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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36화 (236/430)

# 236화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아이리스의 스타일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데뷔부터 3년 차가 될 때까지 아이리스의 스타일은 전부 내가 정했으니까.

그리고 퍼플은 동그란 얼굴에 가느다란 목이 길게 뻗어 있어서 직선으로 뻗은 장발이 잘 어울렸다.

스타일링 화면에서 여러 헤어스타일을 살펴본 결과,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은 찾지 못했다.

이 세상에서 직접 본 그녀의 모습도, 일러스트로 보며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특히 윤기 나는 머릿결 덕분에 샴푸 광고 모델로 잘 어울리는 연예인을 꼽으면 그녀의 이름이 꼭 나온다나. 실제로 헤어 에센스 제품 모델이 된 적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게임 하면서 머릿결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 그 긴 머리를 전체 염색시킨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관리에 상당히 공을 들였는지, 내가 이 세계에 와서 확인했을 땐 건강한 머릿결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 긴 머리가 썩둑 잘려있는 상태로 나타났다.

“이, 이건 누가 자른 거야?”

“……제가 잘랐어요.”

퍼플이 체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로 대답한 것치고는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를 탓하려고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하아…… 다행이다. 난 또 다른 사람이 자른 줄 알고.”

그녀가 자발적으로 자른 게 아니라 누군가가 잘랐다면, 혹시나 그게 회사와 관련된 사람이었으면 인권 유린으로 경찰에 신고할 뻔했어.

일정하지 않게 마구잡이로 잘린 머리칼에서는 명백히 헤어를 망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본인이 자른 게 아니었다면 정말 큰 문제일 뻔했다.

‘아니지. 본인이 잘랐다면 또 다른 문제겠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정성 들여 관리하던 머리를 이렇게 잘랐다는 건, 그녀의 심경에 큰 변화가 있어서다.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폭발했다든지, 뭔가 표출하고 싶어서.

그런데 그 행동으로 응어리가 풀린 게 아니라, 오히려 본인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는지 퍼플은 지금 툭 건드리면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뭔가 본인 선에서 감당이 안 되는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본인이 홧김에 저지르고 뒷수습이 전혀 안 되는 불안정한 상태인 것 같아서 가만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화 안 내세요?”

“화를? 내가?”

혼날 줄 알고 계속 나랑 시선을 안 마주치려 했던 건가.

옆에 있는 레드를 바라보니 그녀는 여전히 미안하다는 시선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 퍼플의 모습은 열애설 사건 때 혼자 이사실로 찾아왔던 레드의 모습과 겹쳤다.

‘아. 그래서 회사가 아니라 나한테 먼저 연락한 거구나.’

뉴레인이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뉴레인 임원과 비슷한 위치인 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레드는 내게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아이리스의 일을 내가 무시할 순 없었다. 아이리스도 내 플레이의 피해자이기도 했는걸.

“이야기 들어줄 테니까 나한테 말해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말해 줘. 난 따지자면 다른 기획사 임원이라 너한테 뭐라고 할 위치가 아니거든.”

퍼플은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돌려 레드를 보았다. 레드는 여전히 그녀를 다독이며 안심하라는 듯 미소로 대답했다.

‘레드도…… 역시 리더는 리더네.’

전에 레드가 혼자 이사실로 찾아왔을 땐 그저 감정 풍부한 소녀 같았는데. 동생 앞에서는 제법 언니다운 모습을 보였다.

퍼플은 다시 바닥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습관처럼 머리를 손으로 빗어 내렸다. 바로 끊겨버리는 머리 길이가 자신도 익숙지 않은지 금방 울상이 되었지만.

그녀는 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해외 활동은 그만하고 싶어서…….”

“해외 활동?”

“저희 유닛 컨셉상 스타일을 통일해야 하는데, 제가 머리를 잘라버리면 해외 일정 계획을 다시 생각해야 할 테니까.”

활동 중인 연예인, 특히 아이돌은 헤어스타일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한다.

이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모노크롬이 헤어를 바꿀 때도 항상 회사와 상의를 하니까.

‘그리고 아이리스 유닛 컨셉이…… 쌍둥이 인형이었던가.’

오렌지, 옐로, 퍼플. 이렇게 세 명으로 이루어진 퍼포먼스 유닛이었다.

‘쌍둥이처럼 만들어진 인형’이라는 컨셉대로 각을 맞춘 퍼포먼스가 포인트였는데, 그만큼 통일된 스타일도 중요한 듯했다.

퍼플은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 계획에 차질을 일으킨 것이었다.

“유닛 활동 때문에 저희보다 더 오래 해외에 있었거든요. 번아웃 같은 게 온 것 같아요.”

레드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맞아. 돌대회 때도 아이리스는 유닛 활동 중이던 세 사람을 빼고 넷만 출연했었지.

새해에는 아이리스 완전체의 해외 활동이 있다고 들었는데, 퍼플을 포함한 유닛 멤버들은 거기서 일정이 끝나지 않고 얼마 전까지 계속 해외에 있었던 듯하다. 돌아와서 이렇게…… 머리카락을 잘라버렸고.

“그리고 저, 이제 대학에 들어가요.”

퍼플의 나이가 올해로…… 딱 스물이던가. 입시를 미룬 게 아니라면 대학에 들어갈 나이다.

졸업식 시즌이 얼마 전에 끝났으니, 새내기들은 곧 입학할 테고.

“지망하던 학교 연영과에 입학해서, 올해는 학교에 다니고 싶었는데…….”

“회사에선 학교보다는 해외 활동에 집중하라고 해?”

퍼플은 고개를 끄덕였다.

1학년 1학기는 휴학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연예 활동을 외부 활동으로 인정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입학한 상태로 자주 해외에 나가 활동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건 본인도 원할 때의 이야기지.

‘회사에서 얘 인생 평생 책임져 줄 거야?!’

지망하던 학교라면 들어가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을 텐데. 그저 학점만 채워서 적당히 졸업하기를 원하진 않을 것이다.

말하는 뉘앙스를 봐서는 잠깐 활동 때문에 나갔다 들어오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학기를 통째로 날릴 정도로 해외 활동을 계획 중이던 것 같고.

아이리스도 이제 5년 차. 그런데도 멤버의 의견이 이 정도로 무시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건 저희랑 회사가 더 얘기해 봐야 할 일이지만, 이대로 두면 대화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염치없게 연락 드렸어요.”

레드가 퍼플의 짧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회사의 계획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이 머리를 그대로 하고 대화 자리를 마련하기는 역시 어렵겠지.

머리만 먼저 수습하려 해도 연예인이니 아무 미용실이나 갈 수는 없고. 다니는 샵은 회사와 계약되어 있을 테니 물론 안 되고.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헤어스타일 정도는 책임져줄게.”

“그것만 도와주셔도 정말 감사해요.”

레드가 안심한 듯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퍼플도 작게 고개를 꾸벅였다.

나는 바로 모노크롬이 다니는 헤어샵의 실장에게 연락했다.

본인은 오늘 출근을 안 하지만 우리 스케줄에 자주 출장도 와 줬던 스태프가 샵에 있을 테니 그녀에게 맡기라고 한다.

연예인도 자주 맡는 샵이니까, 스포일러 금지라고 말해두면 외부에 얘기할 일은 없을 것이다.

“샵에는 어차피 숏컷으로 바꾸려던 참에 생머리로 직접 컨셉 사진을 찍느라 머리끝이 거친 거라고 말해두고, 회사에는…… 나랑 약속이 있어서 나왔다가 머리카락이 그슬리는 바람에 다듬었다고 해.”

그슬린 정도로 바로 숏컷이 되었다는 말은 아마 안 믿을 것 같지만 그 부분은 대충 내 이름으로 얼버무리기로 하자.

독단적으로 행동했다고 하는 것보다는 대표 딸인 내 이름을 대는 게 어느 정도 방패가 될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지금 머리가 남들이 보기엔 이상할 정도로 엉망으로 잘려져 있어서, 먼저 가위로 조금 다듬은 후에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탔다.

헤어샵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이 닿은 스태프가 우리를 반겼다.

“어머, 얘기는 들었는데 머릿결 정말 부드럽다. 숏컷 하기에 좀 아까웠겠어요.”

“……네.”

사정을 모르는 스태프는 그녀의 머리를 빗으며 머릿결을 칭찬했다. 그 머리카락을 다 잘라버리고 온 거라 마음이 아프지만…….

“목이 드러나는 게 이쁠 것 같아서, 턱 기장으로 자른 후에 안쪽으로 컬을 넣고 싶거든요.”

나는 컨셉 때문에 확실한 스타일이 정해져 있다는 식으로 헤어스타일을 요청했다.

마이 엔터로 아이리스의 스타일을 여러 번 시뮬레이션 해본 기억을 되살려서 어울릴 만한 숏컷 스타일을 찾아낼 수 있었다.

퍼플의 헤어가 전문가의 손길로 재탄생하는 동안 나는 구석으로 자리를 이동해 레드와 대화를 나눴다.

“이제 회사랑 진지하게 얘기해 볼 거라고?”

“네. 저희도 이제 재계약…….”

레드는 말하다가 잠시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뉴레인 대표의 딸이라는 것을 잠시 잊은 모양이었다. 나야 상관없지만.

“내가 뉴마 이사라고 눈치 볼 거 없어. 나도 아마 이 회사에 오래 있을 것 같진 않아서.”

“혹시 따로 회사 차리시게요……?”

“아니. 그건 아니고.”

레드는 뭔가 기대하는 듯한 시선으로 날 보다가, 아니라고 하자 “아…….”라고 하며 다시 시선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방금 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 회사와 계속 함께할 수 있을지, 제대로 협상을 해 볼 시기가 온 것 같아요.”

그 내용은 단호했지만 걱정이 담긴 목소리였다. 특히 리더인 그녀에게는 부담되는 일일 테지.

회사가 회사의 이익 실현을 우선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소속 아티스트의 의견을 완전히 배제하는 탓에 계속 갈등이 일어났다.

과거의 뉴마도 그랬고, 지금의 뉴레인도 그렇다. 이건 마치 마이 엔터로 플레이되던 시절처럼…….

“대표님이 저희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요.”

“대표랑, 아니, 대표님이랑 소통이 돼……?”

마침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참에 갑자기 대표 이름이 나와서 조금 놀랐다.

‘대표가 말을 하냐’라는 이상한 질문이었지만, 레드는 그 회사에서 대표와 직접 대화할 기회를 얻을 수 있냐는 질문으로 이해한 듯했다.

“아마 저희가 직원분들이랑 얘기하면 대표님이 보고받아서 결정하시지 않을까 해서요.”

“아. 직접 대화해 보겠다는 게 아니고.”

대표는 계속 해외에 있다고 하는데, 뉴레인 내에서의 영향력은 여전한 듯했다.

‘이건 내 플레이 패턴이 그대로 적용되어서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서의 대표의 행보는 이해 안 되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마이 엔터는 경영자 시점으로 진행하는 게임이니, 플레이어가 아니라 경영자 입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내가 더 잘 아는 건, 엔터 업계 경영자가 아니라 마이 엔터 플레이어니까.

마치 이 세상에 플레이어였던 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가끔 들었다.

***

“마치 도플갱어 같네요.”

드라마 <기로>의 촬영 현장.

현장에 도착하여 감독의 세세한 지시사항을 듣던 한이가 말하자 감독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이 형제는 원래 그게 컨셉이었어요. 한 사람만이 선택되어야 하는, 도플갱어 같은 쌍둥이 형제! 이야, 이걸 딱 알아챌 줄이야.”

“저희 얼마 전에 앨범 컨셉으로도 한 적 있었거든요. 도플갱어.”

와 컨셉이 이어진 <체크메이트>가 바로 도플갱어를 주제로 만들어진 곡이었다.

이번 드라마는 타임슬립 설정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과거 신에는 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도플갱어 같은 쌍둥이 형제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한이가 연기하는 것은 일란성 쌍둥이 중 동생 역.

보통 일란성 쌍둥이 캐릭터가 있으면 ‘얼굴이 같다’는 설정을 활용해야 하므로 한 배우가 1인 2역으로 연기하기 마련이었다. 가끔 정말 쌍둥이가 연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쌍둥이 배우는 희귀하기에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일란성 쌍둥이의 형과 동생 역을 완전히 다른 두 배우가 하나씩 맡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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