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98화 (198/430)

# 198화

아이돌 그룹들의 크리스마스 특별 영상은 여러 패턴이 있다.

노래 부르고 춤추는 아이돌이다 보니까 가장 무난한 건 캐럴 커버 영상이나, 산타 옷을 입고 촬영하는 안무 영상.

혹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해서 트리를 꾸미거나 맛있는 걸 먹을 수도 있고.

크리스마스는 빌미일 뿐, 아예 다른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쁘긴 하지만 이날을 그냥 넘길 순 없지.’

그런 생각에 크리스마스 특집을 기획하고자 미리 멤버들에게 물어봤었다.

“크리스마스에 올릴 영상 촬영할 생각인데 하고 싶은 거 있어?”

“와……. 벌써 크리스마스구나. 올해도 얼마 안 남았네요.”

“그때면 나도 시험 끝났겠다.”

하고 싶은 것을 물었는데 멤버들은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라는 점이 새삼스레 와닿았던 모양이다.

특히 준해는 마지막 학기 종강을 기다리는 대학생. 상상만 해도 홀가분한지, 혹은 학생 신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게 시원섭섭한지 오묘한 표정이었다.

“바쁘지만 딱 하루만 시간 내서 촬영하려고 하거든. 안무나 커버 영상 같은 거 말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반영해 보려고.”

“눈사람 만들면 안 돼요?”

“그건…… 기상청에 물어볼게.”

재민은 눈사람을 만들고 싶다고 했으나, 우리가 컨텐츠 촬영할 날에 눈이 쌓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눈사람이나 눈싸움 외엔 당장 생각나는 것이 없는지 재민의 아이디어는 거기서 끝이었다.

다른 멤버들을 둘러보니 다들 멍한 표정이었다.

‘질문할 시간을 잘못 골랐나 봐…….’

한창 연말 무대 연습을 하다가 끝났을 때 물어봐서 그런지 다들 머리로 갈 에너지가 소모된 듯 보였다.

지금 당장은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으려나.

“그럼 하루 날 잡고 놀고먹고 쉬는 컨셉으로 가자.”

“그건 그냥 휴가가 아닐까요……?”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잖아. 공휴일 특집인 거지.”

“저희야 다 괜찮은데…… 그게 재밌을지 모르겠네요.”

우형이 컨텐츠로서의 재미를 걱정했다. 아냐. 팬들은 그런 걸 원한다고!

그리고 마냥 멤버들을 풀어놓고 알아서 하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있는 편이 멤버들도 편할 테니까.

“휴일 특집이라고 마냥 누워 있지만은 않을 거고, 게임을 좀 섞어보면 괜찮을 것 같아. 정확한 건 우리가 회의해 보고 알려줄게.”

그렇게 직원들끼리 회의를 거쳐 정해진 것이 바로 ‘이리들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대표 캐럴 가사에서 비롯한, ‘울면 안 돼’ 특집이었다.

***

우리는 서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주택 스타일의 펜션을 하나 빌렸다.

“우와! 진짜 크리스마스 느낌 난다.”

재민이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감탄사를 내뱉었다.

따로 꾸미지는 않았고 거실의 벽난로 앞에 트리 하나만 뒀을 뿐인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외국 가정집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차로 이동하며 조느라 눈에 졸음이 남아 있던 멤버들도 펜션에 도착하자 눈을 반짝였다. 나이가 몇이 되었든 딱 그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은 모두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법이다.

일단 휴일 특집이라고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컨텐츠는 컨텐츠. 카메라를 배치한 후, 한 스태프가 오늘 휴일의 룰을 설명했다.

“모노크롬과 컬러즈 사이에서 울면 늑대, 이리가 된다는 룰이 있잖아요.”

“네.”

“그러니 멤버분들은 오늘 하루 동안 울지 않으면 됩니다.”

“네?”

마침표가 물음표로 바뀌었지만 정말 이보다 더 심플한 설명은 없었다.

오늘 멤버들이 할 일은 준비한 일정대로 휴일을 보내면서 울지 않으면 되는 것뿐이었다.

크리스마스와 우는 것의 상관관계를 바로 눈치챘는지 한이가 질문했다.

“끝까지 안 울면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요. 눈물을 흘린 멤버는 이리가 되고, 인간으로 남은 멤버는 ‘이리 오너라’ 하면서 이리가 된 멤버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특혜를…….”

“그게 뭐야.”

“좋은데?”

심드렁한 멤버들과 달리, 준해가 눈을 번득였다.

다들 ‘이게 좋다고?’ 하는 표정으로 준해를 바라봤으나, 그가 이 미묘한 특혜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금방 알아챘다.

“아차. 현 매니저.”

멤버가 멤버를 부리는 상황은 최근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 부림 당하던 인물이 바로 준해였다.

그런데 그 관계를 뒤집을 기회가 찾아온다면? 의욕이 솟아나는 것도 당연하지.

준해는 지금까지 당해온 수모를 갚아줄 기회가 왔음을 빠르게 알아챈 것이었다.

준해의 열정적인 모습에 반응이 미지근하던 다른 멤버들도 위기를 느꼈는지 적극적인 자세로 변했다.

“누가 때려서, 아파서 울면요?”

“경찰에 신고해야지.”

“아.”

재민의 질문에 해랑이 자비 없는 대답을 남겼다.

그, 그렇지. 울 정도로 아프게 때리면 신고당해도 할 말이 없지.

울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내건 만큼, 중간중간 눈물이 날 만한 코너가 있을 예정이었다.

본격적인 이리 게임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멤버들이 미리 일정을 확인했다.

“아, 안 돼!”

“뭐가 안 돼?”

한이가 뭔가를 보고 경악하기에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하루 일과표 중에서 점심 부분을 가리켰다.

점심시간 옆에 적힌 것은 바로 ‘우형이 직접 만드는 떡볶이 시식’.

“그러고 보니 네가 첫 번째 피해자였다고 했지.”

“이사님도 드셨다면서 어떻게 이걸 일정에 넣으실 수 있어요.”

“재밌겠더라고.”

나도 <아이돌부 방학캠프> 촬영 때 스태프 투표를 위해 한 입 시식한 적이 있었다.

직접 경험해 본 덕분에 그 파괴력을 아주 잘 안다. 그렇기에 일정에 넣은 것이었다. 이건 눈물을 참으려 해도 좀처럼 참기 어렵겠지.

재미로 넣었다는 소리에 한이는 체념한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신셋을 낭떠러지에서 떨어트려 키우셨다더니.”

“아니, 떨어트리진 않았어.”

내가 <쉰셋돌>에서 흔들다리 효과를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낸 것과, 사자가 새끼를 낭떠러지에서 떨어트려 강하게 키운다는 속설이 이상하게 섞였잖아.

절망하는 한이의 옆에서 우형이 타이르는 말투로 말했다.

“내가 마음 담아서 만든 요리를 그런 식으로 말하냐.”

“우형이 너도 먹어야 해.”

“아…….”

지금껏 만들어놓고 남들만 먹여서 본인이 먹는다는 생각은 못 한 듯했다. 하지만 게임이니까 공평해야지.

오전엔 펜션 구경도 하고 느긋하게 쉬다가 본격적인 게임은 이 점심 준비에서 시작되었다.

첫 번째 관문은 양파 썰기였다.

“양파 이거 저희가 다 먹어요?”

“많아 보여도 요리하면 얼마 안 돼.”

일단 게임을 위해 썬 양파는 소진해야 하니까 온갖 양파 요리가 오늘 점심 메뉴에 포함되었다. 우형의 요리만 단독으로 먹기엔 건강에 좋지 않을 듯하여 여러 레시피를 준비해 뒀다.

그 외에도 고추냉이를 올린 연어회, 후추 뿌린 파스타 등등이 준비될 예정.

“그냥 빨리 울고 마는 게 마음이 편할 수도 있겠다.”

“아냐. 난 안 울 거야.”

우형이 벌써 포기하려는 기색을 보였지만 준해는 독한 마음을 먹었는지 표정이 제법 단호했다.

눈썹이 성난 모양인 요크셔테리어 같아. 컬러즈에게 보여주면 분명 이런 반응이 나왔겠지.

“양파 생각보다 안 매운데?”

“얼굴을 가까이에 대고 썰면 좀 매워.”

“누가 양파를 그렇게 썰어.”

“지금 재민이가.”

오늘 재료는 대형 마트에서 한꺼번에 구입한 건데, 양파가 그리 매운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매웠으면 좋았겠지만 생긴 것만 보고 알 수가 있어야지.

재민은 혼자 눈물 내기 게임이라도 하는지 제 몸으로 호기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준비는 별일 없이 무난하게 지나갔으나 요리 단계에 들어서자 멤버들은 선로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준비한 양파 요리 레시피에 있는 것은 평범한 어니언링이었는데, 멤버들은 어디서 봤는지 양파를 꽃 모양으로 튀기겠다고 의욕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하. 나 요리까지 잘하면 완벽해서 어떡하지.”

“이미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시점에 완벽함에서 멀어졌어.”

한이는 생각보다 요리가 잘 나오고 있는지 자아도취에 빠졌다. 옆에서 준해가 한마디 했으나 한이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나도 멤버들이 요리하는 장면은 처음 봐서 제법 흥미롭게 구경했다.

해랑은 허리에 앞치마를 두른 비주얼만 봐서는 젊고 재능 있는 호텔 셰프 같았으나 그의 손에 들린 양파꽃은 탈모 상태라 그 대비가 제법 웃겼다.

‘이 정도면 예능 레벨 올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매력 레벨 때문에 별 행동을 안 해도 웃겨 보이는 건가.

그 옆에서 안전 좋아하는 재민이 안전제일이라며 프라이팬 뚜껑을 방패처럼 들고 뜨거운 기름 앞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좀 더 헤매면서 괴식을 만들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레시피를 착착 따라가는 모습에, 모노크롬의 숙소 모습을 가장 잘 아는 민형에게 질문했다.

“멤버들은 평소에 요리해 먹고 지내요?”

“간단한 건 해 먹지만…… 집에서 해 먹는 건 보통 단백질 보충용으로 고기 구워 먹는 정도? 샐러드를 먹거나. 아예 요리를 안 하고 사는 건 아닌데 복잡한 건 보통 사 먹죠.”

아. 우리랑은 식단이 조금 다르구나.

예전에 뷰이라이브에서 준해가 그랬던가. 우형이 인스턴트 많이 먹지 말라고 잔소리한다고.

“그런 것치고 생각보다 잘하네요.”

“다들 모양만 내느라 맛은 크게 신경 안 쓰는 것 같지만요. 아까 보니까 튀김가루랑 헷갈려서 그냥 밀가루로만 반죽 만들더라고요.”

“그런데 왜 안 알려주셨어요?”

“재밌잖아요.”

이 사람…… 재미를 추구하는 태도가 아주 올발라.

재료의 낭비를 막기 위해 소량으로 완성된 우형의 떡볶이는 여전히 비주얼만큼은 뛰어났다. 처음엔 의욕을 보이던 멤버들도 그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점심시간에 우형과 한이, 재민이 우수수 눈물을 보이며 이리 게임에서 탈락해 버렸다.

자리 정리를 위해 카메라가 꺼지고 나서도 입 안에 파급력이 남았는지 우형은 눈 주변을 티슈로 찍어냈다.

“네가 만든 걸 먹고 네가 탈락해 버리면 어떡해?”

“제가 매운 건 잘 못 먹어서요…….”

그 지옥의 떡볶이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던 뷰이라이브 때도 한이에게 먹이기만 했지, 자기는 안 먹었다던가. 하긴 맛을 보면서 만들었으면 그런 음식이 완성될 리가 없지.

오늘 일정표에는 휴식, 그리고 휴식을 가장한 게임이 번갈아 들어가 있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난 뒤 소화할 겸 멤버들은 트리도 꾸미고 산책하는 등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눈이 안 와서 아쉽다며 눈 대신 사람을 굴리는 인간 볼링 게임 같은 것을 하더니 이제는 다들 지쳐서 거실에 모여 앉은 상태.

우리는 지친 멤버들을 위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할 수 있는, 영화 감상의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

“아니, DVD 패키지만 보면 이렇게 밝은 영화인데!”

“허엉…… 찰리…….”

재민이 영화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영화 속 강아지의 이름을 불렀다.

우리가 준비한 것은 강아지의 시점에서 가족들의 이별을 그린 외국 영화. 직원들에게 가장 슬펐던 영화가 뭐냐고 물어서 골라온 것이었다.

느긋한 감상을 위해 멤버들 앞에 카메라만 설치해 두고 스태프들은 따로 휴식 시간을 즐기다 돌아왔더니 이 상황이었다.

“그래서 탈락한 사람 있어?”

“준해…….”

“아니, 나 안 울었다고!”

준해는 눈 밑이 건조함을 주장했다. 멤버들이 말하는 것을 보니 글썽거린 것은 맞으나 간신히 참은 듯했다.

확실히 우형과 재민만큼 눈가가 빨갛지 않았다.

“해랑이는?”

“이 형은 감정이 없어요.”

한이가 슬픈 얼굴로 없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냈다.

“……옆에서 팝콘 집어 먹으면서 우는 게 웃겨서 이입이 안 됐어요.”

영화 속 인물보다는 멤버들에게 더 이입을 잘한다는 뜻이려나. ……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하고.

이다음은 멤버들을 졸리게 만들 순서였다. 이미 몇 멤버들은 <이리> 활동 때 하품했다가 늑대 귀 머리띠를 쓴 전적이 있지 않던가.

잔잔한 클래식에, 아로마 향초에, 따뜻한 우유에, 멍하니 할 수 있는 뜨개질 재료까지.

뜨개질은 간단한 기본 뜨기만 알려주고 그것만 반복하게 했다. 반복 노동은 사람을 졸리게 만드는 법이니까.

다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격하게 움직이며 놀기도 했고, 영화를 보는 중에 간식을 먹으며 배가 좀 찼는지 금세 노곤해졌다.

그렇다고 딱히 하품으로 눈물이 나올 것 같지가 않아서, 바로 다음 일정인 ‘휴식-낮잠 타임’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적당한 낮잠은 피로 해소에 좋은 법이지.’

한이가 잠시 자장가를 불러주겠다고 나섰다가 멤버들에게 거절당하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다들 편하게 이불 위에 누웠다.

그리고 여기서 소소한 이벤트.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놓여 있는 선물.

휴일 특집이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 느낌을 가미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예상대로, 알람시계 소리를 듣고 부스스 일어난 멤버들은 반짝거리는 포장지에 싸인 선물을 보고 놀랐다.

“이건 뭐예요? 다이어리? 이거 어디서 봤…….”

“우와, 아, 시즌그리팅.”

선물의 정체는 바로 올해 모노크롬 시즌그리팅 구성품이었다. 심지어 멤버들도 이미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방심시켜 놓고! 사실 진짜 선물은 숙소에 준비해 뒀지.’

춤추고 움직일 일이 많은 멤버들을 위해 운동화를 하나씩 준비했다. 진짜 선물은 오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알게 될 것이다.

꼭 이번 크리스마스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선물할 일이 생기면 참고할 겸, 나는 멤버들에게 질문했다.

“진짜로 받고 싶은 선물 있어? 최근에 받아서 좋았던 선물이나.”

“1위 트로피…….”

재민이 좋았던 선물로 ‘1위 트로피’를 꼽자 멤버들도 다들 동의하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건 내가 줄 수 없는 선물인데. 애초에 활동 중도 아니고.

자체적으로 감사패라도 제작해서 모노크롬만의 시상식을 열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크리스마스가 약 일주일 지났을 때, 우리는 조금 다른 형태로 비슷한 선물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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