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모노크롬은 단색조나 흑백을 뜻한다. 그리고 모노크롬의 인사법은 ‘블랙 앤 화이트’.
흑과 백이라고 하면 역시 체스가 빠질 수 없었다.
‘비주얼 쪽으로는 활용하기 좋아도 컨셉으로 잡기엔 뭔가 부족해서 머릿속으로 보류하고 지나갔던 요소인데.’
같은 ‘체스’라는 키워드로 이렇게 이어낼 줄이야.
체스는 킹을 확실히 궁지에 몰아넣는 ‘체크메이트’를 만드는 게임.
해랑이 말한 내용을 비유하면서 모노크롬의 특징도 들어가 있으니 이보다 더 적당한 단어는 없었다.
“결국 경쟁해서 하나가 이긴다는 거지.”
“네. 양자 대결은 아니지만.”
“괜찮다. 그럼 다중 인격 컨셉을 그대로 이어가는 건가?”
“다양한 느낌을 내자면…… 조금 변형해도 좋을 것 같아요.”
2부작, 3부작처럼 시리즈로 내는 곡은 이어진 요소가 있을 뿐이지, 정말 영화의 1편, 2편처럼 완전히 내용이 이어지지는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따지자면 속편이 아니라…… 옴니버스 형식이 많다고 해야 하나?’
완전히 같은 컨셉으로 두 가지 곡을 내는 것도 신선하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미 한 번 컨셉을 접한 팬과 리스너들의 기대감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아하, 이게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하고 예상 가능한 수준에서 끝나는 것보단 ‘이 키워드가 어떻게 다르게 이어졌을까?’ 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게 낫단 소리다.
“체크메이트라는 타이틀을 쓰려면 컨셉이 달라지더라도 대립하는 구도는 살려야 할 텐데. 거기에 모노드라마랑 이어지면서…….”
다음 앨범은 또 다음 앨범 준비에 들어갈 때 회의하면서 세부 사항을 정하겠지만, 지금 말이 나온 김에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컨셉을 대강이라도 미리 정해두면 이어지는 요소를 배치하기에도 좋을 테니까.
고민하는 나처럼 멤버들도 다들 생각에 빠졌는지 시선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사람이 서로 대립할 만한 이유가 뭐가 있지?”
“너 영화 많이 보잖아. 최근에 본 것 중에 뭐 없어?”
우형은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는지 혼잣말처럼 말하고, 한이가 재민을 지목하면서 질문했다.
가수들의 인터뷰를 보다 보면 영화나 다른 창작물에서 영감을 받아 컨셉을 정했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리고 멤버 중에 가장 많은 영화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재민.
재민은 기억을 뒤지며 생각나는 것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막 이 우주의 인류랑 저 우주의 외계인이랑 싸우는데요. 우주 함선이 나와서…….”
“그, 그런 스케일까지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탕진에 거리낌이 없다지만 뮤직비디오로 그런 SF 판타지 대서사시까지 구현해내기는 아무래도 어렵지. 이건 돈만 문제인 게 아니라 제작 시간도 문제다.
우주선 느낌의 세트라면 만들 수 있겠지만, 재민이 말하는 것은 범우주적 스케일의 전투를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곤란한 반응을 보이자 재민은 예시의 스케일을 확 줄였다.
“운동 경기 결승전 같은 거나, 형사가 범인을 잡거나…… 아니면 뭐 사랑의 라이벌? 그런 것도 있고요.”
“사랑 얘기는 좀 안 어울린다.”
는 인격, 자아의 혼란이 컨셉이었지, 사랑에 초점을 둔 곡은 아니었다.
갑자기 사랑 이야기로 빠지면 한이의 말대로 2부작으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체스는 똑같이 생긴 말이 흑이랑 백으로 나뉘었잖아? 그런 것처럼 비슷한 상대끼리 대결하는 느낌이면 좋지 않을까? 이번 컨셉처럼…… 나와 나의 대결이라거나?”
재민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대립이나 대결만을 주제로 가져가기엔 범위가 너무 넓었다. 그래서 좀 더 모노크롬의 색을 살리는 방법을 예시로 들었다.
모노필름 시퀄 때도 거울을 활용해서 ‘나’에 집중했고, 모노드라마도 ‘나의 다양한 인격’이 컨셉.
‘그러고 보니 <이리>도 ‘늑대인 나’를 잃어버린 늑대인간의 얘기고…….’
어쩌다 보니 최근 모노크롬의 앨범엔 자아 성찰 컨셉이 많았다.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내가 과거 플레이에 고통받으면서 자꾸만 자아 성찰을 하던 게 영향이 있었을까.
내 말이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재민만큼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떠오른 것을 말하려고 또 손을 번쩍 들었다.
“맞다. 얼마 전에 본 영화인데 쌍둥이가 서로 대결하는 작품도 있었어요. 최종 보스가 쌍둥이 형제였던 거죠. 얼굴도 같고 어릴 땐 똑같이 자라와서…….”
“아!”
재민의 말을 듣고 뭔가 생각났는지 똑똑이 준해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이리> 때도 준해의 의견이 컨셉의 기둥이 됐었지. 이번엔 또 무슨 아이디어가 떠오른 걸까 기대되는 마음으로 그를 쳐다봤다.
“쌍둥이 하니까 생각났는데, 똑같이 생긴 자기 자신과 대립하는 거 있잖아요. 꼭 하나만 살아남아야 하는.”
준해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일부는 알아들었다는 표정, 일부는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나도 뭔가 떠오를 듯 말 듯 한…….
준해는 더 뜸 들이지 않고 바로 자신이 찾은 정답을 얘기했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둘 중 한 명만 살아남는다는 거요.”
***
뮤직비디오 뒤에는 다음 내용을 예고하듯이 10초 정도의 짤막한 엔딩신이 추가되었다.
우형이 어슴푸레한 골목길을 지나다가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누군가와 어깨가 살짝 부딪힌다.
우형은 다시 갈 길을 가면서 화면 밖으로 나가고, 부딪혔던 사람이 우형의 뒷모습을 좇아 뒤돌면서 얼굴이 얼핏 보인다. 후드를 써서 가려져 있던 얼굴은 바로 재민.
초점이 흐려지는 화면 속, 재민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다시 뒤돌아 지나가는 장면으로 뮤직비디오는 끝난다.
뮤직비디오가 나왔을 당시에도 컬러즈는 이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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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애들 어깨 넓어서 부딪힌거바 ㅠ
나였으면 부딪히지도 못하고 쇽 지나갔음
└나도 어깨운동하고 있으면 몬클이들이랑 골목길에서 어깨 스칠 수 있음?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 애들 어깨 소중하다고요 어깨빵 안돼ㅠ
└그럼 상의에 어깨패드 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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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어깨 넓은 거 자랑하려고 넣은 장면이 아니야…….’
다음 컨셉을 예고하는 장면이었는데 뜬금없이 어깨에 집중하는 컬러즈가 있었다. 어깨 패드라는 이상한 유행을 만들어내기까지.
정말 컬러즈는 어디로 사고가 튈지 모르겠다니까.
그런데 역시 가수와 팬은 닮은 걸까. 멤버들도 촬영 당시에 비슷한 장난을 치긴 했었다.
본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동선 체크 겸 리허설을 할 때였다. 우형과 어깨가 제대로 부딪히기도 전에 재민이 “으윽!”하고 할리우드 액션을 펼치는 모습이 비하인드에 들어갔다.
[사람이 매너가 있지,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는데 좁은 골목길에서 그렇게 어깨를 당당히 펴고 지나가면 어떡해.]
[어깨 좁혀서 걸어.]
멤버들도 옆에서 재민의 편을 들며 훈수를 두는 통에 우형이 어깨를 움츠러트리고 리허설을 진행해서 스태프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감독은 장난으로 아주 좋다고 했지만, 옆 사람이랑 부딪힐까 봐 어깨 움츠리고 걷는 장면이라니 멋없어……. 그런 건 뮤직비디오에 못 넣어.
아무튼, 다른 데 집중하는 컬러즈도 있었지만, 우리의 의도대로 뭔가 더 나오는 게 아니냐며 추측하는 컬러즈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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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뭐야 혹시 다음 앨범 예고인가?!?
뮤비 스토리 부분에선 다들 혼자 있고 같이 나오는 장면 없는데 마지막에만 둘이 만남 ㅇ0ㅇ;;
└아 이거맞다 활동 끝나고 바로 다음 앨범으로 컴백하는듯
└맞다맞아
└ㄹㅇ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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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4컴백만 해도 굉장히 많은 건데 컬러즈는 멤버들을 더 보고 싶은지 1년 5컴백을 노렸다.
조금 과장된 추측이었지만 다음 앨범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맞혔다.
그러나 그 10초 남짓한 짧은 장면으로 정확히 무슨 컨셉인지 예측하기는 어려웠는지 다양한 예상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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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그거다
인격을 여럿으로 만드는 실험을 한거고 재민이가 과학자인거임
근거는 없어 그냥 내가 보고싶음 미친과학자 컨셉 한번만 해주세요
└이거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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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예측인지 희망 사항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이들은 풍부한 상상력으로 우리의 앨범을 알아서 2부작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사실 다섯 명의 머릿속이 다 이어져 있어서 여러 인격이 생겨났다는 공유기설, 인격은 모르겠고 전입신고를 안 해서 다섯 명이 한 집에 이사 오는 바람에 생긴 소동이라는 부동산 사기설 등등.
거기에 컬러즈는 한결같이 ‘맞다 맞아’ 하면서 맞장구를 치며 나섰다.
‘이렇게 보면 정말 긍정의 아이콘이야.’
그 와중에 해랑이 처음에 제안한 것과 제법 비슷한 결론까지 도달한 컬러즈도 섞여 있었으나, 컬러즈들이 그 글에서도 똑같이 영혼이 부족한 맞장구를 치는 바람에 별거 아닌 것처럼 지나가 버렸다.
네 말도 옳구나, 그 말도 옳구나. 뭐든 다 맞고 옳다고 하는 이들.
아니라고 부정하는 건 가끔 한 컬러즈가 주의 환기용인지 ‘멤버 들튀’ 글을 올릴 때뿐이었다.
‘그만큼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거겠지.’
일단 뭐든 나와준다면 좋겠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되려나. 이런 상상을 하며 기다리는 것도 즐거워 보였다.
올해만 네 번의 컴백. 그리고 해가 지나기도 전에 멤버들이 또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자 컬러즈도 ‘드디어 그 떡밥의 정체가 밝혀지는 건가?’ 하면서 기대를 보였다.
열심히 추측했지만, 연말 무대에서 슬쩍 보여줄 건 예상 못 했겠지?
이들은 무대를 보고 떡밥을 알아챌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도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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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라인업 다 안뜨긴 했지만 연말무대 중에 뮤더라가 젤 재밌어보임
딱 봐도 출연진 제일 다양하게 모아둔듯ㅋㅋ
└대형소속사 그룹들 시상식땜에 많이 빠져서 글킨 한데 그만큼 다른 출연자 많이 모아놔서 재밌긴 할듯
└중소돌 팬한테는 뮤더라가 한줄기 빛임ㅜㅜ
└케이블 음방 다 결방이라 12월 컴백도 얼마 없고 볼거 없었는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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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더라이브> 연말 결산이 모노크롬과 컬러즈에게는 첫 연말 무대였다.
올해의 첫 연말 무대가 아니라, 모노크롬 데뷔 후 첫 연말 무대!
연말 무대는 특별하게 꾸미는 경우가 많아서 컬러즈는 모노크롬의 출연 소식에 크게 기대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비활동 기간에 무대 영상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만 해도 의미가 있었다.
중소돌의 빛 소리를 듣는 <뮤직더라이브>지만 모노크롬에겐 처음. 컬러즈는 작년 연말 결산 영상들을 살펴보며 모노크롬의 무대를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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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더라 연말결산 갓 데뷔한 신인들 아니면 두 곡 많이 하던데 우리도 두 곡 하려나??
작년에 어케 했나 알아보니까 거의 무대로 꽉 채워서 그런지 연차 비슷한 분들은 두 곡이 보통이더라구
└올해 활동 네 번 했는데 한 곡은 넘 정없지 않겠습니까 뮤더라 선생님들..
└두곡 맞음 방금 내가 그렇게 정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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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타이틀인 <체크메이트>로 이어지도록 만든 무대는 QBC의 <가요 페스타>에서 펼칠 예정이었다.
다만 이건 시간상 두 곡을 선보일 수가 없어서 그랬던 것이고 <뮤직더라이브>에선 더 긴 시간을 받아 두 곡 무대가 가능했다.
그렇다고 신곡을 미리 공개할 수는 없으니 우리는 <뮤직더라이브>만의 특별 무대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