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96화 (196/430)

# 196화

“안녕하세요, 주-.”

“어, 응. 오늘 너희 의상도 예쁘다.”

이코드 멤버들이 모노크롬에게 인사한 후, 도한이 내게 따로 인사하려 하기에 바로 대답해서 말을 끊었다.

얘는 ‘주인님 이사님’이라는 이상한 호칭을 쓴단 말야.

내가 의상 얘기를 꺼내며 칭찬해서 그런지, 이코드 멤버인 한우리도 우리 멤버들이 입은 셔츠를 보더니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건 설마 체크메이트…….”

모노크롬의 현재 의상은 모노드라마 의상 스타일에 흑백을 더 강조한 수트 스타일. 한우리의 시선이 닿은 것은 흰색과 검정이 반반으로 섞인 셔츠였다.

조금 전 스포일러를 내뱉을 뻔하다가 내게 제지당했던 재민이 그 말을 듣고 또 “헙.” 하며 입을 막았다.

‘아니, 거기서 그렇게 반응해 버리면 누가 봐도 다음 앨범이랑 이어져 있다고 인정하는 것 같잖아.’

다른 아티스트가 SNS에 떠벌릴 리도 없으니, 사실 알아봐도 큰 걱정은 없었다. 우리도 정말 밝히고 싶지 않았다면 무대 전까지 꽁꽁 싸맸을 것이다.

그런데 한우리도 재민의 반응을 보더니 똑같이 “헙.” 하고 입을 막았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여.”

스포일러라는 것을 눈치챈 한우리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입단속에 나섰다.

재민은 한우리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엔 아예 당당하게 의상을 자랑하고 나섰다.

“나 이거 마음에 들어. 이번에 제작한 재킷도 있는데 보여줄까?”

“저, 저는 방송으로 볼래여……!”

재민이 있는 것 없는 것 다 꺼내서 보여주려고 하자 한우리는 무대로 보고 싶다면서 먼저 도망가 버렸다.

‘멤버들이랑 오래 봐온 도한이는 친분이 있는 상태에서 응원하는 건데, 쟤는 진짜로 컬러즈의 마음이야…….’

커뮤니티에도 종종 본 방송 전에 사전 녹화 후기가 올라온다. 그중엔 멤버들의 의상이나 헤어 스타일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기도 했다.

그런 후기를 찾아보면서 기대하는 컬러즈가 있는 반면 절대 보지 않는 컬러즈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봐야 온전히 무대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던가.’

한우리는 후자에 속했던 모양이다.

재민은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의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듯한데, 마치 능글맞게 장난치다가 후배를 도망가게 만든 것처럼 되어버렸다.

도한은 혼자 덜렁 남겨진 재민의 뒷모습을 보더니 한우리가 컬러즈가 된 사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봤을 때 외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돼서 한국에 적응을 못 했더라고요. 가족들이랑 떨어져서 혼자 있으니까 장래 걱정도 많고. 저도 좀 불안해했던 시기가 생각나서요. 그래서 영업했죠.”

“응……?”

외국에서 온 연습생 동료를 도와주려 했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갑자기 이야기가 영업으로 뛰어넘어서 나도 모르게 되묻고야 말았다.

뜬금없다고 생각했는데, 도한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걔도 데뷔 목표로 한국에 온 거니까. 같은 아이돌 선배가 하는 말이 더 와닿을 것 같아서 뷰이라이브 같은 거 보라고 추천했어요. 보다 보면 한국어에 더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그…… 뭔가 좀 부끄럽다.”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우형이 머쓱하게 웃었다. 쑥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한 듯한 표정이었다.

팬들도 멤버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큰 위안을 받고는 한다. 그런데 같이 활동하는 후배가 그랬다고 하니 새삼스레 더 와닿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것도 있었어요. 한우리가 래퍼인데, 제가 아는 래퍼 중에 가장 말 상냥하게 하는 사람이 선배님들이었거든요.”

도한은 그냥 자기가 좋아서 영업한 게 아니라 생각보다 고려한 게 많았던 모양이다.

‘하긴 한국어를 거친 랩으로 배웠다간 한국 생활에 어려움이 생기겠지.’

모노크롬의 래퍼 포지션은 우형과 해랑. 이 둘은 ‘래퍼’ 하면 떠오르는 거친 이미지가 없었다.

해랑의 랩도 어두울 뿐이지, 거만하거나 공격적인 느낌은 없고, 특히 우형 같은 경우엔…… 남들보다 마음 약한 이미지였다.

“선배님들 나온다는 소리에 한우리도 같이 <쉰셋돌>에 지원했거든요. 그런데 걔가 감정이 격해지면 영어로 본성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그만.”

“……너랑 붙어 다니던 이유가 있었네.”

“네? 이유요?”

“아무것도 아냐.”

도한의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두 사람이 붙어 다니며 죽이 잘 맞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이코드 내의 급발진 콤비였잖아.

아직 한국어가 서툴러서 한국말로 이야기할 땐 순한 말투였을 뿐, 영어를 쓸 땐 또 다른 모양이었다.

그리고 <쉰셋돌> 작사 수업 중에 우형과 준해가 마음을 가라앉히라고 줬던 시집을 한우리가 대신 읽으면서 어휘력을 늘려가고 있다고.

‘……한국어 교재가 모노크롬이랑 시집이라 다행이다.’

도한이 직접 가르치는 게 아니라서 다행……. 아니, 설마 반대로 도한이 한우리에게 영어를 배워서 그 디스랩이 탄생한 건 아니겠지?

실상은 모르겠지만 소소한 소식까지 알뜰살뜰 전해 준 도한은 다시 본인의 대기실로 돌아갔다.

<아이돌부 방학캠프>에서 함께한 그룹들은 이렇게 인사하고 지나가고, 그 다음은 <쉰셋돌> 멤버들이었다.

잠시 업무 통화를 하러 대기실 앞 복도에 나와 있었는데, 도한의 친구가 된 제오도 자신이 속한 브이스타일의 멤버들과 함께 잠시 인사하고 갔다.

“선배님들 어디 샵 다니신대? 신셋이랑 같은 데야?”

“샵이 문제가 아니야. 선배는 생얼에 헤어 세팅 안 해도 대박이야.”

모노크롬을 보고 나더니 메이크업과 헤어샵 정보를 궁금해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내 귀에 들어왔다.

‘현직 아이돌이 보기에도 스타일이 괜찮았나 보다.’

이건 내가 뿌듯해도 되는 부분인가…… 했는데, 제오는 스타일링의 영향이 아니라 본판이 좋은 것이라며 일축했다. 아마 해랑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얘도 몰랐겠지. 과거엔 과한 스타일이 해랑을 잡아먹은 적이 있었다는 것을.

제오의 말을 듣고 납득했는지 샵을 궁금해하던 멤버는 금세 궁금증을 접었다. 그리고 “네 말대로 실물이 대박이더라.” 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해랑의 얼굴이 남자애들이 선호하는 얼굴인가.

“아, 맞다. 누나가 사인 구해달라고 했는데.”

아니. 성별을 가리지 않는 얼굴이구나.

브이스타일은 방송이 끝나고 다시 사인받으러 와도 될지 고민하면서 멀어져갔다.

‘완전 입덕 요정이네.’

해랑을 요정이라고 칭하기엔 안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아이돌이 포지션 외의 역할을 맡으면 보통 ‘요정’이란 이름이 붙곤 했다.

매력 10도 엄청났지만, 매력 11은 마음의 벽까지 허무는 힘이 있는 걸까.

순서를 정해둔 것도 아닌데, 브이스타일이 지나가고 얼마 후 류현의 러너스하이도 찾아왔다.

“아, 안녕하세요…….”

“으응. 멤버들 대기실에 있으니까 들어가 봐.”

류현은 복도에 나와 있던 나를 보고 흠칫하더니 긴장한 얼굴로 허리를 숙였다.

‘이제 내가 흔들다리로 보낼 일은 없을 텐데.’

이미 내 이미지가 그의 머릿속에서 공포와 연결되어버린 듯했다. 파블로프식 어쩌구라고 하던가.

이렇게 찾아오는 그룹들의 라인업도 마치 올해의 연말 결산처럼 느껴졌다.

‘한 해를 잘 달려온 덕분에 모노크롬의 인맥이 이렇게 넓어졌구나.’

나도 마찬가지로 방송국 PD나 다른 소속사 사람들과 얼굴을 익혔고. 어째서인지 라솔과도 친분이 생겼고.

홀로 떨어진 이곳에서 새로 친분이 생겼다는 게 참 신기한 기분이었다.

러너스하이는 인사만 하고 금방 돌아갔고, 나도 복도에서 할 일을 마치고 다시 대기실로 들어가려는데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이번에 등장한 것은 이담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모노크롬의 대기실 쪽으로 다가오던 이담은 날 보고는 속도를 줄였다.

“평소 스타일에서 좀 달라졌네?”

더클랜은 징 같은 금속 큐빅이 잔뜩 달린 새까만 가죽 재킷 같은 걸 입고 나타나지 않을까 했는데.

가죽 재킷은 맞는데 채도가 높고 좀 더 캐주얼한 스타일의 라이더 재킷이었다.

이담의 앞머리도 신셋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처럼 가지런히 내린 상태.

“방송이랑 스타일이 너무 달라지면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거 아니냐고, 저희 실장님이 그러셔서…….”

“그, 그렇구나…….”

더클랜의 소속사도 같은 스타일만 내내 고집하더니, 이번엔 신셋의 영향을 받아서 변화를 준 모양이었다.

오르기 시작한 대중적 인지도를 잡는 게 좋다고 판단한 거겠지.

이 아이돌 시장에서 독보적인 거친 컨셉으로 살아남으려고 했던 그들도 다른 쪽의 길이 열리니까 긍정적으로 타협한 듯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담의 의상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도 계속 날 쳐다봤다. 류현과 다른 종류의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건…… 칭찬과 격려를 바라는 얼굴인가?’

우형을 한번 겪어봐서인지 나는 다른 이들의 표정까지 분석할 줄 알게 되었다. 특히나 이담은 우형 스타일이어서 조금 알기 쉽단 말이지.

저번에 무섭다는 소리가 아니라 칭찬을 받아봐서인지 이번에도 좋은 평가를 바라는 걸까.

“평소 스타일도 좋지만, 역시 이런 귀여운 스타일도 좋은 것 같아. 사람들이 생각보다 스타일에 영향을 많이 받거든.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본인도 마음가짐이 좀 달라지기도 하고.”

“조, 조금 어색하긴 한데 저도 이쪽이 편한 것 같긴 해요.”

하긴 나라도 징 박힌 가죽 재킷을 입고 나가면 괜히 험상궂은 얼굴로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

이담도 본인의 말처럼 더 편한 얼굴로 웃었다. 어색하다면서도 칭찬은 좋아하는 점까지 우형을 닮았어.

“연말 무대는 평소랑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도 반응이 괜찮더라. 너희 팬들도 좋아하지 않아?”

“저희 오늘이 연말 무대 처음이라…….”

“아, 앗. 그렇지. 응.”

우리도 오늘이 두 번째야…….

QBC의 특혜를 받은 것은 모노크롬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점까지 자꾸 모노크롬이 떠오른다니까.

우리가 대기실 앞에서 길게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궁금했는지 모노크롬 멤버들이 바깥 상황을 흘끗 보고는 이담을 발견했다.

“어? 이담이담.”

“이담이담은 뭐야?”

“하니하니 비슷하게 별명 지어준 거예요.”

한이가 이상한 별명으로 이담을 부르며 반가워했다. 멘토를 맡으면서 긴장을 풀어주려고 여러 노력을 한 듯했다.

호칭이 달라지면 그에 따라서 관계도 좀 달라지는 법이지.

긴장을 풀어주는 노력의 일환으로는 제법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그럴 거면 다미다미가 좋지 않아? 어감이 좀 더 귀여우니까.”

“오, 좋다. 다미다미.”

“네에……?”

더클랜 멤버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지 않은지 긴장한 표정이었으나 대화를 조금 나누다 보니 금세 조잘조잘 말문이 트였다.

‘역시 카피바라인가 봐…….’

어쩐지 모노크롬에게 제2의 엔피버 같은 존재가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연말 가요제는 출연 아티스트도 많고 스태프들도 많아서인지, 꼭 한 번씩은 큐시트가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난다고 한다.

이번 <가요 페스타>도 예외는 아니었다.

온라인상에선 누가 엔딩에 걸맞다, 아니다, 왈가왈부하며 시끄러웠지만, 모노크롬은 해당 사항이 없으므로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큐시트로 유출된 내용 중 모노크롬에 관한 정보는 중간 순서라는 것과 무대 제목이 ‘모노드라마 리믹스’라는 것.

컬러즈는 그것만으로도 열심히 모노크롬의 무대 예측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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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오늘 무대 말야

모노드라마 리믹스면 모노드라마 한 곡인가?

+큐시트 뜬 거 보고 적었는데 스포될까봐 제목에 스포 달았어!

└이리드라마는 이리+모노드라마라고 2곡 제목 나왔으니까 아마 모노드라마만 하는 듯

└리믹스인거 보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무대 너무 궁금해

└의상 대체 뭐길래 가렸을까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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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기다리는 컬러즈가 나누는 대화 중엔 오늘 의상에 관한 화제가 적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가요 페스타> 방송 전에 공식 SNS에 올린 사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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