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34화 (234/430)

# 234화

모노크롬이 정성스레 요리해서 묘하게 평범한 결과물을 낸다면, SPID는 우당탕탕 하면서도 제법 맛있는 결과물을 내는 타입이었다.

덕분에 모노크롬은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고, 컨텐츠 분량도 뽑았다. 아마 요리 영상을 볼 SPID의 팬들도 좋아할 것이다.

정식 촬영 날이 아니면 필요할 때 거치 카메라와 이동식 카메라만 조작하면 되었기에 오늘은 스태프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이돌. SPID 멤버들은 리얼리티 선배답게 알아서 셀프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몬클 하우스에서 즐기는 법’을 찍기도 했다.

“설마 이것도 광고?”

“아니, 그건 이사님이 이사 선물이라고 사주신 거.”

“오! 해 보자.”

SPID 멤버들의 눈에 띈 것은 거실 TV 앞에 놓여 있던 VR 게임기.

바닥을 쿵쿵거려도 이웃과 층간 소음 갈등이 생길 리 없는 단독 주택에 적합한 오락기였다.

그리고 VR 게임을 하는 장면을 옆에서 찍으면 제법 웃겼다. 주인이 이 VR 게임기를 사 온 목적은 주로 후자에 있었다.

그 목적을 충실히 이룬 이들은 이내 3D 멀미를 호소하며 드러누웠다.

“자동차나 사람 소리 안 들리니까 진짜 더 시골 같다.”

조금 전까지 격렬하게 게임을 하다가 지쳐서 쉬고 있으니 갑자기 집이 고요에 잠겼다. 아직 늦겨울이라 그런지 풀벌레 소리도 작게만 들렸다.

거실 창문 너머로 노을빛이 밤하늘에 떠밀리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하범이 말했다.

“이 정도로 조용하면 밤에 무섭겠어요. 형.”

그 말에 우형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딱히 우형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라 그냥 옆에 있었기에 그에게 말한 것이었지만, 우형에게는 정곡이었다.

“맞아. 그러니까 꼭 자고 가. 사람 많으면 그나마 나을 것 같아.”

아침에는 공기가 시원해서, 낮에는 평안해서, 저녁에는 노을이 이뻐서 좋은데 밤에는 주변이 완전히 새카매진다.

주변에 가로등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자동차의 라이트가 없으면 어디로 나가지도 못했다.

반경 몇십, 몇백 미터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면 정말로 세상의 종말이 와서 다섯만 남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우형은 리모컨을 조작하여 TV를 틀었다. 조용할 땐 TV나 해랑이 사 온 라디오를 틀어놓는 게 습관이 되었다.

“여기서 불 끄고 공포영화 보면 분위기 제대로겠다.”

“어린 애들은 왜 이렇게 무서운 걸 좋아하냐?”

윤규의 말을 듣고 우형이 옆에 있던 재민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

주인에게 뭐든 잘 말하는 재민이 이 아이디어에 귀 기울였다간 위험했다.

한차례 몬클 하우스에 있는 것들을 즐기고 난 후 휴식 시간에 돌입하자, 문영이 문득 궁금했는지 질문했다.

“그럼 모노크롬은 평소에 여기 있을 땐 뭐 해? 오늘은 우리 온다고 해서 와 있다고 해도.”

“농사……?”

“……하루 종일?”

“그건 아니지.”

재민이 먼저 대답했으나 그의 미니 온실은 두 걸음 걸으면 끝날 크기였다.

게다가 지금은 전부 씨앗 혹은 새싹 상태라서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답이 안 되는 대답 대신에 해랑이 말했다.

“요즘은 작업 많이 하지.”

“여기서도 작업해?”

“2층에 컴퓨터랑 키보드 있는 방. 거기서.”

빈방을 어떻게 쓸지 같이 생각해달라고 하자, 컬러즈는 신나게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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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하니 방을 하나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몬클이들 가족이니까

└몬클이들도 한명만 독방쓰는데 하니 바로 독방이냐궄ㅋㅋㅋㅋ

└컬러즈도 가족이라고 했으니까 그럼 역시 나머지 방엔 내가 입주해야

└내 10년짜리 주택청약통장으로 어떻게 안 될까요

└그럼 개집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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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가장 많은 건 자신이 입주하겠다는 의견이었다.

컬러즈는 지갑 대신 1순위 청약통장을 꺼내 들며 쥐구멍에까지 입주하겠다고 난리였다.

컬러즈의 많은 소원을 이룬 모노크롬이었지만 이 소원은 역시 이뤄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많았던 것은, 음악을 위한 방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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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작업실에 많이 있으니까 거기두 작업실 하나 필요하지 않을까?

뷰이라이브하면 가끔 노래부르는 것도 들을 수 있고ㅎ..ㅎㅎ 사실 이게 본심

└피아노 건반 치는것도 볼 수 있고ㅎㅎㅎㅎ

└마자 애들 작업실에 있으면 가끔 가이드버전 같은 것도 들려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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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지만 이 아이디어에는 모노크롬도 동감했다.

특히나 다음 앨범은 따로 컨셉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따지자면 모노크롬이 컨셉이었다.

멤버들에 맞춘 곡을 하나씩 넣을 예정이라 다들 어떤 곡을 만들지, 혹은 의뢰할지 생각할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조용하니까 집중 잘 되지.”

“주변에 뭐가 없으니까 강제로라도 내 할 일에만 집중할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듣던 문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실 그 효과를 위해 여기에 모노크롬을 가둬 놓은 거 아닐까?”

“뭐……?”

생각해 보니 다음 앨범은 참여도를 높일 거다, 여기선 영감받기 좋을 것 같다 하는 말을 누군가가 계속 꺼냈던 것 같기도 하고…….

실행력이 엄청난 회사의 누군가가 떠오른 멤버들은 이내 머리를 털어냈다.

“갇혀 있다기엔, 가고 싶으면 아무 때나 돌아가도 되는데.”

“준해 너는 혼자서 못 가잖아.”

해랑이 또 면허 이야기를 꺼내자 준해가 그에게 에어 주먹을 날렸다.

하범은 그 장면을 생소한 것을 보듯이 바라봤다.

“가뒀다는 건 농담이고, 그냥 우리였으면 며칠 늘어지게 쉬기만 하다가 심심하다고 별로 안 왔을 것 같아서.”

이웃이 되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본인들에게는 이렇게 가끔 놀러 오는 정도가 가장 적절할 것 같았다.

두 그룹 다 올해로 7년 차였으나 SPID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쓰러질 정도로 바쁘게 지내왔고, 모노크롬은 일이 없어도 알아서 할 일을 만들면서 지내왔던 터라 성향 자체가 달랐다.

모노크롬이 아니었으면 이런 공간을 십분 활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온 김에 모노크롬식으로 지낼 수 있게 일정을 짜줄게.”

“그냥 시간 되면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서 밥 먹는 게 아니고?”

한이가 ‘모르는 말씀.’이라는 듯이 검지를 흔들며 몬클 하우스의 남은 일정을 소개했다.

“준비된 코너가 몇 개 있어요. 밤에는 조난을 대비한 북극성 찾기 훈련. 표창으로 사냥감을 잡기 위한 다트 훈련. 내일 아침엔 해랑 형과 함께 하는 새벽 조깅. 그리고 다 같이 아침 준비!”

“모노크롬 다 무슨 보이스카우트 출신이야? 조난은 왜 대비해?”

“아니, 난 늦잠 잘 생각으로 왔는데!”

“여기 컨셉이 힐링인지 수련회인지 모르겠어…….”

펜션에 놀러 오는 기분으로 가볍게 찾아온 SPID 멤버들은 예상치 못한 노동과 훈련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

***

“맞아. 나 너한테 물어볼 거 있었는데.”

슬슬 노는 건 이쯤 하고, 각자 휴식 모드로 들어간 참이었다.

다른 SPID 멤버들은 곡을 빠르게 많이 만들어내는 우형의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고 하여 그와 함께 2층의 작업실에 가 있었다.

그리고 하범은 해랑을 붙잡았다. 오늘 매니저도 필요 없다면서 이들끼리 온 건 다른 이유도 있었다.

“너 혹시 회사에서 이미 들었어? 뉴마, 아니, 뉴레인에서 신인 만드는 거.”

“뭐?”

갑작스러운 데다가 해랑에겐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 소식을 타 기획사 소속의 하범이 전해주는 지금 상황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도 얼마 전에 들었어. 에이펙트도 뉴레인도 신인 기획 중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연락이 닿아서 데뷔 서바이벌을 같이 하는 것도 얘기 중이래.”

“……서바이벌을 같이 하고, 데뷔는 따로 하고?”

“어, 그렇지.”

모노크롬과 SPID는 딱히 방송을 통해 데뷔하지 않았지만, 최근엔 리얼리티 혹은 서바이벌로 데뷔하는 그룹이 많아졌다. 데뷔 전부터 인지도를 쌓기 위함이었다.

모노크롬도 SPID도 이제 7년 차. 둘 다 후배 ‘걸그룹’은 있었으나 ‘보이그룹’은 없었다.

아이돌 기획사 중에서도 대형으로 꼽히는 에이펙트 엔터테인먼트도 SPID 위로 선배 보이그룹이 하나 있고, 후배 걸그룹이 둘, 그리고 솔로 아티스트들뿐이었다.

두 소속사에게 새 보이그룹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서바이벌을 같이 한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었다.

“그럴…… 이유가 있나?”

“신인을 내기에 시기가 안 좋다나. 평범하게 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했나 봐.”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는 층은 한정적이었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최근엔 특히 그런 성향이 더 강했다.

그런데 작년에 데뷔한 러너스하이, 브이스타일이 바로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고, 이코드 또한 화제성을 잡으며 선방 중. 거기에 <쉰셋돌>로 인해 뒤늦게 더클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상승세를 탄 그룹은 신인 풀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작년부터 가장 급격한 상승세를 보인 그룹은 단연 모노크롬이었다.

이렇게 새로 부상한 보이그룹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신인 보이그룹을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신인 런칭을 더는 미룰 수 없었던 두 회사는 손을 잡을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경쟁 구도, 라이벌 구도에 눈이 가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아직 못 들었어. 뉴레인이랑은 거의 소통이 없기도 하고.”

모노크롬과 관련된 일이라면 주인이 먼저 알았을 테고, 멤버들에게 미리 얘기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뉴레인에서 진행하는 일이기에 뉴마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범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래? 멘토로 소속사 선배 아티스트가 출연을 논의한다고 해서 우리한테도 얘기가 들어온 건데…….”

그럼 뉴마에선 모노크롬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던 차였다. 하지만 그 예상대로 모노크롬이 출연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네 동생…… 지금 뉴레인에 있다며.”

해랑도 같은 생각에 도달했는지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해랑이 동생 연찬의 연락을 피하기 시작하자, 연찬도 최근엔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그가 뉴레인에 있는 이상, 조만간 다시 만나는 것은 예정된 일일지도 몰랐다.

***

뉴레인이 연습생들을 데리고 새 보이그룹 런칭을 위한 데뷔 서바이벌을 기획 중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이전에 권 실장이 굳이 내게 와서 신인 육성 이야기를 꺼냈던 이유를 뒤늦게 추측할 수 있었다.

‘권 실장은 알고 있었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다?’

뉴레인에서 신인을 기획한다는 것을 권 실장도 몰랐다면, ‘뉴마와 뉴레인은 분리되었으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아티스트팀의 책임자인 나는 모르고 배우팀의 권 실장에게만 내용이 공유되었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뉴마 소속이었던 연습생 몇 명이 최근 뉴레인으로 소속을 옮겼다고 합니다. 연습생 이동이 흔히 있는 일이고 담당 직원 선에서 빠르게 처리된지라 파악이 늦었습니다.”

최 비서도 나처럼 오늘에야 알았는지 뒤늦게 연습생들의 이동 현황을 파악하고 내게 알려줬다.

그가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아티스트 레이블이 분리된 시점에, 뉴마에 남은 연습생은 배우 지망생들뿐. 아티스트팀에서 관리하지 않는 이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분명 배우뿐만 아니라 연예인, 종합 엔터테이너를 꿈꾸는 연습생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전에 권 실장이 말한 것처럼.

‘그럼 그때 권 실장은 뉴레인의 신인 기획을 알고 나를 떠보러 왔던 거야.’

아마 내게 찾아오기 전에 먼저 뉴레인과 모종의 대화를 나눴겠지.

만일 뉴마의 아티스트팀이 신인을 새로 키운다면 연습생들을 그대로 데리고 있으려고 했는데, 내가 그 후로도 움직이려는 기색이 없으니 뉴레인으로 보낸 것이다.

“허, 허허…….”

업무 범위가 다른 것을 넘어서서, 이 회사와 뉴레인의 일부 사람들이 나를 일부러 배제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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