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화
“뭐 놓고 갔어?”
“아뇨!”
혹시 핸드폰이나 가방을 우리한테 맡겼다가 깜빡했나? 잠시 옆을 둘러봤으나 준해의 짐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달려온 준해는 멤버들 앞에 서서 활짝 웃어 보였다.
“부모님이 집에 먼저 가 있을 테니까 형들이랑 더 사진 찍고, 이따가 연락하래요!”
나는 시선을 돌려 준해의 부모님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아버님은 여전히 불퉁한 표정이었으나 어머님이 웃으면서 그런 아버님의 팔을 툭 쳤다. 억지로 허락해준 것은 아닌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좋은 날인데 더 놀다 오라고. 그리고 팬분들한테는 인사 안 하냐고 그러시던데요……!”
멤버들이 이상한 사진을 찍는 장면을 보고 재밌게 논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게다가 팬들까지 신경 써 주신다는 건…….
‘인정……해 주시는 거구나.’
지금까지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거나 불화가 생기는 경우만 봐 왔는데.
우형의 어머님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힘들어하던 아들 모습을 봐서인지 많이 걱정하셨었고.
그 반대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멤버들도 준해의 부모님이 준해를 다시 우리에게로 돌려보낸 의미를 이해했는지 놀랐다.
“야, 야. 준해 부모님 가신다! 빨리 인사해.”
우형이 재촉하자 멤버들은 먼 거리에서도 잘 보이도록 꾸벅 허리 숙여 인사했다.
준해의 부모님도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하고는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여동생이 종종걸음으로 쫓으며 뭐라고 말하자 아버님의 불퉁한 표정이 바로 풀렸다. 아무래도 자식에게는 어쩔 수 없이 약한 부모님이신 모양이다.
“그래도 너무 기다리시게 할 수 없으니까 길어도 한 시간 정도? 구경하든지 촬영하든지 마음껏 돌아다니다가 와. 혹시 뷰이라이브 할 거면 사람들 없는 데서 하고.”
“넵!”
카메라를 멤버들과 함께 온 민형에게 맡기고 나는 다른 직원들과 먼저 회사로 복귀하기로 했다.
준해의 부모님이 아이돌이란 직업을 이해해주신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날이니, 비슷한 입장이었던 멤버들끼리 할 말이 더 많을 듯했다.
몇 시간 후, 준해를 제외한 멤버들과 함께 복귀한 민형에게 카메라 메모리를 받아 디자인팀에 색감 보정을 부탁한 후 모노크롬 공식 계정에 사진을 올렸다.
다른 멤버들도 그렇지만 사진 속 준해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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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ㅋㅋㅋ 모노크롬 집 샀다더라 미튭에서 보고 놀랐네
└연차도 있는데 돈 벌어서 집 사는 게 놀랄 일인가?
└아니 숙소로 단독주택 사서 리얼리티 찍는다고 함
└헐 멤버가 산 거임?
└ㄴㄴㄴ회사에서 구한거고 산건지 빌린건지는 아직 아무도 모름
└와ㅋㅋㅋ 리얼리티 신박하게 하네
└이건 팬도 부러운데 단독주택 생긴 몬클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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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체 리얼리티 시리즈의 이름은 <몬클 하우스>가 되었다. 몬클 하우스는 두 번째 숙소에 붙은 이름이기도 했다.
앞으로 숙소 이야기가 나오면 어느 쪽이라고 설명하는 수고가 생길 테니 집에도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그냥 ‘숙소’라고만 표현했다간 모노크롬을 잘 모르는 사람은 ‘쟤넨 시골에서 방송국까지 출퇴근하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이 <몬클 하우스>의 1화가 공개되자, 컬러즈는 상상도 못 했던 장기 리얼리티 컨텐츠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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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냥 오프닝 같은 거라고? 벌써 배부른데요??
물론 난 돼지라 더 주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음
└진짜 새삼스레 예전이랑 떡밥 양 비교해보면 눈물난다ㅠㅠㅠㅠ 떡밥 먹고 배부를 수 있다니
└리얼리티 진짜 오래 기다렸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다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 지금까지 없었던 거지
└ㄹ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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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렬리티 소소한데 그래서 너무 재밌다
이번편 나도 같이 이사가는 기분이야ㅋㅋㅋㅋ 근데 이제 이사는 몬클만 가고 나는 마트에 남겨진
└나는 왜 몬클 아니야ㅠㅠㅠ 컬러즈도 좋은데 몬클이랑 같이 사는 몬클 너무 부러워..
└ㅋㅋㅋㅋㅋㅋ아 방 하나만 내주면 알아서 꼽사리 껴서 살게요
└미안 우리 신혼집이 아직 정리가 안 돼서 너희 다 초대해줄 수가 없다ㅠㅠ
└윗댓 끌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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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리얼리티라면 금방 마지막 회가 다가오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아쉬워지는데, 우리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 다들 기대감을 더욱 불태웠다.
단발성 촬영이 아니었기에 ‘이거 하면 좋겠다, 저거 하는 거 보고 싶다’ 하는 소원 성취 글도 많아졌다.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팬들이 가장 잘 아니까.’
앞으로 무슨 컨텐츠를 할지는 우리도 항상 고민이었는데 보고 싶은 게 많은 팬들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넛츠라떼처럼 품절 대란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품절 사건이 한 번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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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인형 뭔데
어디서 팔아 나 급해 당장 필요해
└A마트 자체제작 같은데? 검색해보니까 판매처 거기밖에 없네(링크)
└샀다
└진짜 급했나본데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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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 행동력 대단해…….’
컬러즈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제부터 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물량이 다른지 온라인에서 품절이 되어서 오프라인으로 직접 구하러 다니는 컬러즈도 있을 정도였다.
이내 미니크롬과 하니 인형으로 몬클 하우스 시리즈를 완성하는 게 컬러즈 사이의 유행이 되었다.
‘분명 인형의 본래 제품명은 하니가 아닐 텐데.’
판매처의 의지와 다르게 무수한 하니가 생겨났다.
봉제 인형은 대량 생산품이다 보니 눈이나 코 위치가 조금씩 다르기도 했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구매하면 보고 고를 수 있지만 인터넷 주문은 랜덤으로 배송받으면 끝.
조금 비뚤어진 제품을 배송받은 컬러즈는 [내 거 하니 아니고 진돌이임?ㅠ]이라며 사진을 올렸다.
진돌이는 한이가 인형에 붙이려 했다가 무시당한 이름이다.
진돌이를 받았다는 컬러즈도 속속들이 나타나자 컬러즈는 ‘진돌이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이목구비가 제각각인 인형 사진을 모으며 즐기기 시작했다.
이목구비가 비뚤어진 정도를 퍼센트로 수치화하여 순위를 매기는 컬러즈도 있었다.
이 시점에, 그 하니 인형을 사 왔던 준해가 흐름에 동참했다.
[하니 1호. 사실 조금은 진돌이(사진)]
준해가 이런 멘트를 달아 거실에 홀로 남겨진 하니 인형 사진을 모노크롬 공식 계정에 올렸다.
영상으로 본 컬러즈에겐 잘 보이지 않았겠지만, 사실 준해가 사 온 인형도 이목구비가 완벽히 똑바르지는 않았다.
‘사실 조금만 비뚤어져도 불량품 같아서 내심 속상해하거나 교환하고 싶어 하는 컬러즈가 있었을 텐데.’
몬클 하우스의 원본 하니도 약 20퍼센트 정도 진돌이라는 사실에 진돌이를 받은 컬러즈들이 크게 만족했다.
결국 하니 인형을 구매한 컬러즈는 예쁜 인형을 가졌으니 좋은 일이고, 진돌이 인형을 받은 컬러즈도 멤버들과 비슷한 인형을 가지게 되어서 좋은 일이니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이었다.
이렇게 잠시 하니와 진돌이 사건이 지나가고, 다음 리얼리티 촬영일이 다가왔다.
일단 첫 화를 올렸으니 다음 업로드까지 텀이 너무 길면 안 될 일.
오늘 촬영하면 편집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에 업로드가 꽤 늦어지겠지만, 우리에겐 이 사이의 공백기를 메꿀 방법이 있었다.
“안녕, 컬러즈!”
“여기는 몬클 하우스 마당입니다.”
멤버들이 마당에 쪼르르 서서 스마트폰을 들고 컬러즈에게 인사했다.
우리의 리얼리티는 미튜브 한정 컨텐츠가 아니고, 모노크롬에게 새로 생긴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애초에 멤버들에게 새 숙소를 소개할 때도 ‘뷰이라이브를 마음껏 해도 되는 집’이라고 설명했으니, 뷰이라이브로도 얼마든지 리얼리티 컨텐츠를 병행할 수 있었다.
“사실 저희도 첫 촬영 이후로 처음 왔거든요!”
오늘은 멤버들도 사람 사는 공간처럼 꾸며진 집을 처음 확인하는 날. 그와 동시에 컬러즈와 함께하는 랜선 집들이 날이었다.
멤버들도 인테리어도와 배치만 확인했을 뿐, 아직 내부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조금씩 채워나가는 것도 컨텐츠의 일부분으로 삼기로 하고 기본만 갖춰둔 상태다. 그것만 해도 완전히 빈집이었던 저번이랑은 인상이 꽤 달라졌을 것이다.
집 내부 구경을 기대하며 컬러즈는 [ㄷㄱㄷㄱ]를 올려나갔으나 안으로 들어가기 전, 먼저 볼 것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 하니가!”
준해가 어느 한 곳을 가리키자 우형이 카메라를 그쪽으로 돌리고, 재민이 입으로 “짜잔-.” 하며 효과음을 붙였다.
멤버들이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관심을 가졌던 개집에 하니 인형이 미리 세팅되어 있었다.
영상과 사진으로만 봤던 하니 인형이 실시간으로 등장하자 컬러즈는 매우 반가워했다.
[하니 1호!!!]
[ㄷㄷㄷ원본 하니]
[우와 연예인 보는 것 같다]
[하니 추운데 왜 나와있어ㅠㅠ]
하니 인형이 추운 겨울에 썰렁한 마당에 덜렁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컬러즈는 인형인데도 불쌍해했다.
방문 첫날, 하니가 아니라 한이를 개집으로 보내려 했던 해랑이 채팅을 읽었다.
“하니는 추워서 입이 비뚤어진 건가요? 라고 물어보시는데.”
“하니 원래 이렇게 생겼어요.”
“그냥 하니라고 하지 말고 하!니!라고 똑바로 발음해 주면 안 돼?”
하니에 관한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한이가 투덜거렸다. 준해는 그의 품에 말없이 하니를 안겼다.
그리고 대망의 실내 공개 시간. 멤버들이 현관문 문고리를 잡았다.
‘여기는 우리가 또 준비해놓은 게 있지!’
아마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에 보일 것이다.
예상대로 전등을 켜지 않아 어둑한 거실 안, 홀로 번쩍이는 무언가를 보고 멤버들이 흠칫했다.
잠시 멈춰버린 멤버들 사이에서 한이가 과장된 리액션을 펼쳤다.
“아니. 이, 이건?”
[??]
[뭔데?]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멤버들의 얼굴을 셀카처럼 찍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컬러즈는 멤버들이 무엇을 봤는지 알지 못했다.
컬러즈가 궁금해하며 채팅창을 물음표로 메우자, 우형이 카메라를 돌려 그 정체를 공개했다.
“……데이드링크에서 보내주신 음료 냉장고!”
재민이 또 “따란-.” 하며 자체 효과음을 붙였다.
거실과 부엌이 연결된 코너 쪽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던 것. 그것은 식당이나 큰 회사 탕비실에나 있을 법한 자판기만 한 음료 냉장고였다.
그것도 냉장고 옆면에 데이드링크 회사 로고와 모노크롬 로고가 같이 프린트된 스페셜 콜라보 에디션.
일반적으로 집에 두지 않는 가전의 등장에 멤버들도 컬러즈도 놀랐지만, 멤버들은 바로 비즈니스에 나섰다.
“이건…… 데이드링크의 라임 맛 탄산수?”
“제로칼로리라 운동을 좋아하는 해랑이 형이 마시기 좋겠는데.”
음료가 종류별로 들어 있는 냉장고를 구경하던 우형이 어색하게 웃으며 탄산수 하나를 꺼내자 한이가 받아서 해랑에게 건넸다.
연기 레벨이 높은 한이였지만 일부러인지 국어책 읽는 말투였다.
[중간 광고 타임인가?]
[갑자기 시작된 그들의 비즈니스]
[뭐라구? 이 맛있는 탄산수가 제로칼로리??ㄴㅇㄱ]
[잠시 광고 보고 가실게요]
[하하 당장 편의점으로 달려가야겠는걸]
스킵도 안 되는 직접 광고가 느닷없이 시작되자 컬러즈가 폭소를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