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아무리 일찍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라도 새해 첫날엔 자정을 넘어서까지 일어나 있는 법이다.
전 국민이 한날한시에 새해 인사를 나누는 통에 온갖 통신사와 모바일 메신저 서버는 사용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하가 걸렸다.
아이돌 팬들도 새해 인사에 집중하고 있을 때, 잠시 뒷전이 된 뷰이라이브 서버는 건재했다.
연락 수단이 반쯤 먹통이 되어서 강제로 할 일이 없어진 컬러즈들이 자정 넘은 시각의 뷰이라이브 알림을 보고 즉시 모여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안녕, 컬러즈!”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작년엔 건네지 못했던 인사였다.
분위기가 뒤숭숭한 뉴마에 덩그러니 남은 처지로는 차마 밝은 얼굴을 보여주기 힘들었으니까.
일 년이 지나 오늘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음악대상이 끝나고, 다 같이 모여서 무대 의상인 채로 인사할 수 있었다.
“새해 인사 해야 되는데 메신저가 안 돼요? 그럼 우리랑 먼저 얘기 나누고 있으면 되지.”
[구래 새해인사가 머가 중요해 몬클이 있는데]
[ㅇㅇ설날에 인사하면 됨]
한이의 한마디에 컬러즈는 새해 인사를 아침, 내일, 설날…… 그리고 추석까지 미뤄버렸다. 대충 올해 안에만 인사하면 그게 새해 인사라는 마인드였다.
컬러즈는 어차피 핸드폰으로 연락도 잘 안 되겠다, 지금 앞에 있는 모노크롬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지금은 가장 먼저 축하할 일이 있었다.
“오늘, 아니, 어제. 저희가 상을 받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우형이 화면에 트로피를 보여주자 [ㅠㅠㅠ]와 [축하해!]와 손뼉 이모티콘이 빠르게 채팅창을 메웠다.
멤버들은 카메라에 대고 어떻게 생긴 트로피고, 무슨 문구가 새겨졌고, 바닥 면에는 어떻게 미끄럼 방지 처리가 되어있는지까지 세세하게 컬러즈에게 설명했다.
그렇게까지 자세히 보여줄 필요는 없었으나 멤버들이 그만큼 트로피를 받은 게 기뻐서 그런다는 것을 알기에 컬러즈도 ‘그렇구나. 우리도 언젠가 음악대상에서 수상할 수 있으니 알아둬야겠구나.’ 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선배님이랑 같이 한 무대도 다들 보셨죠?”
“자세한 건 나중에 또 비하인드가 올라갈 거예요. 그보다.”
“저희가 또 바로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이 밤에???]
[라이브 더해줘ㅠㅠㅠ]
해랑이 말하며 한이에게 눈치로 사인을 보내자 한이가 마치 인사를 하려는 듯이 아쉬운 표정을 지어냈다.
지금 컬러즈의 마음은 하나였다. 아직 ‘그 이야기’가 안 나왔는데!
기대하는 게 있던 컬러즈는 평소보다 더 아쉬운 마음으로 멤버들을 붙잡았다.
그러나 멤버들이 흘끔흘끔 화면 밖 스태프의 눈치를 봤다. 컬러즈가 한 생각은 ‘직원이 빨리 끝내라고 하나?’였다.
이내 재민이 정말로 뷰이라이브 종료 버튼을 누르듯이 손을 뻗는 것이 화면에 비쳤다. 컬러즈는 인사도 못 하고 끝날까 봐 서둘러 인사를 올려나갔다.
[오늘 넘 수고했어!!!]
[몬클이들 빨리 쉬어야지ㅜㅜㅜ잘가ㅜㅜ]
[가지마]
[잉 꺼진건가?]
[??]
이내 화면이 까매졌다. 그러나 채팅창 등 UI가 그대로 활성화된 상태였다.
[뷰이라이브가 종료되었습니다.] 문구가 뜨지 않자 컬러즈는 오류가 난 줄 알고 물음표로 채팅창을 채워나갔다.
잘 보니 어둡긴 해도 화면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뷰이라이브가 종료된 게 아니라, 대기실의 불이 꺼진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송출용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던 재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노크롬 리더의 생일 파티 현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QBC 음악대상은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에 종료되었다.
타종행사 중계가 끝나면 대상 발표와 소감이 이어지고 바로 엔딩이었기 때문이다.
한 해의 마지막 시상식, 그리고 새해의 첫 수상자란 점에서 음악대상은 더욱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그건 그렇다 치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직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음악 방송 사전 녹화 스케줄에 처음 동행할 때도 이런 해도 안 뜬 이른 새벽부터 일해야 하냐며 작게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새해는 더했다.
나는 살면서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당연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새해에도 각 채널에서 방송이 이어지는 거겠지. 그런데 내가 바로 그 일하는 처지가 되다니.
종무식 하고 조기 퇴근하는 일반 직장인의 삶이 아니란 것이 새삼 실감 났다.
‘나야 굳이 일찍 귀가할 필요 없지만, 다들 빨리 집에 가고 싶겠지?’
이제야 퇴근을 준비하는 우리 직원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시간이 같더라도 상근보다는 교대근무가 더 피곤한 법인데 아예 업무 시간이 들쭉날쭉하니 얼마나 피곤할까.
멤버들의 뷰이라이브가 끝날 때까지 모두가 기다릴 필요는 없었으므로 퇴근할 직원은 빨리 보내주기로 했다.
“다들 새해 첫날부터 늦게까지 수고 많았어요.”
“들어가 보겠습니다!”
자정 넘은 시각이었지만 다들 생각보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역시 퇴근은 언제나 기쁘지.’
그게 아니더라도, 음악대상 현장에서 퇴근하는 것을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 듯했다.
대기 시간에 한 직원이 ‘지금 TV에 나오는 거기에 내가 있다니까?’ 하면서 부모님과 통화하는 것을 얼핏 들었다.
담당 아티스트가 잘되면 스태프도 뿌듯한 법. 나도 다 같이 잘될 수 있도록 좀 더 잘해야겠어.
“이사님은 안 들어가세요?”
“지금 택시 잡으려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좀 느긋이 가려고요.”
아직 외투를 입지 않은 민형이 내게 물었다.
방송국 앞은 음악대상 참가자, 관객, 방송국 직원들이 뒤섞여 당분간은 붐빌 듯했다.
오늘은 타종행사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대중교통도 연장 운행 중이고, 집에 갈 수단이야 다양하게 남아 있긴 하지만…….
‘집에 가면 조용하고. 심심하고. 어차피 지금 시간도 많고.’
더군다나 1월 1일은 회사도 쉬기에 더 마음이 느긋했다.
“민형 씨는 멤버들 숙소 데려다주고 거기서 하루 자고 간다고 했죠?”
“네. 그게 편해서요.”
민형이 숙소까지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면 멤버들도 조금 눈치가 보여서 뷰이라이브를 빨리 끝내려 했을지도 모른다.
매니저 중에 이렇게 편하게 멤버들과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윤희 씨는요?”
“저도 이사님 갈 때 같이 가려고요.”
“왜……요?”
“그냥요. 혼자 가면 무섭잖아요.”
무서움을 느끼는 주체는 윤희는 아닐 것 같고. 내가 무서울까 봐……라는 뜻인가?
어차피 택시 타고 귀가할 거라 상관없었으나 그녀는 이미 여기 있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잘 모르겠지만 호의인 것 같으니까 고맙게 받아둘까.
내가 윤희와 대화하는 동안 민형이 대기실 뒤쪽의 탈의실로 이동했다.
‘아, 그거!’
멤버들의 눈빛 신호를 받고 꺼내러 간 것이었다. 바로 우형의 생일 케이크를.
작년까지는 멤버들의 생일 기획을 거창하게 하지 못했다.
내가 이 세계에 온 게 1월 1일. 이사로서 처음 뉴마에 출근한 것이 1월 3일이었다. 첫 출근을 하기도 전에 우형의 생일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아무리 일 못하는 소속사라도 건재한 그룹 멤버의 생일을 그냥 지나가지는 않았다. 무시하고 지나간다면 그건 케어를 거의 포기했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챙긴다고 챙긴 것이 ‘HAPPY BIRTHDAY’ 문구가 적힌 셀카 업로드 정도. 일할 의욕이 없는 중소 소속사의 전형적인 SNS 운영 방식이라나.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소파에서 자고 있었을 때, 컬러즈는 또 뉴마를 열심히 물고 뜯고 있었겠지.’
이미 한 해의 시작에 한 멤버의 생일을 그렇게 보내버리면 어쩔 수 없었다. 아이돌 그룹은 멤버별로 너무 차이가 나게 챙기면 안 됐다.
어린 다섯 쌍둥이 형제와 비슷했다. 몇 명만 새 장난감을 사주고 몇 명은 안 사주면 울고불고 난리가 날 테지. 다만 우리의 경우 난리가 나는 건 컬러즈란 점이 다르지만.
물론 다른 멤버들의 생일까지 성의 없게 지나갈 순 없었으니 좀 더 신경을 쓰긴 썼다. 다만 생일 컨텐츠를 열성적으로 준비하기엔 그런 부분이 걸렸다.
그런고로, 올해는 시작부터 좀 열심히 챙길 생각이다.
윤희가 타이밍 맞춰 대기실의 불을 끄고, 민형이 케이크를 꺼내서 해랑에게 건네고, 우형이 케이크 촛불을 불어서 끄자 다시 전등이 켜졌다.
“고, 고맙다…….”
“고마운데 왜 그런 표정이야?”
준해가 표정을 지적하자 우형이 카메라를 보며 컬러즈에게 설명했다.
“사실 아까 스태프분들이 케이크 준비해 주셔서 촛불 한 번 불었거든요. 왜 케이크가 또 있지?”
“서프라이즈~.”
한이가 즐거운 얼굴로 폭죽을 터뜨렸다.
타종행사를 보며 나와 멤버들에게 1차로, 대기실로 돌아오자마자 스태프들에게 2차로 생일 축하를 받았고, 이번엔 컬러즈와 함께하는 3차 생일 축하였다.
‘설마 3차까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거야.’
2차가 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렇게 허점을 찔러야 진정한 서프라이즈지.
뷰이라이브용 스마트폰을 든 재민이 밀착 취재라도 하듯이 우형을 원샷으로 잡으며 질문했다.
“촛불 불면서 소원 빌었어?”
“응.”
“그럼 오늘 총 세 번 소원 빈 거네요? 제야의 종 칠 때랑, 아까 촛불 불 때랑 지금. 그럼 소원이 세 배로 잘 이뤄지나?”
제법 논리적인 이야기였다. 거기에 우형의 신선 능력까지 가세하면 더…….
우형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하는 것 같더니, 곧바로 일부는 긍정했다.
“그런데 저 의외로 소원이 잘 이뤄지는 편이에요.”
“컬러즈가 무슨 소원 빌었는지 궁금하대.”
“그건…… 이뤄지면 말씀드릴게요. 그때까지는 비밀.”
타종행사를 볼 땐 한 해를 잘 보내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고 했는데, 생일 소원으로는 또 다른 소원을 빈 걸까.
궁금하지만 비밀이라고 한 이상 물어볼 수는 없었다.
대기실 문 쪽에 기대서 멤버들의 뷰이라이브 현장을 구경하고 있는데,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안 들어가셨네요?”
“라솔 씨!”
뒤를 돌아보니 드레스 차림에서 롱패딩 차림이 된 라솔이 복도를 걸어오는 중이었다.
그 뒤에 그녀의 매니저도 간단한 짐을 들고 있는 것을 봐선 귀가하려던 참인 듯했다.
“라솔 씨도 늦게 가시네요?”
“방송국 분들이랑 좀 이야기할 게 있어서요. 이사님은요?”
“저는 그냥 애들 구경 중이었어요.”
“다들 뭐 하고 있는데요?”
내가 살짝 뒤로 물러서자 라솔이 문 안쪽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어 대기실 안쪽을 쳐다보았다.
“팬싸 중이네요.”
“후배들이 갑자기 왜 팬싸를 하고 있죠?”
“오늘 우형이가 생일이거든요. 뷰이라이브 하다가 얘기가 나와서요.”
“아! 맞다. 생일이란 이야기 들었었는데.”
지금 멤버들은 오늘의 주인공을 두고 가상 팬 사인회를 개최 중이었다.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우형 위주로 찍고 있으니 컬러즈들이 ‘팬싸 1인칭 시점 같다’라고 한 것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듯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사실 오늘 모노크롬 공식 채널에 올라갈 우형의 생일 특별 영상이 바로 팬 사인회 컨셉이었다. 컬러즈 역할을 멤버들이 맡아 이미 이전에 촬영을 완료했다.
우형을 칭찬 감옥에 가두고 싶어 하는 컬러즈가 하도 많아서 정말로 칭찬 ‘감옥’을 만들까 했는데 생일에 감옥에 가둬버리긴 좀 그렇고.
자연스럽게 칭찬에 둘러싸이게 해 줄 방법을 고민하다가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그러니 멤버들은 은근히 생일 컨텐츠를 예고 중인 것이었다.
지금은 실시간으로 컬러즈와 소통하고 있어서 좀 다른 컨텐츠가 되었지만. 마치 아바타 팬 사인회 같은…….
“컬러즈가 손깍지 껴달래요.”
“자. 손깍지.”
“손 하트도 해 주세요.”
멤버들이 컬러즈가 실시간으로 올리는 생일 축하 멘트를 읽으며 팬 서비스도 대신 받았다. 컬러즈는 이런 간접 체험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워 보였다.
이 아바타 팬 사인회에 몰입하던 준해가 시간이 지나 이동해야 한다며 일어서다가 내 옆에 서 있던 라솔을 발견했다.
“앗, 선배님. 안녕하세요!”
준해의 인사 소리를 듣고 멤버들도 그녀가 온 것을 알아채고 우르르 인사했다.
한이는 재민이 든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라솔에게 물었다.
“저희 뷰이라이브 중인데, 혹시 잠깐 나오셔도 괜찮아요?”
“그럼. 나도 사인받아야 되겠는데?”
“예? 앗, 제 사인을요……?!”
라솔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방금 준해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자, 맞은편에 서 있던 우형도 허둥지둥하며 다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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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모노크롬 리더 팬싸중인데 이라솔이 사인 받아감
└?
└잠꼬대하냐
└이 새벽에(?) 팬싸(??) 이라솔(???)
└잠꼬대 아니고 뷰이라이브에서 진짜 하고 있다고ㅋㅋㅋ(링크)
└진짜 맞음ㅇㅇ
└아니 제목보고 뭔 헛소리냐 하고 들어왔는데 정말 정직한 제목이었넼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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