노크롬이랑 이라솔 씨가 같이 부른 <너의 별>밖에 없어요. 아마 같은 앨범에는 가수 한은아 씨가 참여하게 될 거예요.”

“……그, 그 라인업에 제가 추가되는 건가요?”

‘곡이 얼마 없지만 꼭 앨범 제작에 초대하고 싶다’라는 의도로 말한 건데, 서정수는 설명을 듣고는 오히려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가수들이 전부 음악대상이나 연예대상에 출연했던 사람들이잖아?’

우형이 아이돌로서는 흙수저 생활을 거쳐왔지만 작곡가로서는 금수저였다는 것을 그의 반응을 보고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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