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92화 (192/430)

# 192화

나도 아이리스 앞에선 이사보다는 팬의 입장에 가까웠으니 민형의 이야기에도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완전히 무지개의 시선으로 이 현상을 바라보기엔 난 뉴레인 대표의 딸이었고, 그 이전엔 아이리스를 만들고 키웠던 마이 엔터 유저였다.

팬의 입장보다는 아이리스에게 해외 활동을 시키는 회사가 어떤 생각일지에 더 신경이 쏠렸다.

‘이 상황이 게임을 닮은 게 아니라, 게임이 현실을 닮은 거겠지. 마이 엔터 자체가 원래 엔터 업계를 반영해서 만든 게임이니까.’

단순화했지만 현실적이라는 평도 많았던 게임이었고.

마이 엔터에서 해외 투어로 돈을 버는 건 현실에서도 해외 시장이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뉴레인은 아이리스 해외 투어로 한창 돈을 벌고 있다?

‘……아니, 소속사가 하는 일은 원래 그게 맞긴 해.’

그래도 이 정도로 국내 활동을 줄이고 해외로 다닐 줄이야.

작년까지는 안 그랬는데 올해 갑자기 이렇게 해외 진출이 많아진 것을 보면 뉴레인은 아예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단 뜻이다.

해외 수익과 해외 진출이란 목표 중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목표였으니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지.

‘내년엔 아이리스도 재계약을 고려할 시기인가.’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면 그룹에 변동이 생길 수 있으니 그전에 목표했던 해외 진출을 먼저 해 두려고 하는 걸까.

그뿐만 아니라 지금 뉴레인의 소속 아티스트는 아이리스와 윤환뿐이다.

인지도가 더 높은 아이리스가 수익이 나는 활동을 더 활발히 이어가는 것도 이해는 가고.

연습생을 모으는 것도 그렇고, 뉴레인은 여러 경우의 수를 대비하고 있는 거겠지.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나니 이젠 아이리스 멤버들이 떠올랐다.

‘저번에도 일본 투어 다녀왔다가 쉬지도 못하고 컴백할 뻔했다고 레드가 나한테 말한 적이 있었는데.’

다들 그 여리여리한 체구로 바쁜 해외 스케줄을 버티고 있는 걸까. 운동하며 체력 관리하는 모노크롬 멤버들도 국내 스케줄만 소화해도 에너지를 전부 소모할 때가 있는데.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둥둥 떠다녀서 나는 비는 시간에 아이리스 팬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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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내한해줬으면ㅠㅠㅠ

한국 가수인데 이렇게 보기 힘들 일이냐ㅑㅑ

└진짜 연말 라인업에 하나도 없는 건가.. 나도 tv에서 보고싶다ㅜㅜ

└애들 잘하고 있는데 꼭 이런 글 써야함?

└팬들 모인 곳에서 이 정도 말하는 것도 안되면 어디 가서 말하냐..

└혼자 쓰는 공간 아니잖아 일기장에 쓰든지

└충분히 할 수 있는 소리라고 생각하는데 보기 싫다고 나가라는 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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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에선 이렇게 의견이 충돌하는 장면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으음. 견해차야 당연히 얼마든지 있겠지만 금방 말다툼으로 이어진다는 건 다들 그만큼 예민해졌단 건데.’

걸그룹과 보이그룹은 좀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그래도 아이돌 그룹은 팬덤이 중요하지 않던가.

팬 수가 많아지면 이런저런 의견이 나오기 마련이라지만, 팬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은 절대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더더욱.

그리고 이런 글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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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캠프 시즌2로 걸그룹편 찍는다는데 아이리스 안 나오려나ㅠ

저번엔 그룹별 멤버수 맞춰서 섭외했다길래 지금 활동하는 7인조 걸그룹 아이리스뿐이라 진짜 나갈줄 알았는데ㅠ

└222 시즌1에서 선배분들 나와서 기대했는데..

└그건 나가는 팀 결정된거야?

└아직 섭외팀은 뜬거 없고 1월 촬영 예정이라는데 울 애들 그때 스케줄 있어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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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도 출연했던 <아이돌부 방학캠프>. 그땐 여름방학 특집이었으니 이번엔 걸그룹을 모아 겨울방학 특집을 찍는다고 한다.

아이리스의 팬덤인 무지개는 이전 소속사 선배였던 모노크롬이 인지도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시즌1에 출연한 덕분에 섭외에 소속사의 힘이 있지 않을까 하고 조금 기대했던 모양.

기대한 게 많았는데 실망스러운 상황이 반복되어서 더욱 불만이 쉽게 터져 나오는 듯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하긴 해야 하지만…….’

잘하려고 레이블을 분리했을 텐데 과연 뉴레인과 아이리스는 괜찮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걱정되지만 마땅한 방안이 없는 나는 생각만 많아져서 스마트폰을 뒤적거렸다.

레드가 명함에 적혔던 내 번호로 가끔 안부 인사 같은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연락하면 부담될까 봐 웬만하면 먼저 연락하지는 않았는데.

[신주인: 요즘 해외 투어로 바쁘다며?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니까 건강 잘 챙기고. 조심히 잘하고 돌아와.]

내가 한마디 건넨다고 일정에 여유가 생기는 건 아닐 테지만 바쁜 와중에도 건강은 꼭 생각해 줬으면 해서 메시지를 남겼다.

익숙지 않은 외국을 돌아다니며 공연만 계속하면 몸이 상하기 십상이니까.

몇 시간 후에, 시차가 있어서 이제야 일어나 늦게 확인했으며 열심히 하겠다는 밝은 대답이 돌아왔다.

***

“역시 메인으로 가는 게 낫겠지?”

“네. 가장 최근 곡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1위 한 곡이 좋을 것 같아요.”

연말 무대를 위해 멤버들, 프로듀스 팀 직원들과 또 평소처럼 회의실에 둘러앉았다.

<뮤직더라이브>에선 7분 남짓한 시간을 받아서 두 곡 무대도 가능했지만, QBC의 <가요 페스타>에서 얻은 시간은 두 곡을 선보이기엔 좀 부족한 5분.

보통 이런 경우엔 곡 하나를 메인으로 두고 앞에 다른 파트를 추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메인으로 삼을 곡은 첫 정규 앨범 타이틀곡이자 첫 1위를 따냈던 가 가장 적절할 테고.

“참고삼아서 다른 무대들을 보니까, 보통 인트로에 댄스 브레이크 파트를 추가하거나 다른 곡 하나를 짧게 편곡해서 이어 붙이던데.”

“저희도 미리 좀 얘기를 나눠 봤는데, 그 두 방법이 제일인 것 같더라고요.”

민형의 말로는 멤버들이 연말 무대에 나갈 수 있게 되어서 좋아했다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예습까지 해 왔을 줄은.

한이가 멤버들끼리 미리 대화를 나눠봤다며 먼저 대답하고, 뒤이어서 우형이 말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한 곡이라도 더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 곡을 이어붙이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는데 이사님 의견은 어떠세요?”

“모처럼 좋은 기회인데 한 곡만 보여주기엔 아까우니까 그게 좋겠다.”

연말 가요제는 음악 방송보다 훨씬 주목도가 높다. 이때 한 곡이라도 더 시청자들에게 선보이는 게 낫긴 하지.

그나저나 메인 댄서인 재민은 댄스 브레이크 쪽에 더 힘을 싣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다른 곡을 이어 붙여도 안무가 있는 건 마찬가지니까 크게 상관없나?’

어쨌든 멤버들의 의견이 이미 통일되었다면 이야기는 빨랐다.

“그래서, 무슨 곡을 붙일지도 생각해 봤어? 꼭 타이틀곡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아.”

“그건…… 아직 못 정했어요.”

“뭐, 지금 정하면 되지.”

정해진 게 없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원래 그런 세부 사항을 정하려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모인 거니까.

멤버들도 연말 무대를 준비하는 건 처음인데 그렇게 쉽게 아이디어가 퐁퐁 솟아오르진 않을 테고.

“는 여름 느낌 나는 청량곡이라 역시 계절에 좀 안 맞겠죠? 랑도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고.”

“편곡하고자 하면 못 할 거야 없지만.”

준해가 송준오 피디를 쳐다보며 말하자 프로듀스 팀 직원들과 작곡 멤버들이 한꺼번에 생각에 빠져들었다.

가능한 편곡 방향이 있는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는 듯했다.

“그 정도로 편곡을 할 바에는 차라리 다른 곡으로 가는 게 좋지.”

“분위기 반전을 넣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길면 몰라도 짧은 시간 안에 반전을 주면 통일감이 없어 보일 것 같아요.”

송 피디가 말하고 우형이 의견을 덧붙이자 다들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는 일단 후보군에서 먼저 제외.

“역시 모노 시리즈로, 모노필름으로 가는 게…….”

“다양하게 보여주려면 <이리>가 낫지 않아요?”

“아니면 서브곡이었던…….”

올해 활동을 네 번이나 한 데다가 곡이 꽤 많이 나와서인지 의견이 제법 다양하게 나왔다.

그러나 멤버들과 직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같았다.

에 덧붙여서 통일감 있는 무대를 만들 수 있는 곡이 좋겠다는 것.

“으음. 지금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과 연결하기에 가장 적당한 곡이 있잖아요?”

내 말에 회의실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가능한 아이디어인지 모르겠는데, 와 확실히 이어진 곡이 있었다.

“이미 발매된 곡 말고…….”

“저희 준비 중인 신곡을요?”

우형이 내 말뜻을 알아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놀랄 법도 하지. 아직 신곡은 완벽하게 완성된 상태가 아니니까.

“무대에서 공개하자는 건 아니고, 예고처럼 조금 이어지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했는데. 이건 편곡이 너무 어려우려나?”

내가 떠올린 것은 신곡을 에 끼워 넣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말을 꺼내고 생각해 보니까 편곡에 너무 수고가 많이 들 것 같기도 하고.

원래 편곡은 해야 할 테지만 이건 아예 를 원본 소스로 사용하여 새 곡을 만드는 수준이 될 수도 있었다.

비현실적인 방안을 꺼냈나 싶어서 말하던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냥 넘어가도 괜찮았는데, 송준오 피디가 내 아이디어를 다시 주워들었다.

“티저 뜰 시기가 그 근처긴 하죠?”

“네. 1월 컴백 예정이니까 12월부터 티저가 나가야죠.”

“신곡 요소들을 중간중간 집어넣어서 편곡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송 피디가 그렇게 말하며 우형에게 시선을 보냈다. 다음 타이틀곡 작곡가인 우형 본인은 괜찮겠냐고 묻는 듯한 시선이었다. 나도 그 시선을 따라 우형을 쳐다봤다.

“으음……, 지금 나온 요소들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그 잠깐 사이에 머릿속에 대략적인 구성이 떠올랐는지 우형이 의욕적인 얼굴로 대답했다.

***

를 준비할 때의 일이었다.

타이틀곡의 컨셉, 대략적인 스토리가 정해졌을 때 해랑이 뭔가 생각난 듯 손을 들고 말했다.

“혹시, 2부작도 가능할까요?”

“2부작? 다른 곡이랑 이어지는 거 말하는 거지?”

“네.”

곡끼리 세계관이나 스토리가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꼭 완전히 이어지지 않더라도 메인 키워드나 요소를 공유하는 경우도 있었고.

모노크롬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방식이었는데 해랑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그 예술적 천재성이 발휘한 걸까.

“이어지게 만든다면 수록곡이랑? 아니면 다음 타이틀곡이랑?”

“가능하다면 다음 앨범을 이번 앨범과 이어지게 만들고 싶은데…….”

해랑은 그렇게 말하며 내 표정을 살폈다.

모노크롬은 그간 회사가 정할 때만 곡을 낼 수 있었고, 올해는 내가 쉴 새 없이 다음 앨범을 기획했기에 멤버들은 최선을 다해 참여하기만 했다.

그러니 멤버가 먼저 다음 앨범을 제안한 건 아마 처음.

‘아냐. 눈치 볼 것 없어. 이건 대단한 성장이라고!’

난 성심성의껏 들어주겠다는 표정으로 해랑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가 떠올린 게 무엇일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이번 컨셉이, 한 사람 안에 여러 인격이 생겨난다는 내용이잖아요.”

“응.”

“그러면…… 결국 한 인격이 몸을 차지하면 어떨까요.”

는 여러 인격 사이의 긴장감을 표현하며 끝난다. 여운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마무리가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스토리에 엔딩을 붙인다면…….

‘확실히 해랑이가 말하는 내용으로 이어지기 좋겠네.’

해랑의 기획은 이게 끝이 아닌 듯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용히 청취자의 자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만일 하게 된다면 타이틀 말인데, ‘mono’를 붙이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정규 앨범이라서 붙인 거지, 꼭 거기 구애되진 않아도 돼. 타이틀도 생각난 거 있어?”

내 말에 해랑은 본인이 떠올린 타이틀을 입에 담았다.

“<체크메이트>. 이걸로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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