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27화 (227/430)

# 227화

“광고요?”

“촬영이 이미 끝나신 게 아니라면…….”

“아, 아뇨. 저희 리얼리티는 촬영이 끝나기는커녕 이제 시작이라서요. 이제부터 장기 컨텐츠로 제작하거든요.”

예고편만 봐서는 장기 프로젝트라는 걸 추측할 수는 있어도 정확히는 모르겠지. 그래서 내게 문의하러 온 모양이었다.

장기 컨텐츠라는 것을 알려주자 원하던 바였는지 마케팅 과장의 얼굴이 펴졌다.

“마침 저희 제품 광고도 가까운 시일 내에 게재될 예정이고, 시기가 비슷하니까 모노크롬분들 컨텐츠에도 저희 제품을 노출할 수 있을까 해서요.”

이건 그거다. PPL 광고!

우리도 방송국의 예능 촬영을 할 때면 제작진이 종종 화면에 비치게 특정 제품을 배치해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나 방송은 물이나 음료를 필수로 준비해 두니까 광고 제품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기에도 좋다.

음료 회사 마케팅부에 종사하는 이 사람도 그걸 잘 알아서 그런 종류의 광고에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그리고 물론, 우리도 얼마든지 환영이다.

“저희 리얼리티 컨텐츠가 귀촌 생활 컨셉인데, 주방이나 집 곳곳이 계속 나올 예정이라 제품 노출은 충분히 가능할 거예요. 그리고 저희 팬분들 사이에서도 데이드링크 브랜드 이미지가 굉장히 좋아서 반응도 괜찮을 것 같네요.”

컬러즈는 모노크롬에게 잘해주는 이들에겐 항상 마음이 열려 있다.

아직 광고 모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기 전인데도 컬러즈는 데이드링크를 세계 최고의 음료 회사로 부르고 있었다. 화제를 그냥 넘기지 않고 모노크롬에게 음료를 선물해 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광고 모델 선정에 이어서 제품 협찬까지 해 준다? 세계 최고의 음료 회사를 넘어서 세계 최고의 회사라고 부를지도 모르지.

‘……그럼 뉴마가 밀리는 건데 좋은 일인가?’

아니, 어쨌든 광고라면 회사 차원에서도 좋은 일이다.

게다가 이번에 찍을 넛츠라떼 광고는 미튜브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을 통해 송출될 예정이다.

우리가 미튜브 채널에 컨텐츠를 올리면 시청자가 우리 컨텐츠와 광고를 같이 보게 되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

그러면 데이드링크는 제품을 이중으로 광고할 수 있고, 우리는 브랜드와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광고 모델로서의 장점을 어필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윈윈이다.

내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데이드링크 마케팅 과장도 수월하게 대화가 진행되는 것이 흡족한 듯이 웃었다.

“그러면 조만간 회사 통해서 정식으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건 그때 대화 나눠보기로 하죠. 이번 광고랑 같이 주목도를 길게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네. 저희 리얼리티 컨텐츠 개요도 확인하실 수 있게 정리해 둘게요.”

우리가 찍는 게 무슨 컨텐츠인지 더 자세히 알아야 더 효과적으로 PPL 광고를 진행할 수 있을 테니까.

잘 모르는 채로 제안부터 한 게 오히려 신기한 일이었다. 데이드링크에서 모노크롬을 얼마나 좋게 봐 주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회사와는 이해관계가 정말 잘 맞아.’

뭐든지 항상 이야기가 빨랐다. 거래로 따지자면 그야말로 쿨거래였다.

온라인상의 유행이란 언제 그런 화제가 있었냐는 듯이 빠르게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니 알맞은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재빠른 진행이 필요했다. 화제가 시들시들해졌을 때 뒤늦게 편승해 봤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으니까.

이번 광고 건이 빠르게 진행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 들어오면 노 저을 준비가 된 두 회사가 만나면 이리도 일 처리가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안 그래도 첫 광고라 기분이 좋았는데 기분 좋은 일이 하나 더 생겼다.

‘광고 찍으러 와서 새 광고 따냈다!’

아직 멤버들은 촬영을 시작하기도 전이지만, 오늘 하루는 벌써부터 대성공이었다.

***

커피 CF는 특유의 이미지가 있었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배어있을 듯한 아늑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즐기는 모습.

모노크롬의 이번 광고 촬영 장소는 그런 커피 광고에 쓰일 법한 고즈넉한 분위기의 주방이었다.

조리대의 원목 상판 위에 거친 린넨 재질의 베이지색 테이블 매트, 그 위에 견과류들이 종류별로 담긴 나무 그릇이 놓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상과 헤어 세팅을 완료한 멤버들이 세트장으로 들어오며 인사했다.

해랑을 제외하고는 다들 단정한 셔츠에 깔끔한 바지, 허리에는 앞치마를 둘렀다. 쉽게 말하자면 바리스타 같은 의상이었다.

‘그래. 이게 딱 사람들이 생각하는 커피 광고 분위기지.’

인스턴트커피 광고에서는 모델이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그만큼 정성 들여 만든 커피의 맛을 인스턴트로 구현해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함이다.

그와 비슷하게 오늘 멤버들도 이 주방에서 바리스타처럼 견과류 라떼를 수제로 직접 만드는 장면을 촬영할 예정이다.

거기에 광고를 보게 될 동영상 플랫폼 이용자들의 취향에 맞춰 초반은 홈카페 ASMR 영상처럼 연출해서 주목도를 높일 예정이라고 들었다.

“어머. 평소에 손 따로 관리하세요?”

“아, 아뇨. 그냥 핸드크림만…….”

카메라 테스트를 위해 물병을 든 우형의 손을 클로즈업하는데, 화면을 본 스태프가 손이 예쁘다며 칭찬했다.

우형은 피아노를 쳐서 그런지 몰라도 손가락이 길쭉길쭉해서 더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면 컬러즈도 멤버들 손 참 좋아하지.’

이번 광고도 초반에는 얼굴이 나오지 않는 손 클로즈업 장면이 꽤 많은데 오히려 그게 컬러즈에겐 잘 먹히지 않을까.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 후엔 멤버들의 손이 바빠졌다. 직접 견과류를 볶거나, 믹서기에 갈고, 우유를 끓이고 커피를 내리는 등의 요리 장면을 클로즈업 샷과 미디엄 샷을 반복해서 찍었다.

숙련된 장인처럼 요리하는 장면이 이어지다가, 다음 신에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다.

화면에 잡히는 것은 난장판이 된 주방과 지친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멤버들.

“그냥 사 먹으면 안 돼?”

“안 돼. 이제 안 판대.”

준해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한이가 여전히 지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들의 옆엔 빈 넛츠라떼 팩이 널브러져 있다.

사실 멤버들이 직접 견과류 라떼를 만들던 것은 넛츠라떼가 품절되어서 구하지를 못하던 탓에 궁여지책으로 대신 만들어 먹으려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때, 해랑이 화면 안으로 걸어들어온다.

“……뭐 해?”

외출하고 온 듯한 점퍼 차림의 해랑은 아무렇지 않게 새 패키지로 리뉴얼된 넛츠라떼를 한 손에 들고 있다. 심지어 다른 쪽 손에 든 편의점 봉투에는 구할 수 없다던 넛츠라떼가 여러 개 담겨 있다.

어색해진 분위기 속, 방금까지 멤버들이 넛츠라떼를 재현해 보겠다고 생고생했던 주방과 멤버 전원이 풀샷으로 잡히며…….

“컷!”

촬영 감독이 컷을 외치자 해랑을 쳐다보던 네 명의 시선이 쪼르르 감독에게로 향했다. 오케이 사인을 받자 다들 밝은 표정으로 일어섰다.

품절 대란이었던 그 제품이 이 제품이며, 이제 패키지가 바뀌었다는 것을 동시에 알려주기 위한 스토리가 바로 이것이었다.

‘역시 온라인용 광고는 감성보단 재미지!’

우리의 광고주님은 팬미팅 VCR로 찍은 굿즈 광고를 마음에 들어 하더니 역시 재미 노선을 택했다.

처음엔 멋지게 연출된 장면을 보여주고 후반엔 헐렁하고 친숙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광고 하나로 두 가지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다니. 내게도 퍽 만족스러운 광고였다.

“아, 형! 연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좀 더 감정을 담아야지.”

한이는 일어서자마자 해랑의 연기를 지적했다. 해랑의 연기 레벨이 낮긴 해도 단 두 글자만 말했을 뿐인데.

한이는 해랑의 연기를 과장하며 재현하다가 금세 해랑에게 제압당했다.

메인 광고 촬영을 마친 후에는 이 주방 세트장을 그대로 활용한 다른 버전의 영상 촬영도 있었다.

어지럽혀졌던 주방은 금세 치워지고, 그 자리에 생크림이나 시럽, 아이스크림 등의 재료들이 준비되었다.

해랑도 이번엔 다른 멤버들처럼 외투를 벗고 허리에 앞치마를 둘렀다.

이번 영상은 요리 방송 스타일이었다. 우형이 미리 준비된 대본을 읽었다.

“여기 넛츠라떼를 활용한 레시피 열 가지가 준비되어 있는데요. 한 번씩 만들어보고, 이 중에서 모노크롬의 원픽 레시피를 골라보도록 하겠습니다!”

커피에 우유에 견과류 맛이 섞였단 점에서 재료로서의 활용도는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따뜻하게 데워 생크림과 시나몬 가루를 뿌리거나 얼음을 갈아 셰이크로 만드는 등, 의외로 다양한 레시피가 준비되었다.

음료를 직접 개발한 회사답게 맛을 최대한으로 즐길 방법을 연구해 온 듯했다.

젤라틴을 섞어 푸딩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복잡한 레시피였고, 나머지는 거의 토핑이나 시럽을 추가하는 간단한 조합이라 열 가지 레시피를 전부 재현하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 재민의 창의성이 또 발휘했다.

“여기 있는 재료를 다 넣어보면 맛있지 않을까?”

“이걸 다? 원래 맛이 사라질 것 같은데.”

“아냐. 넛츠라떼 은근히 향이 강해서 괜찮을걸.”

준해는 의구심이 담긴 눈으로 바라봤으나 재민은 기어이 재료를 모두 집어넣어 마지막 한 잔을 만들어냈다.

그 한 잔을 나눠 마신 멤버들은 오묘한 표정이 되었다.

“으음. 맛은 있어. 맛이 있긴 한데.”

“재료 하나씩 넣었을 땐 신선한 느낌이었는데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우형과 한이가 표현할 어휘를 마땅히 찾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고르자면 나는 이거.”

해랑이 컵을 내려놓고 차라리 기존 넛츠라떼가 낫다고 하자 멤버들도 모두 동의했다. 심지어 재료를 전부 섞은 당사자인 재민까지도.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더니.’

촬영을 지켜보던 데이드링크의 마케팅 과장은 이 결론이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한 표정이었다. 제품 자체로 맛있다는데 어느 광고주가 싫어하겠어.

대본에 없는 상황을 추가해서 광고주의 마음까지 사로잡다니. 기회가 없어서 광고를 못 찍어봤을 뿐이지, 사실 모노크롬은 광고 천재인 게 아닐까?

혹시 마이 엔터에 광고 레벨 같은 게 생기지 않았을까 슬쩍 확인했으나 역시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 같긴 했어.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마트폰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은 후 다시 촬영 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 이 광고 영상이 공개되면 차분차와 아이스 핫초코에 이어서 컬러즈의 홈카페 메뉴가 많이 추가되지 않을까.

광고를 본 컬러즈의 반응이 기대되어서 나도 마케팅 과장처럼 흐뭇한 표정이 되었다.

***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대표 기념일을 제외하고도 아이돌이 챙기는 기념일은 몇 개 더 있었다.

‘이번엔 밸런타인데이라…….’

일반 직장인에게 밸런타인데이란 옆 사람이 챙기는지 안 챙기는지 눈치 싸움을 하는 날이었다. 누군 챙기고 누군 안 챙기면 안 챙긴 사람이 사회생활 못 한다면서 뒷말 듣기 십상이거든.

그리고 뉴마라는 새 직장에 들어온 작년엔 아마 밸런타인이고 뭐고 챙길 정신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 2월에 내가 뭐 하고 있었더라.’

그때가 아마…… 미국 출국 직전이었던가. 그것 때문에 일정을 이리저리 조절하느라 한창 바빴던 것 같다.

그러나 올해는 제대로 챙길 이유가 있었다.

‘올해는 멤버들 생일 제대로 챙기기로 했으니까!’

밸런타인데이 다음 날, 2월 15일이 바로 한이의 생일이었다.

그리고 그 영향을 받아 모노크롬과 컬러즈의 밸런타인데이는 남들과는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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