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17화 (217/430)

# 217화

━━━━━━━━━━━━

지오엘 진짜 골때리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에 힙합인한테 발리고 요즘 조용한 것 같더니 설마 이렇게 나올줄은 몰랐다

└ㅅXㅋㅋㅋㅋㅋㅋ그래 차라리 이 방향으로 가는게 낫다

└힙을 포기하고 민심 살리는 방법

└아니. 이건 새로운 힙합이다.

└회개힙합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호감인데 앞으로 뭐할지 ㅈㄴ궁금하게 만드네ㅋㅋㅋㅋ

━━━━━━━━━━━━

***

신셋 마지막 뷰이라이브에서 도한이 했던 발언을 계기로, 래퍼 지오엘의 이름이 다시 화제로 부상했다.

이전 디스랩 사건으로부터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 후로 지오엘은 SNS에 작업 사진을 올리던 것 외에 크게 눈에 띌 만한 활동이나 소식은 없었다고 한다.

멋이 중요한 힙합계에서 신인 아이돌에게 디스 당하고 회사가 대신 사과문을 써 올린다는 건 꽤나 이미지에 타격이 가는 일이라나.

‘뭐, 우리가 안타깝게 여길 필요는 없지. 우린 가만히 있다가 선빵을 맞은 입장이니까.’

그래도 그가 승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거나 뒤에서 이 일을 계속 언급했다면 꽤나 피곤했을 것이다.

그가 조용했던 덕에 우리도 더 정신 소모를 하지 않고 그 사건을 바로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려던 때, 도한이 갑작스레 지오엘의 이름을 다시 꺼낸 거고.

힙합인이 원조 힙합인을 두 번 죽였다며 또 지오엘이 커뮤니티의 조롱 대상이 되어가려던 때, 그는 마치 기다려온 것처럼 SNS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그 글이 기사화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래퍼 지오엘 SNS 발언 화제, “사실 아이돌 좋아해”]

방송에서 만나는 아이돌 래퍼들에게 자주 혹평을 날려 팬들의 분노를 샀던 그가 아이돌을 좋아한다니 이게 무슨 어불성설이란 말인가.

처음 이 제목을 봤을 땐 ‘또 돌려 까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전에도 자기는 아이돌을 존중하므로 솔직한 평을 남겼을 뿐이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반쯤 불신을 품고 기사를 확인했는데 본문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

래퍼 지오엘이 **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아이돌 비하 논란에 관한 입장을 밝혔다.

지오엘은 “QBC의 ‘쉰셋돌’을 잘 봤다”며 “반짝이는 모습으로 무대에 서는 그들이 뒤에선 얼마나 고된 과정을 거쳐왔는지 잘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숨기고 있었지만 나도 한 아이돌을 응원하는 팬이었다”라고 밝히며 “방송을 보고 응원하는 마음은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지오엘은…….

━━━━━━━━━━━━

한 줄 한 줄 읽어나갈 때마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전엔 사냥을 해서 가죽을 어쩌고 하더니 갑자기 아이돌 팬의 입장이 되어서 절절히 쓴 이 글은 뭐지.

‘누가 쓰라고 시켰거나 대신 써준 거 아니야?’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날 가장 당황하게 만든 것은 그가 응원한다는 아이돌 그룹의 정체였다.

━━━━━━━━━━━━

지오엘 무지개였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지개가 뭔데

└아이리스 팬덤 이름 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저런 무지개 모릅니다

└하필 팬덤 이름도 뽀짝해서 더웃김ㅁㅊㅋㅋㅋㅋㅋㅋ

└아 나도 없는 1기 팬클럽 키트 왜 가지고 있냐고~~~~

━━━━━━━━━━━━

“…….”

태풍의 눈 특성의 범위를 모노크롬이 아니라 뉴마, 뉴레인으로 확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오엘은 SNS에 글을 올리면서 자신이 아이돌 팬이고 이제 완전히 호의적으로 변했음을 증명하는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신셋 앨범을 산 건 알겠는데 우리 앨범은 왜 산 거야…….’

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고 가장 크게 질타를 받았던 사건이 모노크롬 디스 건이어서 그런 걸까.

그가 디스한 아이돌은 모노크롬뿐만이 아니었으나 우리가 대표로 사과를 받게 된 꼴이었다.

이럴 거면 진작 좋게좋게 말하지. 걸그룹에게만 호의적이고 보이그룹에게는 적대적이었던 걸까?

아니, 잠깐.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인데, 직접 만나지도 않은 상대를 갑자기 디스한다는 게 이상했는데…….

‘설마 레드랑 열애설 났던 것 때문에 느닷없이 해랑이 디스한 건 아니겠지?’

해명은 확실히 했고 이미 끝난 일이었으나 사람 마음에 남는 인상은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응원하는 연예인의 열애설이 났을 때 팬들이 상대방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게 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알게 되더라도 한번 생긴 악감정이 갑자기 호감으로 변할 리는 없다.

‘만일 진짜로 그게 이유라면 정말…… 별로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고 그저 추측일 뿐이지만 내 마음속에도 아직 앙심이 남아 있었기에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그가 아이돌 팬이었든 아니든, 더는 엮이지 않기를 바랐는데 지오엘은 이미 노선을 이렇게 정한 모양이었다.

그를 무시하고 우리는 우리의 할 일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느 날 해랑이 곤란한 얼굴로 나를 찾았다.

“저…… 이사님.”

“응?”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해랑은 본인의 일은 보통 혼자 생각하고 혼자 처리하는 스타일이었다.

내 의견을 구하러 올 정도로 곤란한 일이 생긴 줄 알고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가 꺼낸 고민거리는 별것 아닌 듯하면서도 묘하게 난감한 일이었다.

“그분이 제 SNS 예전 글까지 가서 계속 좋아요를 누르셔서요.”

“그분? 아…… 지오엘?”

“네.”

“허…….”

최근 친하지도 않으면서 해랑에게 집적거릴 만한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처음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밝힌 후로 지오엘은 며칠 동안 마치 새사람이 된 듯 자신의 ‘무해함’을 어필하고 나섰다.

제일 황당한 것은 뜬금없이 꽃집에서 찍은 사진을 이쁘다며 올린 것이었다. 아이돌은 꽃밭에서 산다고 했던 그가.

‘래퍼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연예인으로서는 이런 태도가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 같긴 한데.’

사람들은 센 척하는 사람보다는 자신을 낮추는 사람에게 더 허들이 낮았다.

묵묵부답,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장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놀림의 대상이 되더라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기 쉬울 것이다.

실제로도 이제는 그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리기보다는 ‘또 저러네’ 하면서 웃는 사람이 많았으니까.

커뮤니티에서 도한이 힙합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처럼, 지오엘은 새롭게 ‘회개인’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받아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무시해.”

“……그래도 될까요?”

“바로 받아주면 왠지 ‘쿨하게 넘어가는 우리’라는 이미지 연출에 이용당하는 기분이란 말이지. 화해 신호를 보내는 게 진심이든 아니든, 당장은 그냥 알아서 하게 놔두자.”

해랑도 애초에 받아주고픈 마음은 없었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화해하고 싶으면 먼저 잘못한 사람이 노력해야지 어쩌겠어. 받아주고 말고는 우리 마음이다.

그리고 이 이후로, 지오엘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 연예인들이 방송국 등지에서 모노크롬을 만나면 사진이나 사인을 부탁하고는 했다.

그렇게 연예계 한구석에서는 ‘지오엘은 못 만나는 모노크롬과의 친분 자랑하기’ 놀이가 소소하게 유행을 탔다.

***

활동을 시작하고 준해의 아웃트로 안무는 무대마다 조금씩 완성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점점 안정되어가는 그의 안무에 맞춰 재민도 자신의 기존 안무를 생략하는 정도를 바꿔나갔다.

거기에 둘이 미리 연습했는지 작은 포인트를 바꾸거나 추가하기도 하며 매번 새로운 안무처럼 보이게 했다.

나는 안무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보기 때문에 가끔 조마조마할 때가 있었는데, 컬러즈 사이에서는 오히려 이 파트가 반응이 좋았다.

━━━━━━━━━━━━

재민이가 안무 설명하면서 엔딩파트는 체크메이트를 표현했다고 했는데 무대 볼때마다 감탄 나와

준해가 블랙조의 킹 역할인 것 같고 화이트조인 재민이가 매번 킹을 붙잡거나 막으면서 체크메이트가 되는거ㅇㅇ

자연스럽게 안무에 녹여내는거 진짜 천재인 것 같음

└무대마다 조금씩 포인트 다른것도 진짜 좋아 ㅠㅠ

└이게 진정한 체크메이트다..

━━━━━━━━━━━━

안무가 매번 달라지는 것이 주요 감상 포인트가 된 모양이었다.

‘임기응변이었는데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지.’

어떤 컬러즈는 이 파트만 클립으로 잘라서 모아 올리기도 했다.

음악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하나하나 추가되다가 마지막에 완성형으로 마무리한다면 쾌감이 있을 듯했다.

‘아니, 사실 활동 2주 차에 들어서면서 내 눈에는 이미 완벽해 보이는데.’

준해는 뭔가 부족한지 ‘더 잘할 수 있다’며 요즘도 가장 오래 연습실에 붙어 있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런가 했는데 다른 멤버들도 어깨를 으쓱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춤추는 사람 눈에도 잘 안 보일 정도의 아주 미묘한 차이가 남아 있던 모양이다.

단순히 재민의 파트를 적당히 커버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 같은 정확성을 추구하는 듯했다.

그리고, 2주 차 금요일의 <뮤직더라이브> 무대를 마친 준해는 드디어 만족했는지 방방 뛰며 대기실로 돌아왔다.

“나 이번엔 타이밍, 각도 다 괜찮았지?! 완벽하게 마스터했지?!”

활동 끝이 다가올수록 더욱 부담감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싶어서 걱정됐는데 다행이다.

안심하고 있던 참에, 그와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들어온 재민도 덩달아 신나서 외쳤다.

“좋았어. 다음은 진화형이다!”

드디어 완성되었는데 이게 끝이 아니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뭐?”라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진화형이 더 있어?”

“계속 같은 부분 연습하다 보니까 발전시킬 만한 부분이 보이더라고요. 혹시 가능하면 해보자고 했는데.”

“시간 얼마 없는데 괜찮겠어? 우리 활동이…….”

무리해서 강행한 컴백. 우리의 음악 방송 활동은 딱 2주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민의 몸 상태는 더 나아졌지만 음악 방송 활동이 길어지면 피로가 쌓이기 마련이라 짧게 설정해 둔 것이었다.

그리고 남은 활동은 주말의 공중파 음악 방송 두 개뿐. 그것도 바로 내일과 모레였다.

이러다 재민이 아니라 준해가 쓰러지는 거 아니야? 걱정을 담아 준해를 봤는데, 그는 걱정은커녕 기대되는 얼굴로 재민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될지 모르겠는데, 이따가 연습실 가서 해 보자!”

재민이랑 일대일로 붙어 있으면 다들 댄스 바보가 되는 걸까. 준해는 이미 무한 신뢰 제자 모드로 들어간 상태였다.

재민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준해 본인이 쉽게 만족하지 않는 노력형이라서 그렇겠지. 데뷔한 후 명문대에 입학한 것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의지가 보통이 아니니까.

혀를 내두르는 내 옆에서 이번엔 우형이 걱정 담긴 목소리로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너네 체력 괜찮겠어?”

“괜찮아. 내일은 본방만 있으니까!”

준해에게 마음을 바꾼다는 선택지는 아예 없는 듯했다. 한이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마디 거들었다.

“놔둬. 쟤넨 젊잖아.”

“나는 안 젊냐……?”

“형도 진화형으로 해 볼래?”

한이의 말에 대꾸하던 우형이 재민의 말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토요일. ZBS의 <가요차트>.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모노크롬의 첫 공중파 1위 달성의 순간이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