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화
‘그야 그 사진을 보면 궁금하겠지.’
출연한 방송이 있을 때마다 본방송 시간 전에 매번 모노크롬 공식 SNS에 알림과 사진을 올렸다.
오늘도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잠시 후 ‘가요 페스타’ 본방 사수!]라는 멘트를 붙여 대기실 앞에서 찍은 다섯 명의 사진을 올렸는데, 어쩌다 보니 좀 이상한 사진이 되었다.
[저희 의상 컬러즈한테 미리 보여줘도 괜찮아요?]
사진을 찍기 전, 준해의 말에 멤버들이 자신의 의상을 내려다보았다.
오늘 의상은 전부 <체크메이트>에 맞춰 한 의상 안에 흑백이 섞여 있었다.
소매와 칼라 부분만 포인트로 검은색이 들어간 흰색 재킷이나, 앞판과 뒤판이 각기 색이 다른 베스트나, 바깥쪽에 흰색 라인이 들어간 검은색 바지 등등.
체스판처럼 격자무늬 패턴이 들어간 옷은 너무 노골적으로 ‘우리 지금 <체크메이트> 보여준다!’라는 느낌이라 제외했다.
그런데 지금 의상도 풀 착장으로 쪼르르 모아놓고 보니 너무나도 대놓고 체스 컨셉이었다.
한창 티저가 뜨는 중이라 컬러즈는 의상을 보자마자 다음 앨범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챌 가능성이 컸다.
[<체크메이트>와 이어지는 요소는 최대한 무대에서 처음으로 보여주고 싶긴 하지만…… 사진은 찍어야지?]
옷을 감추겠다고 얼굴만 빼꼼 내민 사진을 올리면 좀 그렇지 않겠어?
B컷으로 따로 올릴 용도의 사진이라면 아주 좋겠지만, 메인에 올릴 사진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안 보여주느니만 못할 정도로 너무 꽁꽁 가리면 오히려 반발을 살 수도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냥 찍으려는데, 재민이 내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해랑을 옆으로 돌리더니 벽에 기대게 했다.
[이렇게 하면 안 보여요.]
해랑이 걸친 검은 재킷은 왼쪽에만 흰색 라인이 들어가 있었다. 재민이 해랑의 오른쪽만 보이게 세우자 정면에선 흰색 라인이 안 보이기는 했다.
[바지도 흑백인데?]
[앞에 준해를 세우자.]
[내가 무슨 가림막이야?]
[아, 앞에 서 봐. 그리고 준해는 재민이가 가리고, 가리고, 가리고…… 하는 거지!]
투덜대던 준해는 결국 한이의 재촉을 받아 다리만 내밀어 해랑의 바지를 가렸다.
옆모습만 나오는 해랑과 어정쩡하게 다리를 내밀고 자세를 낮추고 있는 준해. 이것만으로도 멀쩡한 구도는 아니었다.
[좀 특이하지만…… 나름대로 괜찮은데?]
[이게 괜찮다고요?]
[응. 웃긴다는 점에서.]
그렇게 내 허락까지 받은 멤버들은 의상의 한 가지 색만 보이게 하겠다고 저들끼리 자리 배치에 나섰다.
소매에 들어간 포인트는 다른 멤버에게 어깨동무해서 숨기고, 셔츠는 반쯤 뒤돌아 재킷을 펼쳐 숨기고.
포즈는 이상했지만 표정만큼은 진지해서 더 웃기는 사진이었다.
[오히려 당당하니까 괜찮다. 조금 시대를 앞서나간 하이패션 모델 같아.]
[칭찬인지 모르겠네요…….]
찍힌 사진을 확인하던 우형이 복잡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제 칭찬을 의심할 줄도 알게 됐구나. 나도 사실 칭찬이라기보단 아무 소리나 한 거였어.
이 허술한 은폐 사진이 올라가자 컬러즈는 대체 뭔데 감추는 거냐며 더 궁금해했다. 오늘 무대 컨셉은 런웨이냐는 예측까지 있었다.
‘보고 싶은 모습이 많아서인지 다들 창의적이라니까.’
덕분에 아이디어 리스트엔 다 할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재들이 쌓여가는 중이다.
<가요 페스타>는 총 3부 구성이었다. 모노크롬의 무대는 2부.
보통 음악 방송이라면 모노크롬의 순서는 엔딩에 가까운 경우가 많지만 가요제는 상황이 달랐다.
아이돌 그룹이 많기는 해도 훨씬 대선배가 출연하기도 하고, 웬만한 대형이 아니면 신인 그룹이 많지 않아서 우리는 중간 순서였다.
대기실에 찾아온 지인들도 많았고, 중간중간 멤버들끼리 가볍게 안무를 체크하기도 하고.
대기 시간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복작복작하게 있다 보니 생각보다 모노크롬의 무대 순서는 빠르게 찾아왔다.
“다들 준비 열심히 했으니까, 연습한 만큼은 보여주고 와.”
“네!”
“그리고 팀 미로 단원분들도 오늘 무대 같이 준비해 주셔서 감사해요.”
“감사할 게 뭐 있나요. 거의 한 팀인데.”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것도 감사하고요.”
오늘 준비한 무대의 포인트 중 하나는 팀 미로의 단원 6명이 댄서로 함께한다는 점이었다.
‘세상에 어느 그룹이 팀 미로를 댄서로 세우겠어.’
팀 미로가 다른 그룹까지 맡겠다고 하면 우리가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일단 지금은 우리가 독점하고 있으니까 이 기분을 충분히 즐겨야지.
모노크롬이나 팀 미로 단원들이나 이런 가요제 무대가 처음인 것은 마찬가지. 멤버들은 조금 긴장하는 반면, 팀 미로 단원들은 큰 무대 경험이 많아서인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대기 시간 동안 재민이 이들에게 방송국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같이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다른 그룹 댄서팀에 팀 미로의 댄서 후배들이 포진해 있어서 인사를 받았다는 소소한 이야기도 잠깐 전해 들었다.
그래서, 약 3분 30초의 모노드라마를 가지고 5분의 무대를 어떻게 채우느냐.
‘저번 <뮤직더라이브>에서 했던 두 곡 무대보다 이 5분짜리 무대가 더 짜기 어려웠어…….’
앞 10초는 잔잔한 전주와 함께 등장. 음악에도 전주가 있듯이 갑자기 시작하는 것보다는 ‘지금 나오는 그룹은 모노크롬입니다. 곡 이름은 입니다.’라고 시청자들에게 알려줄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엔 인트로 퍼포먼스가 약 30초. 인트로엔 모노필름과 시퀄의 멜로디를 활용했다.
인트로가 끝나면 팀 미로 단원들은 잠시 뒤로 빠지고 그 후엔 다들 알고 있는 원 버전 무대.
2절까지 기존 버전 그대로 이어지다가, 2절 후렴이 끝나면 원곡에 있던 브릿지 파트가 나오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전개가 이어진다.
시작은 째깍째깍하는 시계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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ㅑ이거 쳌메다
시계 소리 티저에 나온거
└헐 그러네[email protected]!!
└ㅁ자다맞ㄷ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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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시작하자마자 다들 무대에 집중하느라 커뮤니티에 게시글이 올라오는 속도는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이렇게 실시간으로 감상을 남기며 감상하는 컬러즈도 있었다.
이런 컬러즈들도 시선은 거의 화면에 두고 있는지 글의 길이가 매우 짧고 오타가 많았다.
‘누구보다 먼저 유레카를 외치는 재미도 있지.’
덕분에 우리의 의도가 시청자와 컬러즈들에게도 잘 전해졌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이 편곡 파트는 우형과 프로듀스 팀이 고심해서 만든 부분이었다. 원곡의 멜로디 전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절묘하게 신곡의 요소를 끼워 넣었다.
미튜브를 보다가 그해에 나온 히트곡을 총결산해서 마치 한 곡처럼 합쳐놓은 리믹스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런 느낌으로 두 곡이 오묘하게 섞여들었다.
‘처음 들었을 땐 알던 것과 다른 전개가 튀어나와서 ‘이렇게 바뀌었구나’란 생각부터 들었는데 계속 들으니까 이것도 원래 있는 버전 같아.’
애초에 시리즈여서 그런지 두 곡이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잘 이어졌다.
특히 가사는 둘 중 어느 곡에 들어가더라도 위화감이 없게 바뀌었다. 의 ‘네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다’라는 내용이, 이 리믹스 버전에선 ‘유리에 비친 낯선 나와 눈이 마주친다’라는 식.
대놓고 내용이 확 바뀌는 것보단 이렇게 은근하게 드러내는 편이 보는 사람도 더 재미있겠지.
그 이후엔 특별 무대엔 꼭 들어가는 댄스 브레이크 파트. 인트로가 맛보기였다면 이 부분이 메인 퍼포먼스 파트였다.
이번 무대를 연습할 때, 재민이 팀 미로와 짠 안무를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나이트가 이렇게 움직이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재민은 뒤로 이동하더니 옆으로 내민 발끝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며 빙글 돌았다.
재민이 직접 몸으로 보여주는 동안 팀 미로 단장인 민후가 설명을 보충했다.
[체스말이 움직이는 걸 표현한 거예요. 각자 역할이 있어서 중간중간 체스판 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동선이 짜였거든요. 다섯 명이라 많이 생략되겠지만 엔딩에서 체크메이트 구도를 이루고 끝나는 거죠.]
[우와……. 그렇게 복잡한 걸 다 외울 수 있을까요?]
재민이 간단하게 보여준 발재간만 해도 현란했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더 복잡한 안무가 기다리고 있다는 듯했다.
또 그 ‘역대급’ 안무가 갱신되는 건가. 이번엔 몸이 힘든 것보다는 외울 게 많아 보였다.
혀를 내두르며 물어보니 민후는 뭐가 걱정이냐는 듯이 가볍게 반문했다.
[외워야죠?]
재민보다 더한 게 민후라더니. 재민과 확인하여 안무를 짠 이상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는 듯한 저 단호함.
선택지는 어떻게든 외우는 것 하나뿐이라는 그의 말에 나는 다른 의미로 혀를 내둘러야 했다.
오늘 이 특별 무대에서 그 안무를 전부 보여주지는 않지만 어떤 느낌인지, 예고 정도로는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다.
퍼포먼스 파트가 끝난 후엔 다시 본래의 로 돌아와 마무리.
생방송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중파 연말 가요제는 큰 무대였다.
대기실에 있던 스태프들도 다들 긴장하며 보고 있었는지 조용하다가, 무대가 끝나자 “잘했다.”라는 말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안심하며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제 컬러즈도 다들 참고 있던 감상을 쏟아놓을 테니까.
“요새는 이사님이 저보다 더 모니터링을 잘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취미죠.”
“취미로 할 수 있다는 게 더 대단한 거 아닐까요?”
스마트폰부터 찾는 내 모습에 윤희가 한마디를 얹었다.
전엔 ‘커뮤 중독’이라던 그녀의 평가가 ‘취미로 모니터링까지 하는 열정’으로 변해 있었다.
내가 커뮤니티를 구경하는 게 전부 업무 성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첫 1위를 달성한 이후의 소소한 변화였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커뮤니티 염탐하는 건 똑같으니까 웬만하면 좋은 표현인 쪽이 낫겠지.’
열정적인 이사란 호칭은 좀 낯간지러워서, 오히려 커뮤 중독이 더 친근하고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마이 엔터의 성공도 시스템이 기동하지 않는 지금, 커뮤니티의 반응을 보면 성공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마음의 안정! 컬러즈가 어떻게든 자신의 어휘력 안에서 최대한 좋은 말을 조합해 긴 감상을 적어놓는데 안 보면 너무 아깝잖아.
예상대로 컬러즈는 무대가 끝나자마자 우르르 감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감상이라기보다는 감격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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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무대로 신곡 예고를 하는 아이돌이 있다?
그런데 그게 내돌이다? 이렇게 벅차오를수가
└진짜 준비 많이 한 거 느껴진다 눈도 못 떼고 봄 ㅠㅠ
└무대 영상 언제 올라와 당장 다시 봐야돼
└이렇게 재밌는거 왜 지금까지 너네끼리만 하고 있었냐 방송국놈들아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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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무대의 재미를 올해에야 처음 맛본 컬러즈는 연말 무대가 없던 과거를 한탄했다.
‘이번에 모노크롬이 펼친 무대가 만족스러웠으니 그만큼 지나간 세월이 더욱 아쉬운 거겠지.’
그래도 다들 한탄에만 빠져 있지는 않았다. 오늘 무대 위에서 풀린 다음 앨범 떡밥을 가지고 또 물고 뜯고 씹고 즐기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가요 페스타>는 크리스마스이브. 다음 날은 당연히도 공휴일인 크리스마스.
컬러즈는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무대 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마음껏 밤을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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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절이라 하면 사람들은 보통 설이나 추석을 떠올린다. 크리스마스는 외국에서 유래한 명절이라 전통적인 ‘명절’이라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돌 팬들에게 크리스마스란 명절 중의 명절이었다.
보통 설이나 추석엔 인사 정도만 올라오는 경우도 많은데, 크리스마스는 웬만하면 특별 영상이 하나쯤은 올라오기 때문이었다.
모노크롬도 예능 촬영 마무리와 앨범 준비, 연말 무대 준비가 겹쳐서 바빴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리스마스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크리스마스 당일에 올라온 스페셜 영상.
[이리들의 크리스마스]가 모노크롬 공식 미튜브 채널에 업로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