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재민의 부상이 있긴 했지만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 앨범 활동은 평소보다 화려한 비주얼을 강조했다.
앨범마다 비주얼 컨셉이 정해져 있으므로 갑자기 스타일을 마구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노력해 봤다.
‘일단 머리가 아이돌 머리란 점에서부터.’
해랑의 백발은 물론이고, 준해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의 머리 색도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보다 채도가 조금 더 올라갔다. 이 정도면 누가 봐도 활동기 아이돌처럼 보이겠지.
게다가 이번 <체크메이트> 의상은 제복, 정복 스타일.
‘아이돌 의상에서 수트가 단정, 섹시를 담당한다면, 화려함은 제복이지.’
다른 의상보다 견장, 소매 등 장식을 달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오늘 의상은 특히나 더 화려하게 꾸민 상태였다.
그래도 기본 베이스는 뮤직비디오 의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딱 한 명. 재민은 스타일이 조금 달라졌다.
“이 정도로 고정해 두면 움직이기에 불편하진 않지?”
“네. 그냥 망토 같아요.”
재민이 내 말에 대답하면서 한 바퀴를 빙글 돌아 보였다. 그는 재킷을 걸치고 앞에 장식 끈을 달아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한 상태였다.
이렇게 해 두면 그냥 회전하더라도 걸친 외투가 원심력을 받아 휘날리는 덕분에 동작이 더욱 화려해 보였다.
‘재민이 팔이 움직이지 않는 부분도 감추기 좋고.’
다친 쪽 팔을 쓰는 동작을 최소화한 상태라 아무래도 군무에선 티가 나기 마련인데 그것도 의도적으로 외투를 움직이게 만들면서 눈속임이 가능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재민은 의상의 움직임까지 컨트롤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의 댄스 레벨이 없었다면 시도하지 못할 방법이었다.
거기에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 액세서리도 적극적으로 착용했다. 멤버들이 반지를 이것저것 꼈다 뺐다 하는 동안 나는 우형을 찾았다.
“우형이는 이거.”
내가 건넨 것은 이어커프였다. 우형은 어떻게 껴야 하는지 몰라 헤매다가 스타일리스트의 도움을 받아 장착했다.
우형의 고개가 움직일 때마다 금속이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덕분에 저절로 시선이 갔다.
역시 인상을 화려하게 만드는 데에는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다음으로 귀걸이가 제일인 것 같아.
만족스러운 기분에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는데, 우형은 귀에 뭔가가 붙어 있는 게 어색한지 귀에 물이 들어간 사람처럼 고개를 삐걱거렸다.
“춤추다가 빠지진 않겠죠……? 잃어버리면 어떡하죠?”
“괜찮아. 회삿돈으로 사면 돼.”
“회삿돈…….”
우형이 복잡한 표정으로 귀를 만지작거렸다. 안심하라고 한 소리였는데 귀에 이어커프가 아니라 회삿돈이 달렸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닌데 걱정이 많다니까.
“잠깐 봐봐.”
내가 손짓하자 우형이 고개를 살짝 내렸다.
멤버들의 의상 핏만 잘 알았지, 재민 외 멤버의 귀를 자세히 관찰한 적은 없었는데.
‘가끔 컬러즈가 멤버들 귀까지 예쁘다느니 잘생겼다느니 했었지.’
귀도 생김새가 다 달라서 굴곡이 적으면 쉽게 빠질 수도 있을 텐데, 우형이 낀 이어커프는 귓바퀴에 잘 고정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쉽게 안 빠져. 이 상태서 강제로 빼려고 해도 잘 안 빠질걸?”
“그런가요?”
우형은 여전히 귀를 만지작거렸으나 옆에서 한이가 접착제를 바르라느니 이상한 소리를 한 덕분에 걱정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는지 곧 신경을 껐다.
프레스 쇼케이스 시간이 다가오자 준해는 통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재민과 안무를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조금 긴장된 분위기 속, 시간이 다가와 멤버들은 쇼케이스 무대 위로 올라갔다.
***
가장 최근에 모노크롬이 많이 언급되었던 건 역시 레몬 어워드에서 있었던 사고였다.
그 사고를 딛고 강행한 컴백이다 보니, 오늘 프레스 쇼케이스에서도 그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기자가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부상과 관련한 질문이 나왔는데 재민은 또 ‘난 날렵한 메인 댄서라 위험한 일 없이 괜찮았다’라는 자신만만한 대응으로 넘어갔다.
‘뷰이라이브 할 땐 컬러즈 걱정을 덜어주려고 반쯤 농담으로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미리 인터뷰를 준비할 때도 재민은 한결같이 이 대답을 밀었다.
재민의 댄스 레벨을 생각해 보면 그 공중회전 기술이라는 것이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진짜인가?
질문에 일부러 동문서답하며 넘어가려는 티를 내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자들도 있을 텐데 오늘은 재민이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는 게 느껴졌는지, 혹은 그 당당함에 설득되었는지 다들 작게 웃으며 넘어갔다.
기사 타이틀은 [모노크롬 명재민, ‘나는 공중회전기술이 특기’] 같은 것으로 뽑히지 않을까.
그렇게 무사히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걱정할 것은 재민이 아니었다.
프레스 쇼케이스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준해가 양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나 체크메이트 할 때 아웃트로에서 휘청거렸지?! 리허설 때도 아슬아슬했는데. 으으.”
첫 라이브 무대라 신경 썼는데 연습했던 만큼 완벽하게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준해가 말하는 것은 회전하면서 동선을 이동하는 파트였다. 우리가 따로 찍은 영상으로 다시 확인해보니 정위치에서 멈추지 못하고 어긋나는 바람에 발이 살짝 꼬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균형을 잡고 마무리를 이어나가서 별일 없이 지나갔지만, 준해가 센터에 나서는 장면이라 잘 보면 그 잠깐의 실수가 눈에 띄기는 했다.
원래 해당 파트를 담당하던 재민이 같이 문제점을 분석하고 나섰다.
“너무 크게 이동하려고 하나? 회전 시작점을 좀 더 뒤로 잡으면?”
“그러면 형이랑 부딪힐 것 같아.”
갑자기 수정한 안무인데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적당한 수준으로 만족하자는 말에 수긍할 리가 없겠지.
무대가 완벽하지 못하면 파트를 넘겨야 했던 재민은 재민대로, 자신이 해보겠다고 나섰던 준해는 준해대로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까.
“리허설 때랑 아까랑 둘 다 실패했으면 이따가 또…….”
준해가 자괴감에 빠져들고 재민은 고민에 빠졌다.
오늘은 추첨으로 찾아온 컬러즈와 함께하는 팬 쇼케이스 무대가 더 남아 있었다.
***
뮤직비디오와 음원이 공개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컬러즈.
그들은 하나둘씩 뜨기 시작하는 프레스 쇼케이스 기사 사진에서 멤버들의 변화 하나하나를 찾아내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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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형이 피어싱한거야???
울 리더 피어싱한거 한번은 보고 싶었는데 뚫으면 아플까봐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ㅠㅠㅠㅠㅠ
└나도222 생각보다 더 잘 어울려서 머리 팍팍침 하 세상에
└연골쪽인거 보면 뚫은 건 아닐지도? 연골은 뚫은 직후엔 가라앉는 데 시간이 걸려서
└그럼 더 좋아 자주 해줘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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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해랑 기사사진마저 홀리몰리.. 나 몰랐는데 종교 있었나봐 신앙심이 끓어오른다
└티저로도 다 봤는데 왜 이렇게 좋냐..
└아 뉴마한테 사기당했어 이건 컴백이 아니라 강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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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인 요소는 효과가 즉각 나타나는 것이 좋았다.
이 와중에 나는 티저 때보다 더 적발에 가까워진 한이의 머리 색을 혼자서 신경 쓰고 있었다.
해랑이 새빨간 염색 머리를 오랫동안 유지했던지라 컬러즈도 ‘염색 머리는 환영하지만 빨간 염색은 좀…….’이라는 태도였다.
그러나 오늘은 머리 색보다 한이의 반깐머리에 더 집중하는 것을 봐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괜한 걱정이었네. 이제 슬슬 과거의 망령은 떨쳐내자.’
이 세상에 오자마자 과거 플레이에 고통받았던 기억이 너무 강렬한 탓에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몸을 사리고 있었다.
1년이나 지났으면 이젠 좀 벗어나도 괜찮겠지. 괜히 이것저것 신경 쓰다가는 선택 범위가 좁아질 수 있으니까.
샵에서도 한이가 염색할 색을 지정하며 “좀 더 빨갛게는 맞는데, 너무 새빨갛게는 말고요.”라고 여러 번 요청했었다. 그러자 한이는 그 말을 듣고.
[왜요? 해랑 형처럼 될까 봐요?]
……라며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었지. 아무래도 옆에 있는 멤버들이 그 빨간 머리를 가장 많이 봐왔을 테니까.
[혹시 너희 눈에도 좀 안 어울려 보였어?]
[으음. 글쎄요. 처음엔 좀 파격적이었던 것 같은데 오래 보다 보니 익숙해져서.]
역시 멤버들도 위화감을 느끼긴 했구나.
그런 대화를 나눈 기억과 함께 해랑의 악동 꾸러기 스타일이 다시 떠올랐으나, 지금 눈앞에 있는 백발 해랑을 보니 곧바로 마음이 안정되었다.
‘컬러즈의 말처럼 마음이 정화되는 효과가 있나 봐.’
그의 얼굴을 안정제로 쓰는 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효과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오후 6시, 뮤직비디오와 음원 공개 시간이 찾아왔다.
뮤직비디오 완성본은 속도감 있게 장면이 교차하며 세련되게 완성되었다. 이런 편집에도 돈 들어간 티가 나는 게 좋단 말이지.
컬러즈도 포인트를 하나하나 짚으며 호평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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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클로즈업하는거 누구 아이디어냐 정말 배움에는 끝이 없다
└장면 하나하나 거를 타선이 없음 진짜로
└움짤계분들 뮤비 뜨자마자 단체로 기립박수치며 작업 들어가시더랔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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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안무 역대급이라 했는데 뮤비만 봐도 알겠음
눈이 못 따라가서 멤버별로 계속 돌려봐야함 포인트 다 다른거 미쳤다
└이번 뮤비 댄스버전으로도 올려줬음 좋겠다ㅠㅠㅠㅠ
└근데 재미니 병원 더 다닌다고 했는데 이대로 춰도 괜찮은건가..?! 엄청 빡센 것 같은데 ㅠ0ㅠ
└헉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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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는 재민의 부상 전에 촬영한 것이었으므로 기존 버전 안무가 들어갔다.
아직 파트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탓에 재민을 걱정하는 컬러즈도 있었다.
‘지금은 준해가 조금 더 걱정인데…….’
그 아웃트로 파트의 안무를 그냥 미완성인 채로 넘어갈 수 없어서 준해는 팬 쇼케이스를 앞두고 재민과 함께 마지막 안무 연습 중이었다.
춤은 춤추는 본인이 해내야 하므로 나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추첨으로 쇼케이스에 모인 팬들이 입장을 시작하고, 시작을 기다리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무대 뒤에도 들리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는 소리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컬러즈의 기대와 설렘이 전해져오는 듯했다.
그런 웅성거림에도 귀가 익숙해지려던 때, 갑자기 “악!” 하며 관객들이 한꺼번에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두리번거리니 멤버들과 몇몇 직원들도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곧이어 함께 대기실에 있던 윤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시간 차트 진입했어요!”
“아. 7시! 벌써…….”
윤희의 말을 듣고 나서야 시계를 확인했다.
잠시 발매 후 업로드할 게 빠지지 않았는지, 기사들이 제대로 올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벌써 한 시간이 지난 것을 눈치 못 채고 있었다.
실시간 차트는 1시간마다 갱신되고, 6시에 발매한 음원은 7시부터 차트에 나타나게 된다. 물론 진입했다면.
‘방금 컬러즈가 소리 지른 건 정각 되자마자 차트 순위를 확인해서인가?’
그런데 그냥 차트를 확인했다기엔 심상치 않은 소리였는데.
더군다나 차트 진입 사실을 알려준 윤희 또한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며, 몇 위로 들어갔는데 그래요?”
“10위예요.”
“몇십 위요?”
“그냥 10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