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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40화 (240/430)

# 240화

당연히 뉴레인의 보이그룹 데뷔조가 ‘정해졌다’는 소식은 나오지 않았다. 데뷔조를 정하는 서바이벌이 예정 중일 뿐이지.

‘그런데 이렇게 그룹으로 표시된다는 건…… 회사와 계약했다는 거잖아.’

방송을 위해 연습생 전체와 방송 출연 계약을 한 게 이렇게 나타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마이 엔터의 그룹 관리 창에 나타난 보이그룹은 5인조. 데뷔하려면 최소 네다섯 명이 있어야 할 텐데 연습생이 다섯뿐일 리가 없었다.

그런데 특정 연습생 다섯 명만 이렇게 마이 엔터에 ‘그룹’으로 등록되었다는 건…….

‘방송 전부터 미리 데뷔조를 정해두고 서바이벌을 한다고?’

에이펙트 엔터와는 얘기가 된 일인가? 구색 맞추기 용도로 전락한 다른 연습생들이랑은?

어디까지 합의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데뷔 서바이벌이라는 기획과는 반대되는 행보였다.

능력치는 확인하지 못하지만 그룹 관리 창에서 그들의 이름은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한 명만큼은 이름을 확인하기 전부터 캐릭터를 보고 누구인지 바로 알아챘다.

“……결국 이렇게 할 생각이었던 거지.”

뉴레인이 목적이 있어서 해랑의 동생인 연찬을 데려왔으리란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긴 했다.

그런데 그 예상을 이렇게 실제로 마주하게 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회사는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일단은…… 당장 선을 그어둬야겠어.’

이 상황에 모노크롬이 출연하면 우리까지 조작에 가담하게 되는 거잖아?

뉴레인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섭외를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알게 된 지금은 더더욱 출연할 이유가 없어졌다.

일단 아이리스에게 마이 엔터로 확인할 수 있는 별다른 변동 사항은 없는 듯했다.

나는 뉴레인과 계약된 연습생들 이름을 따로 적어두고 마이 엔터를 종료했다.

***

출근해서 알아보니 최근 뉴마에서 뉴레인으로 옮겨간 연습생은 총 세 명.

그중 두 명이 뉴레인과 계약된 다섯 명에 포함되어 있었다.

최 비서는 추가로 알아 온 사항을 내게 알려줬다.

“특히 그 둘은 평가 때마다 좋은 점수를 받아서, 배우팀 내부에서도 소속을 옮긴 게 의외라는 말이 돌았다고 합니다.”

“연기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거지?”

“네.”

연기를 잘하는데 굳이 뉴레인으로 가서 아이돌 데뷔조가 되었다는 건…….

‘이쪽이 그건가. 권 실장이 말하던 아이돌 배우 신인 육성.’

아이돌로 데뷔시켜서 인지도를 쌓은 후에 연기 활동을 뉴마와 함께 할 생각인 거다.

멤버 구성부터 뉴마가 연관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쏙 빼고 우리를 섭외하려 했겠다.

만일 이게 들키면 뉴마 소속인 모노크롬까지 한패 취급당할 게 뻔한데도.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얼굴이 더 알려진 쪽에 화살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만일 일이 터진다면 가장 피해를 보는 건 모노크롬일 것이다.

‘내가 알았으면 당장 거절할 줄 알고 나한테 정보 공유를 안 했던 건가.’

그러니까 한마디로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를 속여먹으려 했다는 얘기다.

뉴마와 뉴레인 임원진들 사이에서 나는 거의 외부인 취급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알았어. 그리고 뉴레인에서 들어온 섭외 건은 오늘 바로 거절할 거야.”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아. 표정 관리.

최 비서가 묻는 걸 듣고 나서야 내가 내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비서인 그는 내 표정을 자주 살폈고 가끔은 사소한 표정 변화도 알아채곤 했다.

게다가 출근하자마자 뜬금없이 뉴레인으로 옮겨간 연습생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지시했으니 간밤에 뭔가 일이 있었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이걸 뭐라고 설명하겠어.’

어젯밤에 게임을 확인하다가 뉴레인에 새 그룹이 생긴 걸 알아챘다? 무슨 영적인 힘이 생겨서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그가 모르는 연락책을 통해 정보를 몰래 입수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면 몰라도 최 비서는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야.

내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건 아마도 최 비서가 가장 잘 안다. 매일 그가 내 출퇴근길을 도맡는데 난 일터와 집 외에는 오간 적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아냐.”

내가 원래 내 정체를 숨기는 이상 그에게는 이 정도 선을 그어 둘 수밖에 없었다.

***

내가 출연 요청을 거절하자, 뉴레인 측 책임자인 듯한 허용식 기획실장이 면담을 요청했다.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어.’

뉴레인에겐 모노크롬이 가장 좋은 선택지일 테니까.

대형 소속사로 꼽히는 에이펙트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서바이벌을 기획하는 이상, 뉴레인은 그들에게 묻히지 않는 것부터가 첫 관문이다.

에이펙트에선 SPID 멤버들이 나오는데 그에 준하는 외부 인사를 섭외하기에는 여건이 마땅치 않겠지.

그런데 모노크롬은 SPID와 연차도 같고, 친분도 있고, 최근 화제성도 얻었으니 탐이 날 만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좋은 조건을 가져오더라도 받아들일 마음은 없었다.

‘QBC를 매수할 만한 돈을 들고 오는 게 아니라면.’

……뉴레인이 그렇게 부자였으면 애초에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굴지는 않았겠지.

그쪽도 시간이 많지는 않은지 빠르게 면담 시간을 잡았다. 나도 이 일을 질질 끌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므로 바로 오케이 했다.

미리 얘기한 시간이 되어 찾아온 허 실장이 무슨 얘기를 하려나 했는데, 그가 들고 온 건 뻔하디뻔한 얘기였다.

“전체적인 그림을 생각해 보시지요. 모노크롬이 SPID에게 밀릴 것 같아서 안 나온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겠지.

자존심을 건들고 싶은 모양인데, 모노크롬과 SPID는 지금 밀고 밀리면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이게 멘토 싸움이 아닌 데다가, SPID가 모노크롬을 굉장히 좋아하는 걸 팬들도 알고 있는데요?”

지금 모노크롬은 SPID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 그들의 팬덤, 스피디의 경쟁 상대에 가까웠다.

이상하게 윤규가 모노크롬 사랑 모드에 들어간 덕분에 스피디들이 모노크롬이 되고 싶다고, 질투 난다고 하는 중이거든.

그런데 우리가 안 나간다고 설마 무서워서 피했다고 생각하겠어?

허 실장은 이들의 이런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그냥 말을 돌려 버렸다.

“시청자들도 마땅히 선배 보이그룹이 나올 것을 기대할 텐데요.”

“모노크롬은 뉴레인 소속이 아니잖아요.”

“뉴레인이 뉴마에서 분리되어 나온 레이블 아닙니까.”

“네. 분리돼서 다른 회사죠.”

도돌이표처럼 대화가 제자리를 빙빙 돌았다.

내가 모든 말에 철벽만 치니 허 실장도 슬슬 답답한지 억지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이사님도 아이리스 일에 관여 안 하시는 게 맞습니다.”

레드가 돌아가서 회사랑 얘기를 하긴 했나 보네.

그 때문에 심기가 거슬린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사로서 관여한 거 아니고 지인으로서 한 건데요?”

“…….”

길게 말했지만 결국은 ‘싫은데?’라고 대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당당하게 나오자 허 실장은 말문이 막혔는지 억지로 웃는 얼굴은 그대로였으나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하하. 짜증 나지? 말 안 통하지? 괜히 찾아온 것 같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리가 순순히 나오리라고 예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괘씸한 마음에 대화의 여지를 모두 차단해 버렸다.

얼굴 마주하기 불편한 건 피차일반. 이 면담을 오래 끌 생각은 없었다.

나는 이 흐름을 타서 우리도 안 나가는 이유가 확실히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대화를 끝내기로 했다.

“데뷔조를 정해두고 하는 거짓 방송에 모노크롬을 뉴레인의 얼굴로 내세우고 싶진 않네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정상적인 루트로 내용 공유가 전혀 안 되고 있는데 저희도 일을 하려면 정보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물론 그런 정보책은 없었지만 있는 척했다. 우리 편이 많아 보여야 상대도 좀 위기감을 가질 테니까.

허 실장은 잠시 생각에 빠져있더니 웃는 얼굴을 지우고 물었다.

“최 비서님입니까?”

갑자기 최 비서 얘기는 왜 나와?

“대표님과 몇 명만 아는 얘기인데. 대표님은 설마 아직도 최 비서에게 일을…….”

점점 중얼거림으로 변해서 그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대표가 이전까지 최 비서를 통해서만 업무를 진행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가 연관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한 건가?

그런데 지금 그가 한 말에서 최 비서와 관련된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표가, 아니, 대표님이 아신다고요?”

뉴마와 뉴레인의 임원진이 이 일에 가담했다는 건 알겠는데, 거기에 대표가 왜 포함되지?

내가 당황하자 허 실장은 이게 내 허점이라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말했다.

“대표님이 지시하신 사항입니다.”

“대표님이 직접, 지시하신 일이라고요?”

허 실장은 잠시 말이 없더니, 표정에 갑자기 여유가 돌아왔다. 내가 당황할수록 그의 허리가 펴졌다.

“네. 대표님이 지시하셨죠.”

“대표님은…… 지금 해외에 계시잖아요.”

“요즘 세상에 위치가 무슨 문제겠습니까. 사내에서도 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는데요.”

뉴마나 뉴레인 내에서 대표의 입지가 여전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딱 그뿐.

지금까지 ‘대표가 대표직에 있다’는 것 외에 대표의 존재감을 느낄 새는 없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곳에서는 대표가 뚜렷한 의지를 갖고 움직이고 있었다?

‘뉴레인은 직접 운영하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뉴마에도 지시를 내리곤 했는데 이것도 나한테만 정보 공유가 안 된 건가?’

대표가 지금 어디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의문으로 들어가야 했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그 대표는 대체 누구인데?

“그렇군요…….”

혼란에 빠진 내 얼굴을 보고 허 실장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뭔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씩 웃었다.

“이사님은 대표님께 아무 말씀도 못 들으신 거군요.”

***

‘뭐지……. 대체 뭐지?’

결국 섭외를 거절하겠다는 내 뜻은 변함없었으나, 허 실장은 의외로 순순히 물러갔다.

대표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자마자 그의 태도에 여유가 생겼다. 내가 모르는 데서 수가 읽힌 기분이었다.

‘처음엔 둘 다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거야.’

난 당연히 대표는 움직이지 않으리라 생각했고, 허 실장은 내가 대표 딸이니 당연히 대표의 뜻대로 움직이리라 생각한 것이다.

내게 ‘대표가 지시한 일이다’라고 순순히 말한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대표는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결국 거절했지.

나는 혼란에 빠졌으나, 상대방에겐 이 상황이 오히려 유리한 형세로 작용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이 상황만 해도 그렇다.

“잡지 인터뷰가 취소돼?”

“잡지사 사정으로 배우 기획으로 급히 변경되었다고 방금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최 비서의 보고를 듣자마자 왠지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일하면서 스케줄이 이리저리 변경되는 경우야 많았지만, 하필이면 타이밍이 신경 쓰였다.

“……설마 그 배우가.”

“알아보니, 뉴마 소속 남배우 2인으로 예정 중인 것 같습니다.”

모노크롬이 이름을 알리고 나서 인터뷰 요청은 종종 들어왔고, 이것도 가벼운 인터뷰였기에 스케줄 취소 자체는 큰 타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노크롬을 빼고 뉴마 소속 배우를 넣는 건 다른 의도가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이 미친 회사가…….’

뉴마와 뉴레인이 손을 잡고 모노크롬을 다른 쪽으로 압박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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