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신인상 후보였는지 러너스하이도 레몬 어워드의 라인업에 있었다.
‘그런데 러너스하이 리허설 순서는 꽤 떨어져 있었을 텐데. 게다가 다른 멤버들도 없이 혼자 나와 있네.’
퍼포먼스 무대가 궁금해서 보러 나온 건가?
스태프가 퍼포먼스 팀의 리허설이 완료되었음을 알리자 류현도 그제야 무대에서 시선을 떨어트렸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허둥대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자신을 보는 건지 다른 사람을 보는 건지 확인하는 듯했다. 가까이에서 봤다면 동공 흔들리는 것도 보이지 않았을까.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류현은 꾸벅 인사하고 재빨리 도망가 버렸다.
‘쟤는 무슨 야생동물 같아.’
궁금하긴 한데 경계심은 강해서 일정 거리를 두고 기웃거리는 느낌이 딱 그랬다.
그보다 메인 보컬이 혼자 퍼포먼스 무대 리허설을 보려고 나오다니. 재민과 한 댄스 트레이닝 덕분에 춤에 더 관심이 생긴 걸까.
우형을 따라 작곡을 시작했다던 엔피버 리더 종훈도 그렇고, 멤버들은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꽤 많이 주는 편이었다.
퍼포먼스 팀이 우르르 해산하고, 다음 순서 리허설을 위해 현장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재민은 내가 있는 쪽으로 내려오려는 건지 이쪽으로 다가오며 신발 밑창으로 바닥을 문질렀다.
“바닥 미끄러워?”
“그냥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어요.”
역시 안전제일 재민답게 이런 부분까지 몸소 체크하는구나.
본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으면 신발도 바뀌겠지만 운동화의 고무 밑창이 뽀득뽀득 소리를 내는 걸 보면 바닥 상태는 괜찮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잘 보니 지금 재민이 신고 있는 운동화, 멤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비했던 그 운동화였다.
“운동화 괜찮아? 평소에 신는다는 브랜드 다른 라인으로 산 거였거든.”
“네. 이거 요새 연습할 때 신던 거라 오늘 리허설 할 때도 신으려고 들고 왔어요.”
재민이 내게 자랑이라도 하듯이 발을 들었다.
재민은 무대 위에 서 있고 나는 아래쪽에 있어서 들린 신발 아래로 밑창이 살짝 보였다. 위쪽은 아직도 새 신발 같은데 밑창은 벌써 닳기 시작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이 움직이면 밑창이 벌써 닳아?’
연습실 바닥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서인지 멤버들이 밖에서 신고 다니는 신발과 연습실 내에서 신는 신발은 따로 있었다.
그럼 정말 연습만 해서 저만큼 밑창이 닳았다는 건데. 춤추는 이들에게 운동화란 거의 소모품인 듯했다.
내가 뭘 보고 있는지 알아챘는지 재민이 다시 발을 내리며 변명했다.
“제가 막 험하게 신고 다닌 건 아니고요…….”
“알아. 그냥 열심히 한 증거 같아서 본 거야. 리허설만 봐도 연습 진짜 많이 한 건 알겠더라.”
무대 위에서 폴짝 내려와 대기실로 향하는 재민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또 생각에 빠졌다.
‘한 켤레씩은 모자라. 두세 켤레씩 사줘야 했던 거였어.’
내가 탕진하는 것은 회삿돈만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받는 월급을 모아서 세계 일주를 할 것도 아니고 집을 살 것도 아니니까, 법인 카드 용도를 좀 벗어나면 내 개인 카드도 턱턱 쓰고는 했다.
그런 사비 지출엔 가끔 직원들의 식사나 후식 값이 포함되기도 했고, 저 운동화 값도 포함되었다.
사 주면 이렇게 잘 쓰고 다니잖아? 나 혼자서 사치하는 것보다야 훨씬 보람 있었다.
나는 또 하나의 사치 계획을 세우고, 재민은 마지막까지 안무를 체크하고. 그렇게 각자의 할 일을 하는 동안 레몬 어워드의 막이 올랐다.
***
댄스 퍼포먼스 무대 순서는 꽤 후반부였다. 그 말은 우리의 대기 시간도 길다는 뜻이었다.
퍼포먼스 무대 팀은 총 다섯 명. 재민을 제외한 네 명은 그룹 대기실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퍼포먼스 팀을 위한 대기실은 거의 재민 전용 대기실이 되었다.
항상 모노크롬 멤버 다섯 명이 몰려다니다가 오늘은 재민 혼자 있으니 그리 넓지 않은 대기실도 더 넓게 느껴졌다.
여유로운 공간을 독점한 재민은 공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몸을 쭉쭉 늘이며 스트레칭을 했다.
‘……페럿 같다.’
유연하게 몸을 접었다 폈다 하는 모습을 보니 몸이 스프링처럼 움직이는 페럿이 생각났다.
가끔 보면 연체동물 같기도 한데 춤출 땐 각이 딱딱 맞단 말이지. 그게 바로 근육의 힘인가.
레몬 어워드가 시작하려는지 웅웅거리는 안내 방송 소리가 벽을 통해 들려왔다. 바깥 복도엔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바깥의 소란과 대비되어 대기실 안쪽엔 더 여유로운 분위기가 흘렀다.
“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쵸?”
“응?”
“여기 어워드에요. 모노크롬도 나왔으면 좋았겠다구요.”
대기실 공간이 넓은 걸 보고 나도 내심 그 생각을 하긴 했다.
아쉬운 마음을 티 내고 싶진 않아서 마음속에만 담아두려고 했는데 재민이 먼저 말할 줄이야.
다른 출연진들과 비교해서 현재 모노크롬의 성적이 어떻다는 등의 다른 요소들은 다 거두절미하고, 단순하게 나오고 싶다는 것 자체는 나도 동감이다.
“그렇지……. 그런데 너희는 항상 생각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니까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봐.”
작년까지는 여러 가지 성적이 부족했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 일단 1위 가수도 됐고, 상도 받았고, 객관적인 수치도 오르고 있고.
작년 1월과 올해 1월의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처럼 내년 1월은 또 다를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게 바로 내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모노크롬을 시상식에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재민이 퍼포먼스 팀으로 출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컬러즈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모노크롬은 안 나오냐며 조금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아는 그룹이 많이 나오는 게 더 재밌다는 이유에서인 듯했다.
물론 모노크롬이 시상식에 나가길 가장 바라는 건 컬러즈지만, 이들은 나와 같은 마음으로 아쉬운 것을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하니까.
이렇게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 정말로 완전체 출연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오고 싶어요. 저 상 받아서 진짜 좋았거든요.”
“그때 받은 상은 장식장에 잘 넣어놨어?”
“네. 맨 위에 상 놓고 미니크롬을 이렇게 빙 둘러서, 주술 하는 것처럼…….”
재민이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현재 장식장 상태를 표현해냈다.
트로피를 넣어두기 위한 장식장은 아직 빈 곳이 많아서 1위 트로피 몇 개와 미니크롬 인형을 넣어뒀다고 했는데, 음악대상에서 상을 받은 후에는 트로피 소환 의식을 벌이는 것처럼 배치해뒀다고.
‘재민이는 사람도 잘 믿지만 미신도 좀 잘 믿는 것 같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트로피를 받고 싶다고 했던 것도 재민이었다. 음악대상에서 상을 받은 게 굉장히 좋았던 모양이다.
역시 시상식에 와야 할 가장 큰 이유는 멤버들이 오고 싶어 하기 때문이겠지.
신나게 설명하는 걸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재민은 뭔가 떠오른 듯이 날 보더니 물었다.
“혹시 음악대상 아니고 다른 데서 상 받아도 괜찮아요?”
“상이야 어디서든 받으면 좋은 거지. 무슨 질문이 그래?”
“이사님이 말했던 소원이요.”
아. 내가 음악대상 무대를 보며 말했던 소원을 뜻하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훅 들어온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내 목표는 음악대상이 아니면 안 되는데.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이 상황엔 뜸을 들이는 게 더 이상한데 순발력이 좋지 못한 나는 뜸을 들이고 말았다. 재민은 내 그런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내용을 바꿔 다시 질문했다.
“만일 대상 같은 큰 상 못 받아도 내년에 이런 시상식 나오게 되면 같이 와주실 거예요?”
“으응……?”
이거야말로 대답하기 더 곤란한 질문이었다. 갑자기 내년 일정을 물어보다니.
그땐 내 퀘스트도 종료된 뒤고 모노크롬도 재계약을 했을지 모르는 일인데.
‘재민이라면 본인들 계약 기간 같은 건 신경 안 쓰고 단순히 말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때 내가 목표를 말하는 바람에 뭔지 모를 고민거리나 불안감을 심어준 건 아닐까.
역시 말을 안 하는 게 나았나. 아니, 이제 와서 말 안 한 거로 칠 수도 없고.
내가 또 대답을 못 하고 있자 재민의 표정이 시무룩해진 것처럼 보였다. 일단 아무 말이라도 하자……!
“아, 아니. 수상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그…… 내년엔 긴 휴가를 갈까 말까 생각 중이라. 물론 너희가 상 받는 건 보고 싶지. 같이 못 오더라도 아마 어디서든 보고 있지 않을까?”
“휴가 어디로 가실 건데요?”
이번엔 휴가란 단어에 꽂혔는지 또 질문이 바뀌었다.
재민은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들처럼 “왜? 왜?”를 무한 반복할 때가 있었는데 그게 하필 여기서 발동할 줄이야.
“어으음……. LA나 그런 곳? 전에 팀 미로 댄스 대회 보러 처음 가 봤는데 좋더라고. 오늘 무대 리허설 하는 거 보니까 그때 생각나더라. 그때도 칼군무하는 팀 있었는데 되게 신기했거든.”
다행히도 화제가 빙 돌아서 재민의 댄스 무대 관련 얘기로 다시 돌아왔다.
재민은 대회 때문에 관광을 많이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LA에서의 기억이 좋았다는 점은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휴. 전처럼 친구가 이승에 더는 없다는 등의 이상한 변명으로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잠시 식은땀 흐르는 일이 있었으나, 그 후에는 그룹 무대를 마치고 온 퍼포먼스 팀이 속속들이 이쪽 대기실로 찾아와서 더 질문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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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댄스 콜라보 누구 한 명 빠지느라 누가 대타로 들어갔다지 않았나?
무대퀄 보니까 대타 아니라 걍 계속 같이 연습한 것 같은데ㅋㅋ
└애초에 한명 빠졌단 것도 다 뇌피셜이었으니깡ㅇㅇ
└아 자숙멤 콜라보 무대 준비중이었다고 피셜 나왔던 게 아니야??
└논란은 있어도 실력은 확실하다고 올려치기하려는 듯한 느낌 좀 들었었음
└교체된 줄 알았던 팬들 머쓱하겠네 ㅠㅠ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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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민이 무대 위로 올라가 있는 동안 나는 뒤편에 마련된 모니터로 무대를 확인했다. 근처에는 퍼포먼스 무대를 펼치는 다른 멤버 측 스태프들도 있었다.
모노크롬 단독 공연이라면 여기저기 쉽게 돌아다니면서 콘솔 등 옆자리에 슬쩍 자리 잡아 무대를 볼 수 있었지만 이곳 레몬 어워드에는 초대받아 왔으니 그럴 수 없었다.
모니터에는 공연 스태프들도 현장 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무대를 전체적으로 잡은 화면만이 나왔다.
좋게 말하면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거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게 보인다는 것 정도?
생방송은 여러 카메라가 찍은 화면을 전환하면서 송출될 테지만 무대 뒤에선 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좀 더 가까이 찍은 버전으로 영상 요청해 봐도 되려나?’
라이브로 송출되는 영상은 재민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부분도 섞여 있을 테고, 그냥 회사 소장용으로라면 무편집 영상도 요청해볼 수 있지 않을까.
팬들도 무편집본은 보고 싶겠지만 그걸 공개하는 건 레몬 어워드의 권한이니까.
리허설로도 미리 봤지만, 댄서들까지 전부 의상을 맞춰 입고 조명효과까지 더해지니 훨씬 임팩트 있는 무대가 완성되었다.
“휴우.”
무대가 끝나자 안도의 한숨을 쉬는지 앞에 있는 다른 멤버 측 스태프의 어깨가 작게 올라갔다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멤버가 교체되어서 무대를 그대로 진행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 정도면 진작 안 부른 걸 후회할 정도로 잘 해낸 거 맞겠지? 역시 재민은 무대 위에서라면 그 누구보다 안정적인 실력을 보여줬다.
관객들의 큰 함성이 무대 아래로까지 울려 퍼지고, 이제 무대를 내려오는 일만 남았는데.
‘음?’
관객들에게 인사하며 무대 뒤쪽으로 향하던 재민이 갑자기 옆으로 달려 나가는 모습이 모니터에 비쳤다.
곧바로 무대 위 조명이 꺼져서 화면에 비친 것은 찰나였으나, 나는 재민이 있는 쪽을 확인하고 있었기에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무대와 가까운 쪽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민아!”
“김윤규!”
나와 동시에 몸이 움직인 것은 SPID 측 스태프였다.
세트 소품으로 어지러운 무대 바로 아래편에 스태프들이 모여 있었고, 그 사이에 재민과 윤규가 있었다.
“으…….”
재민이 윤규의 머리를 감싼 손을 쥐고는 신음을 냈다. 어디서 피가 흐른 건지 손이 얼룩덜룩하고 뭔가에 부딪힌 것처럼 어깨 부근의 의상이 찢어져 있었다.
“재민, 어떡…….”
아니, 지금은 걱정이 아니라 응급 처치가 필요할 때였다.
나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왕좌왕하는 스태프들에게 외쳤다.
“빨리 의료팀! 그리고 대기 중인 구급차로 옮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