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화
‘이건 시킨 건 아니었는데.’
PPL이 들어왔고 안에 제품이 있을 거란 사실만 알려줬는데 멤버들은 알아서 광고 모드에 들어갔다.
사실 잘 보이는 곳에 음료 냉장고를 떡하니 배치한 것으로 데이드링크와 협의한 우리의 의무는 끝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컨텐츠를 촬영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제품이 노출될 테니까.
이건 멤버들이 단순히 재미로 광고하는 것이었다.
팬미팅 때 VCR로 굿즈 광고를 찍었던 것처럼, 너무 노골적인 광고는 광고 효과보다 재미가 더 큰 법이었다.
‘게다가 컬러즈는 이미 데이드링크란 회사에는 마음의 장벽이 없는 수준이고.’
이전에 촬영한 넛츠라떼 광고도 바로 얼마 전부터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컬러즈는 모노크롬에게 광고가 들어오길 바랐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았기에 그저 소극적인 희망 사항으로만 남겨놨다.
그런데 실제로 이루어지니 환호할 수밖에. 거기에 자체 컨텐츠 PPL까지 들어왔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으니 데이드링크의 충성 소비자가 될 마음으로 가득할 것이다.
덕분에 모노크롬이 대놓고 제품을 광고하는데도 채팅창은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광고 천재 그룹에 광고 천재 팬덤이었다.
“데이드링크 감사합니다. 여기 주변에 카페도 없고 가장 가까운 슈퍼도 꽤 나가야 해서 음료 마시려면 미리 챙겨와야 하거든요.”
카페인을 즐겨 마시는 준해가 캔커피 하나를 들고 말했다.
음료 협찬이야 방송에선 흔한 일이지만 이 몬클 하우스에는 특히 필요한 제품 협찬이었다. 더군다나 생수도 있었기에 챙길 짐이 많이 줄었다.
멤버들은 감사 인사를 하고는 바로 평소 모드로 돌아왔다.
약속한 것처럼 비즈니스 모드가 전환되는 것을 보고 컬러즈는 광고 시간이 끝났다며 또 웃었다.
“나 사실 어두운 집 한가운데에 뭐가 하얗게 빛나고 있어서 깜짝 카메라인 줄 알았어. 귀신 같은 건 줄 알고…….”
걱정 많은 우형은 혼자 담력 테스트를 한 모양이었다. 최근 그도 재민처럼 상상력이 점점 향상되고 있었다.
전기세를 걱정하는 컬러즈를 위해 음료 냉장고 내부의 조명을 꺼두고, 멤버들은 집 소개를 이어나갔다.
“여긴 안방인데 침실.”
“여기도 침실!”
몬클 하우스의 방은 총 다섯 개. 멤버들은 기존 숙소처럼 방 세 개를 일단 침실로 정해두었다.
하나씩 개인 방으로 쓰려나 했는데 좀 더 다양하게 활용하고 싶다나.
멤버들도 방을 처음 보는 것이라 방문을 하나 열 때마다 컬러즈와 같이 “오오-.” 하면서 구경했다.
“그래서 방이 두 개 남았는데 여기는 차차 용도를 정해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새 보금자리 꾸미기에 가장 신경 썼던 해랑이 우형에게 스마트폰을 건네받아 차분한 말투로 설명했다.
“앞으로 컬러즈가 같이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컨텐츠용 집이었기에 어떻게 보면 컬러즈와 함께하는 집이기도 했다.
해랑의 같이 생각해보자는 소리에 컬러즈는 [네]와 손을 드는 이모티콘으로 채팅창을 빠르게 올려나갔다. 멤버들이 내주는 것이라면 숙제도 얼마든지 환영인 듯했다.
‘본인이 입주하겠다고 손드는 컬러즈도 많은 것 같지만…….’
물리적인 입주는 불가능해도 같이 꾸며나가는 기분은 느낄 수 있겠지.
이 몬클 하우스는 컬러즈에겐 대리만족, 대리체험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제 컬러즈는 떡밥이 없는 날에도 이것저것 상상하면서 즐겁게 기다릴 수 있을 테고.
집들이 뷰이라이브는 정말 집만 소개하고 담백하게 끝났다.
여기서 다 보여주면 미튜브에 올릴 영상과 너무 중복될 테니까. 오늘은 집들이 외에도 멤버들에게 미션이 있었다.
“오늘이 제대로 입주한 첫날이잖아. 이사한 날엔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질문으로 운을 떼자 멤버들은 잠시 눈을 깜빡이며 생각에 빠졌다.
“고사를 지내나요……?”
“아, 아니. 좀 더 일상적인 걸로.”
좀 더 가벼운 대답을 원했는데 우형이 예상을 벗어난 대답을 내놓았다.
사업장을 이전할 때면 몰라도, 보통 주거용 집을 옮길 때 고사를 지내진 않지.
“짐 정리…….”
“……그것도 맞는 소리지만 다른 거.”
대답의 범위를 일상적인 것으로 제한하자, 이번엔 해랑이 너무 일상적인 대답을 꺼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먹는 거 말이야.”
“짜장면!”
내가 범위를 좁히자 준해가 바로 정답을 외쳤다. 그래, 이사 날은 짜장면을 먹어야지!
재민은 메뉴에 찬성하는지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와! 시켜 먹자!”
“잠깐. 여기가 어딘지 잊었어?”
“몬클 하우스…….”
집의 이름을 물어본 것은 아니다. 이곳의 위치를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미션을 위해서 배달을 금지한 것이 아니다.
“여긴 배달 안 돼.”
“네……?”
수도권에서만 지내왔던 멤버들은 배달이 안 된다는 소리에 잠시 움직임이 멈췄다.
스마트폰으로 주변에 배달되는 업체가 없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는 더욱 절망에 빠졌다.
숙소에서도 가끔 직접 요리해 먹긴 하지만 배달해 먹는 횟수가 더 많다고 들었다. 배달이 안 되는 환경은 상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뭔가 먹으려면 미리 사 오거나, 해 먹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야.”
이 몬클 하우스는 힐링이 목적이지만 마냥 느긋하게 지내는 것만 찍지는 않을 것이다. 나름대로 치열함이 있어야 재밌지.
내 말에 멤버들은 복잡한 표정으로 우형을 봤다.
‘우형이 혼자서 요리를 전담하진 않겠지만…….’
우형이 가장 자주 요리를 한다는 건 그나마 다른 멤버들보다는 요리 실력이 나아서 그런 거겠지. 간이 덜 된 건강식을 만들더라도 말이다.
아마 요리만큼은 우형이 리드할 것이 예상되어서 다들 우형부터 쳐다본 듯했다.
마냥 즐겁게 집 구경을 하던 멤버들은 앞으로의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는지 표정이 진지해졌다.
일단 오늘 저녁부터가 문제였다. 당연히 짜장면은 미리 사 오지 않았다. 대신 미션을 위해 재료는 우리가 준비해 뒀다.
“밀가루로 면 만드는 것부터요?!”
“응. 인스턴트로 다 준비되어 있으면 재미없잖아.”
“왜 벌써 저녁 얘기를 하시나 했더니…….”
아직 오후 5시. 저녁을 준비하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요리하는 게 초보자들이라면 다르다.
탕수육 등 다른 메뉴 레시피도 준비해 뒀으니 대충 두 시간쯤 있으면 저녁 시간에 맞춰 요리를 완성할 수 있겠지.
크리스마스 특집 영상을 찍을 때 멤버들이 요리하는 것을 보고 정한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먹고 살기 위해선 직접 만들어야 한다. 최근 주방에 설 일이 많아졌던 멤버들은 등 떠밀리듯이 앞치마를 둘렀다.
***
데이드링크가 우리에게 PPL 광고 문의를 한 것은 전후 관계도 있었고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그 이후로 우리의 리얼리티 컨텐츠가 광고주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랜선 집들이 영상을 올린 이후부터 PPL 광고 문의 연락이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가장 처음에 들어온 것은 이것이었다.
[저희 브랜드의 전기밥솥 전 제품에는 계량컵이 기본 구성품으로 동봉되어 있으며 내솥에 다양한 물 맞춤 안내선을 추가하여……]
‘아니, 우형이는 물 조절이 문제가 아닌데요……!’
몬클 하우스의 살림을 장만하면서 준해가 밥솥을 사지 않고 건너뛴 것이 전기밥솥 브랜드의 눈에 띄었던 모양이었다.
더 자세히 읽어보니 영상을 정확히 본 게 맞는지, 딱딱한 곡물도 부드럽게 요리할 수 있는 자동 불림 기능이 있다는 설명도 붙어 있었다. 이건 우형에게 딱 맞는 기능이었다.
내가 받은 것이 광고 문의인지 제품 홍보인지 헷갈렸으나, 역시 홍보를 전문으로 하는 마케팅팀에서 보내서 그런 걸까. 읽어보니까 꽤 재미가 있었다.
‘밥솥…… 하나 둘까?’
컬러즈는 우형이 물 조절을 마음대로 하는 장면도 보고 싶지 않을까? 그렇게 지은 밥을 먹는 건 멤버들이 되겠지만.
문의가 온 것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데이드링크의 음료 냉장고가 계속 화면에 비치는 게 좋아 보였는지 냉장고를 협찬해 주겠다는 연락도 있었고, 가전에, 가구에…….
‘최근에 음료 품절 대란이 인상 깊었나?’
아니면 아이돌에게 협찬을 해 주고 싶었는데 마땅한 기회가 없던 차에 우리의 리얼리티 컨텐츠가 나타난 걸까?
광고 업계에서 유행이라도 도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 연예 업계는 항상 사람들의 이목이 쏠려 있어서인지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가속도가 붙었다.
팬이 팬을 불러 모으는 것도 그렇고, 지금껏 깜깜무소식이었던 광고 연락이 몰려 들어오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또 눈에 띈 것은 뷰이라이브용 스마트폰 협찬 연락이었다. 이번에 카메라 기능을 더욱 개선한 새 모델이 나왔다는 모양이다.
‘작년에 뷰이라이브용 스마트폰 새로 사면서 협찬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인지도가 높아지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들어오는구나. 지금에 비하면 작년의 모노크롬은 정말 눈에 잘 띄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 년이 지나 이제는 광고를 골라서 받을 수가 있다니.
‘……이러면 돈 안 아껴도 되겠는데?’
몬클 하우스에 이미 광고 물품이 떡하니 자리 잡은 상황인데, 다른 광고를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연락을 준 회사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제품이 화면에 노출되는 것을 바랐기에 공간만 있다면 큰 부담이 없었다.
집과 살림이라는 큰 지출만 생각했는데, 이게 오히려 다른 수입원이 되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이렇게 되면 회사 눈치를 덜 봐도 되고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날 테니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그래도 아무거나 다 받으면 옥장판 파는 집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브랜드 이미지를 생각해서 적당한 것들 골라 달라고 지시해놔야겠어.’
노리자, 광고 천재! 미래가 불안할 때, 확실한 안정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돈뿐이다.
그리고 이 리얼리티 컨텐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업체들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엔 회사가 아니라 멤버들에게 따로 연락이 있었는지 어느 날 우형이 내게 물었다.
“이사님. SPID 애들이 집들이 와도 되냐고 물어보던데 초대해도 괜찮을까요?”
“그래? 상관은 없는데…… 그냥 놀러 온다는 거야, 같이 촬영해도 된다는 거야?”
“영상 봤다고, 재밌어 보인다고 하는 걸 봐서는 아마 카메라가 있어도 괜찮은 것 같아요. 한번 물어볼게요.”
몬클 하우스는 촬영용으로 구하긴 했어도 ‘숙소’를 표방했기에 멤버들이 휴식 목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도 허용했다.
다만 외부인을 초대하는 경우엔 제한 사항이 있었다. 컨텐츠용 숙소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신용을 걸고 보안 사항을 지켜줄 사람만 데려오도록 규칙을 정해두었다.
같은 아이돌이면 숙소 보안 문제는 누구보다 잘 알 테니 문제없겠지.
“응. 촬영도 괜찮으면 회사에 허락받고 오라고 해.”
아이돌 그룹 채널에 다른 아이돌이나 연예인이 출연하는 경우는 드물다. 스케줄이 겹치면 친분으로 비하인드에 잠깐 나오는 정도?
그래도 멤버들끼리 컨텐츠를 찍는 것과, 외부인이 함께 출연하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다르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SPID도 우리 대기실로 찾아와서 게임 하는 걸 찍어간 적 있었지.’
다른 이들이 출연해서 채널 자체의 주목도가 올라가면 비즈니스적인 면에서는 좋은 일이다.
‘몬클 하우스’는 우리 컨텐츠 중 일부인 데다가, 끝을 정해두지 않은 장기 컨텐츠라 한두 번 누군가를 초대한다고 모노크롬의 분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모노크롬의 컨텐츠’라고 중심만 잘 잡으면 팬들도 이해해 줄 듯하다.
‘항상 외부 컨텐츠에 게스트로 초대받는 입장이었는데, 우리가 직접 호스트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모노크롬의 카피바라 특성을 발휘할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리얼리티가 없는 게 속이 쓰려서 만든 자체 리얼리티였는데, 의외로 무한한 확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