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화
뉴마와 뉴레인이 연결된 회사인 이상, 뉴마 소속인 모노크롬이 이 사태에서 완전히 빠질 수는 없다.
최대한 피한다고 해도 마음 한구석에는 계속 찜찜함이 남겠지.
그럴 바에는 그냥 직접 해결해버리자.
제일 나은 해법은 역시 이것인 듯했다.
나는 바로 멤버들을 불러 모아서 해랑에게 한 말을 멤버들에게도 전달했다.
“-그래서 뉴레인의 계획을 막는 게 우리 목표야.”
멤버들끼리는 데뷔 서바이벌에 출연하는 게 낫겠다고 이미 이야기가 끝난 상태.
그러나 단순히 출연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자 다들 해랑처럼 말문이 막혀버렸다.
‘복잡하겠지. 이해해.’
해랑의 가정사와 그룹 활동, 회사 내 권력 구조가 복잡하게 뒤섞인 일이다.
더 크게 보자면 거기에 함께 방송을 기획한 방송국과 다른 소속사까지 엮여버렸지.
“뉴레인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계획을 짠 건 아닐 텐데 저희가 막을 수 있을까요?”
다들 혼란에 빠진 와중에 준해가 가장 먼저 이 사태를 머리로 받아들이고 내게 질문했다.
그의 말대로 뉴레인이 허술하게 계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됐든 몰래 계획한 일이니 안 들키는 게 관건.
제작진이나 같은 출연진들, 시청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니까.
“방송이니까 뉴레인에서도 티 나게 누굴 밀어주지는 못할 거야. 아마 특기를 선보일 기회를 좀 더 많이 준다거나, 주목받을 만한 멘트나 서사를 회사가 만들어 주려는 거겠지.”
내정된 연습생에겐 최적의 판을 깔아주고, 아닌 사람에겐 불균등한 기회를 주고.
그러다 마지막엔 미리 정한 연습생을 최종 데뷔조로 뽑은 후, 능력이 좋아서 뽑은 것처럼 연출하면 될 일이다.
소속사 내 데뷔 서바이벌은 시청자의 의견도 일부는 반영하겠지만 결국은 소속사의 의견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그걸 알고 뉴레인이 이런 일을 꾸민 걸 테고.
이제 다들 놀란 마음은 진정시키고 차분해졌는지 이번엔 재민이 손을 들었다.
“그럼 미리 정한 사람 말고 다른 연습생이 더 주목받으면요?”
“연습생들은 전부 뉴레인 소속이니까…… 회사 내부에서 어떻게든 자기들이 만든 그림이 되도록 수를 쓰겠지.”
이번에 모노크롬에게 그랬던 것처럼 무언의 압박을 준다거나.
‘……생각해보니 이거 뉴마가 예전에 재민이한테도 썼던 수법이잖아.’
그룹과 회사에 손해를 입히는 것처럼 여론을 조성해놓고 죄책감을 느낀 당사자가 먼저 지쳐서 나가게 만드는 거.
재민도 같은 기억을 떠올렸는지는 몰라도 손을 내리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정 뉴레인의 마음대로 안 된다면 방송으로 뽑은 데뷔조의 데뷔를 무산시키고 새로 데뷔조를 꾸리는 방법도 있다.
데뷔가 무기한으로 미뤄진다면 연습생은 결국 지쳐서 회사를 나가겠지.
그러면 회사는 ‘연습생이 개인 사정으로 나가버린 탓에 데뷔조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런데 뉴레인은 새 보이그룹 런칭이 급하니까 이번 방송에서 최대한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놓고 싶을 거야.’
지금 유일한 소속 그룹인 아이리스가 재계약을 앞둔 상황.
그들에겐 이른 시일 내에 새 아이돌 그룹을 런칭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정된 연습생 외의 다른 연습생이 두각을 보인다면 뉴레인도 고민 정도는 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건 다른 연습생들이 방송에서 묻히지 않고 굴하지 않게 도와주는 거. 쉽지는 않겠지만 모노크롬이 멘토로 나가면 어느 정도 분량이 확보될 테니까 그걸 잘 활용해 보자.”
우리는 비뚤어진 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려는 거다. 그것을 이해한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오해하지 말고 들어.”
멤버들을 불러 모은 김에 전달할 내용이 하나 더 있었다.
언젠가는 할 말이었지만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늦게 말할 수도 없는 내용이었기에 이 기회에 하기로 했다.
“선택은 너희가 하는 거지만, 이 회사는 글렀다고 생각해.”
“네……?”
내 입에서 대뜸 나온 소리에 우형은 귀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멤버들의 얼굴을 보니 아까 뉴레인의 계획을 알려줬을 때보다 더 놀란 듯했다.
아까는 반쯤 참담함이 섞인 표정이었다면, 지금은 놀란 나머지 머리가 이해를 거부하는 듯한 멍한 얼굴?
“모노크롬을 오래 이어나가기에 여기는 좋은 환경이 아닌 것 같단 소리야.”
내가 풀어서 말해주는데도 우형은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그 대신 한이가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지금 환경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요.”
물론 과거보다 뉴마가 많이 개선된 건 사실이다. 회삿돈을 끌어 쓸 수 있는 환경도 나쁘지 않았고.
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건 뉴마 임원진들과 직원들이 날 어려워했기 때문이고. 아마 앞으로 뉴마는 내 눈치를 덜 보고 더 막 나가겠지.
이번에 뉴마가 모노크롬을 압박하겠다고 한 짓을 생각해 보면 예상이 갔다.
그리고 지금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뉴마가 좋은 곳이라서’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서’겠지.
멤버들도 예전에 뉴마한테 당한 게 많았을 텐데, 그 기억이 쉽게 지워졌을 리는 없다.
“지금 모노크롬 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 이 사람들만 있으면 딱히 뉴마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모노크롬 전담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모노크롬을 따라서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멤버들과 그들은 단순한 회사 동료 이상의 관계라고 믿는다. 모노크롬이 뉴마를 떠난다면 기꺼이 따라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이 점은 멤버들도 동의하는지 조금 더 차분해진 얼굴로 이야기를 들었다.
“이사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미래를 좀 고민해 보자. 제일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
내 퀘스트 기간은 올해가 끝날 때까지. 멤버들의 재계약 기간과 거의 동일하다.
뉴마가 개선되리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희박해진 지금, 내가 뉴마에서 마지막으로 할 일은 역시 ‘모노크롬 탈뉴마 프로젝트’가 적절한 듯했다.
***
허 실장과 면담한 후, 모노크롬이 무언의 압박을 받는 동안 뉴레인의 계획엔 변동이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마이 엔터를 확인해 봤더니 역시나였다.
‘머리 썼네.’
뉴레인의 그룹 관리 창에 나타난 무명의 보이그룹. 그 멤버 구성이 바뀐 것이다.
뉴마에서 건너간 연습생 두 명과 연찬은 그대로. 나머지 두 명이 바뀌었다.
데뷔조로 내정되었다가 교체된 두 명에겐 다른 좋은 조건을 내세워서 빠지게 한 걸까? 아니면 애초에 계약 자체가 허술했던 걸까.
자세한 정황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나한테 잡힌 약점을 없애겠다?’
외부에 새어나가면 안 될 일을 나한테 들켜 버렸으니 그대로 진행할 수도 없었겠지.
이렇게 데뷔조 구성을 바꿔둔다면 내가 가지고 있던 정보와는 내용이 달라진다.
만일 내가 ‘데뷔조가 내정되어 있었다.’라며 가지고 있던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그건 이미 지나버린 정보.
틀린 정보를 폭로해봤자 신빙성만 떨어질 테고, 그러면 뉴레인은 아니라고 발뺌할 수 있다.
‘사실 지금 나한텐 폭로할 수 있는 증거가 없지만.’
뉴레인은 데뷔조 구성을 바꿔 다시 계약하면서 괜히 보안에 더 신경을 썼겠지.
내가 방구석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바뀐 데뷔조 구성까지 내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밝히며 뉴레인을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은 숨겨야겠어.’
정보가 또 한 번 새어나갔다는 사실을 알면 다음번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수를 쓸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더 머리가 아파질 테니 내 예상 범위에 있는 지금 이 상태로 두는 것이 낫다.
‘그러려면 상대한테 만만해 보이는 편이 훨씬 더 낫겠지.’
열심히 고민해본 결과, 압박에 굴복한 ‘척’을 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뉴마와 뉴레인 사람들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는 듯했다.
자꾸 말도 안 되는 용건을 들고 찾아오던 것을 생각해 보면 내가 고분고분히 회사 뜻을 따르리라고 생각하던 것 같으니까.
지금까지는 상대방이 필요한 게 있어서 날 찾아왔지만, 이번엔 내가 직접 뉴레인으로 찾아갔다.
뉴레인의 허용석 실장은 ‘그럴 줄 알았다’ 하는 표정으로 날 맞이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역시 한 가족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가족……. 하하. 네. 그렇게 가족 같은 줄 몰랐네요. 뉴마랑 뉴레인.”
가족은 무슨 이럴 때만 가족이야?
어이가 없어서 ‘가족 같은’의 ‘가’를 발음할 때 나도 모르게 힘이 빠질 뻔했다.
“대표님과 이사님이 가족 아닙니까. 회사 관계도 아무렴 그래야죠.”
오늘은 가족 같은 유대감을 강조하는 컨셉인가 보다.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보다 인정에 호소하는 게 어영부영 대화를 흘려듣기 편하니 나야 좋지만.
“그런데…… 그렇게 대표님께 신뢰받으시는 줄은 제가 미처 몰랐네요. 하긴, 그래서 뉴마에 계실 때부터 기획 실장을 맡으셨겠죠.”
대표 닮아서 대표와 똑같이 행동한다. 이 말은 내게는 욕에 가까웠다.
나도 모르게 비꼬는 말투가 나올 뻔했는데 허 실장은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은 듯했다.
아니, 반대로 기분이 좋아 보이는 듯한…….
“크흠. 대표님이 계속 해외에 계시지 않습니까. 국내 운영과 기획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서, 저를 통해 많이 진행하셨죠.”
“아아. 예전엔 최 비서한테 다 맡겼다고 들었어요.”
대충 아는 척하며 맞장구를 치니 허 실장의 입꼬리가 더 올라갔다.
“맞습니다. 그런데 최 비서님은 지금 뉴마에 남으셨으니까요.”
그렇지. 몇 년이나 대표를 보좌했던 사람이 뉴마에 남아서 내 비서 역을 수행했지.
최근 그와는 업무 이야기 외의 개인적인 대화는 일절 안 하는 어색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1년이나 지나서 조금 친분은 생겼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바로 벽이 생기다니.
대표에게 신뢰받는 게 뭐 그리 좋은 일인지 몰라도 웃는 얼굴로 말하던 허 실장은 이번엔 화제를 내게 돌렸다.
“이번 신인 기획에 대해서 이사님은 대표님께 따로 전달받으신 게 없는 듯한데. 뉴레인 운영과 관련해서도 대표님이 따로 말씀하신 적 없으십니까?”
“글쎄요. 애초에 뉴마에서 하는 일도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시작했거든요.”
“혹시…… 일을 배우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다거나.”
“으음. 제 생각에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전 원래 이 업계에서 일할 생각이 없기도 했고 별로 오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요.”
“그렇습니까? 의외군요. 능력이 있으셔서 좀 더 큰 일을 생각하실 줄 알았는데…….”
내가 의욕 없는 대답을 내놓으니 허 실장은 말로는 아쉬운 척하면서 표정은 더 밝아졌다.
‘뭐야, 이 사람.’
혹시 내가 대표 딸이라고 나중엔 회사를 먹을까 봐 경계했었나? 대표 최측근이던 최 비서를 자꾸 신경 쓰던 것도 그렇고.
허 실장은 뉴레인에서 더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듯하지만 나는 줘도 안 갖는다, 그런 자리.
그래도 허 실장의 권력욕을 얼핏 엿보게 된 것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그런 큰일은 저보다는 경력 있는 분이 맡으시는 게 더 낫겠죠. 대표님 뜻을 잘 아는 분이요.”
-라는 말을 듣고 싶다 이거지?
나는 껄끄러운 웃음 대신 비즈니스 미소를 띠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