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15화 (215/430)

# 215화

“떡국…… 우리 팀 리더가 참 잘 만드는데.”

순간 적막이 내려앉았으나 촬영 중인 것을 신경 썼는지 한이가 화제를 조금 돌렸다. 새해라고 숙소에서 우형이 또 요리를 한 걸까.

카메라 뒤에 서 있던 안 PD가 이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며 내게 물었다.

“멤버들이 요리도 합니까?”

“하긴 하죠. 맛을 장담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요”

한이도 말로는 잘 만든다고 했으나 칭찬하는 것 같지가 않고 왠지 영혼이 사라진 표정이었다.

멤버들이 다 같이 먹었는지 준해도 우형이 만들었다는 떡국을 떠올리며 말했다.

“떡이랑 고기가 떡국 위에서 뛰어노는 맛이었지. 따로따로.”

재밌게 표현했지만 한마디로 그냥 재료가 다 따로 논다는 소리 아니야? 메뉴가 달라져도 우형의 특이한 요리 실력은 어디 안 가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안 PD가 이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건…….

“혹시 요리할 사람 필요하세요?”

아마 떡국 먹방회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뭔가 떠올린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부추겨보기로 했다.

이 사람 은근히 귀가 얇단 말이지. 우리에게 받은 컨텐츠 소재를 그대로 쓰는 것을 보고 파악한 상태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안 PD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보고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우형의 요리 실력은 예능 쪽으로 살리기 좋았다. 활용할 기회가 있으면 얼마든지 활용해야지. 먹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면야.

이렇게 내가 역할 하나를 따내는 동안 모노크롬과 신셋은 해체의 슬픔은 잠시 뒤로하고 좀 더 밝고 재밌는 화제를 꺼냈다.

“아, 저희 팬 사인회가 한 번 더 남았는데 말입니다.”

데뷔한 후 어려운 점은 없었냐는 대화 중이었는데 만호가 마침 할 말이 있었다는 듯이 운을 띄웠다.

신셋은 정말 아이돌다운 활동은 겉핥기식으로라도 거의 다 하고 다녔다.

다만 이들의 팬 사인회는 일반적인 아이돌 그룹의 팬 사인회와는 조금 달랐다. 앨범 구매자 중에서 추첨하는 게 아니라, 시청자에게 응모를 받아 추첨하는 방식이었다.

이벤트성으로 한 번 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응모자가 워낙 많아서 한 번이 더 추가되었다나.

“동생들한테 팬 서비스 배운 걸 다 써서 이제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해랑 선배님.”

만호가 해랑을 콕 지목하여 물었다.

뉘앙스가 ‘알려달라’보다는 ‘보고 싶다’에 가까운 것 같은데.

‘이게 바로 해랑의 매력 레벨을 올렸던 그 막무가내 지도 방법인가……?’

나도 촬영 당시엔 보지 못했던 장면이기에 흥미진진한 기분으로 이 상황을 지켜봤다.

“중요한 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거…….”

“아이, 그건 기본이고요. 더 아이돌! 아이돌다운 거 있잖습니까.”

모노크롬의 팬 사인회를 여러 번 지켜본바, 해랑은 팬 서비스보다는 진중한 태도로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 타입이었다.

해랑은 다른 멤버들이 더 잘 알지 않겠냐는 듯한 눈으로 멤버들을 둘러봤으나 다들 재밌다는 얼굴로 구경하기만 했다. 아니, 오히려 그를 부추겼다.

“아, 형. 그거 있잖아. 귀여운 거.”

“그게 뭔데?”

이 기회를 틈타 놀리겠다는 심산인지 한이가 알고 있는 애교 세트를 대방출했다. 물론 한이는 어떻게 하라 지시만 하고 실제로 하는 것은 해랑이었다.

해랑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카메라 앞이라 차마 거부하지 못하고 꼭두각시처럼 팬 서비스 시범을 해냈다.

“왜 선배가 하면 뭔가 달라 보이지?”

“이게 바로 7년 차 아이돌 선배다.”

제오가 심각한 얼굴로 혼잣말처럼 말하고 그 옆에서 도한이 뜬금없이 모노크롬 자부심을 뽐냈다.

해랑이 신인 아이돌들의 귀감이 된 건 좋은데, 본다고 따라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이 매력 레벨이란 건 단순히 외모가 아니라 특유의 분위기에 가까운 것 같단 말이지.’

이렇게 어색한 얼굴로 팬 서비스를 날려도 사람들이 다 좋게 보잖아. 해랑을 지켜보는 스태프들의 표정은 완전히 팬의 얼굴이었다.

‘잘생겼다’라는 건 사람마다, 문화마다 느끼는 게 다르니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이 매력 레벨은 호감을 느끼게 하는 힘, 콩깍지를 끼게 만드는 힘 같은 게 아닐까?

‘아마 능력치를 확인할 수 있다면 만호 씨도 매력 레벨이 상당히 높을 거야.’

오랫동안 연예인으로 활동해 오면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온 그니까.

내가 또 게임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모노크롬과 신셋은 팬 사인회나 팬 서비스 등 아이돌다운 대화를 나누고 대기실 촬영을 마쳤다.

“아, 그리고.”

신셋이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려던 참에 만호가 우리 멤버들을 보며 말했다.

“이따가 투표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아! 투표.”

만호가 말하는 것은 이번 <음악상상> 1위 투표였다. 신셋은 오늘이 활동 2주 차였고 모두의 예상대로 1위 후보에 올랐다.

아직 투표 시간도 아니건만 멤버들은 만호의 말을 듣고 허둥지둥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이렇게 대놓고 투표 부탁을 듣는 건 처음이야.’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을 땐 후배 입장인 만호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대선배였다.

그나저나 아직 우리는 달성하지 못한 공중파 음악 방송 1위를 우리가 프로듀싱한 신셋이 먼저 달성하다니.

예전 같았으면 속이 조금 쓰렸을 테지만…….

‘지금은…… 괜찮다!’

이번 <체크메이트> 음원 성적이 예상보다 더 좋아서 조급함보다는 기대감이 더 커졌다.

내가 ‘지닌 자의 여유’를 가지게 될 줄은 몰랐는데 눈에 보이는 성적이 좋으니 전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난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본방송. 모두의 예상대로 신셋은 1위를 달성했고, 26년 차 코미디언을 리더로 둔 QBC 소속 아이돌의 1위 소감은 비범했다.

“우리 기획을 시작하게 해 준 QBC 예능 국장님과 편성본부장님께 먼저 감사드린다는 말씀 드리고 싶고, CP님, PD님…….”

아이돌이 보통 함부로 언급하기 어려운 이름이 만호의 입에서 줄줄 나오자 한 화면에 잡힌 모노크롬과 신셋의 다른 멤버들은 잠시 멈칫거렸다.

MC나 다른 출연자들도 박수 치는 손은 그대로였으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세상에 누가 음악 방송 1위 소감에서 국장님을 언급하겠어…….’

따지자면 신셋에겐 소속사 임원, 직원들이 맞긴 하지. 만호의 연차와 경력이라면 쉽게 언급할 만도 하고.

“그리고 이라솔 선배님과 모노크롬 선배님들, 저를 훌륭한 아이돌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고요. 마지막으로 시청자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만호의 언급에 뒤에 서 있던 모노크롬도 선배가 아니라 프로듀서로서 밝게 웃으며 화답했다.

그렇게 꽤 긴 시간 함께했던 신셋의 정식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

이틀이 지나 우리도 음악 방송이 없고 신셋도 따로 마지막 촬영을 마친 화요일.

신셋의 떡국 먹방회. 즉, 해체 뷰이라이브를 하는 날이 찾아왔다.

안 PD는 멤버들의 떡국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더니 신셋 마지막 만찬의 요리사로 우형을 기용했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낸 그룹이었으니 손수 마무리 짓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나.

‘내가 보기엔 그냥 재밌어 보여서 그런 것 같지만.’

간단한 재료 준비 과정과 요리 과정은 촬영을 완료했으나 우형은 그 이후에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냄비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거창한 의미가 담겨서인지 좀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 듯했다.

“역시 부족한 것보다는 많은 게 낫겠죠? 재료도 많이 남았는데 너무 적게 끓인 것 같아서.”

“5인분이면 대충 감이 잡히지 않아? 숙소에서도 끓여봤다며.”

모노크롬도 신셋도 똑같이 5인조. 우형이 숙소에서 요리를 했다면 5인분에 맞춰서 했을 텐데.

“숙소에선 대충 많이 해두면 애들이 어떻게든 먹긴 해서요.”

“아, 그래서…….”

그래서 멤버들이 우형이 요리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건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남은 걸 처리하기 위해서 먹으면 맛없게 느껴지는 법이지.

우형은 결국 양을 추가하기로 했는지 육수와 떡을 더 투입했다. 그리고 간을 보더니 육수를 더 넣고, 국물이 많다고 떡을 더 넣고…….

‘……이게 그 재료가 따로따로 노는 떡국의 제조법인가.’

오래 끓인 떡과 덜 끓인 떡이 섞이면 맛이 따로따로 노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제작진은 요리를 온전히 우형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아마 ‘맛있는 결과물’보단 ‘재밌는 결과물’을 더 원한다는 뜻이겠지. 그러니 나도 우형이 하는 대로 그냥 놔두기로 했다.

잠시 후, 인서트를 찍으러 온 스태프가 그릇에 담긴 떡국을 보고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평소에 요리 자주 하시나 봐요. 비주얼이 끝내주는데요. 맛있겠다.”

예쁘게 고명을 올린 떡국은 비주얼만큼은 정말 파는 음식 같았다.

‘우형이는 미각보다 미적 감각이 좋은 거라고 하자.’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는데 데코레이션이라도 잘하면 반은 한 거지.

우형의 떡국은 곧이어 뷰이라이브를 시작한 신셋 멤버들에게 배달되었다.

마지막 뷰이라이브를 함께 하는 라솔과 모노크롬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그들의 먹방을 구경했다.

“이렇게 저희를 위해 곡도 만들어주시고 국도 만들어주시고.”

“오오, 라임.”

“그럼. 내가 배운 게 있는데!”

래퍼인 제오가 칭찬하자 만호가 당당하게 웃었다. 슬프게 마무리하는 것보다는 웃으며 끝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다들 활기찬 분위기를 유지했다.

다만 <아이돌부 방학캠프>에서 우형의 요리를 겪어봤던 도한만이 조금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다가 입을 열었다.

“형님 먼저 한 입 드시는 게 어떨까요?”

“아, 내가 먼저 숟가락을 들어야 하나?”

그럴 목적으로 말한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뷰이라이브 채팅창에선 만호를 웃어른 취급한다며 웃었다.

그리고 먼저 한 입 떠먹은 만호의 반응은.

“으음…….”

잠시 할 말을 잃은 만호를 따라 다른 멤버들도 숟가락을 들었으나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미묘한 신셋의 반응을 본 준해는 우형에게 속닥거렸다.

“형, 뭐 이상한 거 넣은 거 아니지?”

“아니. 그냥 육수만 좀 더 넣었는데.”

“난 알 것 같아. 또 기왕이면 건강한 게 좋다면서 소금 간 엄청 소심하게 했겠지.”

한이는 안 봐도 뻔하다는 듯한 말투로 정확히 추측해냈다. 조금 짠 것 같다면서 마지막에 육수를 콸콸 부어 넣는 것을 내가 목격했었지.

그런데…….

‘……채팅은 왜 울지?’

또 우형이가 요리로 한 건 해냈구나 싶었는데 이상하게 채팅창은 [ㅠㅠㅠㅠ]로 가득했다.

맛없는 떡국을 먹어야 하는 이들의 처지가 안타까웠던 걸까.

그러나 중간에 울지 말라는 채팅이 섞여 올라오는 것을 보고 시청자들이 우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맛 때문에 말문이 막힌 게 아니라 해체가 슬퍼서 목이 멘 줄 알고.’

컬러즈였다면 우형의 요리 실력 때문이겠거니 예상했을 텐데, 시청자 대다수는 우형의 요리 실력을 잘 모르니까.

좀 더 재밌게 만들기 위해 우형이 나선 것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무거운 분위기로 오해받고 말았다.

세상에 떡국으로 많은 사람을 이렇게 슬프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이제 형님도 쉰넷이네요.”

“그렇구만.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여러분들.”

슬그머니 숟가락을 놓은 류현이 분위기를 환기하며 입을 열고, 만호는 활동이 끝날 때까진 쉰셋이어야 한다며 미뤄뒀던 늦은 새해 인사를 건넸다.

시청자들은 이미 슬픈 기분에 빠져들었는지 이제 무슨 말을 해도 [ㅠㅠㅠ]가 기본이었다.

해체하지 말고 2집을 내달라거나 신넷으로 재데뷔를 해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그러나 끝내야 할 때는 깔끔하게 끝내야 하는 법.

출연진들이 각자 소감을 말하고 마지막 뷰이라이브를 정리하기로 했는데, 도한의 폭탄 발언 덕분에 무거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전환되었다.

“방송을 함께한 건 아니지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은 분이 있는데요. 조금 일이 있긴 했지만 제게 래퍼의 가능성을 열어주신 래퍼 지오엘 님께 감사 인사를…….”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오자 모노크롬이 숨을 삼켰다. 그 일로 모노크롬을 알게 되어 피처링을 제안했었던 라솔도 마찬가지.

특히 당사자였던 해랑은 어색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히, 힙합인 세다.’

본인이 먼저 디스한 걸 래퍼의 길을 열어줬다고 표현하다니. 완전히 두 번 죽이는 거 아니야?

일부 시청자들은 그의 이런 힙합인다운 면모를 기대하고 있었는지 [뿌뿌뿌뿌~~] 하며 열광했다.

이렇게 1위 소감도 해체 소감도 비범했던 프로젝트 그룹 신셋은 밝은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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