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화
광고 모델이란 우리가 먼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브랜드의 선택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회사도 열심히 소속 연예인을 알리고 네임 밸류를 높이면서 어필할 수는 있지만 유명해진다고 마음대로 광고를 고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델 선정에는 해당 연예인의 인지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브랜드의 이미지나 방향성 등 여러 가지가 고려되니까.
‘그런데 이렇게 직접 인연이 닿으면 또 모르는 일이지!’
모노크롬은 지금 광고 시장에서 정확히 가치 평가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 아마 판단할 기준이 많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도 긍정적이라면 이제 우리도 적극적으로 나설 차례였다.
모노크롬과 컬러즈를 통해 이어진 흐름이 여기까지 왔으니 제대로 기회를 붙잡아야지.
그렇다고 갑자기 ‘저희가 하겠습니다!’ 하고 손들고 나서면 오히려 깰 테니까 일단은 성의 있게 듣는 것부터.
“아직 새 패키지 디자인이 나오기도 전이라 아직은 정확히 언제 어떻게 한다 확정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소문을 탄 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요. 시간이 걸리신다는 건 이해해요.”
“지금 내부적으로 이야기가 나온 건 우선 배너 광고와 동영상 플랫폼 광고 쪽입니다.”
나도 초장부터 TV 광고를 따내겠다는 거창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제품에 관한 소문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으니 웹 광고로 인터넷 사용자층을 노리겠다는 판단은 지당했다.
다만 아직 정확히 결정된 사항이 없다는 건 모노크롬이 모델로 확정된 것도 아니라는 것. 그래도 다행히 이쪽으로 나오면 나도 할 말이 많았다.
“저희도 최근에 방송에 많이 나오긴 했지만 웹 컨텐츠에도 주력하고 있어서요. 플랫폼 사용자 중에 겹치는 수요층이 있을 것 같네요.”
우리가 마침 동영상 플랫폼을 잘 활용 중이니, 그런 플랫폼에 광고가 뜨면 주목도가 높을 것이란 말을 우리 채널의 조회 수 추이 등을 들며 열심히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는 것뿐만 아니라 장점이 될 만한 부분을 집어주니 이 마케팅 담당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집중했다.
“기존에 패키지를 귀엽게 만드신 게 젊은 여성을 주요 소비자층으로 노리셔서 그렇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아이돌을 모델로 내세우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봐요.”
이런 자리에선 굳이 겸손을 보일 필요가 없었다. 아마 당장 여기서 결정되는 사안은 없겠지만 최대한 좋은 점을 부각해두면 회사 내부에서 다시 회의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 그리고 광고 찍으신 것도 봤는데 말입니다.”
“광고요……?”
우리는 아직 광고를 찍은 적이 없는데.
혹시 다른 아이돌과 착각했나 의심했으나, 마케팅 과장이 본 것은 모노크롬이 맞았다.
“공식 채널에 올리신 영상이요. 광고처럼 만든…….”
“아!”
팬미팅 VCR로 찍었던 굿즈 광고!
팬미팅 후 VCR 일부를 모노크롬 채널에 올렸는데 그것을 본 모양이었다.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그런 스타일도 괜찮겠다는 얘기도 나왔었습니다. 그게 요즘 젊은 층에게 잘 먹히는 스타일이라고.”
정말 그렇게 하신다고요……?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의아한 표정을 지을 뻔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갔다.
하긴 B급 감성은 꾸준히 유행이지. 스킵하지 않고 광고를 끝까지 보게 하려면 재미있는 쪽이 좋을 테고.
웃길 목적으로 만든 영상이었는데 그게 설마 광고주에게 어필이 될 줄은 몰랐다.
‘이 정도로 모노크롬한테 관심을 보이는 걸 보면 일이 틀어질 가능성은 적겠어.’
마케팅 담당자 두 사람은 나중에 자세한 사항이 정해지면 다시 정식으로 연락을 주겠다고 하면서 돌아갔다.
그리고 고민 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는지, 다시 연락을 받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모든 연예인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연예인은 유명해져서 이름의 가치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인기가 많아진다고 해서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모노크롬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계속 일해왔고 실제로 높아진 인기를 실감하면 기뻤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되는 점도 있었다.
‘이번에 뷰이라이브에서 한 커피 우유 이야기가 예상보다 더 널리 퍼져나가던 것도 그렇고.’
그건 상황과 우연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이기도 하지만. 언제든지 모노크롬의 발언이 널리 널리 퍼져나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모여드는 관심이 커지면 그만큼 조심해야 할 일도 생긴다. 우리가 건전하고 좋은 관심만 쏙쏙 골라서 받을 수는 없으니까.
연예인은 오프 모습까지 대중에게 공개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나 신비주의이기 어려운 아이돌이라면 팬들과 소통하며 더욱 오픈된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멤버들이 뷰이라이브를 하는 것을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노크롬은 숙소에서 뷰이라이브를 많이 했었지.’
물론 예전까지는 마땅히 할 곳이 없어서 그랬을 테고, 지금도 그게 습관이 된 거겠지만…….
다행히 모노크롬이 사는 아파트의 보안은 나쁘지 않은지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다만 언제까지고 그러리라 확신할 수는 없다.
작년엔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뷰이라이브를 하기도 했고, 아마 과거에도 숙소 동네에서 뷰이라이브를 한 적이 몇 번은 더 있었을 것이다.
‘아마 모노크롬이 어느 동에 사는지 알고 있는 컬러즈도 꽤 있을 거야.’
이건 우리가 허술해서가 아니라 다른 아이돌 그룹도 마찬가지다.
모노크롬도 생활권이 있으니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동네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고. 모노크롬이 간 장소나 가게 등을 팬들끼리 공유하는 건 일상이니까.
애초에 투명인간이 아니고서야 모노크롬이 어디에 살고 어디를 오가는지 꽁꽁 감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멤버들이 어디서 뷰이라이브를 하든 크게 관여하지 않았는데…….
‘그건 인지도가 부족했던 예전 기준이고, 앞으로는 좀 다르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아.’
더욱 많은 사람이 보고 주목하는데 이전과 똑같이 생활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예전에 멤버들에게 넌지시 숙소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혹시 말이야. 숙소를 옮기는 건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요?”
“갑자기는 아니지. 지금 숙소에서 오래 지냈잖아.”
내 이야기를 들은 멤버들은 다들 전혀 생각도 안 해봤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멤버들의 숙소에 관해서는 데뷔 초 숙소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위치는 회사 근처고, 월세는 회사가 지불한다는 것만 알았다.
마이 엔터에 숙소 기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플레이어였던 내가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모노크롬 플레이에 시간을 들이지 않던 것이 이 세계에선 저절로 전담 직원 수가 줄어든 것으로 적용되었던 것처럼, 숙소 또한 아무도 신경을 안 쓰고 데뷔 초 그대로 유지된 듯했다.
‘방 세 개를 나눠 쓰고 있다고 들었는데.’
데뷔 초라면 몰라도 지금은 좀 답답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물어봤는데 멤버들은 굳이 옮기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였다.
“괜찮아요. 지금 있는 데가 익숙해서 편하기도 하고……. 나만 그런가?”
우형이 그렇게 말하고는 멤버들을 둘러봤는데 다들 같은 표정이었다.
“편한 상태로 만들어둬서 불편함은 잘 모르겠네요.”
“해랑이는 둥지 틀어놨지.”
대기실에서도 해랑이 소파에 외투나 짐을 배치해두고 쉬기 편한 상태를 만들어 놓은 것을 두고 멤버들은 ‘둥지 틀었다’고 표현하곤 했다.
숙소에서도 비슷하게 해두고 지내고 있는 건가. 해랑은 성격상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자기만의 공간만 확보하면 크게 불편하지 않은 모양이다.
“뭐어, 지금도 참고 살 만해요.”
그 해랑과 같은 방을 쓴다던 한이는 마치 불만은 있지만 자기가 참아준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냥 농담인지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전 이렇게 지내는 거 좋은데요?”
“저는 애초에 독방이라.”
재민은 그냥 사람이 좋은 듯하고 준해도 문제없는 듯하다.
‘다들 본가가 멀지 않아서 숙소에서만큼은 복작복작 지내도 괜찮은가?’
그런 것치고는 다들 너무 숙소에만 붙어있는 것 같긴 한데…….
멤버들의 대답을 들은 내 표정이 탐탁지 않았는지 우형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 숙소에 너무 정들어서 옮기면 오히려 아쉬울 것 같아서요.”
하긴 멤버들에겐 그냥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추억이 담긴 공간이지. 모노크롬으로 지내온 모든 기간을 그곳에서 함께했을 테니까.
이렇게 말하면 억지로 끌어낼 수는 없었다. 주거지를 옮기는 게 반대로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큰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불편하지 않을까, 혹시나 위치가 너무 노출되지 않았을까 걱정이었는데 불편하지 않다고 하고 보안상 문제가 없다면 일단은 그대로 지내도 괜찮을 듯했다.
“음, 알았어. 그런데 앞으로 숙소에서 뷰이라이브 할 때 조금 주의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
나는 주의 사항을 몇 가지 읊었다.
숙소에서 뷰이라이브를 할 땐 창밖은 안 비치게 하거나 커튼으로 꼭꼭 감추기, 집 구조를 너무 세세하게 보여주지 않기 등등.
그런 정보를 조합해서 정확한 아파트 동과 호수까지 맞추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이전 뷰이라이브에도 숙소에 관한 정보가 곳곳에 드러났을지도 모르지만 과거는 어쩔 수 없고, 시청자 수가 늘어난 지금 계속 드러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너무 자주 숙소에서 뷰이라이브 하지는 마. 지금 정도는 괜찮은데 혹시 모르니까.”
멤버들이 계속 숙소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연스레 숙소에 관한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소통도 좋지만 사생활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멤버들도 이해했는지 내가 말한 사항들을 잘 지켰다.
그러나 이후로도 숙소 문제는 마음 한구석에 계속 남아있었다.
그래서 비활동기를 맞이해 나는 생각했던 것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고, 그게 준비가 되어서 멤버들을 불러 모아 말했다.
“내가 임시로 집을 하나 구했거든?”
뜬금없는 소리에 멤버들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이사님 집 사셨다고요……?”
“아니, 내가 내 집 구했다고 자랑하려고 모은 게 아니고.”
생각해 보면 웃기네. 일하다가 불러 모아서 집 샀다고 자랑하는 거.
그러나 내가 말하는 건 내 집도 아니었다. 집을 완전히 산 것도 아니다.
“내 집이 아니라 너희가 들어가서 생활할 집.”
“……저희 숙소요?”
숙소 이사는 안 하겠다고 해 놓고 갑자기 집을 구했다고 하니 당황할 만도 하지.
하지만 멤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일반적인 숙소로 사용할 집은 아니었다.
“아니. 숙소는 안 옮겨. 내가 구한 건 뷰이라이브 마음껏 해도 되는 집이야.”
나는 이것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했다.
보안을 신경 쓰느라 숙소 생활에 제한이 생긴 점, 그리고…….
‘사람들이 리얼리티 얘기할 때마다 얼마나 속이 쓰렸는지.’
<쉰셋돌> 출연이 결정되었을 때도 사람들이 그랬지. 모노크롬은 리얼리티 찍어본 적도 없으면서 다른 그룹 리얼리티에 먼저 출연한다고.
리얼리티를 제작해 주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으면 우리가 만들면 되는 일이다.
내가 구한 것은 리얼리티 방송을 넘어선, 진짜 리얼 컨텐츠용 숙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