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모노크롬의 출전 종목은 달리기와 탁구.
해랑과 준해는 달리기에 출전하고, 한이와 재민이 페어로 복식 탁구에 출전한다. 우형은…… 모노크롬 응원단장이었다.
특히 이 탁구 종목은 이번에 새로 추가된 것이었다.
‘방송국도 작년 일이 신경 쓰이긴 했나 봐.’
작년 촬영이 끝나고 관객들이 퇴장하려던 때, 돌대회에서 부상을 입고 은퇴했던 재민의 복귀 소식이 알려지면서 돌대회는 안전 문제로 다시 욕을 먹었다.
그래서 이번엔 안전을 신경 쓰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이런 종목을 몇 개 추가한 듯했다.
물론 부상 위험이 아예 없는 종목이란 없다.
‘하물며 컴퓨터로 하는 e스포츠도 손목에 무리가 가는데.’
그래도 탁구는 비교적 부상 위험이 적은 종목에 속했다. 공에 맞으면 아프기야 하겠지만 심하게 다치진 않을 테고, 상대와 부딪힐 위험도 없고.
빠르게 팔과 다리를 움직여야 하니 근육에 무리가 갈 수는 있으나 그건 몸을 움직이는 어느 운동이든 그랬다. 그래서 멤버들에게 미리 무리하지 말라고 말해둔 것이었다.
탁구 경기가 먼저라서 한이와 재민은 잠시 대기실로 돌아와 탁구 유니폼으로 복장을 교체했다.
“어깨에도 부담 갈 수 있다니까 조심하고.”
“라켓은 반대쪽 손으로 들 거라 괜찮아요.”
재민이 가볍게 라켓을 휘두르며 스윙 연습을 했다.
그 옆에서 한이는 헤어밴드 위로 앞머리를 정리했다. 역시 보이는 것까지 중시해야 하는 ‘아이돌’ 대운동회…….
풀메이크업한 상태로 운동복을 입으니 두 사람 다 선수보단 선수 코스프레를 한 사람 같았다.
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에 같은 헤어밴드를 끼니까 쌍둥이 형제처럼 보여서 귀엽기도 했다.
“그런데 너희 탁구 잘하는 거 맞아?”
“참여에 의의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 그렇지. 그냥 물어본 거야.”
한이의 날카로운 한마디에 나는 입을 합 다물었다. 져도 상관없다고 해 놓고 나도 모르게 그만.
탁구는 두 사람이 하겠다고 지원한 것이다. 자신이 있으니까 손을 든 것 아닐까.
“재민이의 동체 시력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죠.”
“너는?”
“저는…… 비주얼 담당.”
또 한이의 맥 빠지게 만드는 대화 기술이 발동되었다. 탁구를 예쁘게 해서 뭐 할 건데.
예능이라지만 실력을 겨루는 경기로 이루어지다 보니, 출전 선수들은 미리 시간을 내서 연습하고 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모노크롬은 얼마 전까지 앨범 활동을 하느라 연습할 시간이 얼마 없었다. 며칠 전에 회사에서 가까운 탁구 교실에 두 번 정도 다녀온 것뿐.
그것도 취미 활동 하듯이 가볍게 다녀오기만 해서 실력을 알 수 없었다.
“저희 필살기가 있어요.”
“뭔데? 공중회전 기술 그런 건 아니겠지?”
“아! 그것도 연구할걸.”
아무 소리나 한 거였는데 재민이 ‘그걸 놓치다니!’ 하는 얼굴로 이마를 탁 쳤다.
농담을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듣는 걸 보면 그 필살기라는 것도 평범하지 않을 것 같은데…….
탁구 경기는 토너먼트 형식. 예선에서 탈락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되었다.
모노크롬의 예능 투톱 둘이니까 예능이라도 잘하고 오기를 바라며 나는 두 사람을 안쪽으로 돌려보냈다.
***
“우린 항상 적으로 만나는구나.”
“저희가 언제 적이었죠?”
한이가 탁구대 앞에 서자마자 경쟁심을 불태웠다. 한이와 재민 페어의 탁구 예선 상대는 바로 엔피버의 종훈과 엔제이였다.
최근 방송에서 모노크롬이 만난 그룹들은 전부 비슷한 시기에 활동 중인 그룹. 따라서 이런 대규모 예능에서 만날 확률이 높았다.
“그러게. 생각해 보니 여우 형 적이었지, 우리랑은 한편이었네.”
재민이 그렇게 말하며 그 우형이 있는 곳을 곁눈질했다.
우형은 응원단장으로서 팬석 앞으로 다가가 컬러즈에게 파도타기를 시키는 중이었다.
구역이 크지 않아서 약 1초 만에 끝나는 파도타기였지만 호응을 주고받는 게 즐거운지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저 중학생 때 탁구 동아리라 시 대회에도 나갔었거든요. 선배님들이라도 안 봐드립니다.”
“우리도 만만치 않을 거야. 우리는 우리만의 기술을 만들어왔거든.”
“그게 뭐죠?”
“바로…… 아이돌 탁구다!”
재민이 당당하게 말하자 엔피버 두 사람은 잠시 얼빠진 얼굴을 하다가 뭔가를 떠올렸는지 바로 입을 떡 벌렸다.
<아이돌부 방학캠프>에서 재민이 했던 아이돌 축구가 떠올랐던 것이다.
“아, 형! 아이돌 버전 말고 일반 탁구 하면 안 돼요? 그거 진짜 제대로 된 경기가 안 돼요.”
“그래서 기술이라는 거야.”
“으으. 우리는 공에만 집중한다!”
모노크롬 팀의 고집을 꺾지 못한 엔피버 두 사람은 설득은 포기하고 경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시간상 예선 두 조의 경기가 동시에 펼쳐졌는데, 경기가 시작되자 단연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한이와 재민 페어였다.
중계석에 앉은 MC들도 이들의 기행에 주목했다.
“아-. 저건 뭐 하는 거죠?”
“상대 팀에게 최면을 걸고 있는 것 같은데요.”
서브하는 재민의 뒤에서 한이가 태극권을 펼치듯이 팔을 이리저리 휘적거렸다.
라켓의 빨간 면이 시야에서 이리저리 커다랗게 움직이자 엔피버 멤버들은 결국 집중을 잃고 실점하고 말았다.
“심판님. 이거 반칙 아닌가요? 너무 정신 사나워요.”
엔피버가 항의했으나 심판의 대답은 ‘예능이라서 괜찮다’였다.
심판이 인정한 이상 시선 교란 작전을 펼치지 않는 쪽이 손해. 결국 엔피버도 똑같은 방법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 기획과 다르게 돌아가는 승부에 중계석과 관객석도 흥미진진하게 이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좋은 승부였다.”
경기가 끝나고 한이가 악수를 권하자 뒤늦게 수치심이 든 엔피버의 종훈이 얼굴을 가리며 그 손을 맞잡았다.
“아, 멋있게 이기고 싶었는데! 저 동아리 선생님한테 탁구 경기 나간다고, 방송 나가면 꼭 보라고 했단 말이에요!”
“아냐. 방금 ‘회오리 서브’는 충분히 멋있었어!”
몰입한 나머지 종훈은 육성으로 스킬명까지 외치고 말았다. 아이돌 탁구의 창시자 재민이 그에게 엄지를 추켜올렸다.
결국 엔피버는 모노크롬과의 경기에서 승리했기에 불만을 더 터트릴 수도 없었다.
패배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한이와 재민은 뿌듯한 얼굴로 컬러즈에게 인사하러 이동했다.
문제는 그다음으로 예선 경기를 펼쳐야 할 선수들까지 이들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우, 우리도 뭔가 해야 하나?”
“예능인데 너무 진지 빨고 나왔다고 야유받는 거 아니겠지?”
확실히 잘하지 못할 거라면 방송 분량이라도 잡는 게 이득.
결국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상천외한 움직임을 보이며 아이돌 탁구를 펼치는 팀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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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돌대회 탁구 출전팀들 다 정신나갔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하는데??
└뛰고 구르고 헐리우드액션하고 난리도 아님
└내돌 엄청 열심히 준비했다더니 도저히 예능 욕심을 참을 수 없었대.. 결국 예선 탈락함ㅎ 행복하면 됐다
└서브하면서 막 불사조 날라가는 스포츠 만화 보는줄
└ㄹㅇㅋㅋㅋㅋㅋ 근데 이펙트는 없는.. 나중에 CG 편집해 넣으면 개웃길듯ㅋㅋㅋㅋ
└아니 이건 CG 안 넣어줘야 재밌는 거라고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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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와 재민의 탁구 경기는 예선에서 바로 끝났다. 달리기는 다른 종목 몇 개가 마친 후에 진행될 예정이고.
그 사이에 펼쳐지는 다른 경기들까지 내가 직관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다시 경기장 뒤쪽으로 들어왔다.
멤버들은 또 카피바라 특성이 발동했는지 근처로 모여든 아이돌들과 인사하느라 당분간은 계속 경기장에 있을 듯했다.
시끄러운 곳에 있다가 조용한 공간으로 들어오니 마치 진공 속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높은 함성을 계속 들어서 귀가 더 윙윙거리는 것 같아.’
귀를 만지며 우리 직원들이 있는 대기실로 돌아가는데, 코너를 돌다가 누군가와 살짝 부딪힐 뻔했다.
상대방은 핸드폰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다가 나와 부딪히기 직전에 화들짝 놀라며 옆으로 피했다.
“앗, 죄송…… 어?”
나보다 조금 더 작은 키에 동그란 머리통.
앞을 보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고개를 든 그녀는…… 아이리스의 막내 중 한 명인 네이비였다.
‘나 왜 자꾸 복도에서 아이리스를 마주치지?’
작년 돌대회에서도 그렇고, 이전에 방송국 복도에서도 그랬고.
아이리스 멤버는 레드와 옐로 외에 일대일로 마주한 적이 없어서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몰라 잠시 당황했는데, 네이비는 계속 나를 쳐다봤다.
“어어?”
“으음?”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보며 뭔가 궁금한 듯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이 요상한 긴장감은 익숙한 목소리의 등장에 바로 깨졌다.
“이사님!”
“아! 이사님!”
먼저 나를 부른 목소리는 레드였고, 네이비가 곧바로 손뼉을 짝 치며 날 ‘이사님’이라 불렀다.
아무래도 내 얼굴이 낯익은데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났던 모양이다.
‘하긴 아이리스랑 본 지 오래됐지…….’
처음에 뉴레인에서도 잠깐 인사했을 뿐이었고, 그 후에는 활동이 겹친 아이리스가 모노크롬의 대기실에 인사하러 찾아왔던 게 끝이었으니까.
레드와 옐로는 그 후에도 몇 번 봤지만 다른 아이리스 멤버들은 아니었다. 나를 바로 알아보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를 발견하고 뛰어온 레드는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잘 지내셨어요? 너무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그러게. 몇 달 만이더라. 오늘은 네 명만 왔지?”
예상했던 대로 아이리스는 오늘 완전체가 아니었다. 입장할 때 확인한 바로는 오렌지와 옐로, 퍼플을 제외한 네 명뿐이었다.
“네. 세 명은 유닛 활동이 있어서 저희만 먼저 입국했거든요.”
그러고 보니 유닛이 결성되었다고 얼핏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최근에 우리도 워낙 바쁜 시기가 이어져서 자세히 언제 활동하는지까지는 몰랐는데 그게 지금이었구나.
“그런데 왜 안 나가고 이쪽에 있어?”
“아! 쌀쌀해서 잠시 점퍼 가지러요.”
레드가 대답하고 그녀의 팔을 붙잡고 선 네이비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두 사람은 긴팔 후드티 차림이었는데 손에 외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안쪽은 난방 시스템이 있지만 바람이 닿지 않거나 통로가 열린 곳은 공기가 차서 추웠던 모양이다.
하긴 살집이 없어서 추위에 더 약할 수도 있겠다. 그보다 해외를 자주 오가서 그런지 야윈 것 같기도 하고.
“너 살이 더 빠진 것 같아.”
“그런가요?”
레드는 볼 살을 만져보려는 건지 양손으로 뺨을 감쌌다.
연예인을 화면으로 보는 것과 실물로 보는 것은 다르다.
‘보통 화면은 실물보다 부해 보인다고들 하지.’
아이돌들은 화면에 잘 나오기 위해서 생각보다 더 마른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화면발을 잘 받기 위해서라는 건 알지만 나는 화면보다 실물로 더 많이 보니까…… 저체중일 게 뻔한 이들을 보면 걱정부터 들었다.
“밥 잘 먹고 다니는 거 맞지?”
“잘 챙겨 먹냐고 물어보는 거…… 부모님 말고 이사님이 처음인 것 같아요. 앗, 그리고 팬분들이랑.”
……보통 걸그룹한텐 이런 질문 안 하나?
다들 걸그룹 멤버라면 항시 다이어트 상태라고 생각해서 안 묻는 걸까. K-아이돌 팬은 원래 밥 잘 먹고 다니란 말을 인사처럼 하고.
‘부모님과 팬들 말고 밥 챙겨 먹으란 소리를 안 하다니. 한국인데!’
그 외의 사람들이 다들 다이어트만 강요하면 너무 혹독하지 않을까.
남모를 고생을 하는 것 같아서 안쓰러워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이들을 불렀다.
“언니! 도윤! 여기서 뭐 해?”
“여기, 이사님!”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니 그린과 블루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도 내가 누구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지 잠시 멈칫했으나 네이비가 날 먼저 소개했다.
그린과 블루는 가볍게 내게 인사하고는 내 앞에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너무 나와 있었어. 들어가자.”
“아. 그래야지. 이사님. 저희 다시 안쪽으로 가 볼게요.”
“으, 응. 들어가 봐.”
“다음에 봬요.”
레드가 뒤돌아보며 내게 인사 한마디를 더하자, 그린이 그녀의 팔을 좀 더 잡아끄는 것이 얼핏 보였다.
……왜 나를 경계하는 것 같지? 이전에 잠깐 마주쳤던 아이리스의 매니저가 저런 비슷한 시선이었던 것 같은데.
‘멤버들 입장에서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일 뿐이니까 낯가리는 건가?’
반대로 말하자면 나에 대해 잘 모르니까 딱히 경계할 이유도 없을 것 같은데.
뭔가 그녀들끼리 통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알 수가 없어서 나는 네 사람의 뒷모습이 멀어져가는 것을 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