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화
멤버들에게 새로 구한 숙소를 직접 보여준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사소한 컨텐츠를 찍을 때도 미리 일정을 잡고 준비하는데, 하물며 리얼리티는 어떻겠어. 그것도 장기 리얼리티의 첫 시작이 될 텐데.
게다가 일반 펜션처럼 모든 게 준비되어 있고 몸만 와서 지내면 되는 곳이 아니라 실제 주택을 빌린 것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세팅을 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아직 준비 안 된 게 많지만…….’
너무 완벽히 준비하면 재미없잖아? 정말 빈집으로 이사하는 기분을 내고 싶었다.
……단기 임대도 아니고 장기 임대라 회사랑 지출 관련으로 협의를 하느라 시간이 조금 빠듯하기도 했고.
그리고 첫 방문도 빼놓을 수 없는 컨텐츠이니 촬영 준비가 좀 필요했다.
그 때문에 집을 빨리 보여주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흘렀는데, 그동안 멤버들의 기대감은 점점 커진 듯했다.
“와! 놀러 가는 거 같다.”
“놀기에는…… 뭐가 좀 없을 거야.”
“그래도요. 그냥 궁금해요.”
재민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아침부터 에너지가 넘친다니까.
회사에 모여 출발하기로 해서 멤버들은 회사로 출근하자마자 외투를 벗을 새도 없이 준비된 차를 타러 다시 나왔다.
“정말 아무것도 안 챙겨도 될까요?”
“오늘은 맛보기거든. 그냥 집 보러 가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돼.”
직접 눈으로 확인하라고 자세한 이야기는 해 주지 않은 상태다. 멤버들은 아직 새 숙소의 위치도, 어떻게 생긴 집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동하는 게 불안한지 차를 타려던 우형이 조금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오지로 데려갈 것도 아니고……. 생각해 보니 오지도 재밌겠는데?
내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우형의 눈에 불안이 한층 더 짙어졌다.
“생각보다 많이 안 가네요?”
한이가 운전석 쪽을 기웃거리더니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거리와 예상 시간을 보고 말했다.
아이돌에게 차량 이동 시간은 수면 시간인 경우가 많은데, 우리의 목적지는 이동하면서 잠들기에는 조금 애매한 거리였다.
“차가 아니면 따로 교통수단이 없긴 한데, 대신 그렇게 많이 멀진 않아.”
내가 탕진을 즐긴다고 해서 돈이 무한정으로 생겨나는 건 아니었다.
필요한 집을 구하면서 금전적 문제로 몇 가지는 포기해야 했는데, 가장 크게 포기한 것은 교통편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는 건 주택가 안에 있는 집이 아니라는 것. 조금 외딴 곳이었으나 그 점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교통편이 안 좋은 만큼 그나마 가까운 곳에 적절한 금액으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거기에 사생활도 지키고, 주변 눈치 볼 것 없고.
“준해는 면허 없으니까 혼자 못 가겠네?”
한이가 멤버 중 유일하게 면허가 없는 준해를 건드렸다.
재민처럼 소풍 가는 기분으로 들떠 있던 준해는 김이 팍 빠진 얼굴이 되었다.
“……내가 면허 따고 만다.”
“준해는 자전거 잘 타잖아.”
옆에서 해랑이 자상한 말투로 준해의 자전거 실력을 칭찬했다.
자전거로 국토 종주도 한다지만 일반적으로 자전거 타고 갈 만한 거리는 아니지 않나…….
분명 상냥한 말투인데 은근히 먹이는 것 같단 말이지. 역시 그도 모노크롬이라 모노크롬다운 대화 방식을 구사할 줄 알았다.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차는 계속 도로를 달렸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니 바로 시골 풍경이 나타났다. 아직 겨울이라 초록빛은 얼마 없었지만 그래도 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역시 이런 힐링도 있어야지.’
숙소 보안이나 리얼리티 컨텐츠 제작 외에도 새 숙소를 구한 목적이 더 있었다. 바로 힐링과 리프레시.
다음 앨범은 스페셜 앨범 형태로 예정 중인데, 멤버들의 참여율을 특히 많이 늘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여유로운 환경에서 기분 전환을 하면서 창작을 위한 여러 영감도 받았으면 했다.
‘우형이도 LA에서 떠올린 멜로디를 바로 곡에 적용했으니까.’
성실하게 매일 회사를 오가면서 아이돌 활동에 열중하는 것도 좋지만 예술인이니까 이런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창밖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따로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차가 멈추자 멤버들은 숙소를 바로 알아봤다. 왜냐하면…….
“우와……. 주변에 아무것도 없네요.”
“여기서 꽹과리 치고 놀아도 민원 안 들어오겠다.”
우리가 내린 곳 주변에 있는 것이라고는 이 주택 한 채뿐이었기 때문에 목적지를 헷갈릴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내린 준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곳에서는 가장 가까운 이웃집도 제법 작게 보였다.
목청이 큰 한이는 층간소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든 표정이었다. 그 대신 같이 지내는 멤버들이 봉인이 풀린 소음의 피해자가 될 듯하지만.
“우와! 마당!”
너무 외진 곳에 집을 구했나 싶어서 머쓱해지려던 때, 재민이 차에서 내리며 감탄했다.
우형은 뭘 생각했는지 몰라도 예상외였는지 눈이 조금 커졌다.
“집이 생각보다 큰데요?!”
“원래는 집주인 할아버님이 고향으로 돌아오시려고 지은 집이었는데, 다리가 안 좋아지셔서 병원 다니느라 도시에 있는 자녀분 댁에 지내고 계신대. 그래서 계속 비어있었댔어.”
집은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금방 낡기 마련이다. 그래서 비어있는 동안 이웃 주민에게 관리비를 주면서 대신 관리를 부탁했다고 한다.
계속 지출만 나가고 빈 채로 두기엔 부담스러워서 아쉬움을 감수하고 처분하려던 참에, 마침 알맞은 곳을 찾던 나와 운명적으로 만난 거지.
“여기서 느긋하게 귀촌 브이로그처럼 찍으려고.”
“느긋하게만 찍으면 보시는 분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요?”
“미션 같은 것도 넣을 생각이긴 한데, 기본은 힐링 컨텐츠니까 괜찮아.”
우형은 걱정했지만 자연이나 귀농 컨텐츠가 괜히 수요가 있는 게 아니다.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해온 연령대가 한적한 시골 생활을 더 동경하는 법이지만, 우리는 그냥 귀촌이 아니고 아이돌 리얼리티잖아? 다양한 연령층을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컬러즈는 멤버들이 자기들끼리 놀고먹고 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니 원 없이 보여줄 생각이다. 그러니 멤버들은 일단 여기 있을 때만큼은 마음껏 놀고먹고 쉬면 된다.
‘중간중간 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건 우리 몫이고.’
넓지 않은 숙소에서도 몇 년간 뷰이라이브를 잘해온 멤버들이니까, 공간이 넓어진 만큼 할 만한 것도 더 많아지겠지.
비활동기에도 자체 리얼리티라니, 쉴 시간이 없는 것 같지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마냥 길게 휴가를 보내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쉬는 느낌이라도 제대로 들게 해 줘야지. 돈 들여 임대한 김에 알뜰살뜰 잘 활용할 예정이다.
대문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니 밖에선 잘 보이지 않았던 마당이 나타났다.
“우와! 개집이다.”
아까부터 계속 “우와!”를 연발하던 재민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며 한 번 더 감탄했다. 그냥 이 상황 전체를 즐거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개집을 본 해랑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거 한이 집…….”
“아, 형. 나 진짜 상처받을 거야.”
“오케이.”
한이가 심통 난 표정을 짓자 해랑은 바로 수긍하며 장난을 마무리했다.
예능 촬영할 때 만호와 붙어 있더니 예능에 욕심이 생긴 걸까? 최근 농담이 늘어난 것도 같다.
그보다…….
“몸 구겨 넣으면 들어갈 수 있어?”
“한번 해 봐.”
“얘들아, 개집 말고 사람 집을 구경하자고.”
아까부터 카메라를 켜고 촬영 중이라 최대한 오디오에 소리가 들어가지 않게 조용히 있으려 했는데, 다들 현관문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안 하고 개집 앞에 모여있기만 했다.
마당 있는 집의 전유물 같은 것이라 가장 눈에 띈 모양이지만, 개집은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말리자 멤버들이 머쓱하게 일어서서 인간의 집으로 주의를 돌렸다.
“와! 넓다.”
현관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재민이 또 보이는 대로 감상을 내뱉었다.
사실 지금은 ‘넓다’보다는 ‘비어있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지금 집 안에 있는 가구라고는 인덕션, 냉장고, 에어컨 정도…… 딱 기본 옵션뿐이었다.
거의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지만 집 구조를 둘러보고 온 멤버들은 마음에 들었는지 들뜬 표정이었다.
“나 이층집에서 처음 지내봐.”
“이층집이라고 뭐 다르진 않아. 술 마시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확률이 높을 뿐이지.”
“그건 너만 조심하면 돼.”
2층 구조에 크게 감흥이 없어 보이는 것은 한이뿐이었다. 계단…… 조심하긴 해야겠네. 아래에 폭신한 걸 깔아놔야겠다.
준해는 집 전체를 둘러보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더니 내게 슬쩍 물었다.
“일부러 방 다섯 개 있는 집으로 고르신 거예요?”
“꼭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고 우연, 운명이었어.”
집주인 할아버님이 나중에 딸 부부가 은퇴하면 같이 지낼 생각으로 지은 집이라고 들었다. 자녀가 여럿 있어서 손님방도 마련되어 있었고. 덕분에 방은 작지만 여러 개가 있었다.
“방은 각자 하나씩 써도 되고, 용도를 정해도 좋고 자유롭게 해.”
“그런데 저희 여기서 자고 갈 땐 이불 깔고 자요?”
재민이 손을 들고 말했다. 이곳엔 침대도 없고 이불조차 없었다.
물론 이대로 둘 것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힐링 귀촌 생활이 아니라 적은 자원으로 살아남는 생존물에 가까워질 테니까.
재미야 있겠지만 멤버들을 맨바닥에 재우는 것은 팬들이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출발하기 전에 말한 것처럼 오늘은 그냥 맛보기고…….”
더 볼 만한 것이 없으니 집 구경은 이만하면 되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이제 채우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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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마트에서 몬클이들 목격담 떴는데 뭐지?? 주변에 스태프들 있었대 카메라 있구
└헐?
└설마 우리 리얼리티 찍어?!????
└아 제발 렬리티ㅠㅠㅠㅠㅠ!!!!
└제발제발
└먹을거 사서 어디 여행가는 건가?? 벌써 존잼이야ㅠㅠㅠ
└근데 애들 가전코너에 있었다는데 가전은 왜 사지..?!
└???? 놀러가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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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 촬영의 주제는 숙소 첫 방문이 메인이 아니었다. 멤버들이 보고 온 것처럼, 거긴 아직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제 그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뭔가가 있는 공간으로 만들 차례였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오늘을 위해 교외에 있는 대형 마트에 촬영 협조를 미리 구해놓은 상태다.
“이게 리얼리티에서 처음 할 일이야. 새 숙소에서 쓸 물건 구하기.”
우리가 찾아온 곳은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 대형 마트였다. 가구나 가전제품 코너가 따로 있어서 필요한 품목은 웬만하면 다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형 마트에서 숙소 안에 들어갈 가구와 가전을 다 구매하기에는 좀 그렇고, 오늘 바로 구매해도 괜찮을 만한 품목을 몇 개 추려놨다.
‘살림 쇼핑하는 모습은 팬들도 못 봤을 테니까 신선하겠지.’
물건을 고를 때도 각자의 성격이나 성향이 드러나지 않을까.
밥솥만 해도 그렇다. 디자인이나 크기가 전부 다르고, 기능도 단순한 것부터 복잡한 것까지. 고르는 사람의 취향까지 생각하면 쇼핑하면서 고려할 요소는 무궁무진했다.
바로 지금처럼…….
“밥솥 그냥 안 사면 안 돼요?”
밥솥 코너 앞에 서서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던 준해가 아예 다른 선택지를 꺼내 들었다.
현재 멤버들은 두 조로 나눠서 쇼핑 중이었다.
금방 옆길로 샐 듯한 예능 투톱 두 사람에 진정시키는 역할로 우형을 붙여 다른 방향으로 보내고, 이쪽은 성실하게 고를 것 같은 해랑과 준해의 조였다.
내가 카메라를 든 직원 뒤에서 작게 “왜?” 하고 묻자 준해가 카트를 밀었다 당겼다 하면서 대답했다.
“우형이 형이요…….”
역시 요리 이야기엔 우형이 빠지지 않는 건가. 뭔가 이유가 있는 듯해서 나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