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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26화 (226/430)

# 226화

“우형이 형이 요리할 때 자기가 먹을 건 꼭 자기 취향대로만 만들더라고요. 밥은 거의 죽으로 만들어 놔요. 자기는 위장이 약하다나.”

준해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작게 한숨을 섞어 말했다.

우형의 요리 실력을 문제 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보통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들이 위가 약한데.’

그가 그동안 스트레스받았을 만한 일이 너무 많이 떠오른다는 게 문제였다.

그저 즐겁게 쇼핑할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잠시 숙연해졌다.

“그래서 그냥 즉석밥 사 먹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전에 형 말고 누가 밥 해놨던 적 몇 번 있지 않았나.”

“응. 근데 나중에 보니까 우형이 형이 물 부어서 재취사 해놓더라고. 그냥 포기하는 게 빨라.”

그럼 밥은 다른 사람이 담당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마침 해랑이 그 점을 꼬집었다. 밥을 누가 하든 결국은 우형이 원하는 대로 된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은 주로 즉석밥을 먹는다고 한다. 매번 숙소에서 밥을 먹는 게 아니라 그게 여러모로 편한 듯했다.

다들 기적적으로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단체 생활의 고충을 나름대로 겪고 있었다.

“그럼 밥솥은 나중에 필요하면 사기로 하고, 다른 거 먼저 사러 가자.”

새 숙소는 주말 별장 같은 거니까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완벽히 준비되어 있지 않아도 괜찮겠지. 없으면 없는 대로 살다가 필요할 때 구비해도 될 것이다.

두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 전기 포트 코너로 넘어갔다. 밥은 안 해 먹어도 가수니까 따뜻한 물은 필수였다.

카트에 담을 수 있을 만한 작은 가전들을 몇 개 담은 후에는 생활용품을 고를 시간이었다.

멤버가 다섯이니 컵이나 식기도 최소 다섯 개씩 골라야 했다.

“저희 숙소에는 다 다르게 생긴 컵만 있거든요. 어디서 들어온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어느샌가 하나둘씩 늘어나 있더라고요.”

준해가 카메라를 보며 기존 숙소 현황을 설명했다.

그런 준해 뒤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진열장을 바라보던 해랑이 고른 것은 빈티지한 꽃무늬 컵 세트였다.

카메라와 대화하던 준해는 해랑이 카트에 집어넣은 컵 세트를 보고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거 너무 할머니 집에 있을 것 같지 않아?”

“그 집에는 이게 어울릴 것 같아서.”

20대 청년들이 살 집에서 쓴다고 생각하면 ‘조금 취향이……?’이라고 생각할 법하지만, 시골집 특유의 느낌을 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새집에 새살림인데 깔끔하게 통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해랑의 대답을 듣고 바로 납득한 나와 달리 준해는 아직 이 꽃무늬가 걸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미 두 조로 나뉘어서 쇼핑하고 있는 시점에 모든 살림을 깔끔하게 맞추는 것은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생각엔 저쪽 세 사람도 인테리어 통일을 생각하면서 골랐을 것 같지는 않아.”

“그것도 그러네요.”

준해는 내 말을 듣고는 바로 수긍하며 카트를 밀어 옮겼다.

일상의 귀여움을 추구하는 재민이 어쩌면 캐릭터가 그려진 밥그릇 같은 걸 사 올지도 몰라. 빈티지 꽃무늬 컵 정도면 무난하지.

두 조로 나뉜 멤버들은 각기 쇼핑을 마친 후에 사람이 많이 오가지 않는 구석에서 합류했다.

준해가 다른 조의 카트를 보다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바로 집어 들었다.

“이건 뭐야! 돈 들어오는 황금 거북이?!”

준해가 말한 것은 손바닥에 들어올 만한 크기의 장식품이었다.

제품명은 황금 거북이지만 가격표에 적힌 금액이 만 원대인 것을 봐선 당연히 실제 금은 아닌 듯했다.

“코끼리랑 부엉이도 있었는데, 거북이가 장수의 상징이잖아.”

준해는 장식의 필요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는데 재민은 거북이를 골라온 이유를 설명했다.

리스트에 적힌 물품 외에도 인테리어 소품을 각자 하나씩 자유롭게 골라오기로 했는데 이게 가장 재민의 시선을 끈 모양이다.

‘팬미팅 때 비슷한 대화를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실용성 없는 물건 잘 사 올 것 같은 멤버 1위로 당당히 꼽혔던 재민이었다. 일관적인 면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려나.

그 외에도 한이는 오래된 집에 있을 법한 뻐꾸기시계를 카트에 담아 왔다.

“이게 딱 집에 어울릴 것 같아서 사 왔는데 어때.”

“오. 해랑이 형이랑 통했다.”

준해의 말을 듣고 해랑과 준해의 카트를 기웃댄 한이는 안에 담긴 꽃무늬 컵과 인삼이 그려진 수저 세트를 보고 해랑에게 하이파이브를 시전했다.

자세히 보니 우형 조가 사 온 그릇 세트도 제법 친숙한 스타일이었다.

‘아무래도 새 숙소는 시골집 컨셉으로 확정됐나 보네.’

이것도 느낌 있고 좋겠지. 멤버들의 마음이 통했다면야 뭐든 괜찮았다.

그러나 모두가 합의한 것은 아니었는지 우형이 골라온 인테리어 소품은 북유럽풍 가렌더였다.

“난 애들이 이상한 거 고른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인테리어 소품’ 하면 이런 걸 먼저 떠올렸는데. 멤버들이 생각하는 인테리어의 범위가 예상외로 너무 넓었다.

본인이 가장 멀쩡한 것을 골라왔다고 생각했을 텐데, 오히려 분위기를 못 맞춘 사람이 되어버린 우형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컨셉이 암묵적으로 시골집으로 결정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

가렌더를 골라온 게 잘못은 아니다. 그저 눈치 싸움에 실패했을 뿐. 일반적인 미적 감각을 지닌 것은 탓할 일이 아니었다.

해랑은 레트로 스타일의 청회색 라디오를 담아왔다. 특색 있으면서도 어디에나 어울릴 법한 디자인. 평소에 음악을 즐겨 들으며 이어폰을 달고 사는 그다운 선택이었다.

“스피커보다 이걸로 음악 틀어놓으면 분위기에 맞을 것 같아서 골라왔어.”

“내 가렌더랑 색깔 잘 어울린다, 야.”

우형이 본인의 갈 곳 없는 가렌더를 가져다 대며 포장하려고 하다가 해랑에게 차단당했다.

“마지막으로 저는, 짜잔.”

멤버들이 각자 골라온 것을 카메라에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준해의 순서였다.

부피가 커서 처음부터 카트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기에 굳이 소개할 것까지도 없었다. 준해가 골라온 것은 상체 길이만 한, 바디필로우처럼 생긴 크림색 강아지 인형이었다.

진열된 인형을 손으로 꾹꾹 눌러보고 카트에 담기에 폭신해서 마음에 든 줄 알았는데, 골라온 이유가 따로 있는 듯했다.

“개집에 입주할 저희 모노크롬의 새 가족이에요.”

“준해 닮았다.”

자신을 닮았다는 재민의 말에 준해는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이름도 지어놨어. 얘 이름은 ‘하니’야.”

“유한이?”

“한이 말고 하니.”

“아니. 얘 이름은 진돌이야.”

한이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형의 이름을 새로 지었다. 그러나 멤버들은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우형이 강아지 인형을 잡아 마구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준해에게 물었다.

“하니 하나에 얼마야?”

“만 오천 원.”

“여기 있는 잘생긴 한이는 2조 5천억 원인데요?”

2조 5천억 원……. 예전에 잡지 인터뷰할 때 나왔던 금액이던가.

멤버들은 한이의 어필을 무시하고 계산대를 향해 다시 카트를 밀었다.

***

쇼핑을 마친 우리는 마트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집 주변과 가장 가까운 동네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며 차로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새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이동했기 때문인지 돌아왔을 때도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이었다.

돌아온 멤버들은 더 차근차근 집을 둘러보며 커튼 색은 무엇으로 할지, 당장 무슨 가구가 더 필요할지 직원들과 열심히 상의했다.

처음엔 우형의 미적 감각을 기대했으나 이번엔 조금 삐끗해버린 듯하고, 대신 센스가 있는 해랑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전체적인 인테리어 예상도를 만들어냈다.

본인의 공간을 중시하는 성향이어서인지 보금자리를 꾸미는 데에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앞으로 사야 할 게 더 많지만 일회용 소품이 아니라 약 1년간은 계속 쓸 테니까 괜찮겠지.

‘초기 투자만 해 두면 돈 나갈 일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 다른 컨텐츠 촬영 장소로도 계속 활용할 수 있고.’

이런 점을 들며 회사와 협의해 둔 금액이 있어서 나는 계속 지금까지 얼마를 지출했는지 계산했다.

넘을까 봐서가 아니라, 남을까 봐. 회삿돈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쓰는 것이 내 목표였다.

‘집이 그렇게 큰 게 아니라 생각보다 가구가 조금 들어갈 것 같아. 몇십 년 쓸 것도 아니라 비싼 제품을 고집할 필요도 없고…….’

돈이 남겠다 싶으면 집 안이 아니라 바깥에도 뭔가 설치해 볼까. 나무나 장식 같은 거.

그런 생각을 하며 마당 방향으로 난 창으로 밖을 구경 중이었는데 재민이 옆으로 다가왔다.

“밖에 뭐 있어요?”

“아니. 담장 옆에 나무를 심을까 생각 중이었어.”

“어! 그럼 사과나무 심어주세요.”

“사과 키우고 싶어?”

“아뇨. 세상에 종말이 올 수도 있으니까.”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 재민을 봤다. 별생각 없어 보이는 것을 봐선 그냥 ‘나무’ 하니까 사과나무 명언이 생각나서 드립을 쳐 본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아무 말로 응수하기로 했다.

“그래. 운석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사과나무쯤이야.”

평화로운 바깥 풍경을 보며 세상이 한순간에 바뀌는 상상을 해보고 있는데, 재민은 좀 더 자세한 지구 종말 시나리오를 생각해 둔 게 있었는지 설명했다.

“운석보다는요.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실험을 하다가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해서…….”

“명재민!”

지나가던 우형이 다급하게 재민을 불렀다.

돌대회 촬영 날 컬러즈가 좀비 서바이벌 얘기를 하는 것 같더니만. 비밀이라면서 숨기려고 한 게 우형이었군.

나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운석이 떨어지는 상상 대신 좀비가 돌아다니는 상상을 해 봤다.

‘제작비…… 많이 들어가겠지?’

돈을 조금 아껴놔야 할지도 모르겠어.

새 숙소 맛보기를 끝내고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다시 귀가하기 위해 일어섰다.

나가기 전에 준해는 거실 중앙에 강아지 인형을 두고 머리를 통통 두드렸다.

“하니야, 집 잘 지키고 있어.”

“날 두고 가지 말아요~.”

준해의 뒤에서 한이가 가성으로 인형 목소리를 더빙했다. 하니란 이름을 마음에 안 들어 하더니 은근히 즐기고 있잖아.

‘다음에 올 땐 좀 더 사람 사는 느낌이 나겠지.’

이곳 분위기 자체가 여유로워서 힐링이 되지만, 촬영할 소재가 계속 남아있다는 것이 내게는 더욱 힐링이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펼칠 다양한 컨텐츠를 기대하며 나도 직원들과 함께 숙소를 나섰다.

***

장기 출연했던 예능 방송과 앨범 활동이 거의 동시에 끝나고, 컬러즈는 오랜만에 여유로운 팬 생활 중이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전보다 심심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익숙함이란 무서운 거야.’

멤버들이 바쁘게 일하느라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컬러즈들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쏟아지는 떡밥에 익숙해져서 비활동기를 오히려 어색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1년 365일 내내 활동을 이어갈 수는 없으니 이런 쉬는 기간도 중간중간 필요하다. 그래도 마냥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는 기대할 거리를 제공하는 게 좋겠지.

그런 생각으로 일단 자체 리얼리티의 예고편부터 올렸고, 예상대로 컬러즈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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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다!!!!

우리도 이제 리얼리티 있다ㅠㅠㅠㅠ

└전에 마트 목격담 들린거 역시 리얼리티였구나ㅠㅠㅠㅠㅠㅠ

└그냥 며칠 여행가는 거 아닌가 봐 카트 보니까 거의 살림인데?!

└아니 근데 예고편도 무슨 교양프로그램 다음 화 예고 같음ㅋㅋㅋㅋㅋ

└사실 리얼리티 아니고 리얼다큐 나오는 거 아냐?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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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숙소가 생겼다는 사실은 아직 알리지 않았다. 예고편에는 차에서 내리는 모습, 마당 구경하는 모습, 마트에서 쇼핑하는 모습 정도가 담겼다.

컬러즈는 이 1분 남짓한 예고편을 1초 단위로 캡처하면서 멤버들이 뭘 하고 뭘 샀는지 추측하고 나섰다. Ep.0인 첫 방문과 마트 쇼핑 편이 올라갈 때까지는 추측만으로도 즐거울 듯했다.

자체 컨텐츠는 꼭 팬들만 보라고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시청자층을 팬으로 상정하고 만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많은 사람이 주목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은, 넛츠라떼의 광고 촬영 현장에서였다.

촬영 현장에 직접 찾아온 데이드링크의 마케팅 과장이 나를 발견하더니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인사를 나눈 후에 그가 꺼낸 이야기는 이번에 우리가 올린 리얼리티 예고편에 관한 것이었다.

“리얼리티 컨텐츠를 촬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바로 얼마 전에 올렸는데 봐주셨나 보네요.”

아직 예고편만 올렸을 뿐인데 그걸 바로 봐 줬다니.

비즈니스 협업 상대를 향한 관심 표시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이 이야기부터 꺼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혹시, 제품 협찬이나 광고도 받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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