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41화 (241/430)

# 241화

우리가 펑크를 낸 것도 아니고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모노크롬의 스케줄을 같은 회사 소속 연예인이 대체하는 상황.

잡지사는 그들의 사정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나 이건 누가 봐도 뉴마 배우팀이 꾸민 짓이었다.

배우팀에서 우리에게 아무 내용 공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정상적인 스케줄 변경이었다면 내부에서 먼저 양해를 구하고 진행했을 테니까.

‘하아. 진짜 짜증 나네…….’

지금까지 회사 사람들, 특히 임원진들은 내 눈치를 보면서 동시에 날 무시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내가 엔터 업계 경력이 없는 낙하산이라 날 신뢰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윤환이를 빼갈 때도 그랬지.’

당시 매니지먼트 팀장은 모노크롬의 담당자로 부임한 날 건너뛰고 사장에게 직접 찾아갔으니까.

최근엔 모노크롬이 성적을 내고 있음에도, 심지어 내게 직접 담당 분야를 넓히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는 상황에서도 중요한 일에선 나를 쏙 빼놓았다.

‘그래. 대표가 있다면 이해가 돼.’

나를 어려워한 게 아니라 내 뒤에 있는 대표를 어려워한 거였다면 말이야.

처음부터 그들에게 나는 그저 대표 빽으로 들어온, 허울뿐인 이사였던 거지.

그런 내가 회삿돈을 탕진하고 다니거나 막무가내로 나가도 뭐라고 하지 못한 것은 ‘따님을 이렇게 존중한다’는 모습을 보이며 대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대표였던 내가 지금 여기 있으니 지금의 대표는 설정상으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이라 나 혼자 생각하고 판단한 것이 문제였을까?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잖아. 지금껏 내게는 대표의 소식이 따로 들려온 적이 없었는데.

해외로 나가 있으면서 뉴마 운영은 사장에게 맡긴 상태고, 뉴레인 운영에는 메일 등을 통해 직접 관여한다는 것 같고.

모노크롬 재계약을 바로 처리하지 않고 미뤘으며 아티스트 레이블인 뉴레인을 새로 설립해 아이리스만 데려갔다.

내가 아는 대표에 관한 정보는 이 정도였다.

‘그런데 대표를 잘 모르는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대표에 대해선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거나 애초에 마주치거나 소통한 적이 별로 없다는 식이었다.

이번에 뉴레인의 허용석 기획실장이 대표에게 직접 지시를 받았다는 게 오히려 특이한 일이었다.

허 실장도 대표와 관련된 이야기에 최 비서부터 떠올렸을 정도로 대표는 모든 일을 최 비서를 통해서 진행해 왔으니까…….

‘……맞아. 최 비서.’

딱 한 사람. 이 뉴마에 대표를 잘 아는 사람이 있다.

남들처럼 대표를 흐릿하게 인식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이었다고 표현하기까지 했던 사람.

대표를 몇 년이나 옆에서 보좌했던 최 비서.

그러나 그도 대표와 따로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표직만 유지되어 있을 뿐이고 뉴마에선 완전히 손을 뗀 상태라는 뜻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본인의 자리로 복귀했던 최 비서를 다시 불렀다.

“최 비서.”

“네. 이사님.”

“대표가, 아니, 대표님이 뉴레인 신인 데뷔 기획에 직접 지시를 내렸다고 해. 데뷔조를 미리 내정하라고.”

“…….”

정말 튜토리얼 캐릭터라도 되는 것처럼 항상 단정하고 차분한 표정이던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마 허 실장이 대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 표정이 저렇지 않았을까.

“혹시 이 일 관련해서 얘기 들었거나 아는 거 없어?”

“……전혀 몰랐습니다.”

최 비서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대답했다.

대표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도 의외였던 걸까.

몇 년이나 보좌했던 상대가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옆 회사에서 멀쩡히 일하고 있다고 하면 나라도 황당할 것 같긴 하네.

아무튼 그만큼 최 비서는 대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반응하는 거겠지.

그렇기에 내가 지금 최 비서를 부른 것이다.

“최 비서는 대표님이 일하는 걸 옆에서 계속 지켜봐 왔잖아. 지금 대표님이 뭘 하려는 건지 짐작이 가?”

“……아뇨.”

“아니면, 내가 오기 전에 말이야. 혹시 지나가듯이 회사 운영이나 신인 육성 관련해서 얘기한 적이 있었다거나.”

몇 년간 바로 옆에서 함께 일했으니 사소한 이야기 한두 개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대표는 플레이어인 내가 그대로 반영된 존재라고 생각해서 묻지 않았다. 그러나 나와 별개의 존재라면 내가 모르는 대화를 나눴을 수도 있잖아?

대체 무엇을 목표로 뉴레인을 이렇게 운영하고 있는지, 그게 가장 궁금했다.

뭔가를 알아보려 해도 정보가 너무 없어서 그런 사소한 정보에라도 기대야 했다.

“그런 말씀은 전혀 없으셨습니다.”

“그럼 대표님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더 정확히 말해줄 수 있어?”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

대표는 몇 년 동안 최 비서 외의 다른 사람과는 소통 한 번 제대로 안 했을 정도로 이상한 사람이었을 터. 그렇다면 최 비서도 별다른 이야기를 못 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가 대답해 줄 수 있을 만한 것을 물었는데 답할 수가 없단다.

‘대표를 가장 잘 아는 게 최 비서인데, 나한테는 말해줄 수 없다…….’

지금까지 그가 내게 이런 명백한 거절의 뜻을 비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대표 이야기에 이렇게 나온다는 건.

“……혹시 최 비서는 지금도 대표님의 사람이야?”

지금 그는 나보다 대표의 의사를 우선하는 걸까. 설마 내 비서를 맡은 것도 대표의 지시라서?

대답을 기다렸으나, 그는 곤란하다는 듯이 잠시 뜸을 들이고는 결국 확실한 답은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다.

“지금 저로선 이사님께 먼저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

내가 알고 있던 무언가가 틀린 것이었다.

게다가 믿고 있던 사람도 완전히 내 편이 아니었다.

‘믿었던 사람이 대표 라인일 수도 있다……?’

그럼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지?

일단 모노크롬을 못 믿을 리는 없고. 사직서부터 냈던 윤희는 대표 라인일 리가 없다. 뉴레인을 박차고 돌아온 송준오 피디도, 우형을 통해 데려온 민형도.

‘……다들 뉴마에 못 있을 뻔했던 사람들뿐이네.’

모노크롬 전담팀은 다행히도 대표와 상관없이 모노크롬을 위해 뉴마에 있는 사람들만 모여 있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이들만큼은 문제없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확인하고 나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최 비서는 나 때문에 전담팀처럼 일하게 된 거였으니까 그가 대표 라인이든 아니든 모노크롬에게는 크게 상관없다. 나만 좀 충격일 뿐이지.

내 마음이 뒤숭숭해서인지 회사 분위기도 뒤숭숭하게 느껴졌다.

아니,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이제 멤버들까지도 회사 분위기를 신경 쓰는 눈치였다.

멤버들도 이번 스케줄 변동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랑이 혼자 이사실로 찾아왔다.

해랑은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으로 얼굴을 가볍게 쓸고는 입을 열었다.

“역시 데뷔 서바이벌을 안 나가는 것 때문에…….”

모노크롬이 최근 회사와 갈등을 일으킬 만한 일은 데뷔 서바이벌밖에 없었다.

해랑은 자신 때문에 그 스케줄을 거절했고 그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 일이 그의 가정사 때문은 아니었다.

“네가 눈치 볼 필요 없어. 안 나갈 이유가 있어서 거절한 거니까.”

“그냥 저희가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멤버들이랑 얘기해 봤더니 그래?”

해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노크롬이 이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회사 눈치를 전혀 안 볼 수는 없다.

뉴마도 그걸 잘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멋대로 움직이는 걸 테지.

“그리고 저희 일로 이사님까지 곤란해지시는 것 같아요.”

“……아냐. 그건 이번 일 때문이 아니라서.”

내가 허 실장과 대화한 후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까지 들은 건가.

모노크롬의 출연 거부로 내 회사 내 입지까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하지만 이건 터져야 했던 고름이 하필이면 지금 터진 거지. 이번 일은 그 계기가 되었을 뿐 원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터져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은 모노크롬도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지고 회사의 지원을 크게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립한 상태다.

그런 모노크롬이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뉴마에게는 오히려 손해.

게다가 이번처럼 우리의 일을 취소시키려면 상대에게 ‘모노크롬과 협업하는 것’ 이상의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할 텐데, 그건 뉴마에게도 소모적인 일일 터였다.

모노크롬이 회사 눈치를 볼 시기는 이미 지나 버렸다. 지금 터진 게 타이밍은 나쁘지 않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서로 잘 모르는 상태로 1년이나 지난 것도 웃기네.’

나도 대표를 몰랐고 대표나 임원진들도 나를 잘 몰랐고. 그 상태로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건 혹시 게임 보정인가? 마치 회사 의존도가 낮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때다!’ 하고 일이 터진 것 같잖아.

내 통제 범위를 넘어선 일이어서일까. 심각했던 것도 잠시, 그냥 황당한 해프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긍정 회로를 돌리고 있는 나와 다르게 해랑은 아직도 심각한 표정이었다.

“혹시 동생이 뭐라고 그랬어?”

리더인 우형도 아니고 해랑이 혼자 이사실을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 동생이 관련되어 있어서겠지.

그는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그렇게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저한테 부탁할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요.”

‘부탁’이라고 표현했지만 해랑을 괴롭히는 걸 그만두겠단 소리였다.

동생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니까 진작 그만뒀어야 했지만.

동생은 가수를 꿈꾸기에 해랑에게 죄책감을 상기시키면서 자신을 돕기를 강요했던 건데, 데뷔하면 볼 일은 끝이라는 것이다.

“해랑이 너는 나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

“피하기만 하는 건 능사가 아닌 것 같아요. 멤버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 일만 지나면 더 신경 쓰게 만들 일도 없을 것 같아서…….”

최근 그는 동생의 연락을 계속 피해왔다. 그렇게 해서 마음은 조금 편해졌을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은 듯하다.

이번엔 멤버들에게 신세를 지면서까지 그 얽매이는 관계를 끝내고 싶은 거고.

차라리 나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면 이 상황의 해결은 쉬워진다.

“사실 이번에 회사랑 트러블이 있었던 건, 뉴레인이 데뷔조를 이미 정해둔 걸 내가 알아채서였어.”

멤버들이 이 일에 더 깊이 엮이지 않았으면 해서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해랑의 책임감을 덜어주려면 말해주는 게 나을 듯했다.

예상대로 해랑은 매우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런 뒷사정이 숨어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겠지. 나도 그랬는걸.

“그것 때문에 안 나가겠다고 한 거야. 우리한테 손해만 된다고 생각했거든.”

처음에야 해랑의 가정사도 영향이 있긴 했다. 뉴레인을 향한 개인적인 감정도 조금 껴있었고.

그러나 더 큰 원인이 나타난 이상 그건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안 나가면 이 조작건 또한 모노크롬과는 상관없는 일이 되었겠지만, 이 지경까지 와서는 이미 선택하기엔 늦은 일일지도 몰랐다.

“나가서도 얻는 이득이 있다면, 나가자. 데뷔 서바이벌.”

다만 부당한 일을 모른 체하며 그들이 원하는 흐름대로 휩쓸릴 생각은 없었다.

피하기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건 해랑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조작이 걸리는 게 가장 문제라면, 조작이 아니게 만들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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